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하면 고향에 타고갈게요”…제네시스, ‘그돈이면 벤츠’ 설움 없앴다 [세상만車]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3. 9. 24.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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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구려 비웃더니 이젠 좋구려
제네시스, 누적 100만대 돌파
작년 제이디파워 ‘4관왕’ 달성
제네시스 GV80 쿠페 콘셉트 [사진출처=현대차]
“싼 맛에 타는 짝퉁 일본차” “고장 많은 싸구려 차”

자동차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바로 알아채실 겁니다. 현대자동차그룹 얘기입니다. 1986년 현대차 엑셀로 시작된 현대차그룹의 미국 진출 역사는 굴욕에서 시작됐습니다.

1970년대 제1·2차 석유파동 이후 연비 좋고 가격도 합리적인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높은 차량을 앞세워 미국을 먼저 선점한 ‘기술의 혼다’, 고장 적은 ‘내구성의 토요타’보다 한참 아래로 평가받았죠.

일본차가 렉서스로 프리미엄 이미지까지 갖추면서 현대차그룹의 싸구려 이미지는 고착화되는 듯이 보였습니다.

‘짝퉁 일본차’ 비난이 ‘약’ 됐다
벤츠 E클래스와 제네시스 G80 [사진출처=벤츠, 현대차]
현재는 어떤가요. 현대차그룹은 싼차 이미지를 말끔하게 씻어냈습니다. ‘싸구려’에서 이제는 ‘좋구려’라는 말을 들을 정도입니다.

‘일본차 짝퉁’이라는 혹평을 호평이 대체하는 데 가장 기여한 것은 정몽구 명예회장과 정의선 회장이 화두로 던진 ‘품질 경영’에 있습니다.

정 명예회장은 1999년 현대차 회장으로 취임한 뒤 미국 출장을 갔다가 충격을 받았습니다. ‘고장이 잦고 수리도 제대로 되지 않는 싸구려 차’로 애물단지 취급을 받는 현대차의 현실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죠.

NBC 인기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자니 카슨 쇼’, CBS 인기 토크 프로그램 ‘데이비드 레터맨 쇼’ 등에서 미국 정부의 정책 결정 오류를 현대차 구매 결정과 비교할 정도였습니다.

망신살이 단단히 뻗쳤죠.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많이 파는 것’에 초점을 맞췄던 현대차 전략은 이때부터 극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정 명예회장은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신차 출시 일정을 미루더라도 부실한 생산라인을 중단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제이디파워 품질 컨설팅도 받게 했습니다.

렉서스 ES [사진출처=렉서스]
현대차그룹은 이를 위해 2000년부터 24시간 가동되는 ‘글로벌 품질 상황실’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 각지에서 품질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유관 부서에 통보, 개선 방안을 마련했습니다.

2002년에는 남양기술연구소에 파이롯트 센터를 설립, 신차의 양산에 앞서 양산공장과 동일한 조건에서 시험차를 생산해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찾아내고 있습니다.

모든 차량에 대해 세계적으로 가장 가혹하다고 알려진 독일 뉘르부르크링 서킷, 영하 40도의 스웨덴 얼음 호수, 미국 모하비 사막에서 한계점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인공지능(AI) 비전 기반의 품질 검증 시스템도 갖췄습니다. VR(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한 버추얼 개발 프로세스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2008년 제네시스(BH)로 가능성 타진
2008년 당시 정몽구 회장(오른쪽)이 8일 제네시스 신차 발표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사진출처=매경DB]
품질경영 성과로 대중적인 자동차 분야에서 입지를 강화한 현대차그룹은 글로벌 자동차그룹의 필수과목인 프리미엄 브랜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금력만 있으면 상대적으로 손쉬운 인수가 아닌 실패 가능성이 높은 브랜드 설립으로 정면돌파를 결정했습니다. 가시밭길을 선택한 셈입니다.

현대차그룹은 이를 위해 현대차 그랜저를 뛰어넘는 프리미엄 차종을 내놨습니다. 2008년 등장한 1세대 제네시스(BH)입니다. 2013년에는 2세대 제네시스(DH)로 거듭났습니다.

제네시스 차종으로 가능성을 본 현대차그룹은 브랜드 독립을 추진했습니다. 마침내 2015년 프리미엄 브랜드인 제네시스가 출범했습니다.

같은 해 11월 현대차 플래그십 세단인 에쿠스가 제네시스 EQ900(현재 G90)으로 스타트를 끊었습니다.

