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바지' 입고 가도 되는 미국 의회…우리 국회는?

이지현 기자 2023. 9. 2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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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원 의원들은 회의장에서 무슨 옷을 입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정장 차림을 이어갈 것입니다.”(척 슈머·미국 민주당 원내대표)

미국 상원 다수당 원내대표의 말입니다. 이 말대로면 미국 상원 의원들은 반바지에 후디를 입어도 전혀 상관이 없는 겁니다.

미국 상하원에는 따로 복장 규정이 없습니다. 다만 남성 의원은 넥타이에 정장 차림이, 여성 의원은 소매 없는 의상과 발가락이 보이는 오픈토 구두를 신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자리 잡고 있었죠.

복장을 갖춰 입지 않으면 본회의장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고 회의실 구석에서 별도로 투표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암묵적 규칙을 깨고 복장 규정을 완화한 겁니다.

민주당 소속 존 패터만 상원의원. 평소 후디나 셔츠, 반바지 등 캐주얼한 복장을 자주 입는다. 〈사진=EPA/연합뉴스〉

'민소매, 후디' 논란됐던 의원 복장…찬반 여론 갈려



미국 의회에서 복장이 문제가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지난 1993년 바버라 미컬스키 상원의원이 바지 차림으로 의회에 등원해 논란이 됐고, 이 일을 계기로 여성 의원의 바지 정장 착용이 허용됐습니다.

2017년에는 소매 없는 원피스를 입은 한 언론사 기자가 하원 의장실 앞 로비에 입장하려다 부적절한 복장이라며 제지된 적 있습니다. 이 일에 당시 여성 의원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여야 여성 의원들이 '민소매 입는 금요일' 시위를 벌이기까지 했죠. 결국 폴 라이언 당시 하원 의장은 민소매 옷과 샌들 차림을 허용했습니다.

최근에는 민주당 소속 펜실베이니아 상원의원 존 페터만 의원의 복장이 화제가 됐습니다.

반바지와 후디를 즐겨 입는 페터만 의원은 선거 유세 때도, 자신의 지역구에서 고속도로가 무너지는 대형 사고가 났을 때도 후디 차림으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기자회견을 했습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과 존 패터만 미국 상원의원. 〈사진=AP/연합뉴스〉

복장 규정 완화에 대한 의원들의 의견은 엇갈립니다.

미국 공화당 소속 조시 홀리 상원의원은 “이제 월요일마다 상원에서 투표할 수 있게 됐다”고 AP통신에 밝혔습니다. 홀리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에서 비행기를 타고 의회로 오는 월요일이면 보통 청바지에 부츠를 신는데, 이 복장으로도 의정활동을 할 수 있다며 환영의 뜻을 밝힌 겁니다.

반면 공화당 소속 수잔 콜린스 상원의원은 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복장 규정 완화에 대해 “나는 비키니를 입겠다”며 “상원에서는 우리가 지켜야 할 품위가 있다. 복장 규정을 없애는 건 기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복장 논란…류호정 의원 “옷이 중요한 게 아냐”



의회에서의 복장 논란은 미국만의 일은 아닙니다.

전통과 관습에 따라 격식 있는 옷차림을 고수해온 세계 여러 나라 의회들에서 '파격적인' 의원들의 옷차림이 논란이 된 겁니다.

프랑스에서는 한 의원이 지역구 풋볼팀 운동복을 입고 연설하면서 논란이 일었고, 이를 계기로 국회의원 복장 규정이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영국에서는 오프숄더 원피스를 입은 여성 의원의 발언 도중 한쪽 어깨가 드러나자 부적절한 의상이라는 지적이 온라인을 중심으로 제기됐었고, 캐나다에서는 청바지에 후드 차림으로 등원한 의원이 퇴장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국회에는 복장 규정이 따로 없지만 대부분 정장 차림을 입는다. 〈사진=연합뉴스〉
한국도 예외는 아닙니다. 현재 국회법 제25조에는 '의원은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여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옷차림을 규정한 것이라고 볼 순 없습니다.

복장 규정은 따로 없지만 지금까지도 남성 의원들은 대부분 양복에 넥타이 차림으로 본회의장에 들어옵니다. 여성 의원들은 바지 정장이나 치마 정장을 입고 등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파격적인 의상은 역시 논란이 됐습니다. 지난 1993년 황산성 환경처 장관이 바지 정장 차림으로 국회 상임위 업무보고에 나서면서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후 15대 국회에서 여성 의원들이 '여성 의원 바지 입기 운동'을 벌였고, 지금은 여성 의원들의 바지 정장 차림이 보편화됐습니다.

2003년에는 유시민 당시 개혁국민정당 의원이 티셔츠와 재킷, 흰색 면바지를 입고 국회에 출석한 게 논란이 됐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라고 항의했죠.

21대 국회에서도 의상 논란은 있었습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본회의장에 입고 온 분홍색 원피스가 “국회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당시 류 의원 복장이 논란이 되자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는 “국회 의정활동에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의원 복장이 어떤 복장인지 명확히 하는 '최소한의 규정'을 마련하자”는 얘기까지 나왔습니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입은 원피스를 두고 지난 2020년 복장 논란이 있었다. 〈사진=연합뉴스〉
3년이 지난 지금, 국회에는 여전히 복장 규정은 따로 없습니다.

의상 논란이 있었던 류호정 의원은 JTBC 취재진에 “그래도 우리 국회 안에서는 복장에 대한 기준이나 규정이 엄격하진 않은 것 같다”며 “당시 논란이 된 분홍색 원피스도 본회의장 안에서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사진이 공개되면서 온라인에서 논란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류 의원은 “저는 지금도 본회의장에 갈 때 청바지나 원피스를 입기도 하고 정장을 입기도 한다”면서 “제 또래 친구들이 사회생활을 할 때 입는 옷들을 입고 의정활동을 하고 있고,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는 “국회의원 복장이 중요한 건 아닌 것 같다”며 “정장을 갖춰 입고 싸우기만 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냐”며 “국민이 바라는 모습은 그게 아닐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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