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물 한잔 드세요~” 말 한마디에 전해지는 마음[지역아동센터 쌤들의 기분 좋은 상상]

기자 2023. 9. 24.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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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봄에 1학년이던 그 아이를 처음 만났다. 그 아이에 대한 첫 기억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마냥 순수하고 해맑은 모습이 그렇게 예뻐 보였는데, 특정 음식만 먹고 폭식을 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까’ 노심초사하며 어머니와 통화했던 것이다. 이후로는 자신의 이야기에만 집중해서인지 다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이해받지 못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한 통통하고 개구진 모습의 그 아이가 나는 좋았다.

그해 여름 어느날 사건이 일어났다. 좋아하는 피카추 캐릭터를 프린트해서 색칠하고 오려서 집으로 가져가 어머니에게 자랑하는 게 일상의 즐거움인 아이는 그림을 그리며 어머니를 기다렸다.

그날따라 가위질이 서툴러서일까? 캐릭터를 그만 잘못 오려 버렸다. 속상한 아이는 1시간가량 물건을 던지고, 벽을 뜯고, 소리를 질렀다. 선생님들의 어떠한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아주 옛날의 기억을 더듬어 서럽고 불편했던 마음까지 쏟아내며 속상해하는 아이를 달래도 보고 얼러도 보고, 그렇게 그 아이의 푸념을 들어주고 진이 빠졌을 때쯤 이윽고 아동의 난동이 잦아들고 마음도 누그러졌다.

힘이 풀려 앉아 있는 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을까?

“선생님~ 물 한잔 떠다 드릴까요? 저 때문에 힘드셨죠? 물 한잔 드세요~”

‘에고~ 이 녀석….’

내가 힘들어 보이긴 했나 보다.

“응, 쌤도 물 한잔 마시고 싶었는데, 물 한잔 떠다 주라~~”

그날 아이가 건넨 물 한잔의 인연으로 중학교 2학년이 된 지금도 아이와 나는 센터에서 만나고 있다.

개구쟁이였던 그 녀석은 어느덧 훌쩍 크고, 사춘기가 와서 말수가 적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나에게는 특별한 아이다. 현재 그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음식 만들기여서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보고 조리법을 연구한다. 센터에서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선생님~ 이건 어떻게 만들어요?”라고 물어보고 요리법을 적어 가기도 한다. 내가 요리를 하면 “선생님, 제가 도와 드릴까요?”라고 물어 “나야 도와 주면 당근 고맙지~~” 하고 답한다. 그러면 야채를 씻고, 다듬고, 볶으며 내 옆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적극적으로 도와 주는 모습이 정말 사랑스럽다.

나는 그 아이가 좋아하는 일에는 누구보다 진심이고 예쁜 생각과 마음도 있는 걸 알기에 다른 선생님들에게 그 예쁜 모습을 바라봐 주시고 좀 더 시간을 내어 기다려 주시길 당부한다. 어쩌랴. 누군가 힘들어할 때 물 한잔 떠다 줄 마음에 힘이 있는 아이를 어른인 우리가 기다려 줘야지…. 아직 그 아이는 내 곁을 많이 맴돌지만 이제 친구들과 공부도 하고 친구들에게 음식 솜씨도 인정받는 등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그런 아이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아갈 앞날을 기원해 줄 뿐이다.

아동센터에서 16년을 근무하며 9년, 10년씩 함께하는 아이들의 성장 과정과 변화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놀랍다. 변화가 빠른 세상이지만 좀 더 느리게 아동을 바라보다 보면 눈앞에 당장 시험점수가 높지 않더라도, 당장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고 심한 개구쟁이여도 세월이 흘러 언젠가는 변화되고 자기 몫의 삶을 멋지게 감당하며 성장하는 것을 나는 안다. 그러니 우리 미래의 꿈나무를 열렬히 응원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아이들이 건네는 물 한잔의 따뜻함을 만나러 간다.

윤경숙(소양지역아동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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