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던 이장이 사라져…‘단장의 미아리 고개’에 차차차

한겨레21 2023. 9. 1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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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의 지역작당][희망제작소×한겨레21 공동기획] 하동 매계마을 이장 이상윤, 인터뷰하던 이는 돌아오지 않고 노래방기기에 빠져 토끼춤 추게 된 사연
이상윤 매계마을 이장이자 (사)숲길 상임이사. 김소민 제공

지리산 자락, 마을 어귀 정자에 그가 앉아 있었다. 폭우가 쏟아졌다. 지리산둘레길을 관리하는 (사)숲길 상임이사이자 경남 하동 매계마을 이장인 이상윤(60)씨 곁을 동네 강아지 ‘칸이’가 어슬렁거렸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2023년 8월29일, 그날 저녁 내가 이 동네 사람들과 토끼춤을 출지 말이다.

관광지는 피하고 작은 마을 도는 순례길

2007년 첫 구간을 연 지리산둘레길은 처음부터 순례길이었다. 5개 시·군, 20개 읍·면, 마을 110개를 품은 21개 코스는 295㎞에 이르는데, 각 구간엔 숫자가 붙지 않는다. 인월~금계, 금계~하동처럼 마을 이름만 표시한다. 유명 관광지는 다 피해 작은 마을들로 향한다. 지리산국립공원으로 한 발짝도 들어가지 않는다.

“둘레길은 지리산을 지키는 에코밸트”(이상윤)다. 2004년 전쟁에 반대하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단’(도법 스님, 수경 스님, 이원규 시인, 박남준 시인)이 순례길을 제안했다. 그도 하동 구간을 함께 걸었다. 녹색연합 녹색사회연구소, 지리산생명연대가 3년 동안 옛 지도를 살피고 마을 어르신들에게 물어 옛길의 흔적을 찾았다. 2007년 (사)숲길이 설립되면서 순례길이 트였다.

“(탁발순례하며) 걸어보니 사람 다닐 길이 없는 거예요. 다 자동차 중심으로 바뀌었더라고요. 풍요로워졌는데 늘 불안한 이유는 뭘까? 왜 이편저편 갈려 분노할까? 이런 상황을 돌아볼 시간이 우리에겐 없었어요. 돌아보는 방법이 두 발로 걷는 거예요.” 그도 경험했다. “혼자 걷다보면 잡념이 올라와요. 그러다 조용해져요. 침묵. 그 순간 희열이 다가와요. 오롯이 자기를 만나는 시간이죠. 그러다 우주를 만나는 느낌이 들어요.” ‘지리산 한 바퀴를 순례하는 15박16일 평화순례단’ 프로그램은 이어지고 있다.

매계마을 북카페와 나눔밥상. 김소민 제공

(사)숲길은 10년째 예술 프로젝트도 벌인다. “지리산은 평화예요. 갈 곳 없는 사람들, 힘든 사람들을 품어온 산이에요. 지리산은 새 기운을 만들어내요. ‘시대 정신의 맹아’를 틔우는 산이라고들 하잖아요.” 예술은 그 메타포를 살리고 알린다. 사라져가는 마을의 이야기를 사람들 기억 속에 심는다. 그는 2024년 10월에 열릴 아시아트레일콘퍼런스에 맞춰 지리산비엔날레를 제안하려 한다.

이상윤 이장의 고향은 경북 상주다. 지리산과의 인연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시작됐다. “소설 <수호지>를 읽었는데 의로운 사람들이 양산박 산채에 모여 못된 관리를 혼내주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게 멋있는 거예요. 도서관 사서 누나한테 우리나라에서 양산박을 이루려면 어디가 좋겠냐고 물었더니 그래요. ‘그거야 지리산이지!’”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기자로 7~8년 일했다. “제 영혼을 갉아먹는 짓이었어요. 정치인, 기업인 인터뷰해주고 광고 따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농사꾼으로 사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촌놈이잖아요. 막 딴 고추의 맛을 알거든요.” 20년 전 부인의 고향인 하동으로 왔다. “지리산에 불려온 거죠.”

