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 여왕 ‘킴 카스트로’와 사랑에 빠지다…로맨스스캠 체험기

최훈민 기자 2023. 9. 2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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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 Castro가 자주 사용하는 여성의 사진 /페이스북

9월7일 킴 카스트로(Kim Castro)라는 아름다운 여성 분이 제게 페이스북 친구 신청을 했습니다. 이 사람, ‘로맨스 스캠’ 사기꾼입니다. 로맨스 스캠이란, 인터넷을 통해 마치 사귈 것처럼 이성에게 접근해 만나지는 않고 채팅으로 신뢰를 쌓은 뒤 돈을 받아내는 사기 수법을 말합니다.

제가 이걸 어떻게 아냐고요? 제가 피해자거든요. 그럼 제가 어떻게 당했는지 여러분께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Kim Castro의 페이스북. 벌써 속은 사람이 그녀의 담벼락에 사랑의 세레나데를 외치고 있다.

1. 페이스북 친구를 신청해 오고 말을 건다.

페이스북을 좀 하다 보면 킴 카스트로란 사람에게 친구 신청이 옵니다. 그녀가 무슨 기준으로 친구 신청을 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친구 신청을 받았다는 글을 찾아 보면 보통 ‘30대 이상 남자’에게 많이 접근하는 것 같습니다.

친구 신청을 수락하면 그녀는 페이스북 메신저로 인사를 건넨 뒤 자신을 소개합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아빠와 한국인 엄마 사이에 태어난 한국계라고요. 이야기를 조금 나누다 보면 그녀는 슬슬 밑밥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난 시리아 다마스커스에 파병 나온 미군이야. 한 3년 정도 복무했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눈물 겨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녀는 “부모님은 내가 10살 때 차 사고로 모두 돌아가셨어. 나만 살아 남았어. 난 사촌도 친척도 없어. 그래서 난 굳세게 자랐고 군인이 된 거야”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국뽕’을 자극합니다. “엄마의 고향 사람을 만나서 반가워. 부모님 돌아가시곤 한국을 가지 못했어. 한국 꼭 다시 가고 싶어”라면서요. 비행기표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의 그녀 사연을 듣고 있다 보면 어느샌가 뭇남성은 그녀와 결혼을 넘어 가정을 꾸릴 상상까지 할 겁니다.

2. 카카오톡으로 유인한다.

계속 대화가 오가면 그녀는 상대를 카카오톡으로 유인합니다. 그녀의 ID kim07698을 등록했더니 카카오톡에서 경고 메시지가 나옵니다. 그녀의 카카오톡 ID가 나이지리아 번호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계정이라고 하더군요.

아프리카·중동은 둘 다 더운 곳이니 거기가 거기겠지 생각해서 그녀의 ID를 추가한 뒤 말을 걸었습니다. 전 이미 그녀의 미모에 이성을 잃어가고 있었으니까요.

3. 거액의 현찰을 보낼 테니 받아 달라고 한다.

카카오톡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저와 미래를 함께 꾸릴 법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나 이제 전역할까 해. 그리고선 한국으로 갈 거야. 너 사는 곳 근처 사는 건 어떨까 싶네. 그럼 우리 자주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녀의 향긋한 제안에 저는 녹아버렸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갑자기 자신의 어두운 심연을 제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너에게 이런 말을 왜 하는지 모르겠지만 사실 한국 가는 게 되게 두려워. 너는 이해 못하겠지만 난 한국으로 가면 외톨이잖아. 만약 내가 한국을 가게 되면 믿을 수 있는 건 너 하나뿐이야.”

40년 모쏠 인생에 드디어 서광이 비추는 듯합니다.

그녀가 “일단 난 전역하고 한국으로 갈 거야. 거기서 자리 잡을 거고, 평범하게 살 거야. 이번 달에 전역할 건데 내가 꿈을 이룰 수 있게 도와줄래?”라고 물었습니다. “알겠다”고 했더니 그녀는 큰 제안을 하나 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리아에서 나토 유엔이 벌인 작전에 투입돼 그 대가로 몇 달 전 큰 돈을 받았어. 현찰로만 300만 달러(한화 약 40억원)야. 나토 유엔은 이 돈을 내 계좌로 보내주려 했지만 시리아가 내전 상태라 은행이 다 닫아서 잘 안 됐거든. 미국으로 보내려고 해도 믿을만한 사람이 없네. 그래서 네가 받아서 좀 맡아주면 어떨까 해.”

미국인이면 미국에 자기 계좌가 있을 것이고, 그 계좌로 송금을 요청하면 될 겁니다. 그녀의 시리아 계좌로 보낼 필요가 없죠. 그녀가 혹시 미국에서 신용불량자였을까요? 그런데 그런 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미녀가 해달라는데 해줘야죠.

