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려내는 ‘칼잡이 DNA’… 속전속결로 ‘공정 금융’ 쇄신[Leadership]

박정경 기자 2023. 9. 18.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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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adership - ‘최연소·첫 검찰출신’ 타이틀 이복현 금감원장
일·조직장악 ‘속도감’
취임때 ‘라임 재조사’ 등 언급
1년여만에 추가검사 결과 내놔
불공정 거래 엄단 강한 추진력
고의적 무차입 공매도 첫 적발
‘관치금융’ 논란
은행 독과점 구조 등 질타땐
“과도한 시장개입”비판받기도
증권업계, 잦은 조사 ‘피로감’
검사 출신 최연소 금융감독원장인 이복현 원장이 지난 7월 1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8차 금융규제혁신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이 원장은 사모펀드 재조사 등 금융권 비리 및 자본시장 불공정 거래에 대한 성역 없는 검사를 주도해 주목받고 있다. 뉴시스

3년 전 끝난 줄 알았던 ‘라임 사태’가 다시 살아났다. 칼끝을 되살린 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다. 취임 일성으로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재조사를 언급했던 이 원장은 1년여 만에 야당 국회의원에 대한 특혜성 환매 의혹, 펀드 횡령 자금 용처 파악에 주력한 추가 검사 결과를 내놓으며 검찰에 수사 단초를 제공했다. 논란의 정중앙에 선 증권사와 정치권은 금감원 재조사 후폭풍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 원장은 금감원 설립 이래 첫 검찰 출신 원장으로 사모펀드 재조사를 비롯해 금융권 비리 및 자본시장 불공정거래에 대한 성역 없는 검사와 거침없는 발표로 주목받고 있다. 취임 당시 금융 관련 직접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전문성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짧은 시간 내에 업계를 장악하고,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본인의 불출마 선언에도 불구하고,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 출마설은 좀처럼 꺼지지 않고 있다. 젊고 강한 리더십으로 금융권 쇄신과 개혁에 대한 기대감이 높지만 ‘임기’가 변수란 이야기가 나온다.

◇칼잡이 DNA, 불법행위 엄단…‘공정’ 향한 강한 리더십= 검찰 내에서도 ‘칼잡이’로 이름 높았던 이 원장은 검찰 특수부에서 체득한 자본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금융당국의 불공정거래 조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다. 여러 금융범죄 수사·검사 경험을 통해 실체 규명에 대한 자신감이 높고, 권력을 향한 수사에 거리낌이 없어 대규모 주가조작 사건 및 불법 공매도 등 불공정 거래 엄단에 강력한 추진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원장은 취임 후 기획 조사를 통해 공매도 연계 불공정 거래 혐의를 포착하고 고의적 무차입 공매도를 최초로 적발했다. 가상화폐 차익거래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되는 16조 원 규모의 금융권 해외 송금 사건도 적발해 발표했고, 사모 전환사채(CB)와 관련해 올해 상반기까지 14건의 중대 사건 조사를 마쳤다. 지난달 발표한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 재검사와 관련해선 ‘금융검찰’ 논란에도 펀드 판매사 검사에 착수, 원칙대로 조사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지난 4일 국회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자본시장을 훼손하는 사람들에 대해 엄정대응할 것”이라며 “일관되게 꾸준히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불공정 거래 엄단을 위한 ‘조직개편’도 과감히 추진하고 있다. 조사 프로세스와 인력 운용을 개선해야 조사·감독의 전문성이 제고되고, 강력한 추진력이 발휘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감원은 지난 6월 기획조사(제보·기획사건)·자본시장조사(거래소 사건)·특별조사국(테마주·복합·국제 등 특징적 사건) 체제를 조사 1·2·3국 체제로 전환했다.

기존에는 사건 유형별로 담당이 정해져 있었다면, 변경된 체제에선 조사 총괄팀에서 사건의 중요도 등을 감안해 1·2·3국에 균등한 비율로 배당하는 구조로 변환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형사 1부, 2부, 3부로 나뉜 검찰 조직 스타일을 금감원에 적용한 것인데, 이전과 달리 확실히 대응이 더 빨라진 측면이 있다”며 “부서 간 경쟁 체제가 갖춰지고, 큰 현안이 생겼을 때 유기적 협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최연소’의 힘, 빠르고 강력한 리더십=이 원장은 검사 출신 특유의 빠른 상황 파악을 바탕으로 금융권에서 단숨에 장악력을 키웠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연소’ 금감원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젊은 에너지로 속도감 있게 일을 처리해 금감원이 대외적으로 한층 강력해 보인다는 시선도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검사들은 수북이 쌓인 기록에서 사안의 핵심을 꿰뚫는 훈련이 잘돼 있어 배우는 속도가 빠르고 응용하는 능력이 뛰어난데, 이 원장도 본인이 워낙 똑똑하고 일을 열심히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장악력이 매우 빨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 원장은 금융시장 리스크에 신속하게 판단하고 대응했다. 지난해 강원도 레고랜드 채무불이행(디폴트) 사태 등으로 촉발된 자금경색 현상을 원활히 풀어낸 게 대표적이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발 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정부는 50조 원 이상 규모의 유동성 공급 프로그램을 가동했고, 결국 단기금융시장 안정 효과를 이끌었다. 흥국생명 사태 때는 흥국생명이 콜옵션을 행사하도록 직접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과 물밑에서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속하고 충분한 대응을 통해 자칫 금융위기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을 잘 관리했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이 원장에게는 ‘소방수’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성과·능력’ 원칙주의=이 원장은 지난해 8월 수시 인사와 연말 정기인사에서 부서장 전체를 물갈이했다. 공채 기수들을 주요 보직으로 올리고 이전 기관 출신 1960년대 후반생들을 지원으로 빼면서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이 과정에서 이 원장이 내건 키워드는 ‘성과’와 ‘능력’이다. 원활한 조직개편 정착을 위해 능력위주의 평가를 하고, 실력이 검증된 인재를 파격적으로 발탁했다. 업무능력과 리더십이 돋보이는 여성 국장을 본부 부서에 기용했고, 과거 부국장에서 실·국장으로 승진하던 관례를 깨고 팀장에서 곧바로 실·국장으로 승진시킨 사례가 나왔다.

