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살 직전 돼지에게, 밥과 물을 주었다[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기자 2023. 9. 23.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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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장 앞, 뜨겁고 비좁은 트럭에서 울부짖던 돼지들, 시원한 물 주니 우르르 다가와 벌컥벌컥…'고기'로만 알았던 돼지들의 '고유함', 죽이기 직전까지 굶기고 옴짝달싹 못하게하는 어떤 '폭력'에 대한 기록
[편집자주] 수습기자 때 휠체어를 타고 서울시내를 다녀 봤습니다. 불편한 세상이 처음 펼쳐졌습니다. 직접 체험해 깨닫고 알리는 기사를 써보기로 했습니다. 이름은 '체헐리즘' 입니다.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말입니다. 사서 고생하는 맘으로 현장을 누비겠습니다. 깊숙한 이면을 알리고, 가장자리에 관심을 불어넣겠습니다.

도살장 앞 돼지의 마지막 식사. 찜통 같은 트럭에서 죽을 시간을 기다리는 돼지들에게 밥과 물을 주는 '비질(vigil)'. 2리터짜리 페트병에 물을 가득 담아, 돼지에게 주었다. 금세 동이 날 정도로 벌컥벌컥, 마셨다. 죽기 직전까지 이런 곳에 있었다./사진=비질(vigil) 참여 시민 제공
눈이 시뻘건 돼지가 숨을 헐떡였다. 분홍빛 콧구멍에서 진한 생(生)이 뿜어져 나왔다. 손에 닿은 순간 그게 '아직' 뜨겁단 걸 알았다. 아직이라 표현한 이유는, 거기가 도살장 코 앞이었기 때문이었다.

2층짜리 트럭엔 돼지들이 빼곡했다. 트럭 뒤엔 또 다른 트럭이, 그 뒤엔 또 다른 게 줄지어 서 있었다. "진짜 추석 전이라 그런지 너무 많네요."'사이'란 이름의 활동가가 말했다. 1시간쯤 뒤면 도살돼 보기 좋게 포장될 거였다. 그 포장지 일부엔, 돼지들 의사와는 무관하게, 웃는 캐릭터가 들어가기도 할 거였다.

최대한 잔뜩 실으려했던 게 느껴졌다. 누가 묶어놓은 게 아님에도 돼지들이 옴짝달싹 못했다. 옆에, 뒤에, 앞에, 심지어는 위에까지. 돼지들이 서로를 죽어라 밀고 눌렀다. 가뜩이나 뜨거운 트럭 안. 살과 살이 마찰해 흡사 익어버릴까 싶을만큼 빽빽했다. "꽤애액", "꽤액". 절규가 들릴 때마다 고막에 고통이 파고들었다. 아비규환. 그러느라 탈진한 존재들은 겹겹이 쌓여 있기도 했다.

'우리'라는 말엔 우리도 잘 모르는 구분이 있다고 했다.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로 나누고, 관계가 단절되며, 폭력이 쉬워진다. 그들로 바라보고, 불쌍한 걸 도와주는 게 아니라, '우리'로 함께하는 것. 그걸 시작하고 마주하는 게 '비질'이다./사진=비질(vigil) 참여 시민 제공

오른팔로 감싼 2리터짜리 물통을 들어 올렸다. 막 담은 찬물이라 냉기가 느껴졌다. 돼지들에게 다가가 죽기 전 마지막 물을 주었다. 평소 돼지고기를 맛있게 먹으며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한껏 일조한 주제에. 스스로 가증스럽게 느껴진 순간, 페트병 아랫쪽을 꽉 쥐게 됐다.

뚜껑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기다란 물줄기가 뿜어져 나왔다. 이를 알아챈 돼지들이 정신 없이 몰려들었다. 자조하는 인간 동물이 주는 물일지언정 가리지 않고 벌컥벌컥 받아마셨다.

이들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이미 12시간은 굶은 상태였다. 축산물 위생관리법에 따라 도살 직전엔, 반드시 그러도록 돼 있었다.

죽음 앞둔 돼지를 만나러, 강원도 감자 네 개를 삶았다
잘 삶아진 강원도 감자 네 개. 죽을 돼지들에게 주는 거라 생각하는 것만으로 마음이 복잡했다. 장인어른 협찬./사진=남형도 기자
'비질(vigil)'이라 부르는 활동이다. 도살장을 찾아 공장식 축산이 잘 숨겨둔 폭력을 기록하는 거다. 거기서 벌어지는 일의 증인이 된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동물들에게 물과 먹이를 주면서. 2010년 여름, 캐나다 동물권단체가 도살장 앞에서 죽을듯한 열기에 갇힌 동물들을 보며 물을 준 게 시작이라고.

