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함·문제 전제한‘치유’를 전복하다[책과 삶]
눈부시게 불완전한
일라이 클레어 지음·하은빈 옮김
동아시아 | 376쪽 | 1만8000원
시인, 교육자, 활동가이자 젠더퀴어, 뇌성마비 장애인인 일라이 클레어는 자신이 “망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단순한 진실”을 강조한다. 자신은 ‘부자연’스럽지도 ‘결함’이 있지도 않다고 말하며, 어눌한 발음이 없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 클레어는 일갈한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의료적·과학적·학술적·국가적 권한을 등에 업은 백인, 부유층, 비장애인, 남성들은 얼마나 많은 집단을 선천적으로 결함이 있다고 공표했던가?”
클레어는 ‘치유’(cure) 개념에 끈질기게 반발한다. 병을 치료해 더 나은 상태로 만든다는 뜻의 치유는 결함이나 문제가 있는 상태를 전제한다. 클레어는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낯모르는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다가와 자신을 부둥켜안고 연민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라니. 그래서 클레어는 “장애는 마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사로 없는 계단에, 시각장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점자와 오디오북의 부재에, 난독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직된 교육 방식에 있었다”고 말한다. 같은 맥락에서 낙마 사고로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뒤 온갖 임상시험으로 이를 ‘극복’하려 한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를 비판한다.
클레어는 치유 개념이 현대의 가치 체계 곳곳에 뿌리내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장애 선별적 임신 중지, 피부 미백 크림 등이 그 사례다. 김은정 시러큐스대 부교수는 해제에서 “<눈부시게 불완전한>은 소수자 경험의 초국가적 공통성에 대해 안내하는 책이나 소수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미국의 권력 구조와 존재 기반에 저항하고, 그를 통한 완전한 사회변화를 기획하는 책”이라고 소개했다. ‘눈부시게 불완전한’(Brilliant Imperfection)은 책의 핵심 정서를 관통하는 정확하고 아름다우며 자부심 넘치는 제목이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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