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곳이 없다”…임대주택 시장 붕괴한 호주에서 생긴 일[딥다이브]

한애란 기자 2023. 9. 2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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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 부동산 시장의 이슈 중 하나가 주택공급 급감입니다. 주택 인허가·착공 물량이 모두 크게 줄어서 2~3년 뒤 주택공급 대란이 닥칠 거란 걱정인데요. 정부가 조만간 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주택시장에 ‘공급 절벽’이 생기면 무슨 일이 나타날까요. 전·월세 매물 급감으로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저소득층이 임대시장에서 밀려나고 자칫 노숙자로 전락하게 되지 않을까요. 너무 극단적인 상상 아니냐고요? 실제 이런 일이 호주에선 일어나고 있습니다. ‘시장이 무너졌다’고 할 정도로 호주 사회가 극심한 임대주택난에 몸살을 앓고 있는데요. 오늘은 호주의 ‘임대 위기’를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

호주의 부동산 호황기가 저물고 이젠 건설경기 침체와 함께 임대주택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호주 시드니의 해 질 녘 모습.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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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딱하면 노숙자 될 판

호주 멜버른에 사는 세 자녀의 엄마 새미 클라크는 요즘 불안해서 잠을 못 이룹니다. 지금 사는 집을 비워달라는 요청을 받은 뒤 새 셋집을 구하기 위해 스무 군데를 찾아갔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서비스업 정규직인 그의 급여 수준이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기엔 충분치 않다는 이유였는데요. 부동산 중개인은 그에게 “보증인을 구할 수 있나요?”라고 물었죠. 클라크는 분통을 터뜨립니다. “저는 47세이고 15년 동안 집세를 혼자 내왔는데 왜 보증인이 필요하죠?”(더시드니모닝헤럴드 기사 인용)

호주 시드니 아파트에서 2년간 살았던 제임스 역시 새집 구하기에 실패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했지만 (셋집을 보러 갈 때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면서 “시드니 임대시장은 끔찍하다”고 말합니다. “침실 1개짜리 집에 주당 450달러를 지불할 순 없어요. 내 월급으론 감당할 수 없다고요.” 지게차 운전기사인 그의 수입은 많아야 주당 900 호주 달러(약 77만원) 정도입니다. 얼마 전 그가 일을 마치고 집에 갔을 때 계약 만료된 아파트는 자물쇠가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후 2주 동안 그는 공원에서 잠을 자야 했죠. 그는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해놨지만, 언제까지 대기해야 할지는 모릅니다.(가디언 기사 인용)

호주 사회가 전례 없는 ‘임대주택 대란’으로 아우성입니다.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살 곳을 구하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늘고 있는데요. SQM리서치가 집계한 호주 주요 도시의 평균 주당 임대료는 779달러(약 67만원). 2021년 초(551달러, 약 47만원)와 비교하면 44% 급등했습니다. 이제 소득 대비 임대료 비율은 30.8%에 달합니다. 버는 돈의 거의 3분의 1을 집세로 내야 하는 거죠. 집 없는 서민들의 한숨 소리가 커집니다.
2009년 이후 호주의 임대료 추이. 10년 동안 안정적이던 임대료가 지난해부터 무섭게 뛰고 있다. SQM리서치
셋집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다가 노숙자 신세로 전락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직장을 잃거나 돈을 벌지 못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호주 자선단체의 노숙자 서비스엔 갈수록 대기줄이 길어집니다. 시설이 꽉 차서 들어갈 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갈 곳이 없어 자동차나 텐트에서 잠을 자는 사람 수가 3년 전보다 103% 늘었다는 통계가 나올 정도입니다.

