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지키는 시민 봉사단을 아십니까

서현우 2023. 9. 22. 0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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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훼손·외래종 퇴치·나무 도둑까지 감시
2022년 탐방객 670만 명인데 활동가는 97명
진달래능선에서 인수봉을 바라보고 있는 자원활동가들의 등이 땀으로 푹 젖어 있다.

"국립공원에서 식물을 심고, 뽑고 하신다고요? 그거 불법이잖아요."

등산 전문지 기자다 보니 산악회나 산꾼들로부터 취재하러 와달라는 제보를 자주 받는다. 어떤 제보든 늘 감사하게 받지만, 가끔 다른 꿍꿍이를 갖고 있을 때면 맥이 빠진다. 선의를 갖고 활동하는 척하지만 속으론 다른 장삿속을 품고 있는 경우다. 최근 친환경 클린하이킹 관련 제보에서 잦았던 일이라 사단법인 '자연과 아름다운 사람들'의 조복상 대표의 전화를 받았을 때도 반신반의한 상태였다.

"저희는 산에 다니면서 쓰레기를 줍고 있고요…."

딴청을 피우며 듣던 그때, 이어지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생태 모니터링도 하고, 시설물 점검도 하고, 외래식물이 있으면 뽑고, 진달래 능선에 진달래도 새로 심고, 홍보현수막도 설치하고, 불법행위 감시·계도하고, 유실된 탐방로 보수도 하고, 쓰러진 나무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잠깐만요 선생님. 그걸 다 하신다고요? 아니 하는 건 둘째 치고, 해도 되는 거예요?"

"당연히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저희들만 할 수 있죠."

"실례지만 누구십니까?"

"우리는 자원활동가들입니다."

산행을 시작하기 전 수유분소 김형철(사진 정면) 소장이 활동가들에게 주의사항을 전하고 있다.

공단은 단속, 자원활동가는 계도

어렴풋이 그런 존재들이 있다는 걸 들었던 기억은 있지만, 실제 활동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조 대표에게 들어보니 그럴 만도 했다. 지난해 북한산 탐방객이 670만 명인데 자원활동가는 단 97명만 활동하고 있다고 했다. 조건도 까다롭다. 국립공원에서 정기·비정기적으로 실시하는 자원활동가 양성교육을 10시간 이수하고, 70시간 이상 봉사해야 자원활동가로 인증 받을 수 있다. 또 인증 후에도 주기적으로 활동을 해야 자격이 유지된다.

북한산국립공원 수유분소에서 이 귀한 분들을 만나 직접 활동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김태선, 김현숙, 김희련, 이선미, 이승호, 조복상, 천의성 7명의 자원활동가들이 참여했고, 국립공원공단에선 박은성 주임, 현상진 주임이 동행했다.

"요즘 날씨가 무척 덥습니다. 그늘에서 충분히 쉬면서 활동해 주세요. 또 외래식물 제거작업을 할 땐 꽃 마스크를 착용해 주세요. 잎 뒷면에 하얀 꽃가루가 있는데 알레르기 위험이 있거든요. 얼음과 물도 충분히 챙기시고요."

죽은 진달래. 진달래능선으로 오르는 탐방로 양 옆 진달래는 강북구청이 심었는데 너무 밀집되도록 심어 죽은 개체가 꽤 있다고 한다.

활동가들을 마중 나온 김형철 수유분소장이 주의사항을 전달한다. 국립공원공단 입장에서는 자원활동가들이 어떤 존재인지 궁금했다.

"자원활동가들이 얼마나 도움이 되나요?"

"정말 엄청 큰 도움을 주죠. 우리 직원들이 최선을 다한다곤 하지만 업무 우선순위가 있어서 대처가 늦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그런 걸 이분들이 모두 담당해 주시니 저희로선 무척이나 감사하죠.

