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로운 직장생활] 반바지‧남자단발 허용되나…“깔끔의 기준, 대체 뭔가요?”

권나연 2023. 9. 19.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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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로운 직장생활 ⑷회사마다 다른 ‘복장규율’ 들여다보기

기성세대와 다르지만, 때로는 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는 MZ세대의 직장‧경제 생활을 들여다본다. 네 번째로 시대의 흐름과 함께 대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근무복 자율화’에 관한 2030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이미지투데이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을 먹나요. 청바지 입고서 회사에 가도 깔끔하기만 하면 괜찮을 텐데.”

각자의 개성과 자유를 노래한 이 곡은 1997년 인기그룹 DJ DOC가 발표한 ‘DOC와 춤을’이다. 노래가 발표된 지 무려 26년이 흐른 지금, 당시 이 노래에 열광했던 대학생과 사회초년생들은 다양한 회사에서 ‘MZ세대’ 사회초년생들을 바라봐야 하는 선배가 됐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회사와 사회분위기도 달라졌다. 근무복 자율화 방침에 따라 청바지를 입고 회사에 출근하는 직장인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이제 젓가락질 못해도 포크로 찍어먹으면 되고, 복장과 머리모양이 어떻든 일만 잘하면 될까.

◆업무와 상관없으니 괜찮다 vs 그래도 단정한 게 좋다=“서비스직인데 염색하면 고객이 불편하다고 항의하지 않을까요?”

생활가전 제품을 대여해주고 정기적으로 관리하는 회사에 다니는 임모씨는 최근 고민에 휩싸였다. 20대 중반 신입직원 A씨의 밝은 머리색 때문이다. 임씨는 “저도 이제 나이가 든 걸까요?”라며 “고객의 집을 방문하고 신뢰를 드려야 하는 직업인데 단정한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회사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시니어들은 고객의 불편을 우려했다. 염색머리로 고객의 집을 방문했다가 항의라도 들어오면 직원 개인은 물론 조직 전체의 이미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반면 A씨는 당당했다. 그는 “고객에게 더 예쁘게 보이기 위해 염색한 것”이라는 입장었고, 실제로 신입교육에도 성실히 임했다. 

결국 회사 측은 일단 ‘염색머리’로 현장방문을 해보기로 했다. 고객항의가 들어오면 그때 머리색을 바꾸기로 한 것. 19일 현재 A씨의 머리색은 검게 바뀌었을까. 아니다. 여전히 그는 염색머리로 고객을 만나고 있다. 선배인 임씨는 “A씨는 일을 잘 하고 있다”며 “머리색을 두고 항의할 수 있다는 건 선배들과 윗분들 생각이었지, 막상 고객들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고 안도했다.

또다른 직장에서는 남자 신입사원 B씨의 ‘단발머리’가 화제의 중심이 됐다. 여자들의 경우엔 흔하다지만 직장에서 남자직원의 단발머리를 보기란 쉽지 않다. B씨의 상사는 “머리 언제까지 그렇게 할 거야?”라며 넌지시 ‘자르면 좋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선배들은 상사의 속내를 파악했지만 B씨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어깨 아래정도까지 기르려고 한다”며 자신의 계획을 알려줬다. 이 회사 복무규정에는 ‘머리 길이’에 대한 어떤 제약도 적혀있지 않다. B씨 역시 여전히 찰랑이는 단발머리로 성실히 근무 중이다. 같은 회사에 다니는 김모(45)씨는 “내가 신입이던 시절과는 확실히 달라졌다”며 “어떤 머리가 더 단정해 보이는지를 떠나 ‘이건 내 권리니까’라는 태도가 한편으로 멋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이미지투데이

◆자유로운 복장 ‘캐쥬얼데이’, 하지만 기준 제각각=“금요일은 자유롭게 입어도 된다기에 반바지 입고 갔다가 회의실에 불려가서 한소리 들었어요.”

공기업에 재직 중인 1년차 직장인 안모(30)씨는 ‘캐쥬얼데이’라는 말에 반바지를 입었다가 상사에게 “기본은 지켜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안씨는 “마침 날씨도 더워서 잘됐다 생각하고 입었는데 출근하자마자 부장님의 눈빛을 보고 뭔가 잘못됐음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캐쥬얼데이는 라운드티셔츠나 청바지, 운동화 등을 편하게 착용할 수 있는 날이다. 평소에는 셔츠나 블라우스, 옷깃이 있는 티셔츠 등을 착용해야 하는 조직에서 보통 주 1회 자유롭게 입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개념이다. 이는 유연한 근무환경을 통해 업무효율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마련됐다. 하지만 여기에도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 대체로 운동복이나 반바지‧민소매 등 지나치게 자유로운 의상은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업무에 따라 좀 더 까다로운 ‘기준’이 있을 수도 있다. 영업직이나 비서직은 다른 직종보다 제약이 강하다. 비서로 근무 중인 서현아(27)씨는 “캐쥬얼데이에 운동화를 신고 갔는데 ‘다음부터는 낮은 구두를 신고 오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자유로운 복장이라는 것도 윗분들 기준에서 자율이다. 이후로 캐쥬얼데이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며 웃었다.

