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의 인문학이 필요한 시간] 살짝 감추는 애틋함에 오늘도 옛시 하나 머리에 베고 잠든다

2023. 9. 17.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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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만나는 옛시

◆ 매경 포커스 ◆

게티이미지뱅크

옛날 시는 요즈음의 시와는 달랐던 것 같다.

옛 시들에는 깊은 애틋함이 있었다. 옛 시에는 마음만 먹으면 메시지나 전화로 실시간 연락이 가능한 지금 사람들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절정의 그리움'이 담겨 있다. 기막힌 은유 속에 숨어 있는 그 애틋함은 단 몇 줄만으로도 우리의 정서를 뒤흔든다. 대놓고 말하기보다는 살짝 감추는 행간의 미학이 융성하던 시절 그들의 시에는 놀라운 파장이 담겨 있었다.

또 하나, 예전의 시는 노래에 가까웠다. 감상에 젖은 지식인들의 여흥의 총체가 시였고, 현실적 판단으로는 답을 내릴 수 없는 모든 예사롭지 않은 감정들의 발현이 시였던 것 같다.

물론 지금 곧바로 노래가 될 수 있는 시를 요구한다는 건 어려운 일이다. 노래 가사는 따로 창작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감당할 수 없이 분화되어버린 현대사회를 담아내기 위해 시의 형태는 복잡하고 난해한 형태로 진화했다.

하지만 가끔 옛 시를 읽으면 시가 노래였던, 그것이 가능했던 시대의 감흥을 만나는 기쁨을 얻게 된다.

퇴계 이황이 쓴 '도산월야영매(陶山月夜詠梅)'라는 시를 가만히 읽어보자. 기품과 아름다움이 절절하게 묻어나는 시다.

"뜰 가운데 거니는데 달은 날 따라오고/ 매화 둘레 몇 번이나 서성이며 돌았던고/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설 줄 몰랐더니/ 향기는 옷깃 가득, 그림자는 몸에 가득."

현대시론에서 운운하는 회화성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는 명시다. 달빛 아래 매화꽃을 서성였더니 매화향기와 달 그림자가 몸에 배었다는 이야기다. 고결하면서도 산뜻한 명품이다.

우리의 옛글에는 특유의 미학이 있다. 바로 '한(恨)'이라 불리는 감정이다.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트로트 가수 송가인이 불러서 유명해진 노래가 '한 많은 대동강'이다. 송가인은 토로트 경연 프로그램 첫 무대에서 이 노래를 불러 심사위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한 많은 대동강' 2절 가사에 이런 대목이 있다.

"대동강 부벽루야 뱃노래가 그립구나

귀에 익은 수심가를 다시 한번 불러본다."

여기서 나오는 수심가(愁心歌)의 가사도 원래는 시였다. 수심가가 탄생한 곳은 대동강변이다. '근심하는 마음의 노래'인 수심가는 평안도와 황해도에서 많이 불렸던 전통 서도소리 중 대표적인 노래다. 임에 대한 그리움, 인생의 허무함과 근심을 노래한 수심가는 지역에 따라, 소리꾼에 따라,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 가사로 불렸고, 그 장단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그러나 어디서 누가 부르든 수심가에 반드시 들어가는 공통적인 시 구절이 있다.

"약사몽혼행유적이면 문전석로반성사"라는 구절이다. 이 구절은 조선시대 이옥봉이라는 한 많은 여인이 지은 한시 '몽혼(夢魂)'의 일부분이다.

요즈음 우리님은 어찌 지내시는지요(近來安否問如何)

달빛 드는 창가에 소첩의 한이 깊어갑니다(月到紗窓妾恨多)

만약 꿈속을 오갔던 넋이 자취를 남겼다면(若使夢魂行有跡)

당신의 집 앞 돌길은 반쯤 모래가 되었을 겁니다(門前石路半成沙)

정말 놀랍고 힘 있는 상상력이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밤이면 밤마다 넋이 되어 보고 싶은 님을 찾아갔을까. 님의 집 돌계단이 가루가 될 정도로 찾아갔으면 도대체 얼마나 그리워한 걸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우리 조상이 쓴 연시(戀詩) 중 최고의 압권 아닌가 싶다.