전날 밤이 됐다. 강원도 감자 네 개를 삶았다. 아내가 "내일 취재 가서 먹으려고?"라며 물었다. 돼지들에게 줄 거라고 하니 의아해했다. 그 돼지가 마지막으로 먹을 밥과 물이라는 말은 속으로 삼켰다.

감자를 서걱서걱 깎고, 거기에 물을 뿌렸다. 전자레인지를 돌려 푹 익을 때까지 잘 삶았다. 뚜껑을 여니 김이 모락모락 났다. 뜨거운 걸 적당히 잘 식혔다.

눈이 새빨개진 돼지. 지금은 도살돼 죽었을 게다. 그러나 기록했기에 남았다./사진=비질(vigil) 참여 시민 제공

상상했다. 내일 돼지들이 먹을 거다. 이상했다. 보통은 살아가기 위해서 먹는다. 그런데 이걸 먹고 죽는다. 아니, 죽임을 당한다. 포장하기 좋게 썰린다. 새삼 놀랄 것도 없다. 동네 정육점을 매일 지나가며 돼지고기를 본다.

노랗게 잘 익은 감자 네 개와 2리터짜리 빈 물통. 이름 모를 돼지들의 마지막 식사를 가방에 넣었다.

깨끗한 공기를 처음 맡은…6개월 된 '초등학생' 돼지들
추석 연휴가 코앞이라, 돼지를 잔뜩 실은 트럭들이 유난히 많이 서 있었다./사진=비질(vigil) 참여 시민 제공
도착했다. 처음 와본 돼지 도살장. 그 앞에 커다란 트럭들이 줄지어 섰다. 가까이 다가가니 똥과 오줌, 토사물이 뒤섞여 악취가 코를 찔렀다.

거기에 돼지 수십마리가 가득했다. 정확히는 죽기 직전 돼지들이었다. 굶을대로 굶은. 우는 것처럼 병든 시뻘건 눈, 아무렇게나 구겨진 몸, 피부에 난 상처, 쉴새 없는 비명. 잘 포장된 고기이거나 음식이기 이전의 모습들. 잘 숨겨져 왔던 광경들. 사이 활동가가 말했다.

"태어난지 6개월 정도, 사람으로 치면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된 거예요."

손을 대어보니 코끝으로 냄새를 맡던 돼지. 뜨거운 숨이 느껴졌다. 살아 있었다, 아직은./사진=남형도 기자

나이를 듣고선 숨이 턱 막혔다. 돼지의 자연 수명은 20년. 사는 건 고작 6개월. 그때 한 돼지가 다가왔다. 콧구멍을 내게 들이밀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아기돼지답게 호기심을 보였다. 자신을 죽이고 학대하는 종족에게. 곁눈질로 날 봤을 때, 나도 모르게 시선을 피했다. 나 같은 종족이 벌인 일이란 대개 이렇기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꼬리와 이빨이 잘린다. 마취 없이 고환이 뜯긴다. 좁은 시설에 갇힌다. 끊임없이 주사를 맞는다. 항생제와 더불어 무럭무럭 살찌운다. 자란다. 또 자란다. 죽이기 좋을만큼 알맞게 자란다.

죽는 날 드디어 바깥에 나온다. 6개월 된 아기 돼지가 킁킁거린다. 축사 악취가 아닌 깨끗한 공기를 처음 안다. 탐험하듯 들이마신다. 우리가 만난 장소, 도살장 앞 공간은 그런 의미였다. 가둬지지 않고,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이 서로 눈을 바라볼 수 있으며, 숨이 섞일 수 있었던, 유일한 시간.

삶은 감자를 먹이며 알게된 폭력들
옴짝달싹 할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트럭 안에, 수십 마리가 실려 있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랬다./사진=남형도 기자
"돼지들이 고개를 저렇게 안 드는데, 여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빼곡하게…"

지독한 열기의 틈바구니에서 한 돼지가 솟은 걸 보며, 사이 활동가가 말했다. 잠깐 고개든 돼지는 중력에 막혀 바닥으로 되돌아갔다.

비질에 참여한 이들이 받아온 물을 줬다. 새벽이생추어리에서 온 활동가 몇몇은 아예, 물 주는 펌프를 가져왔다. 마지막 밥과 물. 대기하는 트럭이 출발하기 전에, 빠르게 줘야만 했다.

헥헥거리는 돼지, 어떻게든 몸부림치는 돼지, 자포자기한 돼지, 붉은 상처가 난 돼지. 트럭 안에서 처음 바라보았던 광경들. 차마 몰랐던 일들./사진=남형도 기자

나도 바빴다. 숨 막히는 광경에 기록의 숙명을 까먹었다. 굶은 돼지들에게 밥부터 먹이려 했다. 가방에서 삶은 감자 하나를 꺼냈다. 트럭 가장자리에서 날 보던 돼지와 눈이 마주쳤다. 통으로 감자를 건넸다. 깨물면 어떡하지, 생각했는데 입안이 물컹했다. 이빨이 잘린듯 했다. 책에서 본 문장이 생각났다.