물론 반바지를 포함한 ‘쿨비즈룩’을 허용하는 회사도 늘어나는 추세다. SK하이닉스는 2012년, 삼성전자는 2016년부터는 반바지도 허용하고 있다. 삼성에 재직 중인 직장인 C(39)씨는 “독특한 의상이나 머리 스타일이 화제가 될 수는 있겠지만 딱히 못하게 하는 분위기는 아니다”고 말했다. 게임‧패션 관련 회사는 더 자유롭다. 익명이 보장되는 직장인 커뮤니티에서 해당 회사직원들은 “머리색이나 모양이 자유로운 것은 물론, 팔에 글씨를 넣는 정도의 타투(문신)도 가능하다”고 답했다.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공무원 조직은 어떨까. 대다수는 “복장과 머리색은 자유로운 편”이라고 답했다. 민원서비스를 담당하는 직원들도 티셔츠와 운동화 착용은 물론, 머리를 탈색해도 제재를 받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구청에서 근무하는 박모(28)씨는 “옷차림으로 지적받는 건 생각도 못해본 일”이라며 “과감한 스타일을 했을 때, 윗분들이 속으로는 안 좋게 생각할지 몰라도 대놓고 야단치는 건 못봤다”고 설명했다.

많은 직장인들이 자유로운 복장을 원하고 있다. 최근 인크루트가 직장인 888명을 대상으로 쿨비즈 도입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89.3%는 ‘긍정적’이라고 답했다. 부정적 응답은 10.7%에 불과했다. 긍정적으로 답한 이유로는 ‘자유로운 복장으로 근무환경과 업무편의가 개선된다’는 의견이 가장 많았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이미지투데이

◆“자율은 이웃회사 얘기”…외모 지적 사례도=그렇다면 회사가 복장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준수하도록 하는 것이 법으로 가능할까. 가능하다. ‘복무규율’ 마련은 회사의 유지와 운영을 위한 정당한 권리다. 다만 규율이 지나치거나 직장내 질서유지와 무관한 경영진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경우 효력이 문제될 수 있다. 또 복장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행하는 ‘인신공격성 발언’이나 외모에 대한 지적은 고용노동부 신고 대상이다. 

한 회사는 임직원들에게 ‘기본소양 지키기’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발송해 직원들에게 원성을 사기도 했다. 여기에는 라운드티‧청바지‧트레이닝 바지‧후드티‧덧신 양말을 금지하고 임원은 정장을 착용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직원들은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 “시대에 역행하는 규정”이라며 불만을 쏟아냈다. 논란이 되자 회사 측은 “업무에 매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로 공지한 권고사항”이라고 해명했다.

외모에 대해 지적하는 사례도 있었다. 주모(34)씨는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타박을 들었다. 남성인 주씨의 머리는 늘 짧은 편이었다. 하지만 업무가 바빠 두달마다 가던 미용실을 석달째 가지 못했고 앞머리가 눈썹 밑으로 살짝 내려왔다. 이에 그의 상사는 “머리는 언제 자를 거냐”, “볼 때마다 답답해서 짜증이 난다”는 비난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직장인 정모(32)씨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고 상사에게 한소리 들은 사연을 털어놨다. 당시 정씨는 퇴근 후에도 회의시간에 발표할 파워포인트(PPT) 자료를 만들었다.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기 쉽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발표 전날도 3시간 밖에 자지 못했다. 발표내용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부장은 “다음에는 단정하게 화장도 좀 하고 오라”며 “일 잘하고 발표만 잘하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기본적인 태도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세수를 안한 것도 머리를 안 감은 것도 아닌데, 회사에서 얘기하는 단정과 깔끔은 대체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정씨의 직장상사가 본 ‘하나’는 왜 ‘발표준비’ 정도가 아닌 ‘화장’ 여부였을까. ‘이왕이면 단정한 게 좋다’는 상사들의 의견도 일리는 있다. 일 잘하고 복장과 용모도 깔끔한 직원을 누가 싫어하겠는가. 다만 지적하는 방식은 신중해야 한다. 업무와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깔끔한 옷차림’과 인신공격에 해당하지 않는 ‘언어의 선택’ 가운데 어느 것이 더 ‘기본’에 가까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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