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형 수익률 별로다?' 퇴직연금의 오해와 진실[대한민국 퇴직연금 리포트]
세제혜택 고려하면 일시금보단 연금 수령이 훨씬 유리
디폴트옵션 상품, 투자성향 더불어 가입기간도 고려해야
연금은 모든 세대를 막론하고 건강하고 활기찬 노후생활을 위한 핵심적인 소득 보장수단 중 하나다. 그중 퇴직연금은 대부분의 직장인에게 국민연금 다음으로 노후 준비에 중요한 연금으로 꼽힌다. 하지만 현실은 과거의 퇴직금 제도에서 크게 진화하지 못한 채 모두의 무관심 속에 잠들어 있다. 비즈워치는 연금개혁의 사회적 공론화 움직임에 발맞춰 [대한민국 퇴직연금 리포트] 시리즈를 통해 우리나라 퇴직연금 제도의 현주소를 짚어 보고 실질적인 활성화 방안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편집자]
"퇴직연금을 잘 운용하고 싶지만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서 일단 어떤 걸 골라야 할지, 어떻게 운용하는 게 더 좋을지 잘 모르겠어요"
근로자들이 자신의 퇴직연금을 방치하고 무관심하게 대하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퇴직연금에 대한 기초 지식이 부족하거나 사실과 다른 정보를 갖고 있는 영향이 크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비즈워치는 근로자들의 퇴직연금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이들이 퇴직연금과 관련해 가장 궁금해하거나 혹은 오해하고 있는 몇 가지 핵심 사항에 대해 '팩트체크'를 해봤다.DB, DC, IRP 도대체 차이가 뭔가?
우선 가장 큰 차이라면 확정급여(DB)형은 퇴직연금 적립금을 사용자가 운용하고 확정기여(DC)형과 개인형퇴직연금(IRP)은 개인이 직접 굴린다는 점이다.
즉 DB형은 적립금을 기업이 운용하고 근로자는 사전에 확정한 퇴직연금을 받는 형태라면, DC형과 IRP는 적립금을 근로자가 직접 운용하고 퇴직 시에 적립금과 운용손익을 최종 급여로 가져가는 방식이다.
DB형과 DC형은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이라면 근로자에게 퇴직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설정해야 하고, IRP는 개인형퇴직연금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득이 있는 취업자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가입할 수 있다. 직장에서 DB형이나 DC형 퇴직연금에 가입한 근로자들도 추가로 IRP에 가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최근 '세테크' 목적으로 IRP에 가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한 은행 또는 한 증권사에서 두 개 이상의 계좌를 만드는 것은 불가하지만 다른 은행 두 군데나 은행, 증권사에서 각각 1개의 계좌를 개설하는 것은 가능하다. 대신 세제혜택은 전체 IRP 계좌 입금 금액을 합쳐 계산한다. 두 계좌의 연 합산 입금액이 1800만원이면 이 가운데 최대 900만원(연금저축과 합산 한도)까지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세액공제율 총급여 5500만원 이하 16.5%, 5500만원 초과 13.2%)
DB형보다 DC형이 반드시 수익률 높나?
DB형은 퇴직 직전 3개월 평균 임금에 근속연수를 곱해 퇴직급여를 결정한다. 근로자 본인의 임금수준과 근속기간에 따라 정해지는 만큼 현행 퇴직연금 제도 유형 가운데 과거의 일시적 퇴직금과 가장 비슷하다. 작년 적립금 기준으로 전체의 57.3%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DB형은 기금 운용 책임을 회사가 안고 가는 터라 아무래도 근로자가 수익의 책임을 전적으로 지는 DC형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운용에 방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DC형보다 수익률이 낮을 것이란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이는 오해다. 경우에 따라 수익률 우위는 달라진다. 대표적으로 임금상승률이 DC형 퇴직연금 운용 수익률보다 높다면 DB형에 더 유리할 수 있다. 사실 그보다 더 큰 변수는 변동성이 큰 금융시장의 특성상 근로자가 스스로 DC형을 굴리면서 DB형보다 나은 수익률을 유지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당장 지난해 DB형과 DC형의 수익률을 살펴보면 DB형이 1.51%를 기록한 반면 DC형의 수익률은 -1.21%에 그쳤다. 이는 실적배당형의 성과가 원리금보장형보다 나을 것이라는 선입견을 깨는 것이기도 하다.
