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글로벌픽] 신보호무역주의 시대 주목받는 멕시코

최명호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교수 2023. 9. 2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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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외대-국제신문 공동기획
글로벌 핫이슈의 맥을 보다<21>

2020년 팬데믹 당시 달러는 1000원대였고 멕시코 페소는 25페소를 넘어갔다. 이후 원화의 가치는 1400원대를 넘어섰고 멕시코 페소는 계속 떨어져 17페소대를 유지하고 있다.

복지 관련 예산을 증액하거나 강력한 재정 정책을 사용할 때 포퓰리즘과 함께 ‘중남미꼴 난다’ ‘라틴아메리카꼴 난다’는 표현을 대중 매체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우리의 선입견 속에 ‘중남미’ ‘라틴아메리카’는 저발전, 부정부패, 대책 없이 퍼주기 등의 이미지로 각인된 것 같다. 실제로 라틴아메리카화(Latinamericanizacion)라는 용어를 학계에서 사용하는데, 기득권을 독점한 봉건적 과두제(oligarchy)의 등장과 이로 인한 부정부패, 국가 가부장주의(Paternalism)적 포퓰리즘과 이로 인한 경제 위기의 반복과 혼란 등을 의미한다. 아메리카 대륙의 35개 국가 중 캐나다와 미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라틴아메리카에 속하는데, 라틴아메리카는 소위 ‘미국의 뒷마당’이란 표현으로 미국의 직접적 영향권에 있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물론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규모가 있는 남아메리카의 국가는 이런 이미지에 예외이기도 했고 역설적으로 동시에 이런 이미지의 대표이기도 했다.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이 지난 6일(현지시간) 수도 멕시코시티에서 정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지난해 발생한 페루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거칠게 비난해온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남미 순방 계획을 발표하며 “페루 상공은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연합뉴스


환율은 일국의 경제 상황을 가늠케 하는 중요한 거시경제 지표이면서 투자 등의 경제 행위의 근거 혹은 원인이 되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환율이 무역, 해외 투자 등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소개한 약간 어긋난 데칼코마니 같은 그래프는 미국 1달러와 우리나라 원화 그리고 멕시코 페소의 환율 추이다. 이것은 두 국가의 상황이 서로 반대라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는 것 같고 현재 체감할 수 있는 경기는 아마도 추석 명절을 준비하면서 처절하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현재 멕시코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2022년 10월 바이든 행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공식 문서로 탈냉전시대의 종언을 선언했고, 이것은 냉전 이후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서막이 멕시코 북부에서 열리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시작은 주지하듯 코로나19의 대유행이었다. 2020년 뉴욕 그리고 마드리드를 비롯해 세계의 수많은 대도시에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한 시체들이 빙상경기장에 혹은 거리에 방치되었다. 영안실에 여유가 없어 농장의 냉동고를 영안실로 사용하기도 했다. 수많은 국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고 스페인 등 일부 국가에서 인구의 이동을 금지하는, 소위 ‘완전 봉쇄’라는 최고 수위의 거리두기를 선포했고 국경을 완벽히 봉쇄하여 세계화를 통해 구축된 모든 관계가 한동안 절연(絶緣)되기도 했다. 6억 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600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세기 말 지구의 최후의 날로 상상하던, 소설이나 영화에서 그려졌던 상황이 실제로 벌어졌다. ‘글로벌 가치 사슬’ 혹은 ‘세계화’란 용어와 함께 완전히 유기적으로 통합된 것으로 보이던 세상이 완벽히 해체됐고, 산업화 이후의 인간 문명과 역사를 비판·반성적으로 돌아보는 경향이 세계적으로 유행하기도 했다. 하지만 2022년 3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하고 미 연방준비위원회가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적 인플레이션 상황과 경기 침체가 2023년 상반기 상황이었고, 이후 지역별로 차이는 있으나 점점 나아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멕시코는 현재 진행되는 지정·지경학적 변화에 가장 중요한 핵심 국가라 할 수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 법안(Inflation Reduction Act, IRA)은 증세를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고 확보된 유동성으로 새로운 제조업 붐을 이끈다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는데, 새로운 성장 동력을 증세로 인해 만들어낼 것이다. 세금 주도 성장이란 실험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게다가 바이든 대통령은 소위 마킬라도라, 멕시코 북부 미국 접경지대에 있어 수출을 원칙으로 하는 제조업 단지에 반도체 생산 파운더리를 건설하자 제안했다. 현재 대만의 TSMC와 일본의 연합회사 라피더스(Rapidus) 그리고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 국가 사이에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미·중 무역 갈등과 미국의 제조업 부활 선언 이후 접근이 어려워진 세계 최고의 시장인 미국에 접근하기 위한 백도어(backdoor)로 멕시코 북부지역이 주목받고 있다. 다시 말하면 미국 정부로부터 지원금은 받지 못한다고 해도 메이드인 멕시코의 인증만 받는다면 미국으로 제품을 수출하는 데에 어떠한 제약도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멕시코에 투자해야 하는 장점이라 할 것이다. 이미 레노버를 비롯한 많은 중국계 기업이 진출해있기도 하고 누에보레온 지역의 총투자금액 중 약 30%가 중국계 자본으로 알려져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누에보레온주의 실업률에 직접적으로 반영되는데, 멕시코 국립통계지리연구소(INEGI)에 따르면 2021년 4분기 누에보레온주의 실업률은 3.4%로, 현재는 약 3.6%로 추산된다. 이는 미국의 실업률과 비슷한 수준이고 완전고용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알려진 것처럼 멕시코의 임금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며 인구 구성 또한 상대적으로 젊은 멕시코는 앞으로도 안정적인 노동력을 공급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하면, 현재 세계적 경제 위기에도 멕시코 북부의 상황은 현재 미국과 견줄 정도로 안정적이다. 이 지역적 호황에 우리 기업의 진출과 더불어 중국계 자본이 중심이 된 제조업 단지 그리고 일본계 자본 등이 포함된 다국적 제조업체가 각축을 벌인다. 물론 이들의 목표는 세계 최고의 미국 시장이다. 이를 니어쇼어링 혹은 새로운 블록화, 새로운 지역주의라고도 표현할 수 있겠지만, 미국의 압도적 힘이 자국을 위한 새로운 질서를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를 보호주의 혹은 보호무역주의라 보아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어쩌면 기축통화보다 강력한 미국의 힘은 구매력일 것이다. 이 구매력을 보호하여 자국의 산업을 성장시키겠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하는데, 역설적으로 이는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가 추진했고 실패했다고 판단하는 보후무역주의·수입대체산업화와 그 원리가 매우 흡사하다. 여기서 세부적인 부분을 다 언급할 수는 없으나, 경쟁력이 떨어지는 자국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재정이 투입되는 것도 그리 다르지 않다. 물론 시대적 차이와 미국 시장의 압도적 구매력 등 세부적인 면에서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선과 악으로 구분되거나 이미 결론이 나서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이던 보호무역주의와 자유무역주의 경쟁 아닌 경쟁이 다시 돌아오고 우리의 상식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미국이며 미국의 압도적 힘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쩔 수 없는 것을 생각하기보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상력과 유연한 사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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