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면 누구나 공짜 밥상…‘인심 한 끼’로 홍산장터 되살릴까

송인걸 2023. 9. 14.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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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로 앉으셔유."

지난 12일 오전 11시40분 충남 부여군 홍산전통시장, 곱슬머리 아저씨가 시장통 식당으로 어르신들을 안내하더니 이내 밥과 국, 반찬이 담긴 식판을 나르기 시작했다.

시장통 무료 식당에서 식판을 나르는 곱슬머리 아저씨는 홍종현 홍산전통시장상인회장, 밥 퍼주는 아줌마는 시장 안 식당 '우리사이' 주인 김미영씨, 설거지하는 분은 자원봉사에 나선 홍산성당 교인 원성순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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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홍산시장상인회, 방문객·상인에 무료 점심
홍종현 홍산전통시장상인회장과 김미영 우리사이 식당 주인이 지난 12일 홍산전통시장 무료 점심 행사장에서 식판을 나르고 있다. 송인걸 기자

“이리로 앉으셔유.”

지난 12일 오전 11시40분 충남 부여군 홍산전통시장, 곱슬머리 아저씨가 시장통 식당으로 어르신들을 안내하더니 이내 밥과 국, 반찬이 담긴 식판을 나르기 시작했다. “맛있게 드셔유.”

이 식당에는 메뉴판도 가격표도 없다. 홍산전통시장상인회가 시장을 찾는 누구에게나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날은 쌀밥, 뼈다귀우거지탕, 고추조림, 나물, 김치에 부추전이 나왔다.

“고깃국에 쌀밥이네. 내가 좋아하는 나물도 있고….” 식판을 받아 든 이삼례(78·옥산면 홍연리)씨는 “장터에 와서 물건도 싸게 사고 공짜 밥도 대접 받으니 횡재했다”고 활짝 웃었다. 맞은편에 앉은 백남순(77)씨는 “고향 홍산시장이 점점 휑해져 아쉬웠는데, 장날이라고 밥상을 차려주니 고맙다”고 했다.

상인회가 차린 9개의 식탁은 10여분 만에 주민과 상인들로 꽉 찼다. 과일가게 주인 최상철씨는 “얼른 먹고 교대해줘야 한다”며 순식간에 식판을 비웠다. “고기가 많고 국물이 얼큰해 속이 든든하네유. 홍 회장님, 김 사장님 잘 먹었슈.”

홍산전통시장의 옷가게에서 지난 12일 주인이 손님에게 물건을 골라 주고 있다. 송인걸 기자

식당이 들고 나는 손님들로 분주한 사이에도 장터 여기저기에선 물건이 사고팔렸다. 그런데 값을 깎지도 않고 뭘 살지도 안 물어본다. 채소가게 박종순씨는 한 주민에게 무를 팔면서 가격 대신 안부를 물었다. “애가 많이 컸지? 몇 개월이지?” 잡화점 아저씨는 손님 얼굴을 보더니 사이즈를 묻지도 않고 대뜸 고무신을 내줬다가 혼잣말을 했다. “발이 줄었네?”

시장통 무료 식당에서 식판을 나르는 곱슬머리 아저씨는 홍종현 홍산전통시장상인회장, 밥 퍼주는 아줌마는 시장 안 식당 ‘우리사이’ 주인 김미영씨, 설거지하는 분은 자원봉사에 나선 홍산성당 교인 원성순씨였다. 무료 식당은 2·7일인 홍산 장날 중에서 12일과 27일에 두번 열린다. 무료 식당은 2021년 11월 김미영씨가 시작했다.

“홍산시장은 물건값을 흥정하지도 않을 정도로 상인과 손님이 서로 사정을 빤히 알아요. 정은 넘치는데 끼니를 건너뛰는 게 일상화돼 있어 안타까웠어요.” 김씨는 나물거리·채소 등을 팔러 온 어르신들이 돈을 아끼려고 끼니를 거르고, 물건을 사러 온 주민도 외식비 지출을 피하려고 밥을 굶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다고 했다. 그는 형편이 되는 대로 준비해 매달 27일 무료 점심을 제공했다.

충남 부여군 홍산장날인 지난 12일 전통시장 들머리에 할매순대집 옆 길에서 얼음물 등을 판다는 종이 광고판이 내걸렸다. 장날이었지만 시장은 한가했다. 송인걸 기자

상인회가 나선 것은 양쪽 무릎이 편치 않아 고생하던 김씨가 팔까지 다쳐 무료 점심을 제공하지 못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사일림 꽃집 대표는 “상인회가 손님과 상인을 위해 헌신해온 김씨 뜻을 이어가자고 제안해 모두 찬성했다”고 전했다. 상인회가 나서니 후원이 늘고 상인과 홍산성당 교인들이 자원봉사에 나섰다. 무료 점심 제공 횟수가 매달 한 차례에서 두 차례로 늘었다.

나이 든 상인들은 밥을 먹으며, 장날이면 우전(소시장)·나무전이 서고, 부여는 물론 보령·서천에서 온 달구지들이 “나라비(줄) 서던” 좋았던 옛 시절을 회고했다. 홍종현 상인회장은 “무료 점심 행사가 주민과 상인이 소통하는 구심점이 되고 있다”며 “부여군지역공동체활성화재단 등과 함께 출향인을 대상으로 고향 농산물 판매 촉진 캠페인도 벌일 계획”이라고 했다. 상인들은 지자체 등과 함께 동헌·객사·향교 등 지역 문화재와 동아다방 등 근대문화 유산을 더해 관광 상품화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글·사진 송인걸 기자 ig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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