‘임대 위기’라는 표현이 과장 아닌 현실입니다. 지금 호주 임대 시장은 수요와 공급 균형이 완전히 깨진 상태입니다. 원인이 복합적인 만큼 회복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것은 공급의 문제 : 살 집이 없다

호주 임대시장의 공급 부족은 매우 심각합니다. 이를 보여주는 통계가 공실률인데요. 전국 주택 임대시장의 공실률은 1.2%로, 역대급으로 낮습니다. 과거 10년 평균 공실률 2.9%의 반도 안 되죠(참고로 미국은 임대주택 공실률이 6.3%). 보통 임대주택 시장은 공실률이 2% 정도이면 균형 잡힌 시장이라고 보는데요. 일부 지역은 더 심각해서, 애들레이드는 공실률이 고작 0.5%, 퍼스는 0.4%입니다. 사실상 빌릴 집이 아예 없는 거나 마찬가지이죠. 부동산 조사업체 코어로직에 따르면 호주의 임대 매물 건수는 3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습니다.

왜 이렇게 집이 부족할까요. 이를 알려면 호주의 임대인(집주인)이 누구인지를 봐야 합니다. 호주는 한국보다도 공공임대 주택 비율이 낮죠(호주 4.4%, 한국 8.9%). 즉, 임대인 대부분이 사는 집 외에 집 한 채를 더 사서 세를 놓아 생활비에 보태려는 평범한 개인입니다.

그런데 이런 임대인들의 투자 의욕이 확 사그라들었습니다. 투자 수익률이 예전 같지 않아서죠. 대출 금리가 오르자 대출받아 집 사서 세 놔봤자 별로 남는 게 없게 됐는데요. 게다가 집값 거품까지 빠르게 빠지면서(지난해 호주 주택가격 5.3% 하락) 그냥 집을 팔고 임대시장에서 철수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호주의 가계대출이 꾸준히 줄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호주 퍼스의 임대주택 공실률은 0.4%. 사실상 빌릴 집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게티이미지
집주인의 임대 의욕 상실엔 숙박공유서비스 에어비앤비도 한몫했습니다. 에어비앤비로 여행객에게 집을 빌려주는 게 장기 임대계약을 맺는 것보다 훨씬 쏠쏠하기 때문인데요. 예를 들어 시드니 패딩턴에 가구가 딸린 침실 2개짜리 아파트를 6개월 동안 임대해주면 주당 1500달러를 받지만, 에어비앤비에서 일주일 빌려주면 3500달러입니다. 멜버른 외곽 포인트쿡에선 방 3개짜리 집의 장기 임대료는 주당 460달러이지만 에어비앤비에선 하루 317달러에 올라와 있죠. 집주인 입장에선 일주일에 2~3일만 에어비앤비로 집을 빌려줘도 6개월 장기 임대계약보다 수익률이 높은 겁니다. 호주 전역에 에어비앤비 같은 단기 휴가용 부동산은 약 30만 곳에 달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기존 임대인들이 시장을 떠났으니, 남은 방법은 새집을 더 많이 짓는 거겠죠. 그런데 이게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재비·인건비·공사비가 무섭게 뛰었기 때문입니다. 건설비용이 팬데믹 이전보다 30% 뛰었다는데요. 이미 공사를 시작한 주택 건설은 계속 지연되고 있고, 신축 승인도 확 줄었죠. 건설경기가 가라앉아 7, 8월 두 달 동안 560개 건설회사가 파산신청을 했을 정도입니다. ANZ은행의 애드레이드 팀브렐 수석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을 공급하는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주저한다”면서 “사람들이 집을 짓고 싶어 하지 않고, 이것이 우리를 악순환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수요의 문제: 인구 폭발

호주 멜버른의 한 아파트. 역대 최대 규모로 밀려드는 이민자는 가뜩이나 꼬인 호주 임대차 시장을 더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게티이미지
주택공급난은 어쩌면 우리나라에도 곧 닥칠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호주 임대시장을 대혼란으로 몰아넣은 또 다른 한 축은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바로 인구가 크게 늘면서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는 점이죠.

