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도 지역민 약손 될게요" 49년 째 명절 잊은 약국 사연은

이영주 기자 2023. 9.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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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 내린 이 시간에 약을 받아 들고 가는 손님들을 볼 때면 참 기쁘죠."

광주 동구 금동에서 49년째 대동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홍원표(74)씨는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 25일 한밤중 손님을 기다리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 중 일부는 명절에 광주를 방문하게 된다면 감사의 뜻을 담은 선물을 들고 약국을 찾는다고 홍씨는 전했다.

한편 29일 광주시에 따르면 올 추석 연휴 동안 광주 지역에서는 대동약국을 포함한 약국 285곳이 쉬는 날 없이 운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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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동구 금동 대동약국 운영 홍원표 약사
약국 주변 유흥가 운영 발맞추다 인생이 돼
"심야 약국 찾는 손님, 애틋하고 각별" 감회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광주에서 49년째 연중무휴 심야 약국을 열고 있는 홍원표(74)씨가 지난 25일 늦은 밤 광주 동구 금동 소재 자신이 운영하는 대동약국에서 바깥을 내다보고 있다. 2023.09.27. leeyj2578@newsis.com

[광주=뉴시스]이영주 기자 = "땅거미 내린 이 시간에 약을 받아 들고 가는 손님들을 볼 때면 참 기쁘죠."

광주 동구 금동에서 49년째 대동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홍원표(74)씨는 추석 연휴를 사흘 앞둔 지난 25일 한밤중 손님을 기다리며 이같이 밝혔다.

돌아온 명절 연휴에도 어김없이 아침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 약국을 운영하는 그는 "아픈 사람과 약을 줄 수 있는 사람 등 서로가 필요한 순간에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미소지었다.

개업 이래 하루도 쉰 적이 없는 그는 50년 가까이 일해온 삶의 터전인 약국을 바라보며 지난 날을 돌이켰다.

약국이 동네 의원을 겸했던 197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세간이 들끓었던 1980년대와 약사법 개정, 의약분업에 이르는 1990대·2000년대 등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는 것이다.

6·25전쟁 직전인 1949년에 태어난 그는 갓난 아기일 때 부모님을 여의고 작은 아버지 밑에서 유년기와 청년 시절을 보냈다.

고아라는 아픈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빠른 자립이 필요하다고 생각, 당시 촉망받는 직업인 약사의 길을 걷기로 하고 공부에 몰두했다.

이후 1972년 약사 면허를 딴 뒤 1974년 약국을 운영하고 있던 선배로부터 허름한 이곳을 물려받아 운영해온지 어느덧 49년째다.

그가 약사로서 첫 걸음을 내딛으며 결정한 '연중 무휴·심야 영업' 방침은 오늘날 그의 인생을 가리키는 척도가 됐다.

개업 초기 주변이 유흥가인 점에 따라 심야 영업을 시작하게 된 배경은 오늘날 지역민을 향한 헌신과 봉사가 됐다. 홍씨가 약국 2층에 살고 있기 때문에 출퇴근을 쉽게 할 수 있어 내건 연중 무휴 방침 또한 같은 맥락이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광주에서 49년째 연중무휴 심야 약국을 열고 있는 홍원표(74)씨가 지난 25일 늦은 밤 광주 동구 금동 소재 자신이 운영하는 대동약국에서 카메라를 향해 웃어보이고 있다. 2023.09.27. leeyj2578@newsis.com

홍씨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 당시에도 약국을 향해 총부리를 겨누는 계엄군의 위협을 무릅쓴 채 영업 방침을 고수하기도 했다. 상점들이 모두 문을 닫는 상황에 홍씨는 금남로에서 총상을 입어 약국을 찾아온 시민들에게 시간을 불문하고 약을 나눠줬다.

이후 약사법 개정과 의약분업으로 많은 동네 약국이 폐업했지만 홍씨는 영업 방침을 지켜온 덕에 오늘날까지 금동 골목에서 불을 밝히고 있다. 연중무휴와 심야영업과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한 상도 수 십 여개에 이른다.

새벽까지 약국을 운영한다는 소식은 광주와 가까운 전남까지 퍼지기에 이르렀다. 장성과 담양은 물론 멀게는 순천에서 위경련을 호소하며 찾아온 손님도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명절에 광주를 방문하게 된다면 감사의 뜻을 담은 선물을 들고 약국을 찾는다고 홍씨는 전했다.

흘려보낸 49년 세월의 길이만큼 세상을 먼저 떠난 손님도 많다. 왕래가 뜸해진 단골의 뒤늦은 부고 소식을 듣노라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그는 토로했다.

그리운 손님들을 위해서라도 새벽에 약을 전달하는 일을 그만둬서는 안되겠다는 마음가짐이다.

홍씨는 "한밤중 앓게 된 고통을 달래주며 맺은 인연은 각별하고 애틋하다. '오죽했으면 여기까지 왔을까'라는 생각도 들면서 만감이 교차한다"며 "늦게까지 일한다는 단순한 이유가 생명을 살린다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해석이 스스로에게는 과분하다"고 멋쩍어했다.

그러면서 "약사가 필요한 순간에 일을 해온 지난날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건강보다 더 한 것은 없다"며 "올 추석에도 지역민들의 따뜻한 약손이 되겠다"고 푸근하게 웃어보였다.

한편 29일 광주시에 따르면 올 추석 연휴 동안 광주 지역에서는 대동약국을 포함한 약국 285곳이 쉬는 날 없이 운영된다.

[광주=뉴시스] 이영주 기자 = 지난 25일 늦은 밤 광주 동구 금동에서 49년째 쉬는 날 없이 심야 운영되고 있는 대동약국에 불이 켜져있다. 2023.09.27. leeyj2578@newsis.com

☞공감언론 뉴시스 leeyj2578@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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