특히 주 탐방로 외에 샛길이 많잖아요? 자연자원과 문화자원 보존을 위해 샛길 통제가 꼭 필요한데 워낙 공원이 넓고 인원도 적어서 한계가 있죠. 이럴 때 활동가분들이 몇 거점에 계셔 주면 참 좋아요. 오히려 우리 직원들이 할 때보다 더 효율적일 때도 있어요. 직원들이 하면 단속인데, 단원 분들은 계도를 하니까 더 협조를 잘해 주곤 하거든요."

"이번 여름에는 비도 많이 와서 더 일손이 필요했겠군요."

"바로 그렇습니다. 비가 오면 탐방로가 U자형으로 파입니다. 우리는 공원 밖에서 2m 밑에 깊은 흙을 채취해서 보수해요. 깊은 흙을 쓰는 건 외래식물 씨앗이 섞여들지 않게끔 하는 거고요.

사실 지원 예산도 별로 없는데 이렇게 열심히 해주시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합니다. 저는 돈 안 주면 못 할 것 같아요. (웃음) 그래서 더 존경하고 있습니다."

노란망태버섯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박은성 주임.

진달래 능선에 진달래 심은 주인공

이번 봉사산행 출발점은 백련사. 여기서 진달래능선을 타고 오른 뒤 대동문에서 용암문까지 간 후 도선사까지 약 7km다.

"산행거리는 늘 10km를 넘지 않게끔 최대한 짧게 잡아요. 워낙 하는 일이 많다 보니까 더 길게 잡으면 하산 시간이 너무 늦어지거든요."

준비 운동을 마친 후 조 대표와 함께 살금살금 걸어 오른다. 걷기만 해도 땀이 치솟는데 활동가들은 탐방로 주변을 분주하게 배회하며 오른다. 돌 밑에 숨은 쓰레기까지 샅샅이 찾아서 줍는다. 박은성 주임은 장마철에 잠깐 모습을 드러내는 노란망태버섯, 국가지점번호가 적힌 다목적 위치표지판을 하나하나 사진에 담는다.

무더운 날씨에도 활동가들의 손은 멈출 줄을 몰랐다. 순식간에 쓰레기를 한 가득 주워 왔다.

"현재 이 시간에 이런 식생이 있었고, 시설도 이런 상태로 있었다는 걸 기록하는 겁니다. 시설이 훼손됐을 때 그 시점을 유추할 수 있죠."

서로 분주하게 할 일을 찾아 한다. 조 대표는 "국립공원 자원봉사는 집안일이랑 비슷하다"고 했다. 별로 할 게 없어 보여도 찾아서 하다 보면 끝이 없다는 뜻이다. 가령 계곡에 쓰레기가 있는데 놔두면 비올 때 쓸려 하류로 내려가기 마련이다. 그래도 빠른 환경 회복을 위해, 굳이 험한 바위를 밟고 내려가 쓰레기를 주워 오는 것이다. 모두가 쓰레기를 줍는 데 여념이 없는데 조 대표는 말라 죽은 진달래를 뽑아 정리하고 있다.

"백련사부터 진달래능선까지 가는 길에 400~500주, 대동문에는 6회에 걸쳐서 700주의 진달래가 이번에 새로 식재됐습니다. 국립공원공단과 강북구청, 그리고 저희가 힘을 합쳤죠."

무더운 날씨에도 활동가들의 손은 멈출 줄을 몰랐다. 순식간에 쓰레기를 한 가득 주워 왔다.

"그 과정과 계기가 궁금합니다. 국립공원은 원래 자연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원칙 아니었던가요?"

"아예 개입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 외래종이 공원 내로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퇴치하는데 이것도 어떻게 보면 개입이잖아요? 이번 진달래 식재는 '진달래능선'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기존의 진달래가 너무 많이 훼손되고 죽어서 복원 차원에서 진행됐습니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활동가들이 자기 재량으로 진행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물론이죠. 국립공원공단 담당 직원하고 전부 상의하고, 합의하고, 허가받아서 진행하고 보고도 합니다."

조 대표에 따르면 강북구청이 백련사부터 진달래능선에 이르는 탐방로 주변, 자원활동가들은 대동문 성곽 방면에 진달래꽃밭을 맡아 심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작업의 퀄리티가 다르단다.

