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물 토종 생물 씨말리는 미국가재, 영산강 점령
지난 13일 전남 나주시 나주호 인근 습지. 전날 설치한 통발을 들어 올리자 집게발을 치켜든 몸길이 10㎝의 새빨간 가재가 쏟아졌다. 미국 루이지애나주(州)가 원산지인 미국가재다. 뜰채를 휘저을 때마다 새끼 미국가재 수십 마리가 잡혔다. 닥치는 대로 먹어치워 2019년 국내서 생태 교란종으로 지정됐는데 야생에서 무더기로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가재는 2018년쯤 영산강 일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정확한 국내 유입 시기와 경로는 알 수 없다. 누군가 과거 관상용 등으로 들여와 몰래 버린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영산강 일대를 점령하고 있다. 지난해 영산강 유역 ‘퇴치 사업’에서만 1만1433마리가 잡혔다. 2021년의 3900여 마리의 3배 가까이로 늘어난 것이다. 지난 7월에는 금강 수계인 천안시 하천에서도 발견돼 비상이 걸렸다.
미국가재는 민물고기와 새우류, 다슬기 등 입에만 들어가면 닥치는 대로 먹는다. 같은 가재도 잡아먹는다. 몸길이 5~6㎝인 갈색 토종 가재와 달리 최대 15㎝까지 자란다. 가재 전염병을 일으키는 ‘물곰팡이균’을 퍼뜨려 토종 가재를 고사시킬 수도 있다. 유럽·일본 등에서도 악성 외래종으로 지정됐다. 이날 미국가재 서식지 3곳 중 한 곳에선 각시붕어와 미꾸리, 납지리 같은 토종 어류가 발견됐다. 김수환 국립생태원 박사는 “이 근처에만 수생생물 20여 종이 살고 있을 것”이라며 “미국가재의 영향이 우려된다”고 했다.
미국가재는 사람에게도 직접적 피해를 준다. 제방에 구멍을 뚫기도 하고 양식장 등에 침입해 치어도 잡아먹는다. 이탈리아에선 2015년 기준 손상된 관개수로의 약 30%가 미국가재 때문이란 연구 결과도 나왔다. 지난 2000~2020년 미국가재가 전 세계에 입힌 경제적 피해가 380만달러(약 50억4260만원)에 이를 것이란 논문이 작년 국제 학술지 ‘종합환경과학’에 실렸다.
미국가재는 생존력이 뛰어나 퇴치도 어렵다. 40도 수온에서도 살고, 영하 60도에서 2시간 급속 냉동을 했는데도 해동하면 살아난다고 한다. 논두렁·저수지뿐 아니라 염분 있는 물에서도 살 수 있다. 물기가 없어도 4개월쯤 생존한다.
일각에선 “먹어 없애자”며 야생 미국가재를 요리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미국가재 종류가 중국에선 ‘마라룽샤(볶음 가재 요리)’ 재료로 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잘 익히지 않으면 폐디스토마 등에 감염될 위험이 있다고 한다. 양식으로 키운 중국의 식용 가재와 무엇을 먹었을지 모르는 야생 미국가재는 다르다는 것이다. 생태 교란종이라도 빗살무늬메뚜기(농작물 피해) 등은 방재가 가능하지만, 미국가재는 통발 등으로 일일이 잡아내야 한다. 물에 함부로 약을 뿌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최근 악성 외래종의 국내 유입은 계속 늘고 있다. 중국 남부가 원산지인 등검은말벌은 꿀벌을 잡아먹어 양봉 농가에 큰 피해를 준다. 지난달 부산항에서 150여 마리가 발견된 붉은불개미는 노약자나 어린이가 쏘이면 치명적일 수 있다. 토종 치어를 잡아먹는 배스와 블루길(파랑볼우럭)은 국내 하천·호수를 점령한 지 오래다. 국립생태원 관계자는 “외래종 확산은 생태계뿐 아니라 우리 생활에도 바로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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