2022년 기준 DB형 중 원리금보장형 비중은 95.9%로 실적배당형 비중 4.1%를 압도한다. DC형은 원리금보장형이 83.3%, 실적배당형이 16.7%로 실적배당형 비중이 DB형과 비교하면 훨씬 큰 편이다.
작년 퇴직연금 운용유형별 수익률에선 원리금보장형이 1.83%인 반면 실적배당형인 -14.20%에 그쳤다. 원리금보장형이 실적배당형을 16%포인트 넘게 앞선 것이다. 2021년 실적배당형이 6.42%를 달성하면서 1.35%의 원리금보장형을 제쳤던 것과 완전히 상반된 모습이다.
지난해 성과 부진 여파로 중장기 수익률면에서도 실적배당형이 원리금보장형이 뒤처지게 됐다. 총비용을 차감한 최근 5년 및 10년간 연환산 수익률에서 원리금보장형이 각각 1.62%, 1.95%를 기록 중인데 비해 실적배당형은 0.70%, 1.78%에 머물고 있다.
퇴직연금 수익률은 왜 국민연금보다 낮은 건가?
최근 국민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일부 전문가가 국민연금이 주도하는 별도의 조직을 신설해 퇴직연금을 운영할 수 있게 하자는 주장을 펼쳤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퇴직연금 중장기 수익률이 사실상 마이너스(-) 수준에 그치고 있는 만큼 더 나은 운용성과를 내고 있는 국민연금의 운용역량을 활용하자는 게 요지였다.
공적연금인 국민연금과 달리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전액을 부담하는 사적재산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크게 얻지 못했지만 국민연금과 퇴직연금 성과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민연금의 최근 5년과 10년 연평균 수익률은 4.2%, 4.7%다. △2019년 11.31% △2020년 9.70% △10.77% 등 매년 꾸준히 10% 내외의 수익률을 올리다 지난해 '삐끗하는(-8.22%)' 바람에 다소 낮아진 것이다.
퇴직연금 운용성과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게 사실이다. 퇴직연금의 5년과 10년 연평균 수익률은 1.51%, 1.93%에 그치고 있다.
다만 이 숫자만 두고 단순히 국민연금이 퇴직연금 사업자 또는 가입자보다 운용을 잘한다고 말하긴 어렵다. 앞서 언급한 대로 국민연금은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공적연금으로, 마치 하나의 펀드처럼 운용되고 있다. 1000조원에 가까운 돈을 정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알아서 굴린다는 뜻이다.
이와 달리 퇴직연금은 근로자가 자신의 노후 대비를 목적으로 기업에 다니는 동안 퇴직급여 재원을 사업자(금융회사)에 적립하는 개념이다. 기업이 직접 운용하거나(DB형) 근로자가 직접 굴릴 수 있는데(DC형), 기본적으로 사업자들로부터 운용전략이나 포트폴리오를 추천받아 운용한다.
정리하자면 국민연금이 '일임형' 방식으로 운용되는 반면 퇴직연금은 '자문형' 방식으로 성격이 다르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운용성과에 대한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연금으로 받는 게 일시금 수령보다 정말 유리한가?
개인별 자금 사정은 논외로 하고, 절세 해택만 놓고보면 그렇다. 퇴직급여를 연금으로 받으면 일단 퇴직소득세를 30% 할인받는다. 또 연금 수령 기간에 퇴직소득세를 나눠 내는 게 가능해 과세 이연 효과가 있다.
퇴직급여에 가입한지 5년이 지나 만 55세 이상이라면 연금 수령이 가능하지만 꼭 바로 받을 필요는 없다. 연금 수령 기간을 늘리면 퇴직소득세를 더 아낄 수 있다. 수령 조건이 된 뒤 11년차부터는 퇴직소득세를 40% 감면해준다.
적립 당시 세액공제 받은 금액과 운용수익은 연령별로 연금소득세율을 적용받는다. 연금소득세란 매년 연금 수령 한도 내에서 연금계좌 적립금을 인출할 때 내는 세금이다.