호주 통계청에 따르면 3월 말 기준으로 호주 인구는 직전 12개월 동안 56만3200명 증가해 2650만명으로 늘었습니다. 연 2%가 넘는 매우 가파른 증가세인데요. 이 중 81%인 45만4400명이 이민자였습니다. 지난해 초 다시 이민을 받기 시작하면서 팬데믹 기간 0이었던 이민자 수가 역대 최대로 급증한 겁니다. 하루에 1200명 넘는 이민자가 호주에 정착하러 온다는 뜻이죠. 호주가 광산에서 일할 이민자를 대거 받아들였던 2008년의 기록을 이미 깼다는군요.

다시 말해 연간 수십만 채의 주택 수요가 이민자로 인해 추가되고 있는 겁니다. 호주 부동산 거래 사이트에서 집을 찾기 위해 해외에서 이뤄진 검색 건수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는데요. 아마도 이민자들은 바로 집을 사기보다는 처음 몇 년 동안은 주택을 임차할 가능성이 크겠죠. 그럼 이들은 도대체 다 어디서 살아야 할까요?

이 틈을 타서 반이민 정서를 부추기는 세력의 목소리가 커집니다. 호주 극우정당 원네이션(One Nation)이 대표적인데요. 호주 의회는 이달 14일 수개월의 논의 끝에 100억 달러(약 8조5700억원)를 투자해 5년 동안 3만 채의 저렴한 주택(이 중 2만 채는 공공임대주택, 1만 채는 저렴한 주택)을 짓는 내용의 정부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를 두고 원네이션 관계자는 이렇게 얘기하죠. “정부는 지난 30일 만에 이 나라에 6만명의 사람들이 들어오게 했습니다. 이 나라는 향후 5년 동안 지을 예정인 집을 증발시켰습니다. 그래서 (집을 지어도) 호주인들은 그 혜택을 보지 못할 겁니다.”

물론 대부분 호주인에게 ‘이민자=경제의 필수인력’은 상식으로 통합니다. 워낙 근로 인력이 부족한 나라라서 이민자 없인 경제가 돌아갈 수 없죠. 하지만 그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른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미 문제투성이였던 임대시장이 이로 인해 더 엉망이 되어가고 있고요.

정부가 나서야 한다…어떻게?

호주 캔버라의 국회의사당. 게티이미지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연히 정부에 비판의 화살이 쏠립니다. 수십 년에 걸쳐 누적된 부동산 정책의 실패가 임대시장을 망가뜨렸다는 건데요. 그중에서도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줄인 게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힙니다. 1980년대엔 호주에서 건축 승인을 받은 주택 10채 중 1채가 정부 소유 공공주택이었지만, 지금은 2%에 불과합니다. 그동안 거의 손을 놓다시피 했던 거죠. 뉴사우스웨일스 세입자연합의 레오 패터슨 로스 대표는 호주가 공공 주택 부문을 늘리지 못한 건 “수십 년 동안 두 집권 정당 모두를 대표하는 정말 나쁜 실수”라고 지적하고요. 호주부동산연구소의 헤이든 그로브스 회장은 “우리는 임대주택을 공급하기 위해 엄마 아빠 투자자들(개인 임대사업자)에게만 의존하는 걸 멈춰야 한다”고 말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호주 정부가 앞으로 공공주택을 늘리겠다고 나서긴 했는데요. ‘100억 달러 기금으로 5년 3만 채 건설’이란 목표를 두고 냉소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지금 공공임대주택에 들어가려고 대기하는 저소득층만 이미 6만명이거든요. 임대시장에서 밀려나 노숙자가 될 처지에 놓인 사람이 갈수록 늘어나고요. 공급 물량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게다가 공공주택이 실제로 부지를 찾고 건설돼서 입주하기까지엔 수년이 걸리겠죠. 이미 폭발 일보 직전인 임대차 시장을 떠받치기엔 역부족입니다.

