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장으로 뛰쳐나온 클래식 “세살 아이도 춤추며 뛰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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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외 무료 클래식 열풍
지난 8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 월드컵공원 난지연못 수변에 산책 나온 사람들은 뜻밖의 경험을 했다. 호수와 숲이 어우러진 그림 같은 풍경 속에 피아니스트 김도현의 리사이틀이 열린 것. 마포문화재단이 5일 시작한 M클래식축제 프로그램 중 유일한 야외 무료 공연 ‘문 소나타’였다.
청와대 헬기장서도 클래식 공연
야외 콘서트가 처음이라는 김도현은 “시원해질 무렵 멋진 곳에서 연주할 수 있어서 뜻깊었다. 안내방송과 습기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공연장에서도 변수는 늘 있고, 오히려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마포문화재단 송제용 대표는 “올해 재단이 처음 선정한 ‘M아티스트’인 김도현씨를 더 많이 보여주려고 야외공연을 추진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라이징 스타인데 예상 외의 호응에 놀랐다”고 말했다.
청와대 헬기장도 클래식 공연장이 됐다. 지난 주말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는 ‘2023블루하우스 콘서트’가 포문을 열었다. 피아니스트 선우예권과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등이 출연하는 K클래식 콘서트로 꾸며졌다. 문체부는 11월까지 청와대 야외 콘서트를 지속할 계획이다.
문턱 높은 실내 공연장에서 즐기던 클래식이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익숙한 트렌드다. 1997년부터 날마다 열리는 오스트리아 빈의 쇤브룬 궁전 콘서트, 뉴욕 센트럴파크 등지에서 여름마다 열리는 뉴욕 필의 ‘콘서트 인 더 파크’, 베를린 필의 발트뷔네 콘서트 등 명성있는 야외 클래식 공연이 많다. 1946년 시작된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페스티벌은 호반에 무대를 띄워 놓고 한 달간 같은 오페라를 공연하는데, 인구 2만 명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 매년 25만 명이 찾아온다.
서울을 문화예술 중심도시로 만들겠다는 정책 방향도 한몫 하고 있다. 여의도공원에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추진하는 등 시의 문화 인프라를 강화하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은 최근에도 SNS를 통해 “모든 사람이 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면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서울시향도 최근 야외 공연을 여럿 개최했다. 지난달 말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서 공연된 박물관문화향연 ‘2023 서울시립교향악단 파크콘서트’는 올해 신규 기획인데, 현재 뉴욕 필 음악감독으로 현지에서 ‘콘서트 인 더 파크’도 지휘한 시향의 차기 음악감독 얍 판 츠베덴이 이끌었다. 코플랜드 ‘보통 사람을 위한 팡파르’ 등 대중적인 곡들을 판 츠베덴이 직접 선곡하고, 앵콜곡으로 애국가를 연주해 객석을 전원 일으켜 세웠다. 서울시향 손은경 대표는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는 일은 시향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했고, 관객들은 “엄숙한 공연장과 달리 친구와 얘기도 하고 촬영도 할 수 있어 좋았다” “3살 아이와 같이 클래식 공연 관람은 불가능한데, 아이도 신나서 춤추며 뛰어놀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광장 오페라에 시위대도 소리 줄여
10월 14일부터 22일까지 주말 총 4회에 걸쳐 무료로 펼쳐지는 대형 이벤트인데, 노들섬을 ‘글로벌 예술섬’으로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서울시의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에 발맞춘 프로그램이다. 13일 티켓이 오픈되자 발레 15초, 오페라 33초 만에 오픈 수량이 전부 매진될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시대를 초월한 고전’을 표제로 본격 클래식 2편을 대규모 공동작업으로 선보이는데, 국내 최초로 도전하는 야외 전막 발레의 성공 여부에 이목이 쏠린다. 유니버설 발레단과 발레STP협동조합이 함께 제작하는 고전발레의 대명사 ‘백조의 호수’(10월 14~15일)다. 올해 발레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브누아 드라 당스를 수상한 강미선을 비롯해 이현준·홍향기 등 유니버설발레단 간판스타들이 중심에 선다. 습한 야외에서 무용수들의 미끄럼 방지, 한강철교를 지나가는 KTX 소음 발생 등이 과제긴 하나, 달밤 호숫가를 배경으로 하는 ‘백조의 호수’를 실제 수변에서 감상할 특별한 기회에 방점이 찍힌다.
‘백조’가 비극의 대명사라면, 오페라 ‘세비야의 이발사’(10월 21일~22일)는 가볍고 대중적인 오페라 부파의 정수와 같은 즐거운 무대다. 뉴욕 메트 오페라 주역에 빛나는 프리마돈나 박혜상을 비롯해 표현진 연출, 김건 지휘 등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젊은 예술가들로 프로덕션을 꾸렸다.
서울문화재단 이창기 대표는 “클래식 음악이나 무용은 티켓 가격도 비싸고 일반시민이 특별한 기회가 아니면 접근이 쉽지 않아 관람률이 떨어지지만, 이번에 세계 정상급으로만 출연진을 꾸려 시민에게 수준 높은 예술을 맛보여 주려 한다”면서 “앞으로 전통예술 등으로 장르를 더욱 확대해 기초예술분야 성장 기회로 삼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외 공연의 홍수는 오랜 세월 성역 안에 머물던 클래식이 접근성을 높이고, 폐쇄적이었던 예술가들도 대중에게 적극 구애에 나서게 된 현상으로 볼 수 있지만, 향후 관광상품 개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 공연평론가 한정호 에투알클래식&컨설팅 대표는 “최근의 야외 무료 공연 트렌드는 클래식을 고급예술로 상정하고 이를 대중화하겠다는 문화 향유 철학에 머물고 있다”면서 “전통의 이탈리아 베로나, 프랑스 오랑주 뿐 아니라 이탈리아 마체라타 페스티벌, 키프로스 파포스 아프로디테 페스티벌처럼 관광객 유치에 올인하는 신흥 야외 오페라의 성공을 참고한다면 기대효과를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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