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주거 빈민’ 11억명…도시화·기후위기가 부른 재앙

신기섭 2023. 9. 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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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주거빈곤층 다시 증가세로
주거문제 풀면 1인당 GDP 최대 10% 늘어
시에라리온 수도 프리타운의 물가에 위태롭게 형성된 빈민가에서 한 소년이 알몸으로 물에 뛰어들고 있다. 프리타운/AP 연합뉴스

인간에 어울리는 주거 공간을 전혀 보장받지 못하는 ‘주거 빈곤층’이 세계적으로 11억명에 달하며 도시화 확산과 기후 변화 가속화에 따라 그 규모가 갈수록 늘고 있다. 유엔은 2050년까지 주거 빈곤층이 30억명에 이를 거라는 암울한 전망까지 내놓았다. 주거 불안은 빈민들의 삶을 고단하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 성장과 사회 통합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유엔의 ‘지속가능 개발 목표’(SDGs) 자료를 보면, 전세계 주거 빈곤층은 2000년부터 2014년까지 꾸준히 줄어왔으나, 그 이후 새 주택 보급이 도시화 추세와 인구 증가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2000년 전세계 도시 주민 중 빈민가 거주자 비율은 28%였으나 2014년에는 23%까지 줄었다. 14년 동안 도시의 주거 빈곤층이 20%가량 감소한 결과다.

하지만 이후 도시의 주거 빈곤층은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2018년에는 세계 도시 거주자의 23.5%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전세계 주거 빈곤층은 10억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80%는 동아시아·동남아시아(3억7천만명),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2억3800만명), 남아시아(2억2700만명)에 몰려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년 전에 비해 1억6500만명 많은 규모다. 유엔은 “2050년까지는 살기 적절한 주택을 구하지 못하는 인구가 30억명을 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런 주거 빈곤층 증가세는 코로나19 대유행 이전까지 소득 빈곤층이 꾸준히 준 것과 비교되는 양상이다. 경제 성장과 함께 세계 저소득층의 소득은 꾸준히 개선됐지만, 그 과정에서 도시 과밀화가 빨라지며 저소득층의 주거 환경이 다시 악화된 것이다. 유엔 인간주거계획(UN-HABITAT)의 마이무나 모드 샤리프 집행이사는 최근 “우리의 미래는 도시화”라며 “2050년까지는 도시 거주 인구가 인류의 70%까지 늘어갈 것으로 보여 도시의 빈곤과 빈부 격차 해소가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 도시화 확대와 함께 주거 빈민 급증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은 도시화와 함께 주거 빈곤층이 급속도로 증가한 대표 사례로 꼽힌다. 이본 아키소여 프리타운 시장과 조너선 렉퍼드 미국 주거개선 운동단체 ‘인류를 위한 해비타트’ 대표는 최근 세계경제포럼 누리집(홈페이지)을 통해 공개한 글에서 “프리타운 전체 주민 120만명 가운데 60%가 홍수·화재·산사태 위험이 큰 땅에 마구잡이로 형성된 비공식 정착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위태로운 주거지 확산 탓에 2017년에는 산사태로 1천명 이상이 숨지는 비극도 발생했다. 두 사람은 정부의 관리·감독 부재와 만성적인 주택 부족 때문에, 프리타운의 주택 가운데 약 40% 정도는 각종 사고 위험이 상존하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고 덧붙였다.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빈민가인 키베라 지역에서 지난 2월6일(현지시각) 불이 나 많은 주택이 잿더미로 바뀌었다. 나이로비/AP 연합뉴스

케냐 수도 나이로비의 거대 비공식 정착지인 키베라 지역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 지역에서 골함석으로 지어진 방 하나짜리 집을 빌려 살고 있는 비어트리스 오리요(34)는 톰슨로이터 재단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집 근처에 자녀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가 있느냐”는 질문을 받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그는 “여기에는 그런 시설 따위는 전혀 없다”며 “우리는 화장실조차 없어서 이용할 때마다 사용료를 내야 하는 공용 화장실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엌이자 거실인 동시에 침실이기도 한 한칸짜리 방에서 목욕까지 하며 산다”며 “여기서 놀이터라는 개념은 우스개처럼 느껴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지역에서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여성인 머시 아치엥(41)은 “좋은 공동체이고 이웃들이 서로 돕고 살지만, 사생활이라고는 없고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다”며 “땅 주인이 우리를 내쫓을 수도 있고, (철거용) 불도저가 들어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세계은행 자료를 보면 키베라 지역 거주민 25만명 중 대부분은 돈벌이를 위해 농촌에서 옮겨온 이들이다. 이들의 대다수는 ‘오토바이 택시’ 운전이나 경비원처럼 하루 벌이가 2달러(약 2600원)도 되지 않는 저임 노동에 종사한다. 게다가 이곳 주민들은 언제 정부의 단속에 걸려 쫓겨날지 모르는 위험 속에 살고 있다. 케냐 도시 주민의 절반 이상은 키베라처럼 무계획적으로 형성된 열악한 주거지에 모여 산다.

