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zine] 내륙의 숨겨진 속살 ②

김정선 2023. 9.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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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근현대가 교차하는 영주
소수서원 풍경 [사진/조보희 기자]

(영주=연합뉴스) 김정선 기자 = 경북 영주는 여러모로 볼거리가 많다.

대표적인 명소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소수서원과 부석사, 그리고 인삼 재배지로 유명한 풍기가 당장 떠오른다.

영주는 경북 철도 교통의 중심지로도 거론된다.

역사가 담긴 영주의 전통적인 여행지를 둘러보는 것은 예상치 못한 새로움을 안겨준다.

근현대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이 많아 다양한 시대의 흐름을 느낄 수 있다.

유생들이 시를 짓고 학문을 토론하던 정자 경렴정 [사진/조보희 기자]

역사가 담긴 최초의 사액서원, 소수서원

KTX를 타고 청량리역을 떠나 1시간 40여분 만에 영주역에 도착했다.

철도가 발달한 지역이어서인지 역내 열차 시간표에 영주를 지나는 중앙선, 충북선, 경북선, 영동선 시간표가 함께 안내돼 있다.

선비문화의 도시를 표방하는 영주에서는 매년 선비문화축제가 열린다.

올해도 5월에 개최됐다.

영주시 순흥면에 있는 소수서원을 찾았다.

소나무들이 늘어선 길을 걷다 보니 '숙수사지 당간지주'가 관람객을 맞는다.

원래 이곳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다.

주위를 살피니 앞쪽에 수령이 약 500년으로 알려진 은행나무가 약간의 거리를 두고 한 그루씩 자리를 잡고 있다. 우리나라의 서원과 향교에는 으레 은행나무가 서 있다.

하천 건너편 바위에 '白雲洞 敬'(백운동 경)이라는 한자가 눈에 확 들어온다.

소수서원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이다.

소수서원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조선시대 중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은 고려 말기 유학자인 안향(1243~1306)을 기리고자 백운동 서원을 세웠다.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사액을 요청했고 1550년 명종이 소수(紹修)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렸다.

이곳에서 배출한 유생만 4천여명에 이른다.

주세붕이 바위에 새긴 '경'자는 선비의 덕목을 나타낸 글자로, 공경과 근신의 자세로 학문에 집중한다는 뜻이라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다시 눈길을 서원으로 돌렸다.

지도문(志道門)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유생들이 학문을 익혔던 강학당이 보였다.

생각보다 간결하고 아담한 모습이다.

선비촌의 우금촌 두암고택 [사진/조보희 기자]

강학당 외부에는 한자로 백운동이라고 쓰인 현판이, 내부에는 소수서원이라고 적힌 현판이 각각 걸려 있다.

마침 경전 강독 행사가 열려 몇몇 관람객이 그 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한복을 갖춰 입은 강독자의 모습에 다소 엄숙한 분위기가 흐르는 것 같다.

소수서원에는 안향과 주세붕 등 4명을 기리는 문성공묘가 있다.

지금도 매년 2회 제사를 지낸다.

소수서원 인근에는 영주 선비들이 실제 살았던 생활공간을 복원한 선비촌이 조성돼 있다.

수신제가, 입신양명, 거무구안(居無求安·살아감에 편한 것만 구하지 말라는 뜻) 등의 주제를 보여준다고 한다.

우금촌 두암고택 내부로 들어가 봤다.

조선시대 관료를 지낸 두암 김우익이 건립한 가옥을 재현한 것인데, 동행한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대로 마당에 들어서니 'ㅁ'자형 구조가 명확히 보였다.

추운 지역의 폐쇄적 거주방식이 잘 보이는 구조다.

이곳에선 양반, 중인 등 지위에 따른 다양한 거주방식을 살필 수 있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무섬마을 [사진/조보희 기자]

무섬마을에서 느끼는 고즈넉함

영주 시내에서 20~30분 차로 이동하다 보면 문수면 수도리에 있는 무섬마을을 만나게 된다.

차량으로 이동할 수 있는 다리를 건너자 아담하게 어울린 전통가옥들이 보였다.

