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416] 차(茶)밭에서 놀다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컨텐츠학 2023. 9. 2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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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살까지 사는 세상에 인생 이모작은 뭐를 하지? 글을 안 쓰면 뭐를 할까 하고 생각해 본다. 그 대안으로 차(茶)를 만드는 ‘제다(製茶)’ 일을 해 보면 어떨까.

우선 나 자신이 차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음차흥국(飮茶興國)이라는 말도 있다. 차를 마셔야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지고 정신이 맑아지니까 말이다. 차는 사시사철 녹색의 푸르름을 간직한 나무이자 식물이다. 푸르른 차밭을 바라보는 것도 좋고, 안개 낀 아침에 차밭을 거니는 것도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그리고 원고 마감의 압박감을 누그러뜨리면서 ‘이만하면 괜찮은 인생이야’ 하고 나를 달래준 것도 차이다.

유럽에서 와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구릉지대에 펼쳐진 와이너리에 가서 그 어떤 충족감을 느낀다고 한다면, 한자 문화권의 아시아 사람들은 차밭에 갔을 때 마음의 평화를 느낀다. 서양 포도밭의 대구(對句)는 동양의 차밭이다. 차밭에서 생각을 정리한 중국의 우정량이라는 사람이 꼽은 차의 10가지 덕성은 설득력이 있다. 그 가운데 6가지를 추려본다. ①우울한 기분을 흩어지게 한다(茶散鬱氣) ②차는 생기를 북돋운다(茶養生氣) ③병을 제거한다(茶除病氣) ④차로써 공경을 표한다(以茶表敬) ⑤몸을 닦는다(以茶修身) ⑥마음을 고상하게 만든다(以茶雅心)이다.

요즘 한국 사람들의 일상은 너무나 우울하다. 상대방을 너무 미워하고 증오한다. 평화롭게 사는 법을 잃어버렸다. 정치는 일종의 사이비 종교인데, 이 사이비 종교를 믿는 광신자가 너무 많아져서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한다. 거품을 물면 사이비 종교의 징표이다. 입에서 나오는 게거품을 씻기 위해서라도 나는 오늘 혼자 찻상을 마주하고 앉아서 한 잔의 차를 마신다. 우울을 없애고 생기를 북돋우기 위해서이다.

남들 다 게거품을 물고 살든지 말든지 제 팔자이다. 도가(道家)의 노선은 사회 구원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중요시하는 노선이다. 나는 도가이니까 차밭이나 둘러봐야겠다. 봄에는 곡성에 있는 야생 차밭 ‘산절로 야생다원’에서 찻잎을 따 보았다. 짜증 나는 더위가 가신 엊그제 초가을에는 강진의 ‘이한영 차문화원’에 가서 1박 2일 제다(製茶) 교육을 받았다. 차에는 6대 다류가 있었다. 녹차, 백차, 청차, 홍차, 황차, 흑차였다. 6가지 차마다 각기 색깔도 달랐다. 향기도 달랐다. 맛도 달랐다. 6가지 차향을 맡다 보니 마음속의 근심이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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