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인데, 집이 아니라네요”…생숙 ‘벌금 폭탄’ 앞두고 아우성

조성신 매경닷컴 기자(robgud@mk.co.kr) 2023. 9. 17.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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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숙 오피스텔 용도변경 이행강제금
부과 유예기간 10월 14일 종료
용도변경 안 된 생숙 거주 땐
시세 10% 수준 이행강제금 부과
생활숙박시설 견본주택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부동산시장에서 생활형 숙박시설(이하 생숙) 관련 논란이 시끄럽다.

16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생숙은 건축법상으론 소유자가 직접 거주할 수 없는 숙박시설이지만, 설계가 아파트와 유사해 실제로는 주거 용도로 사용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정부가 오는 10월 중순부터 숙박시설로 사용하지 않는 생숙에 대해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기로 하면서 최근 사회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앞으로 약 한달 뒤면 전국 10만여 가구의 생숙 소유자가 수천만원의 이행강제금을 물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같은 상황은 그동안 생숙이 정부 부처 간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17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생숙이 주택과 달리 법적 규제를 받지 않는다는 지적에 2021년 뒤늦게 규제에 나섰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지방자치단체 등이 일관된 관리시스템이 없어 따로 관리하면서 시장 혼란을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는 건축법에 따라 소방시설, 주차면적 등을 규정한다. 복지부는 공중위생관리법에 따라 숙박시설 운영을 관리한다. 이런 구조에서 지자체가 생숙 거주자도 전입신고를 받아주면서 주거가 합법적이라고 오해하게 됐다.

사업자 ‘분상제 회피’ 투자자 ‘단타 차익’…생숙 판매 급증
경기도 남양주 별내지구에서 공급된 생활숙박시설 견본주택을 찾은 내방객들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생숙은 2000년 초반에 유행한 ‘서비스드 레지던스’가 모태다.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외국인 등 장기 체류자를 위해 호텔식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아파트처럼 취사도 가능한 신개념 상품으로, 당시 임대업을 원하는 투자자들 사이에 큰 인기를 누렸다.

그러나 명확한 법적 분류체계 없이 등장한 ‘변종상품’이다 보니 문제가 됐다. 호텔식 영업이 확산하면서 2006년 호텔업계가 ‘불법 숙박 영업’을 이유로 서비스 레지던스 사업자들을 검찰에 고발했고, 법정 다툼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결국 2012년 보건복지부는 공중위생관리법 시행령을 개정해 숙박업을 취사설비 설치 금지 여부에 따라 ‘일반숙박업’과 ‘생활숙박업’으로 세분화했고, 취사가 가능한 레지던스는 생활숙박업으로 규정했다.

이후 서비스드 레지던스는 ‘생활형 숙박시설’이라는 이름으로 공식 명칭이 바뀐다. 주택 경기 침체기에 고수익 분양형 호텔로 명맥을 이어온 생숙은 2017년 공공택지인 남양주 별내지구를 시작으로 여수 웅천지구, 부산 북항 재개발 구역 등에 ‘주거가 가능한’ 시설로 분양이 이어졌다.

특히 집값이 다락같이 올랐던 2020년과 2021년에 본격적인 ‘주거시설’로 홍보되며 분양 물량이 급증했다.

부동산 디벨로퍼는 당시 아파트에 적용되는 분양가 상한제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분양가 심사 규제 등을 피해 생숙이나 오피스텔로 눈을 돌렸다. 숙박시설인 생숙은 오피스텔보다 건축기준이 까다롭지 않아 안팔리는 상업용지 등을 활용해 개발업체가 고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상업용지에 건축법상 기준만 맞으면 공공택지나 재개발 구역 등 가리지 않고 생숙의 인허가를 남발했다. 건축법상 주택이 아닌 만큼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업계는 2020∼2021년 2년 동안 전국적으로 분양된 생숙만 약 2만실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약통장 없이도 누구나 분양받을 수 있고, 당첨 즉시 분양권 전매가 가능하다는 점 때문에 “억대 프리미엄이 가능하다”며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수요들이 대거 생숙 견본주택으로 몰렸다.

전입신고가 가능하고, ‘주거’가 가능하면서도 집은 아니어서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다. 다주택자의 경우 양도소득세 중과 대상에서 제외되고,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에서도 빠져 당시 세금 폭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집도 아니고 숙박업도 아닌 듯한 변칙적인 상품이 법의 사각지대를 이용해 주거시설로 둔갑한 채 팔려나간 것이다.