그는 "강북구청은 비전문 인력을 고용해서 심은 탓에 너무 밀식했다. 그래서 벌써 죽은 개체들이 꽤 있다"고 안타까워하며, "그래도 현재는 활동가들이 다니면서 지속적으로 죽은 개체나 다른 나무나 풀을 솎아 낸 탓에 많이 좋아졌다"고 덧붙였다. 또 본인들이 조성한 대동문 꽃밭은 진달래 묘목이 3년 내에 그늘이 생기면 죽는다는 걸 고려해서 잘 심었기에 90% 이상 생존해 있다고 했다.

무더운 날씨에도 활동가들의 손은 멈출 줄을 몰랐다. 순식간에 쓰레기를 한 가득 주워 왔다.
사진 아래쪽 누군가 고의로 부러뜨려 죽은 나뭇가지 너머로 만경대 일대를 바라본다. 현재 부러진 나뭇가지들은 자원활동가들이 탐방로 양 옆으로 어느 정도 치워둔 상태다. 

"등산 좋아하면 봉사산행 못 해"

골짜기를 따라 진달래능선에 이르자 활동가들의 분위기가 살짝 무거워지는 느낌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수목훼손금지 현수막. 지난 5월부터 진달래능선에서 백운봉암문까지 500그루 정도의 나무들이 줄지어 훼손됐다고 한다.

"누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악의적입니다. 조망을 가린다거나, 지나가다가 눈이나 피부를 찌를 위험이 있는 가지들을 처리한 거라면 백 번 양보해서 그럴 수 있다고 할 텐데, 그것과 아무 상관없는 가지들을 전부 부러뜨려놨어요. 더 훼손을 막기 위해 저희들이 계속 순찰하고 있죠."

"저는 장대를 들고 다닌다고 들었어요."

"공단에서 제보 받고 출동한 적이 있는데 덩치가 엄청 크고 약간 정신이 불편한 사람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부러뜨리고 다녔다고 하더라고요."

지난 5월부터 진달래능선에서 백운봉암문까지 500그루 정도의 나뭇가지를 누군가 의도적으로 부러뜨렸다.

조 대표는 "부러진 채 대롱대롱 매달려 죽어가는 가지들 중 키가 닿는 것들은 완전히 잘라서 옆으로 치워놨다"고 했다.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죽은 가지들은 흉하게 말라 비틀어져 있다. 이를 둘러싸고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초록빛 잎사귀들에 대비돼 더 쓸쓸해 보였다.

훔쳐갈 목적으로 사전 전지 작업을 해둔 노간주나무에 예방 차원에서 패찰을 달았다.

"작년에는 노간주나무가 주 모니터링 대상이었죠. 강도는 박달나무 두 배 정도로 단단한데 무게는 절반이라 지팡이라든지 쓰임새가 많은 나무입니다. 진달래능선 상에 9그루가 있는데 누군가 이걸 몰래 가져가려고 사전 전지 작업을 싹 해뒀더라고요. 저희가 그걸 딱 알아채고 플래카드 걸고 보호 주시하니 못 잘라갔습니다."

활동가들은 설명을 이어가면서도 정말 쉴 새 없이 움직이고, 확인하고, 일한다. 그리고 그 흔적이 여기저기 남아 있다. 나무 울타리부터 45°까지 쓰러졌던 걸 와이어와 폐타이어로 주변 세 그루의 나무를 이용해 일으켜 세워 살린 삼거리 소나무, 훼손을 막기 위해 주변의 돌을 그러모아 나무 밑동을 동그랗게 감싸둔 것도 모두 이들의 구슬땀이 어려 있다.

와이어와 폐타이어를 이용해 일으켜 세운 소나무.

"그래서 사실 등산을 좋아하면 자원활동가를 하면 안 됩니다."

"반대 아니에요? 등산을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 같은데요."

