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면접 같이 가야하나…” 구인구직 미끼 범죄에 부모들도 ‘불안’ [미드나잇 이슈]

김희원 2023. 9. 14.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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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라 강력범죄 이용된 일자리 중개앱
‘고액 알바’ 미끼로 성범죄·사기 등 기승
불안한 시민들 “알바도 마음대로 못해”
“개인 공간 면접 피하고 경각심 가져야”

고교 3학년생 딸을 둔 강모(48)씨는 최근 아르바이트(알바)를 하려던 젊은이들이 잇따라 강력범죄에 희생된 사건을 보며 걱정이 생겼다. 아이가 대학생이 되면 꼭 스스로 돈을 벌어보고 싶다고 했는데 혹시 안좋은 일을 겪을까 벌써부터 불안해서다.

강씨는 “아직 세상을 쉽게 믿을 어린 나이의 친구들이 계속 안타까운 일을 당해 너무 화가난다”면서 “용돈벌이 겸 사회경험 삼아 아르바이트를 해보는 건 좋다고 생각하는데 (구인업체를) 믿을 수가 있겠나. 아이가 나중에 알바 면접을 본다고 하면 따라가야하나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최근 온라인 구인구직 활동을 살인, 성폭행 등 범죄에 악용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시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 고물가, N잡, 비대면 트렌드에 급속도로 성장한 아르바이트앱은 물론 소셜미디어(SNS) 오픈채팅까지 범죄자의 범행 대상 물색 도구로 활용되면서 이용자들의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gettyimagesbank 제공
◆살인·성폭행 등 강력범죄 악용된 ‘알바앱’

최근 부산에서 한 재수생이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갔다가 성폭행 당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전국민이 공분했다.

13일 경찰 조사와 가족의 인터뷰 등을 종합하면 A씨는 학원도 다니지 않고 전교1등을 할 정도로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이었다. 재수생이었던 A씨는 직접 용돈을 벌기 위해 지난 4월 온라인 구인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올렸다.

가해자인 30대 남성 B씨는 자신이 스터디카페 관계자라며 A씨에게 연락했고, ‘더 쉬운 일이 있다’며 면접을 보러 온 A씨를 키스방으로 데려가 범행을 저질렀다. 현장에는 다른 남성 2명이 더 있었다. A씨는 이후 힘든 시간을 보내다 사건 발생 20여일 만에 생을 놓았다.

B씨가 A씨를 처음 유인했던 스터디카페는 B씨와 아무 관련이 없는 곳이었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상당기간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유인해 성매매를 알선한 것으로 드러났다. A씨의 경우처럼 알바앱 등을 통해 접근한 것이었다.

A씨 가족들이 “피해자가 30명 더 있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경찰은 13일 현재까지 학생 2명을 포함한 6명의 피해자를 확인했으며 추가 피해자가 있는지 조사 중이다.

지난 5월 ‘살인이 해보고 싶었다’는 이유로 또래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한 정유정(23)은 과외앱에서 범행 대상을 오랜기간 물색했다. 그가 사용한 과외앱은 국내 1위 과외 플랫폼으로 알려졌다. 과외강사 희망자는 자신의 신상정보 등을 등록해야 하지만, 과외 수요자는 복잡한 확인과정 없이 가입할 수 있었다.

정유정은 이 앱에 가입해 자신을 ‘중3 학부모’라고 소개하며 또래 여성들에게 접근했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정유정이 이 앱에서 접촉한 사람은 총 54명에 이르렀다. 정유정은 이들에게 여성인지, 혼자 거주하는지, 강사의 집에서 수업할 수 있는지 등을 물어본 것으로 조사됐다.

자신의 범행 대상 조건에 맞는 피해자를 찾아낸 정유정은 피해자가 ‘집이 너무 멀다’는 이유로 거절했음에도 집요하게 과외를 부탁했다. 피해자는 시범 과외를 한 뒤 결정하자고 했고, 중학생으로 위장해 찾아온 정유정에게 문을 열어줬다가 변을 당했다.

시신을 유기하다가 택시기사의 신고로 붙잡힌 정유정은 “자신을 무시하는 발언을 해 화가나서 그랬다”고 주장했으나 검찰 조사에서 계획 살인임이 드러났다.

또래 여성을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를 받는 정유정(23)이 지난 6월 2일 부산 동래경찰서에서 나와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연합뉴스
◆각종 범죄에 노출된 온라인 구직자들

일자리 중개 플랫폼이 아니더라도 온라인에는 정보가 많다. 모르는 사람과도 SNS를 통해 쉽게 연결된다. 구직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조건의 일자리를 편하게 찾을 수 있는 동시에, 범죄자들이 사회경험이 많지 않은 10∼20대를 골라 접근하기도 쉬운 환경이다.

2020년 아르바이트를 구하던 여고생에게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보지 않겠냐”고 속여 집에서 만난 뒤 성폭행 한 20대 남성이 붙잡혔다. 그는 2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20대 여성에게 통역 아르바이트를 부탁하며 만나 성폭행을 저지른 30대 외국인 남성도 있었다. N번방 사건의 조주빈도 고액 알바를 미끼로 10대들을 꾀어 성착취물을 제작했다. 

범죄에 가담시키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부터는 고액 알바의 유혹에 보이스피싱이나 마약 운반에 가담했다가 처벌받은 10대들에 관한 뉴스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돈을 벌려다 오히려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최근 ‘손쉬운 고액 재택 알바’라며 무작위로 구인 문자를 보내고 있는 쇼핑몰 리뷰 알바도 신종 사기의 일종이다. 처음엔 입금된 보수를 보고 안심했다가, 이후 리뷰 작성을 위해 예치금을 넣어야한다는 말에 속아 큰 돈을 잃게 되는 것이다. 

잇따르는 범죄와 사기에 아르바이트 구직자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정유정이 과외앱을 통해 손쉽게피해자를 물색한 것이 밝혀지면서 과외앱에 신상정보를 등록했던 대학생들이 한동안 줄줄이 앱을 탈퇴하기도 했다. 구인 중인 점포나 기업이 믿을 만한 곳인지 묻거나, 알바 사기를 당했다며 주의를 당부하는 글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창 아르바이트 할 나이의 자녀를 둔 부모들도 걱정하긴 마찬가지다. 면접을 미끼로 발생한 성폭행 자살 사건이 알려지자 부모들은 “불안해서 아이 알바 찾는 것 말리고 싶다” “알바 면접도 같이 가줘야하는 세상이 됐다”고 토로하고 있다.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범죄를 막기 위해 인증 정책을 강화하고 있지만, 이런 조치만으로 범죄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개 플랫폼 이외에도 온라인 구인구직이 이뤄지는 경로는 다양하며, 아무리 구직자들이 주의를 기울여도 작정하고 속이면 알아차리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안민숙 피해자통합지원 사회적 협동조합 대표는 “처음 아르바이트 면접을 볼 때 개인 공간이나 사적인 공간에서 만나거나 이동하는 것을 특히 경계해야 하며, 상대의 신원이 확실해질 때까지 개인정보를 절대 알려주지 않는 등 항상 경계해야 한다”면서 “특히 ‘고액 알바’라는 말에 현혹되면 안된다. 범죄 위험이 대단히 높다. 쉽게 일하고 많은 돈을 주는 곳은 세상에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온라인 플랫폼들은 책임을 갖고 이용자들에게 경각심을 줘야한다”면서 “범죄 사례와 구체적인 예시 등을 포함한 주의문을 이용자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안내하는 등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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