"돈사 안이 비명으로 가득 차기 시작하는 건 이빨을 자를 때부터다. 한 손으로 돼지 목을 잡고 엄지손가락을 입안에 넣어 강제로 입을 벌린다. 다른 손엔 니퍼를 들고 이빨을 잘랐다."(한승태 작가 - 고기로 태어나서)

챙겨간 삶은 감자를 주자, 맛있게 먹는 돼지. 마지막 식사란 생각에 괜스레 아찔했다./사진=남형도 기자

그것도 모르고 무섭다며 엉거주춤 건넸다. 삶은 감자가 트럭 바닥에 떨어졌다. 그걸로 끝이었다. 돼지가 주워 먹으려 애썼으나, 워낙 비좁아 고갤 숙일 공간조차 나오지 않았다. 먹으려 몇 번을 애쓰는 모습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냥 두라며 빠르게 다른 걸 줬다. 아예 삶은 감자를 작게 으깨어서 줬다. 오물오물, 돼지가 아주 잘 받아 먹었다. 잘 먹고, 잘 마시는 걸 보며 나도 모르게 살았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다.

누군가 챙겨간 삶은 고구마를 맛있게 먹는 돼지. 12시간 굶었기에 배가 많이 고픈 것 같았다. 같은 동물이다. 같은 고통을 느끼는./사진=남형도 기자

2리터짜리 물이 순식간에 동났다. 아예 통째로 들이부어도 다 마실 기세였다. 극심한 갈증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물을 주는 걸 보며 근처 돼지들이 기를 쓰고 달려 들었다. "꽤애액", "꽤액꽥". 서로 몸을 급히 부대끼는 통에 비명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퍼졌다. 삶은 감자를 고작 네 알만 가져온 걸 자책했다. 텅 빈 물통을 최대한 찌그러트려 남은 물을 쥐어짰다. 황급히 인근 화장실로 가서, 다시 2리터를 채워왔다.

고개를 잘 들지 않는 돼지가, 한껏 고개를 들고 있다. 괴롭다고 울부 짖었다./사진=비질(vigil) 참여 시민 제공

다시 왔을 땐, 방금 전까지 물을 줬던 돼지들이 사라져 있었다.

트럭은 이미 건너편에서 무게를 재고 있었다.

빠짐없이 다른 얼굴들, 성격들
찜통처럼 무더운 트럭에 갇혀 있다가, 물을 주자 벌컥벌컥 마시는 존재들. 쉼없이 왔다갔다하며 물을 줬지만, 턱없이 모자랐다./사진=남형도 기자
처음에 봤을 땐 돼지가 가득 실린, 거대한 트럭이 한 대가 보였다. 조금 더 가까이 갔을 땐 돼지들이 한 뭉텅이로 보였다. 물을 주니 그제야 상세하게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존재 하나하나가 전부.

그리고 알아챈 건 이런 거였다.

당연하게도 다 같은 얼굴이 아녔다. 다 달랐다. 같은 존재는 없었다.

성격도 그랬다. 어떤 돼지는 물을 줬을 때 외면했다. 얼굴에 물줄기를 그대로 맞기만 했다.

물을 마시는 모습도 다 다르다. 조금이나마 더 마시겠다며 몸부림치는 모습에 나 또한 괴로웠다./사진=남형도 기자

또 다른 돼지는 페트병을 아예 입에 넣고 마셨다. 빠르게 벌컥벌컥, 아주 적극적이었다.

가장 기억나는 돼지는 몸집이 상대적으로 작았다. 3초를 고민하다 '울음이'라고 명명해봤다. 울음이는 특이하게, 물을 주다 다른 돼지에게 주면 '꾸에엥'하고 울었다. 그러다 다시 물을 주면 꿀떡꿀떡 물을 마셨다. 그리고 또 돌리면 '끄엥, 꽹'하고 작게 울었다. 떼쓰는 어린이 같았다.

트럭 철창을 물어봐도 소용 없다. 이미 죽기로 예정돼 있었고, 죽음에 다다른 돼지들. 태어날 때부터 그랬다./사진=비질(vigil) 참여 시민 제공

인간 관점에서 단순하게, 고기이거나 음식으로만 기억해왔던 돼지들. 일정한 공장식 축산 시스템 안에서 철저히 배제됐던 모습들.

그 존재들에게서 저마다의 '다름'이 보이고, '고유함'으로 느껴지는 순간, 이들을 분별없이 막 실은 거대한 트럭이 숨막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트럭은 쉴새 없이 줄지어 도살장으로 향했다.

