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향기 물씬…色香美 두루 갖춘 토종 허브 꽃향유[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정충신 기자 2023. 9. 24. 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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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허브식물…‘꽃이 멋진 향유’
꽃말은 ‘조숙·성숙·가을의 향기’
어린순은 나물, 향신료 음식과 치료제…항염증 항산화 활성
한방은 식물 전체가 약재,꽃은 그늘에 말려 방향제
■정충신의 꽃·나무 카페
꽃향유는 햇볕이 잘 드는 곳에서 잘 자라며 꽃이 칫솔 모양으로 한쪽 방향만 보며 피어 비대칭형이다. 4월에 씨앗을 뿌려도 그 해 가을이면 키가 50∼60cm 정도 자라며 꽃이 많이 달리고 한 달이상 피어 가을화단용으로 적격이다. 2022년 10월16일 서울 안산.

<아름다운 것보다 더 아름다울 때/너는 누구에게나 꽃이 된다/기쁜 줄도 모르고 기쁨을 느낄 때/너는 누구에게나 꽃으로 웃게 된다/슬픈 줄도 모르고 슬픔을 느낄 때/너는 누구에게나 꽃으로 울게 된다/그리하여 가장 슬픈 것보다 더 슬퍼질 때/너는 누구에게나 향유로 완성된다>

김윤현 시인의 ‘꽃향유’다.

꽃향유는 꽃이 아름답고 잎과 줄기에 향기샘이 발달해 있고, 꽃에는 꿀샘이 있어 곤충들이 좋아하는 소문난 밀원(蜜源)식물이다. 서울 안산의 꽃향유 2020년 10월 17일

꽃향유는 가을색이 짙어가는 시월의 산행길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보라색 가을꽃의 정수다. 긴 속논썹의 미모, 진한 향기, 약초로서의 기능성까지 삼박자를 고루 갖춘 야생화가 꽃향유다. 꽃 모양 , 빛깔까지 아름답고 향기까지 가진 가을 꽃의 진수다.

‘꽃’이라는 이름까지 들어간 꽃향유는 이름마저 예쁘다. 꽃은 아름답다는 뜻이 내포돼 있고 향유는 향기롭다는 뜻이니 꽃이 갖추어야 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식물이다. 꽃 이름에 걸맞게 꽃뿐만 아니라 잎에서도 온통 향기를 발산함으로 곤충들이 좋아한다.

‘꽃향유’ 꽃과 비교되는 ‘향유’ 꽃도 있다. ‘향유’는 꽃향유와 같이 온몸에서 진한 향기가 나는 우리 고유의 허브식물이지만, 연한 자주빛 꽃 색깔이나 꽃 모양이 ‘꽃향유’에 비해 볼품이 없어 사람들의 이목을 별로 끌지 못한다.

꽃향유는 한해살이 풀이지만 씨가 잘 발아해 여러해살이 풀이란 착각을 일으킨다. 서울 안산 연못가에 무리지어 핀 꽃향유 군락. 2022년 10월 16일

‘화려한’ 꽃향유에 비해 ‘볼품없는’ 향유라 주목받지 못한다. 모두가 꽃향유 꽃을 보면서 짙은 자주빛, 핑크빛 색감에 매료돼 떠받드는 반면, 색바랜듯 희멀건한 연한 자주빛에 마른듯한 풀빛 등골의 ‘향유’는 겉보기에 비교가 된다.

시의 제목은 ‘꽃향유’인데 꽃향유는 한 글자도 나오지 않는다. ‘향유’란 글자만 나온다. 시인은 ‘꽃’ 이름을 단 화려한 꽃향유만 꽃이 아니라 비록 볼품없어 ‘꽃’이란 이름을 달지 못했지만 향유 꽃 역시 내면의 고유한 아름다

움을 간직한 꽃으로 본다. 자세히 뜯어보고 잘 관찰하면 꽃마다 자기 고유의 아름다움과 개성을 갖고 있다. 시인은 꽃마다 제각기 갖는 존재론적 의미와 가치, 개성에 주목하는 듯하다. 꽃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향유는 한약재 이름이다. ‘향기나는 풀’이라는 의미로 토종 허브다. 꽃향유는 ‘꽃이 멋진 허브’를 일컫는다.

잎은 잎자루가 길고 마디마다 마주나며 달걀형으로 뒷면에는 정유를 분비하는 기름샘(선점· 腺點)이 있으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다. 꽃향유는 꽃이 아름답고 잎과 줄기에 향기샘이 발달해 있고, 꽃에는 꿀샘이 있어 곤충들이 좋아하는 이름난 밀원(蜜源)식물이다. 박하와 고수를 섞어놓은 듯한 약간 드라이한 향기를 멀리서도 맡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풍긴다. 사람에게는 별로이지만 벌과 나비에게는 치명적인 유혹을 준다고 한다.