"줄곧 머리 숙이고 일만 하잖아요. 산을 즐길 시간이 없어요. 게다가 저희 같은 경우에는 1년에 120번을 같은 코스만 갑니다. 이 산도 가보고 저 산도 가보고 싶고 한 사람들은 따분해서 못 하죠. 그래도 저는 이곳에 올 때마다 늘 느낌이 달라서 좋아요. 바람도, 나무도, 풀 한 포기조차도 달라지는 게 산이거든요."

너무 열심히 일했다. 대동문으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잠시 쉬다가 문득 이들은 왜 자원활동에 나서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먼저 조 대표.

"제가 올해로 자원활동 14년차입니다. 계기는 스웨덴이죠. 유럽 출장길에 간 적이 있는데 주말에 스웨덴 사람들이 뭐하는지 들어봤더니 가족끼리 주로 봉사를 간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충격이었어요. 우리나라는 지금 봉사문화가 정착이 안 된 상태잖아요. 그래서 퇴직한 뒤 사단법인을 만들고 이 일을 시작했죠."

"초창기에는 꽤 험난했을 것 같아요."

연쇄 나뭇가지 훼손 사건으로 수목훼손금지 현수막을 걸었다.

자원봉사하려고 말투까지 바꿨다

"맞아요. 비법정 들어가지 말라든가, 취사하면 안 된다고 계도하려고 하면 '네가 무슨 공단 직원이냐?' 하면서 시비 걸고 욕하고 그랬어요. 제가 또 CEO 생활을 오래해서 말투가 권위적이라 더 심했죠. 지금은 노하우가 쌓여서 말투도 나긋나긋하게 바꿨고, 계도의 대화법도 숙지했죠. 그래도 최근엔 등산 문화가 바뀌어서 그런 사람들이 많이 줄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방공호 청소죠. 군사정권 때 만든 방공호가 수유분소 방면에 몇 개 있는데 거기에 노숙자들이 많이 살아서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어요. 한 번 갈 때마다 마대자루 20포대씩 쓰레기를 싣고 내려왔었죠."

"다른 분들은 어떤 식으로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연예인들 길거리 캐스팅하는 방식이랑 똑같아요. 등산하다가 누가 봐도 국립공원 직원이 아닌데 쓰레기 줍고, 시설물 관리하고, 계곡에 못 들어가게 막고 이러고 있으니 관심이 가잖아요. '이왕 등산하는 김에 더 좋은 일도 하자!'는 취지로 명함 달라고 해서 참여하게 됐죠."

공사가 한창인 대동문에 오른다. 성문을 통과해 오른쪽이 이들이 조성한 진달래 밭이다. 출입금지띠가 건설 자재와 함께 둘러져 있다. 멧돼지가 일부 파헤친 것 외에는 잘 정착하고 있다.

"여기에 진달래 밭을 조성한 것도 다 이유가 있어요. 여기가 평평하고 성벽이 옆에 있으니까 사람들이 여기서 밥을 먹고 성벽 너머로 쓰레기를 너무 많이 던져놨었어요. 그래서 저희가 공단에 제안해서 일단 코로나 2년 동안 이곳을 출입하지 못하도록 막았었어요. 그러니까 땅이 살아나더라고요. 굳었던 땅에 이끼도 끼고, 푹신해지면서 잡초도 올라왔어요. 그래서 진달래를 심기로 한 거죠. 진달래능선을 지나서 대동문에 딱 도착했는데 성문 안에 진달래가 잔뜩 피어 있으면 얼마나 눈이 즐겁겠어요."

4외래종인 돼지풀을 제거하고 있다. 사실 올바른 제거법은 윗부분을 잡고 쑥 뽑는 것이지만, 사진 연출을 위해 아래를 잡아달라고 요청했다.

외래종 돼지풀 일일이 손으로 뽑아

또 할 일이 많다. 먼저 진달래 꽃밭에 들어가서 잡초들을 뽑는다. 그리고 성문에서 살짝 내려선 쉼터에선 현수막 교체 작업을 한다. 기존에 있던 현수막 중에 헌 것이나 중복되는 건 떼서 회수하고, 재활용품을 적극 사용하자는 취지로 일회용품이 분해되는 시간을 담은 현수막을 게시한다.