이옥봉은 조선 선조 때 선비 이봉의 서녀(庶女)로 태어났다. 그는 첩의 자식이었지만 어려서부터 총명했고 글솜씨가 뛰어났다.

하지만 서얼 차별이 심했던 조선시대 그의 운명은 녹록지만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서얼들은 양반가에 정실로 시집을 갈 수가 없었다. 당차기 이를 데 없었던 이옥봉은 어차피 정실로 가지도 못할 바에야 남편만큼은 내가 직접 고르겠다고 부친에게 고집을 부린다. 그때 그의 눈에 든 남자가 조원이었다. 율곡 이이와 같이 과거에 응시해 1등을 한 인물이다. 당시 율곡은 생원시에서 1등을, 조원은 진사시에서 1등을 한다.

조원의 첩이 된 이옥봉은 재능과 명석함으로 총애를 받는다. 조원은 부임지로 갈 때마다 본처가 아닌 옥봉을 데리고 갔다. 하지만 조원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당시는 서인과 동인의 권력 다툼이 극에 달하던 시절이었다. 처지가 위태로웠던 조원은 이옥봉과의 관계가 관직에 영향을 줄까 노심초사하다 그를 멀리하게 된다. 조원으로부터 내침을 당했지만 이옥봉의 사랑은 변치 않았다.

친정으로 돌아간 이옥봉이 지은 애절한 시가 바로 '몽혼'이다. 이옥봉은 임진왜란 무렵 사망한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조 천재 여성 시인 중 또 한 명 허난설헌을 빼놓을 수 없다. '연 따는 노래(采蓮曲)'라는 시를 보자.

해맑은 가을 호수는 옥처럼 새파란데(秋淨長湖碧玉流)

연꽃 우거진 곳에 난초배를 매었네(荷花深處繫蘭舟)

물 건너 님을 보고는 열매 따서 던지곤(逢郞隔水投蓮子)

행여나 누가 봤을까 반나절 부끄러웠죠(遙被人知半日羞)

얼마나 상큼한가. 직설적인 표현이 난무하는 현대의 어떤 사랑시보다도 산뜻하고 명료하지 않은가?

본명이 허초희(許楚姬)인 허난설헌은 조선 중기 문신 허엽의 딸이자 허균의 누나였다. 허난설헌과 허균은 서자였다. 좋은 교육을 받았지만 여성 차별과 서자라는 현실이 그를 가로막았고, 결혼 생활마저 무난하지 못했다. 그의 유일한 낙이 시였다. 허난설헌은 한국사에서 최초로 문집을 간행한 여성 시인이다. 남동생 허균이 발행한 그의 문집은 당대와 사후에 명나라와 일본에서 크게 인정받았다. 중국 사신들이 조선에 오면 앞다퉈 그의 문집을 구해갔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불행했지만 그의 뛰어난 시문들은 남아 우리를 위로해 준다.

옛 시를 떠올릴 때 꼭 등장하는 중국 시인들이 있다. 두보와 이백이다.

'꽃잎 한 조각 날려도 봄은 줄어들거늘/ 바람 불어 만 조각 꽃잎 날리니 진정 사람 시름겹게 하네/ 지려 하는 꽃이 눈을 스치는 것 잠시 바라보고/ 몸 상한다 하여 술이 입에 들어감을 마다하지 말리라/ 무엇 하러 헛된 명예에 이 몸을 얽어매리오'

시성(詩聖)이라고 불리는 당나라 시인 두보의 시 '곡강(曲江)'이다. 두보는 봄이 온 기쁨보다 떨어지는 꽃잎에 아련한 미련을 갖는다. 결국 두보가 다가가는 건 끝도 없는 허무다. 그러나 허무도 허무 나름, 두보의 허무는 너무나 처연하고 아름답다.

이것이 옛 시들의 매력이다. 전문가들은 옛 시들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쓰는 시라고 말한다. 이태백의 시도 마찬가지다. 이태백이 살았던 시대는 혼란스러웠다. 끝없는 전쟁으로 국가는 피폐했고, 뜻 있는 지식인들은 정쟁에 휘말려 유랑을 떠나야 했다. 현실의 울분을 삭일 수 없었던 지식인들은 자연과 시와 술을 벗 삼아 생을 위로했다.

