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뉴스'를 정부가 정하면 어떻게 될까?[권영철의 Why뉴스]

CBS노컷뉴스 권영철 대기자 2023. 9. 22.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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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위 뉴스타파 인터뷰 인용보도에 최고 수위 법정제재
KBS 최경영의 최강시사,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 15개 프로그램 추가 제재
방심위의 인터넷 언론까지 심의하겠다는 건 과잉규제, 소송 가면 패소
정부가 '가짜뉴스'를 판정하겠다는 건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것
CBS 정다운의 뉴스톡 530
■ 방송 : CBS 라디오 '정다운의 뉴스톡 530'
■ 채널 : 표준FM 98.1 (17:30~18:00)
■ 진행 : 정다운 앵커
■ 출연 : 권영철 대기자

◇정다운> 뉴욕대 연설에서 '가짜뉴스가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협한다'고 말한 윤석열 대통령. 정작 한국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위협하고 있는 건 가짜뉴스보다는 정부의 언론통제가 아닐까 싶은데요.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KBS와 MBC 경영진 교체에 나선 데 이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사 법정 제재를 예고했고요. 방심위 심의 대상이 아닌 인터넷 언론사의 가짜뉴스까지 심의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권영철 대기자와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뉴스타파의 '신학림 김만배 인터뷰' 보도를 인용한 방송사에 대해서 최고 수위의 법정제재가 확정된 겁니까?

◆권영철>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사실상 확정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방통심의위 방송소위가 지난 19일에 열렸는데요, 뉴스타파의 보도를 인용 보도한 KBS 1TV '뉴스9', JTBC '뉴스룸', YTN '뉴스가 있는 저녁' 등 3개 방송사의 프로그램에 대해 과징금 부과를 의결했습니다.

SBS TV 'SBS 8 뉴스'에 대해선 '문제없음' 결정을 했고, MBC TV 'MBC 뉴스데스크'에 대한 의견진술은 오는 10월 5일로 연기했습니다.

방송소위에서 결정된 과징금 처분은 다음 주 전체회의에서 최종 의결되며, 구체적인 과징금 액수는 다음 달 16일 또는 30일 열리는 전체회의에서 결정됩니다. 과징금은 3000만원인데 1/2 가중하거나 감경이 가능합니다. 1500만원 또는 4500만원으로 결정될 수 있다는 겁니다.

◇정다운> 최고수위의 법정제재가 과징금인가요?

◆권영철> KBS나 MBC의 매출 규모에 비하면 3000만원의 과징금을 높은 제재 수위라고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벌점이 10점입니다.

벌점이 쌓이면 재허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방통위는 재허가를 무기로 방송사를 더 압박할 수도 있고요.

◇정다운> 최고수위의 법정제재가 종종 있는 일인가요?

◆권영철> 지금까지 딱 1차례 있었을 뿐입니다.

2018년 11월에 방송됐던 KNN의 보도였는데요, KNN의 김 모 기자는 부산신항 관련 리포트에서 부산항 터미널 운영사 관계자, 부산항 터미널 관계자, 정부 관계자 등의 발언을 보도했는데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하고 음성 변조해 내보낸 명백한 인터뷰 조작 방송이었습니다.

이때는 인터뷰 조작이 명백했으니까 법정제재 최고수위의 징계가 확정됐던 겁니다.

왼쪽부터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 연합뉴스


◇정다운> 뉴스타파 인용보도를 상당히 많은 언론사가 했는데, 추가로 다른 곳들도 제재될 수 있나요?

◆권영철> 방심위가 이미 추가 제재에 착수했습니다.

뉴스타파 인터뷰를 인용 언급한 방송과 라디오의 대담 프로그램 15건을 추가 긴급 심의 안건으로 상정했는데, 의견진술을 듣기로 했습니다. 10월 5일 MBC와 같은 날 의견진술을 들을 예정입니다.

긴급심의 안건으로 상정된 15개 프로그램은 MBC TV , KBS 1라디오 <주진우 라이브>, <최경영의 최강시사>,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신장식의 신장개업>, YTN 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JTBC , <썰전 라이브>, TV조선 , 채널A <뉴스 TOP10>, <뉴스A LIVE>, MBN , <굿모닝 MBN>, 연합뉴스TV <뉴스포커스>등 입니다.

의견진술을 듣고 법정제재 수위를 논의하는데, 뉴스타파의 인터뷰를 인용보도한 상당수 프로그램이 법정제재를 받을 걸로 보입니다.

◇정다운> 1년 반 전에 있었던 방송인데 긴급심의 안건으로 상정되는 게 타당한가요?

◆권영철> 방심위가 6기인데요, 6기 방심위에서 긴급심의안건은 이태원 참사 때 한차례 있었을 뿐입니다.

이태원 참사 때는 당장 벌어진 일이고, 사망자의 사망원인을 두고 확인되지 않는 사안들이 보도되면서 망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루머가 퍼지거나, 사망 당시의 동영상이 인터넷에 유포되면서 긴급심사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뉴스타파의 '김만배 신학림 인터뷰' 인용보도는 이미 1년 반 전에 일어난 일이고, 검찰이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야당추천인 김유진 방심위원은 "1년 반 전에 인터뷰를 심지어 인용 보도한 게 무슨 이게 국민적 관심사냐? 그냥 정부 여당과 이동관 위원장의 관심사지, 명분도 너무 없다. 무슨 국가의 근간을 흔든다는 이런 말이 나오고 이게 긴급심리 사안이 될 사안이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검찰수사를 지켜보면서 제재를 논의해도 충분할 텐데, 정연주 방통심의위원장을 해촉하고 류희림 방심위원장이 취임하자마자 무슨 군사작전 하듯이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방통심의위가 긴급심의안건으로 상정해서 과징금 부과라는 가장 센 수위의 법정제재를 결정하는데 2주가 걸렸습니다.