이에 좀 더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각종 정책이 나오거나 제안되는데요. 호주 빅토리아주는 이달 20일 에어비앤비 같은 숙박공유 플랫폼 이용자에 2025년부터 ‘단기 숙박 부과금’ 7.5%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늘어난 에어비앤비 호스팅이 임대위기의 원흉이라고 보고 손보려 나선 겁니다.

에어비앤비 고객에게 세금을 매기는 건 호주에선 처음인데요. 당연히 이에 반대하는 의견도 적지 않습니다. 7.5%가 다른 나라 사례(보통 3~5%의 숙박세 또는 관광세 부과)보다 너무 높다는 거죠. 관광지로서의 매력을 떨어뜨릴 수도 있고요. 하지만 다니엘 앤드루스 빅토리아주지사는 이를 지적한 기자에게 이렇게 반박합니다. “내가 100번도 말할 수 있는데, 그것(7.5%)은 적당한 요금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살 곳이 필요합니다!
에어비앤비 이용객에 세금을 물리면? 임대료를 동결해버리면? 임대주택 시장이 정상화될 수 있을까. 게티이미지
야당인 녹색당은 좀 더 과격한 정책을 주장합니다. 바로 ‘2년간 임대료 동결(two-year rent freeze)’과 ‘국가적 임대료 상한제 도입’입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정책처럼 보이는데요. “기록적인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는 가족들이 텐트나 자동차에서 살아야 할 상황이다. 정부가 이를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임대료 동결이 쉬운 방법”이라는 게 녹색당 측 주장입니다. 이 주장은 호주 세입자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죠.

가격 통제는 확실한 방법이지만 부작용이 만만찮다는 거, 다들 아실 겁니다. 이미 주택임대가 돈이 안 된다며 손 털고 있는 임대사업자들을 더 몰아내는 결과가 될 게 뻔하죠. 민간 임대주택 시장이 붕괴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멸해버릴지도 모릅니다.

정공법(공급 확대)을 쓰자니 몇 년이나 걸릴지 모르고, 화끈한 미봉책(임대료 동결)은 후폭풍이 거세겠고. 답이 안 보이는 가운데, 임대 위기가 호주의 부동산 투자자들에겐 기회가 될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지금은 집값이 안정세이지만, 이렇게 임대위기가 길어지면(그리고 금리까지 인하되면) 집값이 결국 다시 뛰지 않겠냐는 거죠. 가난한 사람들은 집 없이 떠도는데 가진 자들에겐 오히려 투자 기회가 찾아올 수 있다니. 씁쓸한 전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By.딥다이브

호주는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한국보다 높은, 몇 안 되는 국가이죠(스위스 1위, 호주 2위, 한국 3위). 최근 한국과 달리 호주는 가계부채 비율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런데 그게 좋은 신호가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임대주택 시장이 붕괴하고 있다는 증거였죠. 참 부동산 시장은 복잡하고도 거대해서 다루기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호주가 심각한 임대주택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임대료가 폭등하면서 살 집을 구하지 못한 세입자들이 길거리에 나앉는 일이 실제로 벌어집니다. 임대 위기입니다.

-공급이 너무 부족합니다. 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으로 투자 수익률이 떨어지자 임대인들이 집을 팔고 시장을 떠납니다. 차라리 에어비앤비를 선택하는 게 더 합리적 선택입니다. 건설비용 급등으로 새집도 지어지지 않습니다.

-수요는 대폭발 중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유입된 순이민자수는 44만명으로 역대 최대였습니다.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가 너무 빠릅니다.

-정부는 부랴부랴 공공임대주택 건설을 대폭 늘리는 대책을 내놨습니다. 일부 주정부는 에어비앤비에 7.5%의 지방세를 매기겠다고 나섰고요. 하지만 이미 망가진 임대시장을 고치기엔 역부족으로 보이는데요. ‘임대료 동결’을 외치는 야당의 목소리도 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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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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