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운 없어도 괜찮아…실내서 즐기는 제주 감성

최승희 기자 2023. 9. 2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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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속의 문화예술 공간들

여행의 성패를 가르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날씨 운’이다. 바쁜 일상 속 겨우 짬을 낸 여행 일정인데, 하필 궂은 날씨와 만나면 모든 계획을 틀어야 한다. 당장 야외 일정은 하루하루 날씨에 달려 있고, 때로 실내 관광지 중심으로 다시 재편해야 한다. 제주 여행이 종종 그러했다. 몇 주 전, 몇 달 전 교통편과 숙소를 잡기에 태풍이나 비를 예상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얼마 전 다녀온 제주 여행도 장대비가 오락가락해, 날씨 운이 따라주지 못했다. 다행스러운 건지 제주에는 숲과 바다 명소 못지않게 실내 관광지도 다양하게 들어서 있었다. 이 가운데서도 최근 2, 3년 새 문을 연 문화예술 공간들을 찾아봤다.

제주를 사랑한 재일교포이자 ‘바람의 건축가’ 유동룡의 생전 건축 작품과 예술작품을 전시한 유동룡미술관 내부 모습. 최승희 기자


# 자연 속에서 길어낸 지역문학의 거점 ‘제주문학관’

지난달 제주 4·3 사건을 다룬 창작오페라 ‘순이삼촌’이 부산 무대에 올라 주목받았다. 원작은 현기영 작가의 동명 소설 ‘순이 삼촌’. 4·3사건을 최초로 다룬 작품으로 역사적·문학사적 의미를 지녔다. 제주의 문학은 ‘거센 폭풍우가 오랜 세월 동안 섬의 곳곳에 깊게 새겨넣은 상흔을 쓰다듬고 되새기며’ 일어났다고 한다. 척박한 화산섬에서 끈질기게 일군 삶 이야기가, 4·3의 저항과 아픔의 역사가 소설이 되고 시가 됐다.

제주문학관 1층 북카페 모습.


2021년 10월 문을 연 제주문학관(제주도 제주시 연북로 339)은 제주문학의 역사를 기록하고 향유하는 ‘제주문학의 거점’으로 만들어졌다. 제주공항에서 차로 15분 거리(약 6㎞). 현무암 돌담을 두른 문학관이 모습을 드러낸다.

1층 입구로 들어서면 통창으로 보이는 푸른 숲과 마당 풍경, 공간의 고요함이 마음을 가라앉힌다. 이날은 비가 와서 물을 머금은 숲과 돌이 더 짙은 색으로 문학관을 감쌌다. 현무암으로 조성한 마당은 야외 행사장이자 독서 공간이다. 일렁이는 물결처럼 곡선으로 쌓은 담과 계단이 숲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북카페이자 기획전시실이 있는 1층에선 신간부터 제주 도서 등을 골라 읽을 수 있다. 얇은 책 가운데 김순이 시선집 ‘제주야행’을 집어 들고 잠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책장 너머 옆 공간은 기획전시실이다. 해방 이후 도외 문인 중심에서 도내 문인 중심의 제주 문단 형성에 기여한 두 사람, 강통원 문충성 작가를 재조명하는 ‘제주 문단의 시작’이 열리고 있다. 제주 문학의 뿌리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로 다음 달 1일까지 이어진다.

2층 상설전시실에는 구비문학에서 근현대문학에 이르는 작품과 작가를 모아놓았다. 제주문학의 특징인 구비문학, 제주어문학, 4·3문학, 바당문학 등에 관해 소개하고 대표작을 함께 전시한다. 터치스크린 영상으로 아카이브를 보여주거나, 낯선 제주어로 지은 민요나 문학을 소리로 들을 수 있는 체험형 코너가 재미를 더했다. 3층은 문학살롱, 소모임 공간이 있다.

# 제주를 사랑한 거장 건축가의 숨결 ‘유동룡 미술관’

유동룡미술관 외관.


제주를 여행하는 다양한 방법 중 하나는 ‘건축’을 테마로 하는 것이다. 박물관 미술관 리조트 등 제주 곳곳에 거장의 숨결이 있다. 미니멀리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안도 타다오, ‘빈자의 미학’ 승효상,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이름 이타미 준. 재일교포 건축가인 그의 한국 이름은 유동룡이다. 제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긴 그는 포도호텔, 수·풍·석 미술관, 방주교회 등 많은 건축물을 남겼다.

유동룡이 사랑한 제주에,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1년 만인 지난해 12월 유동룡미술관(한림읍 용금로 906-10)이 문을 열었다. 딸 유이화 건축가가 설계했다. 1970년부터 2011년까지 유동룡이 남긴 건축 작품과 회화·서예·조각 등 예술 작품을 전시하고, 그의 수집품과 저서를 소개한다. 미술관은 사전예약제로 운영된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3만 원이고, 네이버로 예약하면 30% 할인받을 수 있다. 오전 10시 첫 관람시간으로 모바일 예약하고 입장했다. 은은하고 깊은 향에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의 서재에서 풍기던 먹향과 오래된 종이 냄새를 모티브로 만든 향이라고 한다. 거장의 작업실에 발을 들인 느낌이다.