◇정다운> 뭔가 서두르고 있다는 건가요?

◆권영철> 그렇습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리지만 민주주의의는 절차와 과정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서둘러서 제재를 할 경우 방송사들이 불복해 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결국 패소할 수도 있습니다.

◇정다운> 실제 방통심의위가 패소한 사례가 있나요?

◆권영철>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 방통심의위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에 대해 법정제재를 잇따라 부과하면서 '정치심의'라는 비판을 받은 사례가 많았습니다. 이런 법정제재들은 재판에서 뒤집힌 사례가 많습니다.
   


△천안함 사고 의혹을 다룬 KBS '추적60분'(2010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KBS '추적60분'(2013년) △박근혜 대통령과 인공기를 나란해 배치한 MBC '뉴스데스크'(2013년) △정부 축산정책을 비판한 CBS '김미화의 여러분'(2012년) △박창신 신부 인터뷰 논란이 불거진 CBS '김현정의 뉴스쇼'(2013년) 등이 방통심의위의 제재를 취소하는 확정 판결을 받았습니다.

◇정다운> 이런데도 밀어붙이는 이유가 뭘까요?

◆권영철> 류희림 방심위원장은 "사실과 다른 중대한 오보로 국민적 선택에 큰 혼란을 주고 민주주의 근간을 흔든 중대사건"이라고 규정했습니다.

그렇지만 가짜뉴스의 근절차원 보다는 정부에 대한 비판보도를 막겠다는 의도가 아닌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김유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의 말 들어보시죠.
"그분들은 가짜 뉴스를 근절하겠다고 하시는데 제가 볼 때는 그냥 정부여당의 불리한 보도를 표적으로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지금 추진의 방식이나 내용을 보면 그렇게 밖에 생각을 할 수가 없어요."

이석형 언론중재위원장(왼쪽)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2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정다운> 그런데 방통심의위가 신문으로 분류하고 있는 인터넷언론의 콘텐츠나 영상에 대해서도 심의를 확대 하겠다고 나섰죠?

◆권영철> 그렇습니다.

방심위의 행보가 광폭입니다. 방송사에 대한 최고수위의 법정제재를 밀어붙이는 것과 별도로 인터넷 언론에 대해서도 심의를 확대 추진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인터넷 언론은 신문으로 분류되고 있고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심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심위가 인터넷 언론에 까지 심의를 확대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방심위는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를 "최근 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뉴스타파의 인터뷰 조작사건을 비롯해 일부 인터넷 언론사들의 유튜브 콘텐츠가 '가짜뉴스'의 온상이 되고 있음에도 규제의 사각지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여론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방심위의 이런 방침에 대해 전문가들은 비판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라며 반발하고 있습니다.

방심위원을 지낸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의 말입니다.
"만약에 언론사를 심의하려면 방송통신위원회 설치법상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권한이 포함돼야 됩니다 근데 현재 현행법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권한 밖이라고 볼 수 있고요. 엄밀히 말하자면 법을 확대해석 해서 볼 순 있지만 그렇게 되면 과잉규제 우려가 크고요, 무엇보다도 관련 법에 관련 규정이 없기 때문에 명확성의 원칙에도 위반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심 교수는 "인터넷 언론까지 심의할 경우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규제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처분을 받은 언론사가 법원에 소송을 걸 경우에는 거의 패소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습니다.

방심위는 다만 법적 권한이 없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가칭 '가짜뉴스 심의대책추진단'을 출범시켜 입법 공백상태에 있는 인터넷 언론 관련법규 개정, 긴급심의 범위와 절차, 심의 대상 확대 등 심의규정을 정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정다운> 가짜뉴스를 정부가 규정한다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요?

◆권영철> 정부가 가짜뉴스를 규정하면 결국 정부에 불리하거나 비판적인 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하지 않겠습니까?

방통위나 방심위에서 가짜뉴스 제재를 강화하겠다는 걸 지켜보니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떠올랐습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뉴욕타임즈와 ABC, CBS, NBC, CNN 등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하는 언론사를 모두 가짜뉴스라고 했습니다.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트위터 캡처


방통위나 방심위가 가짜뉴스 근절을 앞세우면서 온갖 대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만 '가짜뉴스'에 대한 확실한 규정이 없는 상탭니다. 정부가 정할게 아니라 법률로 정하거나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만들어야 합니다.

"가짜뉴스 전체를 규제하겠다는 건 사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논란을 빚을 수 있는 만큼 '허위조작뉴스'처럼 범위를 최대한 좁혀서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부분에 대한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일 겁니다.

정부 당국자들도 "가짜뉴스도 어디까지가 가짜뉴스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허위조작뉴스'처럼 허위이면서 조작의 의도를 가진 뉴스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정부가 가짜뉴스를 규정해서 제재하려 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의심을 살 수도 있는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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