4. 외교행낭업체를 소개해 준다.

그녀는 “300만 달러를 상자에 넣어 외교행낭으로 너한테 보낼게. 집까지 안전하게 배달될 거고 외교행낭이라 아무 문제 없을 거야”라며 “전자우편 주소 좀 줘 봐. 외교행낭업체가 너에게 메일을 보낼 거야. 그럼 그 사람이 하라는 대로 하면 돼”라고 했습니다. 제 정보를 넘기니 5분도 안 돼 cargoairwaybill842@gmail.com으로부터 메일이 하나 왔습니다.

“안녕하세요? FAST GO COURIER AND CARGO SERVICES입니다. 배송이 시작됨을 알립니다. 외교행낭 담당자 카카오톡 ID는 Carter2021입니다. 추가해 주시면 배송이 시작됩니다. 2일 후 도착 예정입니다.”

저는 외교행낭업체 카카오톡 계정으로 말을 걸었습니다. 카카오톡 ID는 Carter인데, 자신의 이름이 존 모리스(John Morris)란 사람이 절 응대하더군요. 바로 자신의 신분증을 보내왔습니다.

유엔개발계획(UNDP) 로고와 함께 ‘미국외교행낭위원회’란 거창한 명칭도 상단에 박혀 있었습니다. “A service no one else deliver”(누구도 하지 못하는 배달 서비스 제공)란 조직 모토도 있더군요. ‘Deliver’에 ‘s’가 빠진 채로요. 뭐 그런 오타야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기업 삼성전자의 신제품 발표회에서도 벌어지곤 하는 일이니 그러려니 했습니다.

존은 곧 송장도 보내줬습니다. 발신지가 시리아 알레포인데 우편번호가 224736이라고 적혔습니다. 시리아는 우편번호는 다섯 자리입니다. 알레포 우편번호는 15310이고요. 송장번호는 23456739. 조회해 보니 미국에서 미국으로 이동하는 송장번호였습니다.

그녀가 중요하지 송장 따위가 중요한가요? 그는 곧 그녀의 돈이 든 주황색 상자 사진을 보내왔습니다. 시리안에어 비행기가 보이는 공항 사진도 보냈고요. 오후 11시42분 존과 대화를 시작했는데 그는 37분 만에 그는 출국 수속도 마치고 공항 안으로 들어와 있었습니다.

짐에 랩을 감고 있는 직원 뒤에 보이는 주황색 상자(위)가 돈이 들어있다는 킴 카스트로의 짐이라는 게 항송업체 직원의 설명이었다. 항송업체 직원은 대화가 시작된 지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자신이 탈 비행기 사진(아래)을 보내왔다. 1시간 안에 비행기 티켓 구입부터 출국 수속까지 마쳤다는 것이었다.

5. 통관비를 요구한다.

이들은 이때부터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요구하기 시작한 거죠. “제가 킴 카스트로씨의 물건을 가지고 한국에 도착하면 입국심사할 때 통관비가 나올 겁니다. 50만원 입니다. 그 돈을 제가 지정해 주는 계좌로 보내주시고, 송금 완료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주시겠습니까? IBK the Industrial Bank of Korea 126-129866-01-018 박재호”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외교행낭업체가 기업은행 계좌를 가지고 있다니... 기획재정부 산하 공기업인 기업은행의 국제적인 인지도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게다가 한글까지 입력할 줄 아는 그의 노련함에 다시 한 번 놀랐습니다.

존에게 돈을 보냈습니다. 보내는 ‘금액란’엔 1원을 입력하고, 대신 ‘보내는 사람’란엔 ‘우리 500,000원’을 적어서 보냈습니다. 국내 사기꾼들이 자주 쓰는 수법이죠.

그런 다음 송금 완료 화면을 캡처해 다운 받은 뒤 포토샵을 켜 송금액을 1원에서 50만원으로 고치려 했습니다.

아뿔싸. 50만원을 입력하려면 송금 완료 화면에서 숫자 5를 가져와서 붙여야 하는데 존이 준 계좌에는 숫자 5가 포함돼 있지 않았습니다.