제네시스 GV80 [사진출처=현대차]
2016년에는 벤츠, BMW, 아우디, 렉서스, 캐딜락 등과의 경쟁에서 선봉장이 될 제네시스 G80이 등장했습니다. 그 뒤를 이어 G70·GV70·GV80이 잇따라 출시됐습니다. 브랜드 최초 전기차인 GV60도 나왔죠.

제네시스 G80과 G90은 현대차 그랜저·기아 K7보다 한 수 위 모델로 대접받았습니다. 대기업 ‘임원용 차’로 인기를 끌면서 성공하면 타는 차로 여겨졌습니다.

해외에서는 달랐습니다. 처음에는 ‘짝퉁 렉서스’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2010년대 후반부터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2020년부터는 판매도 급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렉서스는 물론 벤츠, BMW, 포르쉐와 당당히 겨룰 수 있는 품질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판매도 급증하고 있습니다.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격전장인 미국에서 ‘아메리카 드림’을 실현하고 있습니다. 인생역전에 버금가는 ‘차생역전’이죠.

‘국내용’ 한계 벗어나 글로벌시장서도 성공
벤츠 S클래스와 제네시스 G90 [사진출처=벤츠, 현대차]
제네시스는 올해 경사를 맞이했습니다. 글로벌 누적 판매 100만대를 돌파했죠.

올해 8월까지 국내에서 69만177대, 해외에서 31만8627대 등 글로벌 시장에서 총 100만8804대를 판매했습니다.

브랜드 독립 7년10개월, 누적판매대수 50만대를 넘어선 지 2년3개월 만에 일군 성과입니다.

제네시스는 브랜드 출범 첫해인 2015년에 384대에 그쳤지만 2020년에는 13만2450대를 판매했습니다. 처음으로 글로벌 연간 판매 10만대를 넘어서면서 존재감을 나타냈습니다.

2021년 20만1415대, 2022년 21만5128대에 이어 올해에도 8월까지 15만4035대를 판매하며 꾸준한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네시스 차종 중 가장 많이 판매된 모델은 2016년 출시된 G80입니다.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렉서스 ES와 경쟁하는 모델이죠. G80(전동화 모델 포함) 글로벌시장 판매대수는 39만738대에 달합니다.

BMW 5시리즈 [사진출처=BMW]
G80은 국내에서는 ‘넘사벽’(넘기 어려운 사차원의 벽) 프리미엄 세단으로 인정받습니다. 국토교통부 통계를 사용하는 카이즈유 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1~8월 G80은 3만4409대 팔렸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 수입차 판매 1위인 BMW 5시리즈는 1만5599대, 2위인 벤츠 E클래스는 1만2029대 판매됐습니다.

G80과 경쟁이 되지 않는 수준이죠. 두 차종 판매대수를 합하더라도 2만7628대로 G80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 돈이면 제네시스 대신 벤츠·BMW 사겠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듭니다.

제네시스가 2010년대 중반부터 자동차 대세가 된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내놓은 모델들도 선전했습니다.

브랜드 첫 SUV인 GV80, 최초의 도심형 중형 SUV인 GV70는 글로벌 시장에서 각각 17만3882대, 16만965대 팔렸습니다.

품질경쟁서 벤츠·BMW·포르쉐에 승리
제네시스 GV60 [사진촬영=최기성 매경닷컴 기자]
제네시스 인기 비결은 품질, 상품성, 안전성 등을 모두 프리미엄급에 걸맞게 향상한 데 있습니다.

근거도 있습니다. 제네시스는 지난해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JD파워)의 자동차 평가 항목인 품질, 상품성, 신기술, 내구성에서 벤츠, BMW, 포르쉐, 렉서스 등 독일·일본 프리미엄 브랜드를 압도했습니다.

지난해에만 제이디파워 ‘4관왕’이 됐습니다. 제이디파워는 평가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시장조사 업체죠. 미국 자동차시장을 넘어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도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자동차 평가 분야 ‘오스카’로 여겨집니다.

제네시스는 신차 첨단 기술 만족도를 나타나는 ‘2022 미국 기술 경험 지수 조사’(TXI)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TXI는 제이디파워의 주요 조사로 꼽히는 신차품질조사(IQS)와 상품성 만족도 조사(APEAL)를 보완해주는 신차 평가 지표입니다.

제네시스(643점)는 캐딜락(584점), 벤츠(539점), BMW(516점), 렉서스(491점), 포르쉐(439점) 등을 제쳤습니다. 프리미엄 브랜드 1위는 물론 전체 브랜드 순위도 1위도 기록했죠.