내부에서는 환영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될 사람들이 됐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특히 미래세대인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좋은 평가가 많다고 알려졌다. 이 원장이 성과와 능력주의에 기반한 인사원칙을 고수하면서 결과적으로 조직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고 금감원의 전문성을 한층 끌어올렸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금감원 한 관계자는 “검사 출신에 대한 거부감을 오히려 인사 혁신과 인적 쇄신으로 돌파했다”며 “원칙주의 리더십의 훌륭한 본보기”라고 말했다.

◇강력한 카리스마, ‘시장 자율성 저해’ 우려도= 경제관료와 교수 출신의 금감원장에게서 볼 수 없었던 강하고 빠른 리더십을 보이는 이복현 체제의 금감원을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들도 존재한다. 모든 영역에서 긍정 여론만 있는 것은 아닌데, 우선 시장에선 관치금융 논란을 일으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은행과 금융지주사의 건전한 지배구조 및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이사회와의 간담회를 추진하고, 지배구조 부문에 대한 검사를 강화하고 있는데, 금융권에서는 금융당국이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여해 자율성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금융사를 상대로 한 상생금융 요구가 민간회사의 자유로운 영업활동을 제한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월 은행에 공공재적 성격이 있다며 ‘돈 잔치’는 안 된다는 말을 내놨다. 이후 이 원장도 은행의 독과점 구조를 비판하며 연일 쓴소리를 냈고 이는 은행권의 압박으로 작용해 ‘상생금융 방안’이 쏟아진 것으로 보는 시선이 많다. 증권업계에서도 잦아진 금감원 조사·감독에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내부에선 업무 강도가 높아진 점을 불만으로 제기한다.

하지만 이 원장의 행보는 대체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이 원장은 취임 후 받아본 첫 성적표에서 ‘A’를 받았다. 정부가 매년 실시하는 금감원 경영평가에서 7년 만에 A 등급이 나온 것이다. 이 원장이 취임 후 강조해 온 금융시장 안정과 상생금융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고금리 시대에 금융당국의 상생금융 압박은 금융산업이 사회와 국민경제에 기여하며 함께 성장하는 발판이 된다는 목소리가 더 높다.

◇총선출마설 ‘선 그어’=이 원장은 총선 출마설과 싸움 아닌 싸움을 계속 벌이고 있다. 그는 “(내년 총선에 출마하거나 정치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을 긋고 있지만, 대통령으로부터 높은 신임을 받고 있기도 하고 역대 금감원장 가운데 이렇게 높은 존재감을 보여준 이가 없었던 만큼, 금융권 안팎에서는 이 원장의 총선 출마 가능성을 점치는 이가 많다.

박정경 기자 verite@munhwa.com

회계사 자격·경제 특수통… ‘재계 저승사자’ 불리기도

이 금감원장은
윤 대통령과는 론스타 사건때 인연
민주당 검수완박에 사의 표명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공인회계사 시험과 사법시험을 모두 합격한 뒤 경제범죄 특수통 검사로 자리매김해 왔다.

회계사 자격을 가진 검사로 초년 시절부터 굵직한 수사에 참여했다. 2006년 론스타 펀드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이 그 시작이었다. 겨우 두 번째 임지에 있던 초짜 검사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 차출된 것은 검찰 내에서 파격 인사로 여겨졌다.

이후에도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 등을 비롯한 대형 금융·조세 범죄 수사를 담당했다. 특히 삼성 불법 승계 및 정권 로비 의혹 사건을 잇따라 수사하면서 ‘재계 저승사자’로 불렸다. 2019년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 회계 사건 수사를 진두지휘했다.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수사 중단 권고에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통해 경영권 부정 승계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2018년에는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 부부장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실소유 의혹 수사도 담당했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를 통해 삼성으로부터 거액의 뇌물과 소송비 등을 부당하게 받은 혐의를 받았다. 2016년 박영수 특별검사팀에서도 이 원장은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 수사에 관여했다. 이 부회장은 두 번의 영장 청구 끝에 구속 수사를 받게 됐다.

재계와 권력층을 상대로 한 수사에서 전관 출신 변호사들을 상대하며 ‘강골’ 성향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2017년 대학 선배이자 검찰 선배인 우병우 전 민정수석에 대한 구속영장을 세 번째로 다시 청구해 받아 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당론 채택에 반발하며 검찰 내부에서 처음으로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과는 론스타 사건 때 인연을 맺었다. 당시 중수부에 함께 있었던 멤버가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다.

△1972년 서울 △경문고 △서울대 경제학과 △공인회계사시험 33회 △사법시험 42회 △사법연수원 32기 △서울지검 남부지청 검사 △전주지검 군산지청 △법무부 법무과 △서울중앙지검 △춘천지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 파견 △서울중앙지검 부부장 △춘천지검 원주지청 형사2부장 △서울중앙지검 특수4부장·반부패수사4부장·경제범죄형사부장 △대전지검 형사3부장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장 △금융감독원장

김지현 기자 focus@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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