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M픽’과 한국형 뮤지컬 ‘한남 로드’…거장과의 만남 ‘삼청 로드’ [볼만한 공연·전시]

2023. 9. 28.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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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움미술관에서 열고 있는 ‘강서경 : 버들 북 꾀꼬리’를 찾은 방탄소년단 RM [RM인스타그램 캡처]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에서 최악의 낭비는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다. 어딜 가나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교통난에 시달리고 있기에, 서울의 강남과 강북을 하루에 오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향으로 향한 명절에도 마찬가지다. ‘시간 낭비’ 없이 예술을 탐닉할 ‘최적의 동선’을 짜봤다.

■ ‘한남 로드’에서 스테디셀러 뮤지컬, ‘RM 픽’ 강서경 전

여전히 ‘핫 플레이스’인 한남동은 여유로운 연휴를 보내기 좋은 동네다. MZ(밀레니얼과 Z세대를 합쳐 부르는 용어) 세대들의 맛집에서 브런치로 시작해, ‘미술애호가’인 방탄소년단 RM도 관람한 전시를 본 뒤, ‘스테디셀러’ 뮤지컬을 만나며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다.

어디에서든 이른 점심을 시작했다면, 소화도 시킬 겸 리움 미술관으로 향하면 좋다. 지금 이 곳에선 리움 미술관 사상 네 번째 한국 작가의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최근 방탄소년단 RM이 방문해 화제가 된 전시인 ‘강서경 : 버들 북 꾀꼬리’다.

최근 해외에서 주목받고 있는 중견 작가 강서경의 초기작부터 최신작까지 130여점을 아우른 이번 전시에선 “회화에서 시작해 시각, 청각, 촉각, 움직임, 시공간의 차원으로 나아간 작가의 세계”(곽준영 리리움미술관 전시기획실장)를 만날 수 있다. 지극히 현대적이지만, 그의 작품엔 전통에 대한 깊은 관심이 곳곳에 묻어난다. 조선 시대 악보인 ‘정간보’에서 음의 길이와 높이를 표현하는 ‘우물 정’자 모양의 사각 칸(間)에서 착안해 선보인 초기작 ‘정井’, 전통 한국화의 방식을 이어온 회화 작업 ‘모라(Mora)’, 작은 화문석이 무대가 되는 조선시대 궁중무용 ‘춘앵무’에서 착안한 ‘자리’ 연작이 대표적이다.

데이비드 살레 [리만 머핀 제공]

한남동은 해외 갤러리가 속속 자리한 만큼 리움이 아니라도 볼만한 전시가 많다. 그 중 미국 화가 데이비드 살레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는 리만 머핀에 가면 복잡한 일상의 고단함을 잊기 좋은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살레는 1925년 창간한 미국 잡지 ‘뉴요커’에 실린 전설적인 삽화가 피터 아르노의 그림을 차용, 2020년부터 ‘생명의 나무(Tree of life)’ 시리즈를 그렸다. 최근 만난 살레는 “인간의 삶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은 장면들이 있기에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멋지고 재미있는지를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생명의 나무’ 연작은 아르노 삽화 속 인물들을 나무가 가로지르고, 화면의 하단으로 또 다른 캔버스가 덧대, 그 이면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나는 작은 무대를 연출한다”는 살레의 작품은 한 편의 연극 같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의 이면 같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은 속이야기와 수상쩍은 비밀이 얽혀 있다.

국립창극단의 ‘심청가’ [국립극장 제공]

미술 작품 감상을 통해 충분히 정서적 안정을 얻었다면 길 건너편의 블루스퀘어에서 스테디셀러 뮤지컬 ‘레베카’를 만나면 좋다. 옥주현을 최고의 뮤지컬 스타 자리에 올린 댄버스 부인의 압도적인 ‘킬링 넘버’를 들을 수 있는 공연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레베카’이나, 사실 ‘레베카’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두가 찾아다니는 압도적인 존재감의 레베카로 인해 벌어지는 미스터리 스릴러 물이다. 불의의 사고로 아내 레베카를 잃은 영국 귀족 ‘막심 드 윈터’가 ‘나’를 만나 사랑에 빠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영국의 대표 작가 대프니 듀 모리에의 소설을 원작으로, 스릴러의 거장 알프레도 히치콕의 동명의 영화로도 유명한 이 작품엔 옥주현을 비롯해 신영숙, 장은아가 댄버스 부인으로 중심을 잡는다. 이번 시즌엔 뉴 캐스트 테이, 이지수, 웬디가 합류해 새 얼굴들로 무장했다. 특히 ‘나’ 역할의 밝고 순수함의 레드벨벳 웬디와 안성맞춤이다.