문제는 건축법상과 공중위생관리법상 엄밀히 숙박시설이고, 따라서 소유자가 집처럼 직접 거주할 수 없는 데도 지자체와 정부는 누구도 제대로 관리하거나 분양을 제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디벨로퍼와 건설·분양 업체들은 계약서나 분양 모집공고에 ‘숙박시설’로 명시해놓고선 실제론 주거가 가능하다고 홍보했다.

정부 ‘뒷북’ 규제로 이행강제금 대상 10만여실 발 동동
지난달 25일 국토부 앞에서 시위에 나선 전국주거형레지던스연합회 [사진 = 연합뉴스]
2020년 국정감사 당시 ‘불법 주거’라는 지적이 나오자 국토부는 규제책 마련에 착수했다. 이미 분양된 생활숙박시설을 계속 집처럼 사용하고 싶다면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꿀 것을 제시하며 2년의 유예기간을 줬다.

생숙 소유자와 거주자들은 정부가 유예해줬다고 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규제라고 항변한다. 생숙을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하려면 분양자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데다 주차장과 복도 폭 등의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건물을 새로 짓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그 이행강제금 부과 시기가 다음달 15일부터로, 불과 한달 밖에 남지 않았다. 이행강제금 규모는 공시가격의 10%로, 공시가격이 10억원짜리 생숙이라면 연간 이행강제금이 1억원에 달한다.

생숙을 집처럼 쓰던 소유자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한국부동산개발협회에 따르면 현재 건축돼 운영 중인 생숙은 전국적으로 10만3000실에 이른다. 이중 지난 2년 동안 오피스텔로 변경을 마친 곳이 1.1%(1173가구)에 불과하다.

생숙 소유자들은 오피스텔로 전환하려면 건축기준을 맞춰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반발한다. 김태규 전국레지던스연합회 총무는 “오피스텔 기준의 주차장과 통신실, 방화설비, 피난계단 거리 등을 갖추려면 아예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어야 할 판”이라며 “숙박시설을 오피스텔로 전환하려면 지구단위계획도 변경해야 하는데 이 또한 하늘의 별따기”라고 토로했다.

건축법 소관 부처인 국토부는 생활숙박시설이 원래 숙박시설이고 주거시설로 이용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법이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주거시설로 인정해주면 인근 지역 주차난과 과밀학급 문제를 유발해 법을 지키는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된다는 설명이다. 또 복도 폭과 소방 기준 등은 안전과 관련이 있어 규정을 완화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앞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강대식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생활형 숙박시설 용도변경 건수가 적은 것 이유를 묻자 “발코니라든지 주차장 등 건축상 요건을 채우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원 장관은 오피스텔로의 변경 조건 자체가 까다롭다는 점에는 동의를 하면서도 추가적인 규제 완화 등은 ‘형평성’ 탓에 어렵다고 강조했다. 그는 “취지는 취사가 가능한 숙박업을 하도록 된건데, 실제로는 집값이 폭등하는 시기에 주택확보하는 수단으로 쓰여지다 보니까 그 과정에서 주차장 요건 학교부지 공공부담을 안 한채로 진행이 됐다”며 “누구는 시간이 지나면 합법화 해주는거냐하는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토부 요구대로 숙박시설로 등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최소 30가구를 모아서 위탁업체에 맡겨야 하기 때문이다. 숙박시설로 등록했다 해도 생활숙박시설에서 집처럼 거주할 수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실제로 숙박시설로 운영되는지는 복지부가 관리하며, 실제 점검은 지자체에서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변종 건축물이 횡행하는 동안 명확한 법적 설명 미비, 관리 부실 등의 책임이 있는 정부와 지자체가 현실적인 구제 방안을 만들어서 혼란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과거 오피스텔이나 기숙사도 주거시설이 아니었지만, 주거로 쓰는 수요가 늘면서 양성화된 것을 사례로 든다.

이미 다 지어진 생숙에 대해 규제를 소급하는 것은 문제라는 견해도 있다. 생숙은 과거에 거주를 금지하는 명확한 기준이 없었던 만큼 주택에 필요한 학교 등 기반시설 비용 일부는 입주자에게 부담시키되, 이행강제금은 최소화하는 등의 구제책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게 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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