1층은 티라운지와 라이브러리, 2층은 전시실이다. 2층 전시를 먼저 본 다음 라이브러리에서 그에 관한 책을 읽거나 티라운지에서 차를 마시며 사유의 시간을 가지길 권했다. 원형 계단으로 이어진 전시실에는 개관전 ‘바람의 건축가, 이타미 준’이 열리고 있었다. 자신을 ‘세상에 남은 마지막 아날로그 건축가’라고 불렀던 만큼 그의 대표작들이 직접 그린 설계 스케치와 모형, 사진 등의 형태로 전시됐다. 문소리 정우성 에스파 등이 참여한 오디오 도슨트가 작품의 숨은 의미를 쉽게 설명했다.

영상실에선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유동룡이 디자인한 의자에 앉아서 볼 수 있다. 한켠엔 세로로 좁고 길게 난 창이 있는데, 그 앞에 유동룡미술관 모형을 놓아 자연 속에 안긴 미술관 모습을 내부 공간에서도 인식할 수 있게 만든 듯했다.

미술관 1층은 감동의 여운을 충분히 사색하고 명상할 수 있게 만든 공간이다. 라이브러리의 창은 바깥으로 볼록한 통창으로 만들었는데, 자연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건물 안과 밖이 교감하는 느낌을 준다. 데스크에 요청해 책을 빌려 읽거나, 바로 옆 티라운지에서 조용히 차를 마실 수 있다. 입장 때 배부되는 티켓으로 티 서비스를 요청하거나 기념품(엽서)을 받으면 된다. 저지문화예술마을과 인접해 예술인마을과 제주현대미술관, 제주도립김창열미술관 등을 함께 볼 만하다.

# 미디어아트 ‘아르떼뮤지엄·원더아일랜드’ MZ놀이터

아르떼뮤지엄 미디어아트 전시장.


제주에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장이 많다. 초창기 빛의 벙커, 아르떼뮤지엄을 비롯해 노형슈퍼마�R, 포레스트, 스토리캐슬, 원더아일랜드 등이 잇따라 개관했다. 공장형 넓은 부지가 많고 관객이 꾸준히 유입되는 관광 명소 제주의 특성 때문이다. 미디어 작품을 프로젝션으로 벽과 바닥에 쏘면, 마치 작품 안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주는 몰입형 미디어아트는 MZ세대를 중심으로 꾸준히 인기를 끈다.

‘대장’ 격은 아르떼뮤지엄(어림비로 478)이다. 제주뿐만 아니라 여수 강릉에서도 운영 중이며, 올 연말에는 부산 영도구에도 문을 연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이곳은 2020년 9월 개관했다. 4628㎡(1400평) 면적에 최대 10m 높이 스피커 제조 공장을 개조한 곳으로, 공간 빛 소리가 만들어 낸 11개 다채로운 미디어아트 전시를 펼쳐 보인다. 입장료는 성인 기준 1만7000원.

아르떼뮤지엄 제주는 거대한 공간을 뒤덮은 환상적 미디어아트가 초현실적 풍경을 선사한다. 첫 작품은 ‘FLOWER(꽃)’. 사방에 흐드러진 동백꽃이 관객의 몸에도 붉게 물들면서 동화 속 한 장면 같은 공간을 연출했다. 대표작 ‘WAVE(파도)’ 전시실은 온 세상을 물들이는 일몰 시간, 노을 진 바닷가 풍경과 파도 소리가 어우러져 감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8m 높이로 쏟아내는 폭포가 14각 거울을 통해 무한 확장되는 ‘WATERFALL(폭포)’, 가장 넓고 몰입감 높은 전시장 ‘GARDEN(정원)’ 등 전시장마다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객들로 북적였다. 포토존인 MOON토끼 앞에는 긴 줄을 서야 찍을 수 있을 정도. 직접 그린 동물을 화면 속 숲에 띄울 수 있는 라이브 스케치북 코너도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참여도가 높았다.

원더아일랜드 미디어아트 전시장.


체험형 미디어 스토리파크 원더아일랜드(신화역사로304번길 89)는 지난 5월 개장한 따끈따끈한 ‘신상’ 전시장이다. 복합리조트 제주신화월드 안에 문을 연 원더아일랜드는 제주의 자연 동식물 신화 등 10가지 테마를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로 풀어낸다.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반응하는 ‘체험형 미디어 아트’로 차별화하면서, 아이와 함께 갈 만한 놀이를 겸한 이색 전시장으로 입소문 나고 있다. 제주의 숲을 모티브로 한 인터랙티브 미디어 ‘비밀의 숲’에서는 스마트폰으로 화면에 등장하는 증강현실 동물을 잡을 수 있다. 한국의 전통미와 용궁을 결합한‘용궁 페스티벌’, 한라산 도깨비를 담은 ‘탑 플레이 그라운드’ 등 색다른 스토리와 체험에 지루할 틈이 없다. 입장료는 성인 1만7000원, 소인 1만2000원.

제주신화월드는 지난달 영화관 ‘JSW 씨네라운지’도 오픈했다. 개봉한 신작 영화를 상영하며 식사를 하면서 영화를 보는, 영화관과 다이닝이 결합된 콘셉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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