숫자 5를 다시 만들기 귀찮아서 그냥 60만원으로 위조했습니다. 그러고선 존에게 “엄지 손가락이 커서 실수로 10만원 더 보냈다”며 “한국 와서 돌려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불 같이 화를 냈습니다. “큰 실수를 하셨습니다. 통관비는 50만원이지 60만원이 아닙니다! 반드시 정확한 금액을 보내셔야 배송이 진행됩니다! 제가 다른 계좌 알려 드릴 테니 거기에는 반드시 50만원을 맞춰서 보내 주십시오. 한국 도착하면 잘못 보내신 60만원을 돌려드리겠습니다! IBK 기업은행 예금주 이상근 계좌번호 103-004528-03-015”

외교행낭업체가 기업은행만 애용하는 건 기업은행의 국제 영업력이 대단해서겠지요? 기획재정부 산하 은행에서 대포 통장 만들기가 쉽다는 건 말이 안 되니까요.

어쨌든 반가웠습니다. 이번에 존이 보내준 계좌에는 숫자 5가 있었거든요.

다시 돈을 보냈습니다. 이번엔 인심을 좀 썼습니다. 보내는 금액란 1차 송금한 금액 보다 5배인 ‘5원’을 넣고, 송금인란엔 ‘우리 500,000원’을 적어 보냈습니다. 포토샵으로 송금 완료 화면을 조작해 존에게 보냈습니다.

“입금이 확인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해맑은 자신의 셀카를 보냈습니다. 오리털 조끼를 입은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출발하는 날 시리아 다마스커스의 낮 최고 기온은 38도였습니다.

6. 드디어, 그의 정체가 밝혀졌다

통관비만 뜯어내고 끝난 줄 알았는데, 그들은 생각 보다 치밀했습니다. 토요일인 9일 오후 존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드디어 40억원 돈 상자를 들고 한국에 도착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는 그는 제게 바로 연락을 취하며 급한 일이 생겼다고 해습니다.

“통관비 50만원을 냈는데도 세관이 짐을 뜯어 보려고 한다. 내가 안 된다고 해도 막무가내”라며 “계속 버티니까 세관에서 방법을 하나 알려줬다. 300만원을 내면 ‘통관완료증’을 준다고 한다. 이 돈을 지금 당장 송금해 달라.”

존은 이번엔 자신의 계좌로 돈을 보내 달라고 하더군요. 저는 또 다시 1원을 보냈고, 1원으로 그의 정체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Ekwembwe Nlende. Nlende는 나이지리아와 국경을 맞댄 카메룬의 흔한 성씨입니다.

나이지리아 번호를 쓰는 카메룬 사람 ‘에퀨붸 은렌데’라는 분이 우리은행 계좌를 가지고 사업을 벌이는 광경을 저는 목격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성격이 급했습니다. 1원을 보낸 뒤 아까처럼 포토샵으로 송금 완료 화면을 300만원으로 조작하고 있는 와중에도 그는 계속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왔습니다.

“너가 돈 느리게 보내니까 지금 난리났다. 세관에서 네 짐을 보려고 하고 있다!”

존은 그러면서 사진 하나를 보냈습니다. 공항 직원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짐을 스캔하는 사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남성은 한국인이 아닌 서양인의 외모였습니다. 대체 언제부터 인천국제공항 세관에 서양인이 근무했던 것일까요?

그는 “공항에서 네 집으로 갈 택시비가 필요하다”며 편의점에서 구글 카드를 구입한 뒤 시리얼 번호를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벌써 7원이나 쓴 저는 더 이상 쓸 돈이 없었습니다.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인천국제공항 세관 사진’이라면서 서양인 사진 보내면 사기인 거 너무 티나지 않냐.”

그는 토라졌습니다. 그러면서 “나 네 짐 가지고 내 나라로 돌아갈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하는 ‘본국’이 신분증에 나온 ‘미국’인지, 비행기가 출발한 ‘시리아’인지, 전화번호가 등록된 ‘나이지리아’인지, 이름으로 유추할 수 있는 ‘카메룬’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외쳤습니다.

“좋은 여행 되길 바라.”

7. 돈을 보내면 이별이 찾아온다.

존과의 대화를 마치고 킴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킴이여. 하라고 한 일을 다 마무리 했습니다. 당신은 언제 한국으로 오실 겁니까?”

하지만 카톡에서 제가 보낸 글을 상대가 읽었음을 표시하는 ‘1′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영원히요. 마흔 자락에 갑자기 찾아온 봄볕은 그렇게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로맨스 스캠 피해액은 2020년 3억2000만원에서 2021년 31억3000만원, 지난해 39억6000만 원으로 매년 증가해 왔습니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국정원이 접수한 로맨스 스캠 피해 건수는 총 281건으로, 피해액은 92억2000만원에 달합니다. 2023년 로맨스 스캠 피해액은 저 때문에 7원 증가했습니다.

갑자기 찾아오는 햇살 보단 통장 잔액이 소중한 법입니다. 여러분은 저처럼 미녀에 눈이 멀어 돈 날리는 경험이 없으셨으면 합니다.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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