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도자기 제작에서 동양을 앞선 이유

윤덕룡 전 한반도평화연구원장 2023. 9. 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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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셔터스톡

17세기부터 유럽 귀족들은 동양에서 수입된 도자기에 매료됐다. 영국의 동인도회사와 네덜란드가 중국과 일본에서 들여온 도자기는 왕족과 귀족들이 집집이 소장해야 하는 필수품이었다. 특히 18세기에는 중국에서 차가 수입되면서 차 접대 문화가 유행하며 도자기는 더욱 중요해졌다. 왕실이나 세력 있는 가문에서는 문장을 새긴 도자기를 주문 제작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중국 황실에서 사용하는 경덕진 도자기는 최고급으로 여겨져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할 정도였다.

윤덕룡전 한반도평화연구원장

도자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각국에서는 직접 도자기를 제작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당시 가장 열정적으로 도자기 제작에 노력을 기울인 사람은 작센대공국의 아우구스트(August) 2세였다. 작센의 군주이던 그는 영토를 넓히기 위해 전쟁을 벌이고 수도인 드레스덴을 번성시키려 화려한 건물들을 짓느라 애를 썼다. 전쟁과 대규모 건축 사업으로 막대한 자금이 필요했던 아우구스트 2세는 유럽 각국이 중국과 일본에서 수입하던 도자기를 제작하여 판매하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을 심어준 사람은 치른하우스(Ehrenfried Walter von Chirnhaus)라는 작센의 경제학자이자 과학자였다. 그가 제안한 작센의 경제정책 방향은 도자기의 연구와 개발이었다. 수입 대체 산업을 육성해 유럽 시장에 진출하려는 일종의 산업 정책을 제안한 셈이다.

아우구스트 2세는 연금술사로 알려진 화학자 뵈트거(Böttger)를 영입해 도자기 개발프로젝트를 맡겼다. 목표는 금보다 비싸다고 알려진 중국의 청화백자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중국 자기의 성분을 분석하고 요의 온도를 다양하게 실험하였을 뿐 아니라 화학적인 변화까지 고려한 연구 끝에 1710년 작센은 자기 제작에 성공했다. 작센이 자기 제작에 성공했다는 소문은 유럽 전역에 퍼져나갔고 각국은 이 기술을 알아내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산업스파이를 파견했을 뿐만 아니라 기술자를 빼가기 위한 공작도 서슴지 않았다. 아우구스트 2세는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해 사람의 왕래를 통제하기 쉬운 소도시 마이센(Meissen)의 알브레히트(Albrecht) 성에서 도자기를 제작하게 했다. 이 성은 외부인의 출입이 금지됐고 도공들은 외부로 나갈 수 없었다.

초기 마이센의 도자기는 중국, 일본의 도자기를 흉내 낸 것을 주로 만들었다. 그러나 점차 자신들의 개성이 있는 기술을 개발해 독자적인 자기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특히 상감기법을 적용한 조소 자기는 마이센 자기가 명성을 얻게 한 계기가 됐다. 이후 영국과 네덜란드가 자기 제작에 성공해 도자기 산업이 유럽에 확산하게 된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유럽의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도자기의 성질을 결정하는 원료와 암석 가루들의 배합 기준, 요의 온도와 소결 시간, 유약의 특성 등에 대한 지식이 체계화됐다. 그 결과 유럽의 도자기가 동양을 앞서게 됐고 각국이 저마다의 특징이 있는 도자기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우리나라도 경제개발의 후발 주자로 적극적인 산업 정책을 통해 고속 성장에 성공한 나라다. 한때 산업 정책을 국가의 시장 개입으로 비판하던 선진국들도 지금은 경쟁적으로 산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 같은 대국들은 가용 재원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경쟁에서 유리하다. 그렇지만 작센이 강대국들보다 먼저 도자기 개발에 성공했듯이 목표를 분명히 하고 적확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새로운 작센의 등장은 지금도 가능하다.

정부에서 내년 예산을 20년 만에 최소인 2.8% 증가한 656조9000억원을 편성해 발표했다. 건전재정이 중요하지만, 미래를 위한 투자는 줄이지 말아야 한다. 선진국과 경쟁해야 하는 지금은 국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전체 파이를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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