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뷰] 적게 받고 일 잘하는 ‘동남아 이모’ 가능할까요

조귀동 기자 2023. 9. 3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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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외국인 가사 도우미가 집안일을 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합리적인 가격에 육아 등을 대신해 줄 수 있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둘러싼 논쟁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도입을 제안했던 이들의 주장처럼 육아 부담을 줄여주고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를 높여줄 수 있다면 중산층 이상 가정에서는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시가 고용노동부와 함께 12월 실시키로 한 시범사업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하지만 싱가포르 등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오래전부터 대규모로 들여온 나라들의 실태는 어떤지, 국내에서는 어떻게 제도가 작동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구체적인 통계나 자료를 이용한 논의는 드문 실정이다. 국제노동기구(ILO), 노동연구원 등의 자료를 이용해 외국인 가사도우미 제도를 둘러싼 쟁점을 분석해 보았다.

◆싱가포르 가사도우미, 평균 급여 68만원…12.8시간 근무

현재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 노동 행태를 가장 잘 보여주는 보고서는 지난 6월 발간된 ‘숙련된 돌봄, 강제된 노동?(Skilled to care, forced to work?)’이란 제목의 보고서다. 이 보고서는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간 내용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싱가포르 내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임금은 월 480달러(67만7000원)이다. 국적과 숙련도에 대한 편차가 있다. 그리고 건강보험 등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12.8시간으로 초과근로가 일반적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해 노동법을 지켜야 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과도하게 연장 근로를 강제하는 것 아니냐며 쟁점이 될 수 있는 사항이다.

동남아시아 지역 외국인 가사 도우미 인력의 이주 경로. /국제노동기구(ILO)

영유아나 아동이 있는 가정뿐만 아니라 고령자 간병을 하는 인원도 많다. ILO는 “고령자에 대한 돌봄 수요가 늘어나면서 관련 업무 종사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도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조사 대상자의 71%는 전통적인 아동 돌봄 일을 하고 있었지만, 18%는 고령자 돌봄을 한다고 답했다.

출신 국가를 따져보면 인도네시아가 46%로 가장 많고 그다음으로 필리핀(30%), 미얀마(24%) 순이었다. 말레이시아의 경우 인도네시아 출신이 80%로 압도적인 것과 대비된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와 언어가 유사한 인도네시아의 차이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싱가포르 가사도우미 고용주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인은 언어(60%)였고 그다음이 숙련도(58%), 지시 이행(48%), 연령(42%)순이었다.

◆문제는 ‘주거’…가정 내 주거 제공 불가능

싱가포르형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가장 큰 특징은 가정 내에서 숙식 제공을 의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ILO 보고서에서 싱가포르 가사도우미의 거처는 100%가 고용주 집이었는데 말레이시아에서는 49%, 태국에서는 40%에 지나지 않았다.

주거를 제공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장점이 있다. 먼저 현물 급여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만큼 임금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가사도우미의 이직을 봉쇄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경우 1960~70년대까지 ‘식모’라고 불리던 10대 후반 여성 가사도우미가 있었는데, 1960년대 후반부터 급여 수준이 빠르게 올랐고, 그 수도 급격히 줄었다. 산업화로 공장에서 여성 노동력 수요가 늘어나자, 식모 대신 여공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사람을 구하기 어렵게 되자 시간제 식모도 등장했다.

아파트 면적별 방의 개수 /통계청

한국 중산층의 표준적인 주거인 아파트에서 가사도우미에게 주거를 제공하기 어렵다. 1970년대 일부 고급 아파트에 남아있던 이른바 ‘식모방’이 없기 때문이다.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전용면적 60㎡ 이상 아파트 가운데 거실(및 문으로 분리된 식사 시설)을 포함해 방이 5개 이상인 주택의 비율은 31.1%에 불과하다 특히 가장 많은 60㎡~85㎡에서는 그 비율이 27.9%로 떨어진다.

서울시와 고용노동부가 추진하는 외국인 가사도우미 시범사업이 출퇴근 형태로 진행되는 데에는 가정 내 주거 제공이 쉽지 않다는 현실이 깔려 있는 셈이다. 또 현행 노동법에 숙식 등 현물급여는 최저임금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외국인 가사도우미의 급여에 숙식을 포함하기도 쉽지 않다. 결국 외국인 가사도우미에 대한 급여는 싱가포르 상황보다 꽤 올라갈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필리핀 여성 노동자 둘러싼 경쟁

가사 및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외국인 노동력을 둘러싼 경쟁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싱가포르 수준의 ‘값싸고 질 좋은’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구할 수 없을 가능성이 높다.

현재 국내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일자리를 찾은 돌봄 서비스는 요양병원 간병인이다. 지난해 노동연구원이 낸 <돌봄 서비스업 외국인 노동시장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현재 요양병원 간병인 가운데 46%(3만5000명)인 1만6100명이 외국인이다. 이들 중 79.2%는 병원에서 숙식한다. 월 200만~350만원을 받는데, 요양병원 다섯 곳 중 세 곳은 한국인과 외국인의 임금 격차가 없다고 답했다.

급격한 고령화로 돌봄 서비스 인력 수요는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철희 서울대 교수와 엄상민 경희대 교수는 산업간 노동력 공급의 변화가 없으면 2031년 사회복지 서비스업에서는 58만4000명, 보건업에서는 44만5000명씩 노동력이 부족해질 것이라는 전망치를 최근 내놨다. 당장 3년 뒤인 2026년 인력 부족 규모도 각각 39만4000명, 33만4000명이다.

산업간 인력 대체율을 50%로 가정한 가장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도 2031년 사회복지 서비스업에서는 29만1000명, 보건업에서는 22만2000명 노동력이 부족할 것으로 두 사람은 예상했다.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기 위한 대규모 외국인 이민은 불가피한 셈이다. 외국인 인력 확보 경쟁이 벌어질 가능성도 높다.

해외 취업 필리핀 여성 노동자의 나라별 현황. /필리핀 통계청

동남아시아 등에서 노동력을 수입하려는 수요는 국제적으로 많다. 필리핀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현재 외국에서 일하는 필리핀인 여성 노동자는 109만9000명인데 사우디아라비아가 29만9000명으로 가장 많고 그다음이 아랍에미리트(UAE·17만8000명), 홍콩(11만5000명), 쿠웨이트(9만5000명), 싱가포르(7만5000명) 순이었다. 대만은 4만2000명, 일본은 1만8000명이었다. 한국을 포함한 기타 아시아 국가는 1만5000명에 불과했다. 필리핀 인력 시장이 국제적으로 형성되어 있다는 의미다.

일본 등 다른 나라들도 동남아 외국인 노동자 확보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고령자 대상 돌봄서비스 인력을 해외에서 확보하기 위해 몇 해 전부터 적극적이다. 미국은 재택 치료를 담당하는 인력 가운데 25%가 이민자인데, 앞으로 그 비중이 점차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적인 ‘동남아 이모’에 대한 수요 증가 속에서 인력 확보 경쟁과 임금 상승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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