수학여행 들떴다가 울상…'노란버스' 해결해도 줄 취소, 왜?

이창명 기자, 양윤우 기자 2023. 9. 3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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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소풍이 사라진다(下)
[편집자주] 이른바 '노란버스 사태'로 일선 학교의 수학여행이 대거 취소됐다. 교육계에선 이를 노란버스만의 문제로 보지 않는 분위기다. 일생에 한번 뿐인 추억, 수학여행이 사라진 배경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여다보고 대안도 찾아본다.
"노란버스만 타" 논란에 수학여행 줄취소?…대목 앞둔 유스호스텔 불안
통학버스로 등교하는 어린이들

"지금까지 위약금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이제는 다 받아내겠다."

김선태 국제청소년센터 유스호스텔 본부장은 최근 머니투데이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학교 현장 체험학습용 전세버스에 '어린이 통학버스 기준'을 적용하는 '노란버스' 논란으로 유스호스텔 업계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간 학교 등의 부담을 고려해 견적서에 위약금 약정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취소가 이뤄져도 위약금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취소할 경우 반드시 위약금을 받아내겠다는 입장으로 돌아섰다.

실제 예약 취소율은 사업장마다 다르지만 추석이 끝나는 10월이 지나면 수학여행 대목이 끝나기 때문에 업계의 타격이 매우 클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국제청소년센터 유스호스텔의 경우 70여건의 예약 가운데 아직 2건만 취소가 됐지만 자칫 대량 취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이다. 유스호스텔의 특성상 학생들의 단체관광에 기댈 수밖에 없고 10~11월 성수기에 취소가 이어질 경우 마땅한 대안도 없다.

학급당 수십만원의 위약금이 발생하면 학교와 교사에도 큰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미 학교현장에선 위약금 부담을 두고 학교와 교사간 갈등 조짐도 보인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난 5월 정부의 엔데믹(감염병의 풍토병화) 선언 이후 추억만들기를 기대해온 어린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본부장은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 어린이들이 수학여행 등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고, 저희도 수개월 쉬면서 모처럼 찾아온 기회인데 이번 노란버스 논란으로 인해 다시 사업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다"면서 "차라리 올해 초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기업 워크숍 등 다른 시장을 찾아 대안을 만들 수 있었는데 지금은 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경기권의 또다른 유스호스텔도 예약 취소 자체는 1건 뿐이지만 줄취소로 이어질까 조심스럽긴 마찬가지다. A 유스호스텔 관계자는 "학교들도 무작정 취소하기보다는 지금 사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관망하는 추세로 보인다"면서 "취소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지 않은 만큼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국내 최대 테마파크인 에버랜드도 노란버스 사태 이후 예약 취소율이 절반에 달해 이미 치명상을 입었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명확한 수치는 공개하기 어렵다"면서도 "노란버스 이슈가 발생한 직후 30% 정도가 예약을 취소했고, 최근 50%까지 올라갔다"고 전했다.

한편 교육현장에 대혼란을 가져온 이번 사태는 지난해 10월 도로교통법에 대한 법제처 해석이 발단이다. 법제처는 현장체험학습장으로 가는 이동이 도로교통법상 '통학' 등에 해당한다고 해석했다. 만 13세 미만 어린이가 탑승하는 어린이 통학차량은 일반 버스에는 없는 각종 안전장치가 필요하고, 좌석이나 승하차 높이 각종 안전장치 등이 부착돼야 한다. 버스도 황색으로 도색해야 해서 흔히 '노란버스'로 불린다. 하지만 올해 경찰청에 등록된 어린이용 통학버스는 전국적으로 6955대에 불과하다.

수학여행 취소에 학생·학부모도 심란…"1년에 한 번 추억인데"
사진은 올 1월 서울시내 한 초등학교 앞에 정차한 스쿨버스의 모습./사진=뉴시스

"애들 수학여행 보낼 때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취소되는 건 또 싫더라고요. 아이들이 불쌍하기도 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3년만에 끝났는데 1년에 한번 있는 중요한 경험을 못하게 되니 안타깝습니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학부모 황모씨(40대·여)는 최근 초등학생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수학여행이 취소됐다'는 통보를 받고 이같이 말했다. 이 학교에선 이른바 '노란버스 사태'로 학생들의 현장학습 안전 문제가 불거지자 논의 끝에 수학여행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40대 학부모 이모씨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이씨는 "우리 아이 학교는 초과밀 학교라 운동회나 소풍이 격년으로 열려 올해는 소풍 차례였는데 취소됐다"며 "2년에 한 번 오는 기회가 취소되니 아이들이 많이 아쉬워한다"고 말했다.

학교 현장 체험학습용 전세버스에 '어린이 통학버스 기준'을 적용하도록 하는 '노란 버스 논란' 이후 교육 현장에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교육당국이 전세버스로도 현장학습을 갈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학교 현장에서는 현장학습 취소가 잇따르는 상황이다.

29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시내 초등학교 604곳 중 2학기 현장학습을 계획한 학교 589곳의 81.3%(479곳)가 이달 들어 노란버스 문제로 현장학습을 취소했다.

지난 7월 경찰청이 법제처 해석을 근거로 교육부와 전세버스조합연합회 등에 "만 13세 미만 어린이가 현장 체험학습이나 수학여행을 할 때는 통학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공문을 보낸 사태 초반만 해도 노란버스를 구할 수 없다는 이유로 현장학습을 취소하는 학교가 많았다. 올해 상반기 기준으로 보면 전국 초등학교가 버스회사와 현장학습을 위해 계약한 차량은 5만대에 달하지만 어린이 안전에 특화된 노란버스는 경찰청 등록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6955대에 그친다. 수요에 비해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지난 5일 경기도 용인시 한국민속촌에 현장체험학습을 나온 어린이들이 조롱박 터널에서 뛰놀며 가을 정취를 느끼고 있다. 그러나 전국 대부분 초등학교에선 이런 가을소풍을 대거 취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노란버스 사태를 계기로 현장학습 안전문제 자체가 불거지면서 교육당국의 기준 완화 추진 방침 이후에도 현장학습을 취소하는 학교가 잇따르는 분위기다.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불만이 터져나온다. 학부모 이씨는 "어른들의 행정 처리 때문에 또다시 아이들이 피해를 본다는 말이 있다"며 "노란버스가 필수라고 선언하기 전에 수량을 먼저 파악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수학여행 등 현장학습과 관련한 교사들의 부담이 너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장학습 중 예측하지 못한 돌발 상황이 발생해 아이들이 다칠 경우 교사들에게 과도한 책임이 돌아간다는 것이다.

광주시의 한 교사 A씨는 "교사가 아이들을 잘 돌보고 아무리 안전 교육을 실시해도 문제가 발생하면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노란버스 문제에 대한 법률적 보완과 함께 교사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부분도 고민해야 현장학습의 진정한 의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체험학습 등이 있을 때 교사들이 계획을 세우고 버스 계약도 직접 하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라며 "노란버스 문제를 논의하는 김에 이런 부분도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가 나면 보험사에서 사고를 처리해주는 것처럼 교육 활동 중 사건이 발생하면 교사가 나서는 것이 아니라 학교나 교육청에서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며 "이렇게 해줘야 교사도 안심하고 교육 활동에 전념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양윤우 기자 moneyshee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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