"저희가 하는 일이 일종의 셉테드 효과(환경을 바꿔 범죄를 방지하고 불안감을 줄이는 기법)도 있다고 생각해요. 쓰레기를 안 줍고 놔두면 '원래 더러우니까 나 하나쯤이야'하고 거기다 또 버릴 텐데 깨끗하면 안 버리거든요. 마찬가지로 이 현수막도 당장 효과가 있진 않더라도 조금씩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줄 거라고 생각해요."

한 번 휙 둘러봤을 땐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다. 탐방객들의 식사 장소인 탓에 쓰레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쓰레기 되가져가기가 정착된 탓인지 깨끗하다. 하지만 활동가들의 눈은 땅 속을 뚫고 봤다. 땅 속에 몰래 묻어둔 쓰레기들의 일각을 찾아내 죄 끄집어낸다. 1979년 생산된 보드카 하야비치도 출토됐다. 당시에 마셨다면 40년은 족히 이 땅에 묻혀 있었던 셈이다. 갓 게시한 현수막을 보니 유리병이 분해되는 시간은 4,000년 이상. 필요한 시간의 겨우 1%가 흘렀다.

이제 성벽을 따라 용암문으로 향한다. 여긴 나무 훼손이 더 심했는데 이것도 그나마 활동가들이 먼저 손을 써 정비해 둔 상태라고 했다. 탐방객 머리에 닿을 정도로 고개를 숙였던 나뭇가지를 고사목을 활용해 받쳐 세운 것도 활동가들이 한 일이다.

대동문 쉼터에 재활용품 사용을 권장하는 현수막을 걸고 있다.

북한산대피소 앞 용암사지에서 다 함께 배낭을 내려놓는다. 외래종인 돼지풀이 잔뜩 자라고 있는 문제 지역이다.

"작년에 6번이나 여기서 돼지풀 제거 작업을 했는데, 아직 5년은 더 해야 될 것 같아요. 씨앗이 남아 있어서 계속 새 풀이 올라오고 있어요. 산의 황소개구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돼지풀이 많은 건 이곳이 과거 헬기장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화장실이 있어서 매년 한 번씩 헬기가 와서 분뇨를 실어갔는데, 이때 외래식물 씨앗을 폭탄처럼 퍼붓고 갔다는 것이다.

자원활동가 김희련씨가 대동문 진달래 꽃밭의 잡초를 제거하고 있다.

돼지풀은 쑥하고 비슷하게 생겼는데 쑥이 조금 더 여리게 생겼다는 설명. 다른 일반 풀들과 구분도 잘 안 되는데 이들은 전문가답게 순식간에 한 아름씩 뽑아 모아놓는다.

"처음엔 이 일대가 전부 돼지풀이었는데 그나마 회복됐어요. 이젠 우리 풀들이 자라고 있으니 다행입니다. 이런 일을 지자체에 맡기면 뽑지 않고 제초기를 돌리거든요. 외래종의 특징이 고유종을 밀어내는 생명력과 확산 속도인데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죠."

이 날 하루 제거한 돼지풀들. 그래도 앞으로 5년은 더 해야 박멸될 것이라 한다.

"대가를 바라는 봉사는 진짜 봉사 아냐"

돼지풀을 마치 짚단처럼 쌓아올린 뒤 땀을 닦는 활동가들을 본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봉사라고 해도 이 정도면 소정의 대가를 받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 대표는 빙그레 웃었다.

"봉사는 지원을 바라고 하면 안 됩니다. 순서와 선후의 문제인데요. 지원을 바라고 봉사하는 게 아니라 봉사를 하다보면 지원이 따라오는 게 올바른 봉사 문화라고 생각해요."

그가 이어 들려준 얘기는 이렇다. 약 10년 전 북한산국립공원에서 대대적으로 봉사단을 모집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때 2,500명 넘는 사람들이 지원했는데, 현재는 이들 중 활동하는 이가 단 30명에 불과하단다. 이유를 묻자 쓴웃음과 함께 답이 돌아온다.