세율은 △55세 이상 70세 미만 5.5% △70세 이상 80세 미만 4.4%, △80세 이상이 3.3%다. 이는 최초 연금 수령일이 속한 해부터 1년차로 계산한다. 연금 수령 개시 시점이 늦어질수록 세율이 낮아진다.
종합과세 대상 사적연금소득이 1200만원을 넘으면 다른 소득과 합산해 종합소득과세(6~45%) 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연금 수령 기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수령액을 조절하는 게 현명하다.
만약 퇴직급여를 일시금으로 받는다면 연금 수령 한도를 초과한 인출, 즉 '연금 외 수령'으로 간주한다. 이때는 퇴직소득세에 대한 할인은 없다. 더불어 세액공제받은 금액과 운용수익은 기타소득세 16.5%를 적용받는다. 이처럼 퇴직연금 수령에 있어선 세금을 아낄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디폴트옵션은 반드시 가입해야 하나?
지난 7월부터 가입자가 별도 운용 지시를 하지 않아도 사전에 선택한 디폴트옵션 전용 상품으로 자동 투자하도록 하는 제도인 디폴트옵션(사전지정운용제도)이 본격 시행 중이다.
회사가 관리해 주는 DB형이 아닌 DC형에 가입했거나 IRP 계좌를 갖고 있다면 직접 운용 지시를 하면서 수익률을 관리해야 하지만 대다수 근로자는 일상에 쫓겨 자신의 퇴직연금을 방치하거나 원리금보장형에 '몰빵'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도입한 게 디폴트옵션이다.
디폴트옵션은 기본적으로 DC형과 IRP에 적용한다. 한국보다 먼저 디폴트옵션을 시작한 미국이나 호주 등은 근로자가 퇴직연금 가입시 디폴트옵션에도 자동 가입하도록 했지만 우리나라의 디폴트옵션은 가입 근로자가 운용지시를 하지 않거나 디폴트옵션으로 운용을 원하는 경우에 한해서만 가입된다.
구체적으로 퇴직연금 적립금으로 투자한 정기예금 상품의 만기가 지났는데도 별다른 운용지시 없이 4주가 지나면 금융회사는 가입 근로자에게 디폴트옵션으로 운용한다고 통지한다. 이후 2주가 지나도록 별도의 운용지시가 없으면 미리 정한 디폴트옵션 방법으로 운용한다. 물론 가입 근로자가 원한다면 6주를 굳이 기다릴 필요 없이 곧바로 디폴트옵션으로 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디폴트옵션 시행과 더불어 별도 운용지시가 없을 경우 기존 상품 또는 기존 상품과 비슷한 상품에 자동으로 예치되던 제도가 사라지면서 가입자가 만기가 있는 상품에 대해 별도 운용지시를 하지 않고 디폴트옵션도 지정하지 않는다면 '대기성 자금'으로 분류돼 방치될 수 있다. 만기가 없는 펀드의 경우 디폴트옵션 적용 제외다.
디폴트옵션 상품은 가입 근로자의 투자위험성향에 따라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등 4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은행 정기예금과 보험사 원리금보장형 상품인 초저이율보증보험(GIC), 타깃데이트펀드(TDF), 자산배분형펀드 가운데 단독 혹은 포트폴리오 형태로 구성하는 방식이다.
지난 2분기 말 기준 고용노동부가 승인한 디폴트옵션 상품 296개 중 223개 상품이 판매·운용 중이다. 가입 근로자는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 홈페이지에서 디폴트옵션 상품의 가입 규모와 수익률 등을 확인할 수 있다.
퇴직연금 전문가들은 디폴트옵션 상품 선택시 투자성향과 함께 남은 가입 기간을 함께 고려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조언한다. 만일 퇴직까지 10년 이상 남았다면 중위험이나 고위험 유형의 상품 위주로 선택하고 5년 내 퇴직할 가능성이 크다면 초저위험이나 저위험 유형의 안정적 상품에 투자하는 식이다.
김기훈 (core81@bizwatch.co.kr)
ⓒ비즈니스워치의 소중한 저작물입니다. 무단전재와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 비즈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