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표정의 배우, 변희봉을 추억한다

아이즈 ize 김형석(영화 평론가) 2023. 9. 19.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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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김형석(영화 평론가)

2020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한 변희봉, 사진=스타뉴스DB

배우 변희봉이 세상을 떠났다. 2000년 이후 이른바 '한국영화 르네상스' 시기 가장 인상적인 조연 중 한 명이었으며, 개성적인 목소리와 아우라를 지녔던 캐릭터 배우는 1965년 성우로 시작해 2019년 유작인 '양자물리학'까지, 54년의 연기 생활을 마치고 영면에 들었다. 반 세기가 넘는 연기 생활. 하지만 그는 환갑 즈음이 되어서야 영화와 인연을 맺었던 충무로 늦깎이였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강렬한 첫 인상은 1980년대 MBC 사극 '조선왕조 500년– 설중매'의 유자광일 것이다. 조선 전기의 풍운아와 같은 정치인이었던 그는 "바로 이 손 안에 있소이다!"라는 유행어와 함께 40대의 나이에 첫 전성기를 누린다. 이후 그는 수많은 작품을 거쳤고, 특히 사극 장르에서 장기를 발휘했다. 왠지 모를 긴장감을 불러 일으키는 독특한 발성은 서서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코믹 캐릭터와 악역이 모두 가능한 이미지를 갖춰 나갔다. 이두용 감독의 '내시'(1986) 등 1980년대에 몇 편의 영화에도 등장했지만, 20세기에 그의 주무대는 브라운관이었다.

배우 변희봉을 다시 스크린으로 불러온 사람은 봉준호 감독이었다. 첫 영화 '플란다스의 개'(2000)를 준비하면서, 봉 감독은 아파트 경비 역을 위해 삼고초려한다. 알려진 것처럼 변희봉 배우는 처음엔 거절했으나, 자신의 과거 캐릭터들을 줄줄 읊으며 설득하는 신인 감독에게 설득되어 역할을 맡았고, 영화계 컴백작부터 불멸의 명장면 하나를 남긴다. "혹시 보일러 김씨라고 아신교?"로 시작되는 지하실 장면. 여기서 그는 오로지 대사력만으로 8분 동안 관객을 붙잡아 놓는 괴력을 보여준다.

고 변희봉의 빈소 사진. 사진=스타뉴스DB

이후 조용하게, 하지만 뚝심 있게 '변희봉의 시대'가 열리며 그는 한국영화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배우가 된다. 그는 결코 화려한 연기자가 아니었다. 비중에 상관없이, 기본기에 충실한 가운데 자신만의 인장을 캐릭터에 불어넣는 스타일이었다.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그리고 '옥자'(2017)까지 봉준호 감독과의 작업은 꾸준히 이어졌는데 특히 '괴물'의 박희봉 역은 그의 연기 인생에서 잊지 못할 지점이었다. 부족한 아들 강두(송강호)를 감싸며 가족을 위해 장렬하게 희생하는 아버지. 괴물이 돌진하는 가운데, 자식들에게 가라는 손짓을 하며 죽음을 받아들일 때의 모습은 영원히 기록될 한국영화의 표정이었다.

2006년 영화 '괴물' 기자시사회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고 변희봉. 사진=스타뉴스DB

그러고 보니 그는 표정으로 기억되는 연기자였다. '선생 김봉두'(2003)에서 내내 무뚝뚝했지만 마지막에 봉두(차승원)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 때의 미소, '더 게임'(2007)에서 악마성과 비굴함을 오가는 얼굴, '주먹이 운다'(2005)에서 상환(류승범)을 단련시키는 박 사범의 바위 같은 느낌… 그는 '불어라 봄바람'(2003)의 낭만적인 노년부터 '시실리 2Km'(2004)의 음산한 기운까지, 특유의 보이스 컬러를 바탕에 다양한 표정을 입히며 변신했던 독보적인 캐릭터 배우였다.

'옥자'로 칸영화제 레드카펫을 밟은 후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칸영화제에 간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고목나무에 꽃이 피었다"고 이야기했던 배우 변희봉. 2020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했을 땐 "크게 내놓을 만한 것이 없는데 부끄럽다"고 했던 그는, 항상 겸손했고 성실했던 연기자였다. 그가 남긴 표정들을 떠올리며, 그의 명복을 빈다.

2017년 영화 '옥자' 개봉 당시 후배 스티브연 최우식과 함께 포즈를 취한 변희봉(가운데). 사진=스타뉴스DB

p.s. 떠올려 보니 변희봉 배우와 전화 통화를 했던 적이 있었다. 매니저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가 촬영 일정상 힘들다는 얘기를 들은 지 며칠 후였다. 배우는 직접 필자에게 전화를 하셔서 말씀하셨다. "우리 애(매니저)가 뭘 잘 모르고 인터뷰를 거절한 모양인데, 참 미안합니다. 요즘 촬영 일정이 있긴 한데 곧 끝나니까, 다시 한 번 요청 주시면 꼭 하겠습니다. 잘 모르고 그런 거니까 이해해주십시오." 그때가 뚜렷이 기억나는 건, 마치 '괴물'에서 아들을 감싸듯, '우리 애'라고 표현하시며 젊은 매니저의 행동을 변호하시던 따스한 말투 때문이다. 그의 연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인간적인 느낌은 이런 성정에서 비롯된 건 아니었을까? 다시 한 번 '배우 변희봉'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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