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이건구 현대HT 대표 | “실적 바닥일 때 승계…흑자로 ‘2세’ 색안경 벗겼죠”

장우정 조선비즈 기자 2023. 9. 25.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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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구 현대HT 대표워싱턴대 경영학, 스탠퍼드대 경영학 석사, 전 KDB산업은행 투자금융본부, 전 현대통신 영업 총괄 이사, 전 현대통신 부사장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아버지 회사에 들어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사정이 훨씬 안 좋았다. 글로벌 금융 위기로 전방 건설사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으면서 우리도 부실채권이 굉장히 많이 생긴 상태였는데, 아버지께 책임지고 직접 경영해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2010년 말 현대HT 영업 총괄 이사로 합류한 뒤 2012년 대표이사로 승진한 이건구(47) 대표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본사에서 당시 일찌감치 회사를 맡았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대표의 아버지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최측근이자 현대건설을 키운 주역 이내흔 회장이다. 1970년 평사원으로 현대건설에 입사해 6년 만에 임원으로 승진했고 1991년부터 7년 가까이 사장을 지냈다. 100% 국산 기술로 원자력발전소(영광 3·4호기)를 지어 우리나라 원전 건설사에 새 장을 열기도 했다.

이 회장이 옛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홈 네트워크 시스템 업체 현대통신을 인수한 것이 지금의 현대HT가 됐다. 지금은 경영 일선에선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회장으로서 주요 의사 결정에 참여한다.

현대HT의 스마트홈 기기. 사진 현대HT

현대HT는 아파트에 들어가는 월패드, 디지털 도어록 등 스마트홈 시장에서 점유율 40%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매년 12만~13만 개의 스마트홈 기기를 공급한다.

이 대표는 취임하자마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미션, 비전, 핵심 가치를 새로 정립하고, 살아남기 위해 임원들과 밤샘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회사 내·외부 사람의 색안경을 벗겨내는 일이었다. 이는 2세 경영자의 숙명과도 같다. 이 대표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들어와 위기를 극복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400억원대이던 매출액은 1000억원을 넘었고 2014년 이후 9년 연속 영업 흑자를 기록했다.

2010년 MBA를 마치자마자 아버지 회사에 합류했다. 예정됐던 것인가.
“아니다. 막연히 기업가를 꿈꿔 왔지만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은 당시 인기 많았던 금융권이었다. 산업은행에 6년 정도 근무하다 보니 안정적이고 좋은 직장이어서 이대로 안주하면 벗어나기 힘든 곳이겠단 생각이 들었다. 전환기를 마련한 것이 일단 MBA를 간 것이다. 스탠퍼드대는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는 학풍이 있고, 관련 수업도 상당히 많다. 졸업할 때쯤 향후 진로를 놓고 아버지께 상의했다. ‘이제 회사로 들어갈까요? 그게 낫지 않겠습니까’라고 여쭤봤는데 아버지는 ‘오지 말라’고 하셨다. 벤처캐피털(VC)이든 스타트업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렸지만, ‘해보고 싶다’고 고집했다.”

전공과 무관한 ‘영업 총괄 이사’ 직함으로 첫발을 디뎠는데.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업과 연구개발(R&D)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업에서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으로 뛰어든 것이다. 지금도 우리 회사에서 내가 ‘제1의 영업사원’이라고 생각한다. 최저가로 입찰을 따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솔루션을 합당한 가치에 제공해 같이 성장하는 영업을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

회사 사정이 좋지 않았는데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2세 경영자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이다. 극복하기 위해선 실력으로 입증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2011년 하반기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남아있는 사람, 조직을 잘 추스르지 않으면 더 위험해질 수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2012년부터 직원들과 저녁 자리를 갖고 있다. 회사 목표에 대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도 하고, 직원들의 이야기도 들으며 소통을 이어갔다. 연초 목표로 설정했던 것들을 초과 달성하는 과정을 보내며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더불어 리더십도 자연스럽게 생겼다. 운 좋게 굉장히 힘든 시기에 들어와 흑자 전환하는 과정을 통해 2세 경영자로서 입증할 기회가 있었던 거다.”

산업은행 경험이 도움이 됐나.
“중견·중소기업 자금 공급 업무를 담당하면서 다양한 산업에 종사하는 오너들을 볼 기회가 많았다. 일종의 케이스스터디였다. 그들과 사업 확장이나 운영을 위한 자금 고민을 나눴다. 주력 사업 외에 신규 사업을 벌이다 부도나는 회사를 보기도 했다. 왜 저 회사는 저런 의사 결정을 했는지, 회사들은 어떤 전략을 가지고 움직이는지, 오너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경험할 수 있었다. 펀드·벤처기업 투자를 담당할 때는 미래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을 배울 수 있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인가.
“아버지는 강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승부욕이 굉장히 강한 분이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신 분이다. 또 ‘원리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마라’ ‘정도 경영을 해야 한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아버지는 당신이 쌓아놓은 것을 어떻게 뛰어넘을 수 있을지, 어떤 가치를 사회에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분이다.”

대표로 일한 10여 년간 가장 잘한 일을 꼽는다면.
“2015년 ‘HT비욘드’라는 계열사를 설립해 아파트 입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바이비(byb)’를 내놓은 것이다. 바이비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관리사무소 공지를 열람하고 골프 타석, 수영장 등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서비스를 예약·결제할 수 있는 서비스다. 이웃과 소통하고 중고 제품을 거래할 수도 있다. 그간 현대HT는 가구 내 단말기를 통해 집 안 전체를 제어하거나 정보를 얻는 스마트홈 시스템 공급에 주력해 왔는데, ‘입주민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나’란 고민에서 서비스를 집 밖으로 확장한 것이다.

현대건설의 고급 브랜드 ‘디에이치(THE H)’,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 한양건설, 아이에스동서, 반도건설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현대HT 내부 부서가 아니라 스타트업으로 작지만 민첩하게 움직인 덕분에 나온 성과다. 현대HT와 시너지를 내 주거 대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다.”

전방 건설 경기가 좋지 않다. 돌파구는 무엇인가.
“현대HT의 매출은 신축 아파트에 스마트홈 시스템을 공급하면서 주로 발생한다. 아파트를 짓는 단계에서부터 모든 가구에 빌트인(내장형)으로 시스템이 들어가는 게 경쟁력이다. 하지만 작년부터 건설 경기가 안 좋아져 최근에는 기존 아파트의 노후된 기기를 교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우리나라처럼 공동주택이 많은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를 타깃으로 해외 사업도 확대할 것이다. 현대HT는 지난 4월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무역 박람회 ‘스마트 시티 아시아’에서 안면을 인식해 문을 열 수 있는 제품 등을 선보였고, 현지 뉴스에 실릴 만큼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주요 건설사와 현지 공급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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