땅속에 파묻혀 있던 보드카 하야비치.

"사람들 상당수가 바라는 게 많고, 보여주기 식으로만 했어요. '봉사했는데 왜 아무것도 안 주지?'란 생각을 하면서 다 나가버린 거죠. 봉사를 빙자로 뭔가 얻어 내려고 하면 진짜 '봉사'가 아닙니다. 봉사는 무보수가 원칙이고 정신이에요. 저희 단체도 공단과 매우 긴밀하게 협조하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지만, 연 회비 걷고 다 자비 들여가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결코 쉽지 않은 마음가짐이다. 실제로 그 마음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조 대표는 "매년 15~20% 정도의 사람들은 활동을 중단한다"고 했다. 대신 그만큼 새로운 활동가가 벌충돼 인원 자체는 유지된다. 천의성 활동가는 "맞다. 봉사에 손익을 따져선 안 된다"면서도 "나는 봉사로 정말 많은 것을 얻었다"고 했다.

"저는 중국에서 사업에 실패해 가족이 해체됐었습니다. 매우 우울하고, 자신에 대한 실망감, 가족에 대한 서운함과 미안함으로 마음이 무거웠죠. 오갈 데도 없어서 친구 집에서 8개월을 있었어요. 그때 집에서 북한산이 가까워서 산을 오르락내리락했는데 매미나방유충 문제가 터졌죠. 나무한테 해롭다기에 보이는 대로 잡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봉사단체에 들어가 보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하면 할수록 제 스스로가 바뀌는 게 느껴졌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같이 받은 걸까요. 자신감도 생기고, 삶의 태도도 긍정적으로 변했어요. 옛날에 남탓으로 돌렸던 것들을 이젠 겸허하게 내 잘못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됐죠. 산을 오르니 체력도 좋아졌고요."

긴 하루를 마치고 이제 도선사로 내려선다. 북한산 최고봉 백운대를 다녀온 탐방객들과 한데 섞여 우이분소로 향한다. 활동가들의 옷은 그들보다 더 땀으로 푹 젖었으나 왠지 얼굴은 더 밝아 보였다.

자원활동가들이 대동문에서 용암문으로 가는 성벽길, 고사목을 활용해 나무를 들어 올려 탐방객들의 안전을 확보했다.

자원활동가 되려면?

자원활동가가 되려면 10시간의 양성교육과 70시간의 봉사활동 실적이 필요하다. 다만 이 양성교육은 대개 연초지만 정확한 일정은 국립공원별로 상이하므로 각 사무소 자원보전과에 문의해봐야 한다. 공개적으로 공고할 때도 있지만, 자원활동가 조직에 '신규 회원 분들께 올해는 언제 교육이니 오시라고 전해 달라'는 식으로 알음알음 전해질 때도 있단다.

좋은 제도지만 공개적으로 모집하지 않는 경우가 드문 건 아무래도 봉사를 빙자로 공단으로부터 물질적 보상이나 특혜를 얻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던 전례가 있기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그래서 기존 자원활동가 조직에서 1차적으로 검증된 신규 회원에게만 교육 일정을 고지하곤 하는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자원보전과에 문의할 때 교육일정을 문의하기보단 자원활동 조직을 소개해달라고 요청하고, 이들과 동행하며 먼저 봉사산행이 본인에게 맞는지 살펴보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또한 국립공원자원봉사 홈페이지 volunteer.knps.or.kr에서 자원활동가가 아니더라도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신청, 진행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강조하자면 자원활동가가 아닌 일반인 입장에선 기사에서 소개한 봉사활동 중 쓰레기를 줍는 것 정도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모두 자연공원법 27조의 불법 행위에 해당하므로 절대 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선의에서 나온 것이라 하더라도 그렇다. 심지어 자원활동가라 하더라도 공원 생태계에 개입하는 일체의 행위는 사전에 공단과 협의한 후 진행해야 한다.

월간산 9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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