매계마을 나눔밥상에서 매일 수요일 점심이 공짜다. 김소민 제공

<단장의 미아리 고개>에 맞춰 탬버린을

그가 하동으로 온 2003년 섬진강을 따라 19번 국도 확장 계획이 발표됐다. 벚나무를 뽑아내는 계획에 맞서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이 꾸려졌다. 그도 그중 한 명이었다. “자연에 어울리는 삶을 생각했어요. 전기는 도시에서 소비하는데 원자력발전소는 지역에 지어요. 지역은 착취 대상인 거죠. 생산기지 정도로 치부돼요. 그때 그런 각성을 했어요.”

이때까지만 해도 인터뷰는 진지했다. 복병이 나타났다. 마을회관에 노래방기기가 재설치되는 날이다. 이 이장은 마을에 방송해야 한다고 일어섰다. “예~ 노래 부르고 싶은 분들, 마을회관으로 오세요.” 방송은 나갔는데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노래 부르느라 정신이 팔렸다.

비가 쏟아졌다. 이 인터뷰는 아직 망하지 않았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강훈채(66) 전 이장이 이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가 그날 밤 대나무 막대를 나팔처럼 불며 춤출지 몰랐다. 이 노래방기기로 말할 거 같으면, 2016년 농림축산식품부 주최 ‘행복마을콘테스트’ 경관 환경 분야에서 매계마을이 금상을 타며 받은 상금으로 마련했다. 2014년부터 9년 동안 이장이던 강훈채씨가 이 마을에 들여온 건 노래방기기만이 아니다. 인구 95명인 이 마을에는 북카페, 수요일마다 공짜 밥을 주는 식당 ‘나눔밥상’, 동아리 모임이나 강의가 열리는 사랑방이 있다. 거저 얻은 공간들이 아니다.

2013년 가을, 마을에 위기가 닥쳤다. 이 마을 식수원이 난개발로 오염되게 생겼다. 그 땅은 외지인 소유였다. 강훈채 전 이장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주민들이 뭉쳐 그 땅을 장기 임대했다. 그는 교장실에 끌려온 학생처럼 다소곳이 앉아 마을의 도전을 설명했다. ‘연대의 맛’을 본 주민들은 생활문화공동체 만들기 사업을 비롯해 여러 공모사업에 뛰어들었다. 이 마을의 ‘하드웨어’ 진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10년 안엔 마을 요양원도 지을 계획이다. “어르신들 고생 많이 했는데 주민이 돌봐야죠. 평생 친구들하고 놀면서 세상 떠날 수 있도록 해드리자는 거예요.”(강훈채)

강 전 이장은 이 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가 기억하는 고향은 “가난과 섬진강의 은빛 모래”다. “지금은 모래가 누렇지만 그때는 하얗게 반짝였어요. 그 물을 그냥 마셨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엔 도시에서 살았다. 부산에서 신발 밑창을 생산해 수출하는 사업을 하다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마을 토박이인 그도 마을 사람들 마음을 모으는 건 쉽지 않았다. “울고 싶은 날도 많았다”고 했다. 그렇게 힘든 이장을 왜 했냐 물으니 머뭇거렸다. “아, 어, 마을을, 행복하게, 변화시키고 싶…”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는 이 마을을 사랑한다. “나눔밥상을 하니 모임에들 참석하더라고요. 실적이 쌓이고 마을이 달라지는 걸 경험한 뒤엔 자발적으로들 참여했어요.”

결국, 우리는 마을회관에서 같이 노래했다. 한 할머니는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골랐다. “당신은 철사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맨발로 절며 절며~.” 이 노랫말에 탬버린을 치고 난리가 났다. 이상윤 이장과 강훈채 전 이장은 부둥켜안고 춤을 췄다.

