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바이오 인재 모십니다”…항암제 전진기지로 탈바꿈한 송도 얀센

인천 송도=송복규 기자 2023. 9. 22.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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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액암 치료제 생산’ 얀센백신 인천 송도공장 가보니
올해부터 백신 대신 항암제 생산 시작
극한의 무균 상태 유지…고품질 항암제 생산에 필수
“한국과 함께 성장하는 바이오 기업 되고파”
20일 얀센백신 인천 송도공장에서 혈액암 치료제가 생산되고 있는 모습./한국얀센

“항암제 품질은 환자 생명과 직결됩니다. 수백만 개를 생산하더라도 불량은 단 한 개도 내지 않는 게 목표입니다”

20일 오전 10시 인천 송도 얀센백신 공장에서 만난 존 이(John Yi)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이날 송도 공장의 생산동은 생각보다 한산했다. 의약품을 담는 병을 세척하는 것부터 필링과 라벨링, 포장까지 생산공정이 자동화됐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스템도 적용해 생산공정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문제는 없는지 컴퓨터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생산에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다보니 무균 상태를 유지하기 쉽고, 이물질이 들어간 불량 제품의 수도 줄어들었다.

미국 존슨앤드존슨의 자회사 얀센은 한국에 공장을 세운 유일한 다국적 제약사다. 송도공장은 지난해까지만 해도 백신을 만들던 곳이었지만, 올해부턴 혈액암 치료제 생산기지로 변신했다. 이곳에선 연간 매출액이 5조원에 달하는 블록버스터 항암제가 생산된다. 항암제로 생산공정을 변경하면서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GMP(제조·품질 관리) 승인까지 받았다. 이곳에서 생산된 항암제는 모두 해외로 수출되고 있다.

20일 얀센백신 인천 송도공장에서 혈액암 치료제가 생산되고 있는 모습./한국얀센

◇ ‘박리다매’ 백신에서 ‘고부가가치’ 항암제로…생산공정은 디지털 전환

얀센백신이 송도공장을 항암제 생산기지로 만든 것은 고부가가치 의약품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백신은 연 7000만~8000만 도즈(Dose·1회 접종분)를 생산해 이른바 ‘박리다매’를 노리는 저가 제품이다. 얀센백신은 항암제 같은 주사제가 전 세계적으로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만큼 4년 전부터 항암제 생산을 준비해왔다.

얀센백신 송도공장을 변신을 이끈 존 이 대표는 처음부터 제약업계에서 활동한 인물은 아니다. 이 대표는 과거 미국 통신회사 자일랜(Xylan)과 프랑스 통신회사 알카텔-루슨트(Alcatel-Lucent)에서 연구개발(R&D) 관리를 담당했다. 이후 미국 의료기기 기업 아이리스(Iris Diagnostics)와 다국적 헬스케어 기업 베크만쿨터(Beckman Coulter)를 거치며 바이오 분야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다.

이 대표는 IT 분야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송도공장의 디지털 전환을 성공시켰다. 인공지능(AI)이나 로봇을 특정 부분에 적용하는 ‘보여주기식’이 아닌 모든 과정을 데이터로 기록해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또 공정시스템이 유연한 구조로 만들어져 항암제 생산기지로 변신하는 게 수월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이다.

이 대표는 “송도공장은 백신과 항암제에 상관없이 다양한 의약품을 생산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로 만들어졌다”며 “다만 항암제는 백신보다 적은 양을 만들기 때문에 불량을 없앨 수 있도록 섬세한 공정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고 말했다.

존 이(John Yi) 얀센백신 대표가 20일 인천 송도공장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대표는 "한국과 같이 성장하는 글로벌 기업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한국얀센

◇ GMP 인증 받은 청결도…단 하나의 불량도 용납 못한다

송도공장 생산동은 무균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완벽한 청결도를 고수했다. 극강의 청결도를 보증해주는 FDA의 GMP 인증을 받을 정도다. 옷을 모두 탈의한 뒤 위생복을 입어야 하고, 여성의 경우 화장을 모두 지워야 한다. 손톱 장식을 한 사람은 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청결도는 A·B·C·D 총 4등급으로 나눴는데, B등급 이상의 구역에 들어가기 위해선 피부가 거의 드러나지 않도록 3벌의 위생복을 겹겹이 입어야 한다.

항암제는 액상으로 된 의약품을 보관하는 병인 ‘바이알(Vial)’ 세척으로 시작해 병에 의약품을 채우는 작업인 ‘바이알 필링’을 거쳐 생산된다. 의약품이 바이알에 담기는 공정은 음압시설처럼 외부로부터 차단돼 칸막이에 달린 장갑에 손을 넣어서만 작업할 수 있다. 그마저도 손을 넣어서 작업이 가능한 직원은 공장 내 9명뿐이다. 고품질 항암제를 만들기 위해 가장 숙련된 직원만 바이알 필링 공정에 관여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바이알 필링 작업이 완료되면 항암제의 이물질이나 변색을 확인하는 ‘검병’을 거친다. 제품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비로소 라벨링과 포장으로 마무리해 출하된다. 훈련된 직원이 해야 하는 검병을 제외하곤 모든 생산공정엔 자동화 시스템이 적용됐다.

김창윤 얀센백신 생산본부장은 “얀센백신 생산동은 완벽한 무균 상태를 만들기 위해 청결도를 엄격하게 적용하고 있다”며 “일 년에 두 번은 생산 시스템의 무균 상태를 대대적으로 확인하고 돌발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시뮬레이션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불량을 줄이는 데 중요한 검병을 담당하는 인력들을 스위스로 연수를 보내 역량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한다”고 말했다.

20일 얀센백신 인천 송도공장에서 혈액암 치료제가 생산되고 있는 모습./한국얀센

◇ “한국 인재 우수해”…동반 성장 약속한 얀센백신

얀센백신은 정부가 제공한 송도 부지에 입주해 항암제를 생산하는 만큼 한국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 목표다. 대표적인 동반 성장 사례는 바로 ‘채용’이다. 얀센백신의 직원은 총 250명, 그중 외국인 직원은 5명이 안 된다. 지난 3년 동안 100여 명을 채용했는데, 인천 송도 글로벌캠퍼스 내 졸업생들을 적극적으로 채용했다. 송도 글로벌캠퍼스 내에는 연세대와 인천대, 인하대 등 국내 대학을 비롯해 뉴욕주립대와 조지메이슨대, 겐트대, 유타대가 있다.

이 대표는 한국 바이오 인재들의 역량을 높이 평가했다. 이 대표는 “한국 인재들은 열정이 높고 능력이 우수한 것이 특징”이라며 “특히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에서도 바이오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하고 있는 부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평적인 조직을 지향하는 만큼 질문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인재라면 언제나 환영”이라고 강조했다.

얀센백신은 바이오 산업을 육성하는 한국과의 상생을 약속했다. 이 대표는 “얀센백신 송도 공장은 항암제로 다시 시작해 계획과 포부도 많다”며 “한국 정부와 사회, 인재들이 협력해 존슨앤드존슨과 같은 글로벌 기업과 같이 성장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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