‘서양의 뮤지컬’을 우리식으로 만날 수 있는 공연도 있다. 한남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산 아래 자리한 국립극장에선 오는 30일까지 국립창극단의 ‘심청가’ 무대가 이어진다. 추석 연휴 동안에만 만날 수 있는 무대엔 국립창극단의 간판 스타인 유태평양 김준수 이소연을 비롯해 ‘팬텀싱어4’에서 3위에 오른 크레즐의 김수인이 출연한다. 동시대 창극의 진화를 보여온 국립창극단은 ‘심청가’를 통해 오랜만에 ‘전통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화려한 무대, 전통의 소리에 더해진 현대적 사운드 등 동시대 요소는 모두 덜어냈다. 오롯이 소리와 배우들의 연기에 집중한 무대에선 도리어 국립창극단의 ‘60년 저력’을 만날 수 있다.

김구림 작가가 24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린 '김구림 '전 기자간담회에서 작품 '음과 양 91-L 13'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 삼청동부터 광화문까지…미술 거장 만나고, 연극 한 편

대한민국 ‘공연예술의 성지’인 세종문화회관이 자리한 광화문부터 산책 삼아 걷기 좋은 삼청동까지 이어지는 ‘문화 로드’는 꽤나 으리으리하다. 다양한 장르의 공연은 물론 국립현대미술관과 굴지의 갤러리에서 인기 전시들을 모두 만날 수 있다.

광화문에서 시작해도 좋고, 삼청동에서 시작해도 좋은 일정이나 기왕이면 전시-식사-공연 코스가 무난하다.

일단 삼청동으로 향해 국립현대미술관을 방문하면 경계 없는 실험미술로 자신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김구림의 회고전을 만날 수 있다. 미술을 비롯해 영화, 음악, 무용, 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한 ‘총체 예술가’ 김구림의 회고전 ‘김구림’ 전이 국립현대미술관(2024년 2월 12일까지)에서 열린다. 비디오아트, 설치, 판화, 퍼포먼스, 회화 등 230여점을 만날 수 있는 자리다. 우현정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는 “1950년대부터 이어진 김구림의 전방위적 활동과 거침없는 도전은 관습에 대한 저항이었다”면서 “이번 전시는 그간 이론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의 작품 세계를 최대한 온전하게 전달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삼청동은 전통적인 ‘아트 로드’다. 국제갤러리, 갤러리현대, 학고재 등 유수의 갤러리를 통해 다양한 작가를 만날 수 있다. 이곳에도 RM이 방문한 전시가 있다. 국제갤러리 전관에서 열리고 있는 현대미술 거장 아니쉬 카푸어(69) 전이다. 이번 전시에선 조각, 회화, 드로잉 등 20여점을 통해 작가의 작품세계를만날 수 있다. 작품 하나 하나가 안기는 시각 충격을 경험할 기회다. 보기에 따라 기괴하다 느낄 수 있는 인간의 장기 형상의 작품부터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볼 수 있는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연휴 동안엔 28~29일을 제외하곤 문을 연다.

‘연극인 가족’인 전무송(82)· 전현아(52)가 20년 만에 ‘부녀’로 다시 만났다. ‘더 파더(THE FATHER)’는 치매로 기억을 지워가는 아버지 ‘앙드레’와 그를 돌보는 딸 ‘안느’의 이야기를 담는다. [스튜디오반 제공]

삼청동에서 전시회를 통해 몸 풀기를 마쳤다면, 세종문화회관을 슬슬 걸어가 연극 한 편을 보는 것도 좋다. 지금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선 다음 달 1일까지 ‘더 파더(THE FATHER)’ 공연이 한다. 치매로 기억을 지워가는 아버지 ‘앙드레’와 그를 돌보는 딸 ‘안느’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배우 전무송 전현아 부녀가 출연한다. 2003년 연극 ‘당신, 안녕’(윤대성 극작) 이후 오랜만에 부녀로 마주한 무대다. ‘더 파더’는 배우 앤서니 홉킨스에게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안긴 동명의 영화(2020)로도 잘 알려진 작품이다. 무대는 최근 사회 문제로 대두된 치매를 소재로 가져왔다. 대부분 치매를 다룬 작품은 환자를 간호하는 간병인의 고통과 갈등을 다룬다면, ‘더 파더’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그려져 연극은 종종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느껴진다.

연극 '카르멘'. [연합]

또 다른 연극도 있다.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선 서울시극단의 연극 ‘카르멘’(10월 1일까지)을 만날 수 있다. 연극 ‘카르멘’은 비제의 오페라로 유명한 작품이다. 프랑스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가 쓴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페라를 무대로 옮겨왔다. 각색과 연출은 공연계의 ‘스타 연출가’인 고선웅 서울시극단장이 맡았다. 과거에 갇혀 성 감수성이 떨어지는 여성 캐릭터 카르멘과 돈 호세의 재해석이 이 작품이 중요한 특징이다. 카르멘은 난잡한 팜므파탈이 아닌 자유를 갈망하는 여성으로, 돈 호세는 여성에게 파괴당한 피해자가 아닌 스토커로 그렸다. 고 연출은 “이 작품을 만들기로 처음 마음먹었을 때 ‘돈 호세는 그러지 말아야 했다’는 감정이 가장 중심에 있었다”며 “돈 호세의 행동이 바람직해 보이지 않았고, 카르멘은 큰 잘못이 없다는 점에 관객들이 공감했으면 했다”고 말했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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