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명희의 ‘임꺽정’···월북작가의 ‘금서’에서 개성의 저작권 협상까지
벽초 홍명희(1888~1968)의 대하소설 <임꺽정>은 1928년부터 13년간 조선일보에 연재됐다. 백정 출신 도적 임꺽정의 활약을 통해 조선시대 민중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홍명희가 해방 후 월북하면서 한국에선 오랜 시간 금서로 묶여 있었다. 몰래 돌려봐야 했던 소설이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1985년. 사계절출판사 창립자인 김영종 당시 대표가 구속을 각오하고 출판한 덕분이었다.
내달 11일 개봉하는 <페이오프>는 소설 <임꺽정>의 출판부터 2000년대 북한의 홍명희 자손과의 저작권 관련 합의까지 과정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는 엄혹했던 군사독재 시절 출판사 관계자들이 책을 내기 위해 쏟은 노력을 조명한다. 1988년 출판사가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은 그동안 금서로 지정됐던 월북 작가들의 책이 빛을 보는 계기가 된다. <임꺽정>이 20년간 100만부 넘게 팔리며 베스트셀러로 자리매김한 데에는 이런 노력이 있었음을 영화는 강조한다.
2005년 홍명희의 손자이자 북한 조선작가동맹 소속 작가인 홍석중씨가 남측 출판사들의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고 나서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북에 있는 저작권자와 상의 없이 출간한 것을 ‘마음의 짐’처럼 여겼던 출판사는 홍씨와 협상하기 위해 개성으로 건너간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실화가 러닝타임 19분에 담겼다.
사계절출판사가 기획, 제작하고 다큐멘터리 <김군>의 강상우 감독이 연출했다. 강 감독은 2년 전 40주년 기념 전시를 준비하던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대표로부터 다큐멘터리 제작 의뢰를 받았다. 이후 출판사의 전·현직 관계자와 관련 사건을 보도한 언론인 등을 인터뷰하고, 방대한 자료 조사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강 감독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에무시네마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대하소설 <임꺽정> 맨뒤 페이지의 판권면, 즉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해보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의미 있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강맑실 대표는 “<임꺽정>은 그저 ‘1985년 출간돼 지금까지 팔리고 있는 책’에 불과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강 대표는 이어 “현재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책이고, 통일이 되기 전까지는 현재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책”이라며 “2023년 나온 단편영화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평화롭게 풀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고 말했다.
에무시네마 외 아트나인(서울 동작구), 아리랑시네센터(서울 성북구) 등 영화관에서 상영될 예정이다.
최민지 기자 mi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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