시에라리온이나 케냐가 겪는 주거 불안은 대다수 개도국이 비슷하게 직면한 문제이며, 상황은 조금씩 더 나빠지고 있다. 유엔 인간주거계획이 집계한 세계 78개 개도국의 주거 빈곤층 자료를 보면, 2018년 전체 국민 중 16.6%였던 주거 빈곤층은 2020년에 16.8%로 소폭 상승했다.

2020년 기준으로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사는 이들의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앙골라로, 전체 국민의 41.8%에 달했다. 아프리카 서부의 작은 섬나라 상투메프린시페(39.1%), 콩고민주공화국(35.8%), 이라크(35%), 라이베리아(33.3%), 베냉(32.9%), 모리타니(31%), 콩고(30%)도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주거 빈곤층이다. 아시아에서는 이라크 외에 파키스탄(20.8%), 방글라데시(19.8%), 아프가니스탄(19.1%)도 주거 빈곤층이 많은 나라로 꼽혔다.

페루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지난 5일(현지시각) 수도 리마의 부촌과 빈민가 사이를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철거되고 있다. 리마/EPA 연합뉴스

■ 경제 성장과 교육에도 막대한 영향

열악한 주거 환경은 단지 가난한 이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사회·경제 전반에도 광범한 영향을 끼친다. 영국의 정책 연구기관 ‘환경과 개발을 위한 국제연구소’(IIED)와 ‘인류를 위한 해비타트’는 최근 내놓은 ‘비공식 정착지의 주거 개선’ 보고서에서 주거 빈곤층의 주거 환경이 개선되면 경제 성장, 수명 연장, 교육 기회 확대 효과가 막대하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130건의 기존 연구 결과를 종합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통계 모형 분석을 실시해 이런 결론을 도출했다.

구체적으로, 주거 빈곤층에게 적절한 주거 시설을 제공하면 1인당 국민소득이 최대 10.5%까지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했다. 또 주민들의 건강이 개선되면서 평균 기대 수명은 2.4년(4%) 늘어날 것으로 봤다. 보고서는 “이는 전세계에서 한해 사망자 수를 73만8565명까지 줄일 수 있다는 뜻”이라며 “이 규모는 말라리아 박멸을 통해 구할 수 있는 사람 수보다 많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주거 환경 개선은 교육 기회 확대에 크게 기여해, 현재 전세계에서 교육 기회를 박탈당하고 있는 청소년의 16.1%인 4160만명이 추가로 학교에 다니게 되는 효과가 기대됐다.

보고서는 “현재의 주거 위기는 부적절한 주거 환경에 처한 세계 인구 10억명 이상의 요구를 해결해줄 행동이 시급함을 보여준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적절한 주거는 복지와 지속가능성을 위한 기반이 된다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주거 빈곤층의 삶이 더 나아진다면 모든 사람의 삶도 함께 좋아진다”며 지역·국가·국제 차원에서 주거 환경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삼는 게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아키소여 시장과 렉퍼드 대표는 “(이런 분석을 볼 때) 주거 문제를 짐으로 여기는 대신 기회로 바라본다면, 공동체의 건강과 교육, 경제적 성과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두 사람은 “많은 경우, 주거 환경 개선을 통해 얻는 경제와 인간 개발 측면의 이득이 비용보다 훨씬 크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빈민들의 주거 환경 개선을 위해서는 비공식 정착지 거주민들에게 거주지 토지 사용권을 보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주택 건축·개선 등을 위한 저금리의 대출금 지원책을 마련하고, 기후 변화 대응력을 갖춘 저비용 주택 개발에 대한 투자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기섭 선임기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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