포르쉐 카이엔 [사진출처=포르쉐]
제네시스는 APEAL 조사에서도 두 개 차종이 차급별 1위를 달성했습니다. G80(878점)은 중대형 프리미엄 차급, GV70(890점)은 소형 프리미엄 SUV급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죠.

브랜드 순위에서도 제네시스(886점)는 포르쉐(888점)에 이어 2년 연속 2위를 기록했습니다. 캐딜락(885점), 벤츠(876점), BMW(875점), 렉서스(863점)를 모두 이겼죠.

점수가 낮을수록 좋은 IQS 조사에서도 지난해 렉서스에 빼앗긴 프리미엄 브랜드 1위 자리를 되찾았습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7번의 조사에서 6번 1위를 달성했습니다.

제네시스(156점)는 렉서스(157점), 캐딜락(163점), BMW(165점), 벤츠(189점), 포르쉐(200점)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제네시스는 미국에 진출한 현대차그룹을 아프게 했던 내구품질 분야에서도 프리미엄 브랜드 1위에 올랐습니다. VDS에서 ‘내구성 황제’ 렉서스를 물리쳤죠.

VDS는 차량 구입 후 3년이 지난 소비자들이 대상입니다. 전체 조사 항목은 184개에 달합니다. 100대당 불만 건수를 집계합니다. 점수가 낮을수록 품질 만족도가 높습니다.

2021년 4위에 그쳤던 제네시스(155점)는 렉서스(159점), 포르쉐(162점)를 밀어내고 1위 자리에 올랐습니다.

올해에도 제이디파워 ‘2023 TXI’에서 경쟁 프리미엄 브랜드를 모두 제치고 1위를 기록했습니다.

타이거 우즈 살린 건 우연 아닌 실력
제네시스 GV80 충돌테스트 [사진출처=IIHS]
제네시스는 충돌 평가 분야 오스카로 여겨지는 미국 고속도로 안전보험협회(IIHS, Insurance Institute for Highway Safety) 평가에서도 최고 등급을 연달아 수상했습니다.

IIHS는 1959년 설립된 비영리단체죠. 매년 미국에 출시된 차량의 충돌 안전 성능 및 충돌 예방 성능을 종합 평가해 결과를 발표합니다.

2012년부터 차량 전면부 일부만 충돌시켜 안전성을 평가하는 스몰 오버랩(small overlap) 테스트를 도입하는 등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신차 안전성 평가를 진행합니다.

최고 안전성을 나타낸 차량은 TSP+, 양호한 수준의 성적을 낸 차량에는 TSP 등급을 받습니다.

TSP+를 받으려면 운전석·조수석 스몰 오버랩, 전면·측면 충돌, 지붕 강성, 머리지지 6개 충돌 안전 항목 평가에서 모두 최고 등급인 ‘훌륭함’(good) 등급을 받아야 합니다.

전방 충돌방지 시스템 테스트(차량과 차량, 차량과 보행자)에서 ‘우수함’(advanced) 이상 등급, 전체 트림의 전조등 평가에서 ‘양호함’(acceptable) 이상 등급을 획득해야 합니다. 무척 까다롭습니다.

제네시스는 G70, G80, G90, GV70, GV80에 이어 전기차인 GV60까지 모든 차종이 TSP+ 등급을 받았습니다.

GV80은 지난 2021년 2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의 생명을 구하면서 안전성이 우수한 차로 주목받았습니다. IIHS 평가는 GV80이 전복사고에서 타이거 우즈를 살린 것은 우연이 아니라 실력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줬습니다.

제네시스도 품질은 벤츠와 포르쉐, 내구성은 렉서스, 안전은 볼보 수준에 달한다는 평가를 받은 셈입니다.

제네시스 G80 전동화 모델 [사진출처=현대차]
현재 제네시스는 벤츠, BMW, 포르쉐, 렉서스 등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수준의 품질 경쟁력을 갖췄습니다.

하지만 갈 길도 멉니다. 경쟁 브랜드들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쌓아온 헤리티지와 브랜드 가치, 눈에 보이지 않는 완성도를 모두 감안하면 제네시스는 아직 한 수 아래입니다.

다행히 대다수 브랜드들이 계급장를 떼고 경쟁해야 하는 전기차 시대가 열리면서 제네시스는 핸디캡을 벗어날 기회를 얻게 됐습니다. 브랜드 어드밴티지가 있겠지만 극복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글로벌 누적판매 100만대 돌파라는 성과가 더 큰 도약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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