육식이 아니라…어떤 동물도 안 하는 '폭력'에 대한 문제
뜨겁고 비좁은 트럭 안, 조금이나마 공기가 더 닿는 곳을 찾아서, 콧구멍을 한껏 내밀어본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뿐이다./사진=남형도 기자
도살장 근처엔 도·소매업장이 있었다. 거길 갔다. 허옇게 머리만 남은 돼지가, 소가 멀건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부위별로 잘 나뉘어져, 잘리고, 썰리고, 전시되고, 포장되었다. "어서 오세요"라며 바라보는 손님인 우릴, 파는 이들이 반겼다.

혼란스러웠다. 고기를 먹는 주제에, 복잡한 현장의 결론은 어떻게 지어야 하는 건지.

사이 활동가는 단지 육식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했다. 인간 동물이 비인간 동물과 구분 짓고, 마구 행하는 '폭력'에 대한 게 본질이라고. 그 폭력이, 동물이라면 저지르지 않는 거란다. 그의 설명이 이랬다.

도살장을 향해 누군가는 절을 하고, 누군가는 기도를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묵념을 했다. 같은 동물로서 건네는 마지막 인사./사진=남형도 기자

"육식 동물도, 다른 동물과 같은 곳에서 잠자고 같은 물을 마십니다. 같은 운명 공동체인 거지요.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요. 늑대가 줄자, 사슴이 급증했어요. 모든 식물이 말랐고요. 늑대가 죽으면 사슴도 죽어요. 어떤 육식 동물도 강간하고 감금하고 학대하지 않아요. 인간이 하고 있는 건 육식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공개 구조 당시 새벽이가 있던 종돈장의 실제 모습. 옆으로 겨우 몸을 뉘일 수 있는 빽빽하고 비좁은 공간에 엄마 돼지가 있었다. 새끼 돼지들이 나란히 서서 젖을 빨고 있었다./사진=동물권단체 직접행동DxE

폭력. 예컨대, 돼지 본연의 모습을 삭제하는 것. 본래 멧돼지와 같은 종이라 수북하게 자라나는, 돼지 털을 먹기 좋게 없애고 변형하는 것. 자외선으로부터 보호하기 힘들게, 분홍빛으로 피부를 바꿔놓은 것. 돼지들의 안전을 이유로 자라야 할 8개의 송곳니를 잘라버린 것.

도살장에서 공개 구조돼 돼지답게 살아가는 '새벽이생추어리'의 새벽이. 새벽이가 동물다움을 회복하는 과정은, 인간이 가한 폭력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이가 잘려 처음엔 작은 수박 조각도 먹기 어려워했던 새벽이. 입에서 송곳니가 자라난 걸 바라보던 활동가들의 기록이 이랬다.

새벽이생추어리에서 비로소 관계를 맺은, 새벽이와 활동가. 그동안 단절된 채 살아간 건 무엇이었고,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까마득히 잃어버린 건 뭐였을까./사진=새벽이생추어리

"새벽이의 송곳니는 수박만 으깨어버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흙에 얼굴을 깊게 박고 무언갈 먹길래 살펴보니, 돌덩이를 깨물어 먹고 있었다. 우리가 훼손한 그들의 이빨을, 새벽이의 엄청난 송곳니를 지켜본다. 우리가 무엇을 짓밟았는지, 얼마나 폭력적으로 군림하고 있는지를 이빨을 보며 생각했다."(훔친 돼지만이 살아남았다, 섬나리·향기·은영 동물권단체 직접행동DxE 활동가)

들어 올리려 애쓰고 또 애쓴다.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봐야 여전히 트럭 안이다. 이 트럭은 잠시 뒤 소독을 거쳐, 도살장으로 향했다. 온몸으로 싸워보았던 돼지는 이제 세상에 없다./사진=남형도 기자

에필로그(epilogue).

비질을 시작하기 전 사이 활동가가 이리 말했었다.

"저기 끌려가는 돼지들이 정말 무력할까요? 끝까지 소리지르는 존재도 있고, 누군가는 완전히 탈진된 걸 보여주며 끝까지 숨을 놓지 않지요. 어느 누구도 투쟁하지 않는 존재가 없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투쟁하는 당사자에게 연대하는 거지요."

도살장 건너편에서 각자 방식으로 기도할 때였다. 누군가는 절을 하고 누군가는 묵념했다. 난 도살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거기 실린 돼지들을 보고 있었다.

'철컹철컹' 소리가 들렸다. 한 돼지가 바깥쪽을 바라보며 열망하는 소리였다. 코로 트럭 철창을 들어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별수 없이, 고개를 들 수 있는 만큼만 철창이 올라갔다가 내려왔다.

그걸 보고, 난 핸드폰을 재빨리 꺼내어 영상으로 기록해두었다. 자기 자리에서 포기 않고 싸우던, 돼지에게 기꺼이 연대하는 마음으로.

그날 밥과 물을 주며 같은 동물로서 관계란 걸 맺었기 때문에.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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