함께 노래부르는 이상윤 매계마을 이장과 강훈채 전 이장. 김소민 제공

누가 시골이 한가하다 그랬나

이날 밤, 나는 강훈채 전 이장 집 2층에서 잤다. 이 집은 ‘매계호텔’ 네 집 중 하나다. 매계마을은 사회적협동조합 ‘놀루와’와 협업해 일정 수준을 맞춘, 쾌적한 민박 네트워크를 만들어가고 있다. 연말까지 체험프로그램도 꾸린다. 이 마을 화가 두 명의 작업실을 매계갤러리로 연계해 투어도 벌일 예정이다. “주민 소득도 높이고 방문객과 소통하는 창구도 만들려고요.” 아침밥으로 미역국을 함께 먹으며 강 전 이장이 말했다.

시골이 한가하다고 누가 그랬나. 오전부터 마을 교육프로그램이 돌아갔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쑥뜸을 배웠다. 수요일 점심은 나눔밥상에서 누구나 공짜로 먹는다. 밥 먹고 나니 사랑방에서 ‘관계 형성 서클 활동’이 벌어졌다. 15명이 둘러앉아 어린 시절 즐겨 했던 놀이 이야기를 나눴다. 강훈채 전 이장은 수박·복숭아를 서리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이상윤 이장은 짚단에 불을 붙여서 던지고 놀다 맞았단다. 삶의 고비에서 듣고 싶었던 말을 적어 서로에게 속삭여줬다. “수고했어, 사랑해.”

이런 동아리 활동 외에 이 마을은 인문학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석 달째 지리산의 의미와 가치를 배우고 있다. 그들은 “관계가 괜찮은 마을”을 그린다. “마음이 통하고 배려하는 마을을 만들어가려고 해요. ‘생각은 다양하구나’ 그걸 아는 것만 해도 크죠.”(이상윤)

이 마을은 자연과 거기 기댄 인간 사이 “괜찮은 관계”도 꿈꾼다. 2021년 하동군에서 ‘탄소 없는 마을’로 선정했다. 매계마을은 2023년 일회용품을 줄이려고 리필스테이션을 만들 계획이다. 8월25일 시범 삼아 세제를 대용량으로 들여와 마을 사람들이 각자 용기에 필요한 만큼 담아갔다. 반응이 좋았다. 물품을 늘려가려 한다. 연말까지 맷골사랑방(세미나실) 지붕에 30㎾ 태양광발전을 설치해 마을 운영비를 해결할 계획이다. 2024년에 20㎾를 추가해 마을 복지 기금에 보태려 한다.

“마음이 통하는 마을”이야말로, 어떤 목표보다 야심 찬 것일지 모른다. 60대 이장을 “울고 싶게” 할 만큼 어려운 일이다. “갈등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에너지가 되기도, 극한 대립으로 나아가기도 하죠. 함께 논의하고 과정을 되짚어보는 게 좋아요. 갈등의 원인이 뭔지 정확히 진단해야죠. 너무 빨리 해결하려니 싸움이 나요. 잠복한 문제를 드러내는 논의 구조가 있어야 해요. 우리 마을은 그걸 잘해요. 한국에선 정부고 정당이고 전임자가 했던 걸 까부숴버리죠. 뭔가 계획하고 사업을 진행할 때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천천히 가도 되지 않을까요.”(이상윤)

같이 노래 부르는 매계마을 주민들. 김소민 제공

9월18일, 그날을 기다린다

2003년 이상윤 이장의 ‘각성’을 불렀던 19번 국도는 결국 4차선으로 확장됐다. 그래서 이에 맞섰던 ‘섬진강과 지리산 사람들’은 실패했나? 매계마을 열혈 사무국장 양은주(53)씨는 이상윤 이장과 그때 함께 활동했다. 사람이 남았다. 9월18일, 매계마을 사람들은 그날을 기다린다. 다들 날짜를 알고 있다. 그날, 17년 만에 이 마을에 아기가 태어날 예정이다.

하동(경남)=글·사진 김소민 희망제작소 연구위원

*X의 지역작당 :​ 경쟁이 아닌 연대, 개인이 존중받는 공동체, 자연을 해치지 않는 인간의 삶을 찾아 다 아는 길 대신 미지의 X를 택한 사람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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