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발에서 필로폰, 車에선 주사기 나왔는데…대법서 마약 무죄, 왜?

이슬비 기자 2023. 9. 19.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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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모발에서 필로폰 성분이 검출됐고 차량에서 필로폰 주사기가 발견됐더라도 투약 시점이나 주사기 사용자를 특정하지 못한다면 마약 투약 증거로 쓰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등의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북부지방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9일 밝혔다.

경찰은 A씨가 2020년 1∼6월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의심하고 2021년 7월3일 A씨의 소변과 모발을 압수했다. 당시 소변에서는 필로폰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고 모발에서는 검출됐다. 문제는 당시 압수된 모발 길이가 4~7cm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통상 마약 수사를 할 때는 사람의 모발이 평균 한 달에 1㎝씩 자란다는 점을 감안해 모발을 3㎝씩 잘라서 투약 시기를 판별한다. 이때는 머리카락이 짧은 탓에 구간별 감정이 이뤄지지 못했고, A씨는 결국 풀려났다.

그로부터 한 달 뒤인 2021년 8월 1일, A씨는 벤츠 법인차량을 무면허로 운전하면서 서울 도봉구에 있는 도로에서 중앙선을 침범해 맞은편 차량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이후 피해자를 구호하지 않고 그대로 도주했다. A씨의 뺑소니 혐의를 수사하던 경찰은 차량을 압수수색하던 중 주사기와 고무호스 등 마약류 투약에 사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도구들을 발견했다. 이 주사기에서는 필로폰 성분이 검출됐다.

경찰은 A씨가 마약류를 투약한 것으로 의심해 2021년 8월 24일 재차 모발과 소변을 압수했다. 소변에서는 여전히 필로폰 성분이 나오지 않았으나 길이 6∼9㎝ 모발에서 필로폰 성분이 검출됐다. 모발을 3㎝씩 잘라서 구간별 감정을 실시한 결과, 모근에서 3㎝, 3∼6㎝, 6∼9㎝ 구간에서 전부 필로폰 성분이 나왔다. 이에 따라 검찰은 1차 압수수색 다음날인 7월 4일부터 2차로 압수수색한 8월 5일 사이에 A씨가 알 수 없는 장소에서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보고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 혐의로 A씨를 기소했다.

1심은 A씨가 어느 시점에서 필로폰을 투약했는지 특정할 수 없다고 보고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A씨의 마약 투약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2개월, 약물중독 재활교육 40시간 등을 선고했다. 2심은 약 3㎝까지 모발에서 필로폰이 검출됐고, 주사기가 나온 차량을 운전한 점 등을 증거로 인정해 A씨의 필로폰 투약 혐의를 유죄로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A씨에게 마약류 투약 혐의를 적용할 수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모발 검사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됐더라도 필로폰 투약 시점을 특정할 수 없다면 ‘2021년 7월4일부터 8월5일까지 필로폰을 투약했다’는 공소사실을 뒷받침하기는 어렵다는 취지다. 특히 필로폰 주사기가 나온 차량은 법인 차량으로 A씨 외에도 여러 사람이 사용했고, 두 차례의 소변 검사에선 필로폰이 검출되지 않은 점 등도 판단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에는 증거재판주의, 자유심증주의 원칙에 관한 법리를 위반함으로써 판결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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