시선(詩仙)이라 불린 이태백의 시 중에 '달빛 아래서 홀로 술을 마시다(月下獨酌)'라는 것이 있다.

"꽃밭 가운데 술 한 병 놓고/ 벗도 없이 홀로 술을 마신다/ 술잔 들어 밝은 달 맞이하니/ 그림자 비쳐 셋이 되었네/ 저 달은 본래 술 마실 줄 몰라/ 그림자로 그냥 흉내를 낼 뿐/ 잠시 달과 그림자를 벗하여/ 봄날 한때를 마음껏 즐기련다/ 내가 노래하면 달은 서성거리고/ 내가 춤추면 그림자도 따라 어지럽게 춤춘다/ 취하기 전엔 함께 즐기지만/ 취한 뒤에는 각기 흩어지리니/ 정에 얽매이지 않는 인연이여/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막힌 시다. 시인은 혼자 술을 마신다. 그러나 혼자가 아니다. 하늘을 보니 달이 떠 있고, 달빛 때문에 그림자가 생겼다. 달과 그림자 그리고 나, 그러니 셋이서 술을 마시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도 외롭지 않다. 술자리가 끝나면 셋은 정에 얽매이지 않고 '쿨'하게 헤어진다. 아득한 은하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원하며….

이백이나 두보 이외에도 동양 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시들은 무수히 많다.

"작년 오늘 이 문안에서/ 사람과 복사꽃이 서로 붉게 빛났지/ 사람이 간 곳 알 수 없건만/ 복사꽃은 여전히 봄바람에 미소 짓네."

당나라 때 최호라는 시인이 쓴 '도성 남쪽 교외에서 짓다'라는 시다. 시인은 어느 해 청명날 우연히 한 수줍은 소녀를 만난다. 가슴속에 늘 그 소녀를 간직하고 살다가 몇 해가 지나 소녀의 집을 찾아갔지만 소녀는 없었다. 시인은 소녀 집 벽에다 이 즉흥시를 써놓고 떠난다.

한자로 쓰여진 옛시들을 읽으면 탁월한 은유의 미학을 만나게 된다. 뜻글자가 가진 매력이다. 작은 걸 이야기하는 듯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깊어지는 그 자기장이 새삼 놀랍다.

1100년 전 한나라 때 지어진 작자 미상의 시 한 수를 읽어보자.

"가고 또 가며/ 님과 이별했지요/ 수만리를 떨어져/ 각기 하늘 끝에 있지요/ 길은 멀고 가로막혀 있으니/ 만날 날 어찌 알 수 있으리/ 북쪽 말은 북풍을 따르고/ 월나라의 새는 남쪽 가지에 깃들이네/ 헤어진 날이 길어질수록/ 옷은 나날이 헐렁해지네/ 뜬 구름이 밝은 해를 가려/ 떠난 님 돌아오지 못하네/ 님 그리다 늙어 가는데/ 벌써 한 해가 저무는구나/ 나 버림받은들 다시 말하지 않을 터/ 님은 끼니 거르지 마소서."

제목이 '가고 또 가다'라는 이 시는 가슴 뭉클하다. 전화도 없었을 테고 교통도 여의치 않던 시절에 사랑하는 한 사람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심정이 놀라운 비유로 드러나 있다.

특히 오랜 세월 기다림에 야위어가는 자신을 표현한 부분은 더 이상의 은유가 있을까 싶을 정도다 . 손가락 몇 개만 움직이면 휴대폰과 누구와도 소통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인들은 늘 기다림에 패배한다. 기다리고 기다리다 그 기다림마저 뛰어넘는 미학을 모르고 살고 있는 것이다.

옛 시를 읽다보면 기다림을 잃어버리고 인내심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무엇이든 눈앞에 실시간으로 데려다주는 테크놀로지는 과연 우리를 행복하게 해줬는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오랜 기다림과 오랜 그리움이 가져다줬던 그 기쁨과 감동이 그리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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