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녹색 복지' 관점에서 생각하는 지하철 무임승차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여름이었다. 폭염 안내 문자가 수시로 울리고, 88년 만에 이례적으로 관측된 9월 열대야로 잠 못 드는 밤이 이어졌다. 폭염에 더해 폭우도 역대급 위세를 떨쳤다. 장마 기간 일평균 강수량은 역대 1위, 누적 강수량은 역대 3위를 기록했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 곳곳에서 극단적 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기후위기에 직면한 많은 국가들이 탄소중립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고 친환경 교통수단 이용을 촉진하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기후위기는 모두에게 동등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빈곤 계층이나 노인,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에게 더 심각한 피해를 야기한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여름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2755명으로,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30%를 차지해 그 취약성을 보여줬다. 노인 등 사회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한 다각적인 녹색복지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후 대책의 담론 속에서 이번 폭염에 빛났던 서울 지하철의 묵묵한 활약은 눈여겨볼 만하다. 더위가 본격화된 6~8월 월평균 노인 이용객 수는 1821만명으로 연간 월평균을 훌쩍 상회했다. 노인들 사이에서 지하철이 인기 있는 피서지라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일종의 기후피난처인 셈이다. 노인들이 주머니 사정을 걱정하지 않고 지하철을 탈 수 있는 것은 경로 무임승차제도 덕분이다.
노인복지법에 따라 시행되고 있는 지하철 경로 무임승차제도는 노인의 건강권과 이동권을 아우르는 검증된 복지정책이다. 서울연구원에 따르면 노인의 여가활동 촉진, 우울증 감소 등 보건 향상, 관광 활성화 등 2020년 기준 연간 3650억원의 사회경제적 편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에게 지하철은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교류의 장이자, 자유로운 이동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활동의 원동력인 것이다. 이 제도가 사회복지 차원에서 반드시 유지되어야 하는 이유다.
또한, 무임승차제도는 지하철 이용 활성화를 유도해 그 자체로 강력한 탄소 저감 정책이 될 수 있다. 1㎞를 이동할 때 지하철의 탄소 배출량은 1.5g으로 승용차의 0.7%, 버스의 5% 수준에 불과하다. 지하철은 기후위기 해결에 가장 현실적이면서 이상적인 단서가 아닐까.
하지만 이면의 현실은 폭염에 말라죽은 선인장 같다. 운영기관은 경로 무임승차를 포함해 공익서비스비용(PSO) 보상을 한 푼도 받지 못해 적자가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이다.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노후 전동차 교체나 역사 냉방공사 등 편의시설 개선도 뒷전이 된 지 한참이다. 현세대가 미래세대에 비용을 전가하는 형국에 축소와 폐지를 놓고 세대 간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것이다.
이제는 지하철을 탄소중립 달성의 매개체로 새롭게 바라보는 관점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경로 무임승차제도를 시대에 걸맞게 녹색복지의 한 축으로 설정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국비 지원이 전향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가성비에 가심비까지 갖춘 최고의 노인복지정책에 정부가 무임승차하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볼 때다.
[백호 서울교통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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