꽃향유는 꿀풀과에 속하는 한해살이식물로, 9∼10월에 피는 가을꽃이다. 가을 산은 온통 흰색과 노란색 국화과 꽃들이 많은데 가을볕 잘 드는 양지바른 곳에서 무리지어 피어 있는 보라색 또는 홍자색 이삭꽃이 유독 눈에 띈다.

밀원식물인 서양등골나물과 함께 피어있는 꽃향유. 2022년 10월 16일 서울 안산.

꽃향유는 줄기가 네모지고 털이 있으며 60㎝ 정도 높이로 자라고 여러 개의 가지가 갈라지며 줄기 끝이나 가지 끝에 3~5cm 길이의 이삭꽃을 피운다. 자잘한 작은 꽃송이들이 모여서 이삭 모양의 큰 꽃차례를 형성하는데 작은 꽃들이 한쪽 방향으로만 빽빽하게 몰려서 꽃을 피우므로 꽃차례가 비대칭이다. 따라서 반대쪽은 꽃이 보이지 않게 돼 마치 머리 가르마처럼 줄이 나 있다.

꽃향유보다 꽃송이가 작고 꽃 자체가 화려하지 않은 것도 있는데 이를 ‘향유’라 하며 매우 드물기는 하지만 흰색 꽃이 피는 것도 있으며 이를 흰꽃향유라 한다. 꽃향유를 노야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꽃향유는 파종 후 넉달이면 꽃을 볼 수 있는 한해살이다. 맨드라미처럼 씨앗이 떨어져 자연발아를 잘하기 때문에 흔히 다년초로 오인받기도 한다. 물론 남부지방에서는 노지 월동을 하기도 한다. 목향유라 불리는 여러해살이 품종이 따로 있기는 하다.

꽃향유는 성장 속도가 매우 빨라 6월초까지 파종하면 당해년 늦가을 서리 내릴 때까지 꽃을 피운다. 또한 금방 군락을 이루고 척박한 토양에도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도로변이나 경사면의 조경 용도로도 수요가 많아 재배농가들이 늘고 있다. 라벤더, 세이지, 민트 등 대부분의 허브들이 속해 있는 꿀풀과에서 일가를 이루고 있는 향유 집안에는 예닐곱의 사촌들이 국내에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꽃과 잎의 모양이 흡사해 혼동하기 쉬운 배초향(방아)과는 팔촌뻘이라고 한다.

속명인 ‘엘숄치아(Elsholtzia)’는 독일의 의사이자 자연과학자인 요한 지그문트 엘숄츠(Johann Sigmund Elsholtz)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주로 방향성 식물의 작명에 사용한다. 종명 ‘스플렌덴스(splendens)’는 라틴어로 ‘찬란하다’는 뜻이다. 꽃향유 꽃의 화려함을 나타낸다.

꽃향유는 꽃이삭을 형성하는 작은 꽃들은 꽃받침이 대롱 모양으로 끝이 5개로 갈라지고 꽃잎은 입술 모양이고 윗입술은 가운데가 오목하게 들어가고 아랫입술은 다시 3갈래로 갈라진다. 수술은 4개인데 그중에서 2개는 짧고 2개는 유별나게 길어서(2강웅예) 꽃 밖으로 길게 뻗어있다. 그래서 꽃이삭은 수많은 수술이 꽃잎 밖으로 삐죽삐죽 뻗어있는 독특한 모습을 연출하게 된다. 2022년 10월 16일 서울 안산.

등산할 때 입에서 냄새가 나면 임시변통으로 꽃향유 잎을 따서 씹으면 구취가 없어지며 집에서는 생즙을 짜서 양치질하면 입 냄새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봄에 돋아나는 어린 순을 산나물로 먹을 수도 있다.

알려진 성분으로 방향성 정유를 1% 정도 함유하고 있고 이 정유의 주성분은 엘숄치아케톤(elscholtziaketone)

이라 한다.

꽃향유는 몇 안 되는 토종 허브 식물이다. 배초향 산초 등과 더불어 음식과 치료제로 요긴하게 쓰인다. 항염증 항산화 활성 등 치유와 기능성 식품 개발이 기대된다. 실제 학계에서는 꽃향유를 차와 식품, 화장품 원료로 개발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어린순은 나물로 먹고, 한방에서는 땀을 나게 하여 열을 내리므로 감기로 인한 오한, 두통, 복통, 구토, 설사 치료제로 사용한다.

한방에서는 열매를 포함한 식물 전체를 약재로 쓰는데 열매가 익을 무렵 채취해 햇볕에 건조하여 보관한다. 꽃은 그늘에 말려 방향제로 쓰거나 차로 달여 마시면 좋다. 향이 좋아 음식을 감칠맛 나게 하는 향신료로 제격이다.

꽃말은 조숙·성숙, 또는 ‘가을의 향기’.

글·사진=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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