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차례상엔 카스텔라…비싼 사과 대신 샤인머스캣

전지혜 2023. 9. 28. 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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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집마다 예약 주문, 기름떡·빙떡도 대표 명절음식

(제주=연합뉴스) 전지혜 기자 = '추석 차례용 대판 카스텔라 예약 받아요.', '명절 카스텔라·롤케이크 주문 받습니다.'

제주의 한 빵집에 붙은 차례용 빵 주문 안내문구 [촬영 전지혜]

명절을 앞두고 제주 곳곳의 빵집에 붙는 문구들이다.

제주에서는 추석과 설 명절이 빵집의 '대목' 중 하나다. 차례상에 카스텔라나 롤케이크를 올리는 집이 많기 때문이다.

제주시의 한 빵집 관계자는 "27일까지 제수용 빵 예약을 받았다. 추석 전날(28일)까지는 빵을 찾으러 오는 손님들 때문에 가게 문을 열고 명절 당일부터 문을 닫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가맹점이 있는 프랜차이즈 도내 매장도 명절을 앞두고 카스텔라와 롤케이크를 진열해놓는 매대를 별도로 마련해 놓는다.

제주에서는 차례상에 빵을 올리는 것이 보편적인 문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명절날 일가친척 집에 방문할 때 빵을 사 들고 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타지역 사람들에게는 생경한 모습이다.

서울이 고향인 박모(36·제주시)씨는 "제주에 있는 처가에서 추석을 보내는데, 차례상에 올릴 카스텔라를 이미 주문해뒀다. 제주에서 산 지 10년이 다 돼가지만 아직도 차례상에 빵이 올라가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하다"고 말했다.

차례상에 올라간 카스텔라 등 빵과 둥근 모양의 송편 [촬영 전지혜]

제주에서 차례상에 빵을 올리게 된 유래는 정확히 전해지지는 않는다.

다만 과거 땅이 척박하고 논농사가 거의 되지 않는 데다가 섬 지역이다 보니 외부와의 교류도 어려워 쌀이 귀하던 제주에서 쌀로 만든 떡이나 한과류 대신 보리빵과 비슷한 '상외떡'(보리나 밀가루 등에 막걸리를 부어 반죽, 발효해 만든 빵) 등을 차례상에 올리던 문화가 빵으로 이어진 것이라는 해석이 많다.

제주도와 국립민속박물관이 발간한 '제주의 음식문화'(허남춘·주영하·오영주)에서는 "1990년대 들어 손이 많이 가는 떡은 방앗간에 주문하고, 상외떡 또는 카스텔라는 제과점에서 사온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스턴트 식품 등이 발달하면서 '골감주'(차조식혜·제사나 차례에 쓰는 제주의 전통음료) 대신에 주스나 음료수를, 제물빵 대신 초코파이를, 제편 대신 카스텔라나 롤케이크를 올리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추석 명절에는 제주에서도 송편을 사용한다. 다만 타지역의 송편은 반달 모양인 반면 제주의 송편은 둥글넓적한 보름달 모양이다.

기름떡과 빙떡도 빼놓을 수 없는 제주의 명절 음식이다.

기름떡은 찹쌀가루를 뜨거운 물로 반죽해 테두리가 톱니바퀴 모양인 둥근 떡본으로 찍어낸 뒤 기름에 지진 떡이다. 지져낸 뒤에 설탕을 듬뿍 뿌려 고소하고 달콤하다.

빙떡은 메밀가루를 물에 개어 둥글게 부친 뒤 가운데 무 숙채를 넣어 돌돌 만 제주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 중 하나다.

제주 기름떡 [촬영 전지혜]

차례상에 오르는 생선은 단연 옥돔이 꼽힌다. 어르신들이 명절에 '생선'이라 칭하는 것이 곧 옥돔일 정도다. 옥돔은 주로 구워서 상에 올리고, 옥돔으로 끓인 미역국이나 뭇국을 갱(국)으로 올리기도 한다.

또한 제주의 추석 차례상에는 독특한 향이 있는 생강과 채소인 양하(양애) 무침이 오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추석을 앞두고 양하를 채취해 손질해두는 집들도 많다.

과일의 경우 사과와 배 등 상에 어김없이 오르는 과일 외에 다양한 열대과일들이 차례상의 한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낯설지 않아졌다.

또한 올해는 사과가 개화기에 냉해 피해를 당해 수확량이 감소하면서 가격대가 높게 형성되고, 반면 샤인머스캣은 출하량이 폭증하면서 가격대가 떨어지는 등 품목별 가격 흐름이 제각각이다.

40대 주부 고모(제주시)씨는 이번 추석 유독 비싸다는 사과는 상에 올릴 만큼만 사고 대신 샤인머스캣과 멜론, 황금향 등을 넉넉하게 샀다.

고씨는 "상에 올릴 고운 사과는 8개가 들어있는 한 상자가 6만원대로, 개당 8천원 가까이 했다. 배도 사과 못지않게 비쌌다"며 혀를 내둘렀다.

고씨는 "어릴 적 친척이 파인애플 농장을 해서 차례상에 파인애플을 올리기도 했었고, 최근에는 명절 선물로 들어온 애플망고과 용과를 올리기도 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열대과일이 다양하게 나고 있는데, 차례상에 오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추석 대목 과일 경매 활발 (제주=연합뉴스) 박지호 기자 = 추석을 앞둔 25일 오전 제주시 일도2도 제주시농협 농산물공판장에 경매에 부쳐질 과일 상자들이 가득 쌓여 있다. 2023.9.25 jihopark@yna.co.kr

ato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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