마을 이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과 같다는 뜻이다.

행정명은 '수도리'(水島里)다.

마을을 둘러싸고 하천이 흐르고 있는데, 그 하천을 지나 안쪽으로 가옥 40여채가 어울려 있다.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된 이 마을의 역사는 166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섬마을 입향시조인 반남 박씨가 먼저 자리를 잡았고 100여년 후에 선성 김씨가 들어왔다.

현재까지 두 성씨가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날에는 둑길 양쪽에 백일홍, 코스모스, 마리골드가 활짝 피어있었다.

햇볕이 내리쬐긴 했지만, 나무 그늘이 군데군데 있었고 꽃들의 모습을 보며 전통가옥이 어우러진 길을 걷다 보니 평화롭다는 느낌이 들었다.

무섬마을 입향시조의 종택인 만죽재,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의 가옥 등 정결한 고택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집 안 환기를 위해 지붕 용마루 양 끝을 뚫어 두었고 그곳으로 까치가 드나들어 까치구멍집으로 불리는 가옥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소박하고 간결한 옛 풍경이 어디에서나 볼 수 없는 매력을 담고 있다.

부석사 범종루의 우람한 기둥 [사진/조보희 기자]

다시 봐도 단아하고 간결한 부석사

영주의 대표 명소로 부석사를 빼놓을 수는 없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는 저서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부석사 무량수전·안양문·조사당·응향각들이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부석사의 아름다움을 극찬한 것이다.

김삿갓으로 잘 알려진 조선 후기 시인 김병연(1807~1863)은 부석사 안양루에 오른 심정 등을 한시로 표현했다.

그 내용이 안양루에 한문과, 이를 풀이한 한글로 함께 소개돼 있다.

현판에 걸린 시 구절 중 "내 한 몸이 백 년 동안 몇 번이나 이런 경치 구경할까 세월은 무정하다 나는 벌써 늙어있네"라는 마지막 부분에 눈길이 갔다.

의상대사(625-702)가 창건한 부석사는 한국 목조 건축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사찰로 유명하다.

배흘림 양식의 무량수전 나무 기둥 앞에서 저 멀리 보이는 산세를 바라보니 측면에서부터 완만한 선이 서로 겹치지 않고 이어져 있다.

무량수전 뒤편에 있는 큰 바위인 '浮石'(부석) [사진/조보희 기자]

기둥에는 세로로 얕게 패여 생긴 선들이 세월의 흔적을 보여줬다.

방문했을 때는 보수공사 기간이었지만, 관람에는 문제가 없었다.

전체적으로 간결하고 단아한 인상, 안양루나 무량수전 앞에서 바라본 산세 등은 변함이 없는 듯했다.

사찰 뒤편에 '浮石'(부석)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큰 돌 위에는 이끼가 조금 끼어 있었다.

부석사에 있는 국보와 보물은 10개가 넘는다.

자연의 경관을 조망하고, 고유하고도 고즈넉한 사찰의 분위기를 온전히 느끼며, 무량수전과 안양루 등을 또다시 살펴볼 수 있기를 기원하며 발길을 돌렸다.

근현대의 문화와 산업현장의 이야기들

관사골 벽화 마을 [사진/조보희 기자]

영주에는 근대의 문화를 느끼고 현대에도 이어지는 산업 현장을 둘러볼 수 있는 공간도 많다.

영주역 앞 관광안내소 앞에 배치된 각종 브로슈어를 유심히 보고 있었는데, 안내소 근무자가 밖으로 나와 "필요한 게 있느냐"며 말을 건넸다.

시내 근대역사문화거리에 가 볼 생각이라고 답하자 안내 지도를 찾아주며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릴 수 있다고 말해줬다.

실제로 거리를 걸어봤더니 몇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대와 함께한 건물들이 꽤 많은 이야기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요 건물마다 안내판이 설치돼 있었다.

1909년 설립된 영주 제일교회는 한국전쟁 때 예배당이 소실됐다가 1958년 현재의 모습으로 준공됐다.

제일교회 건물은 영주의 유일한 고딕 양식 건축물이라고 한다.

조금 더 걸어가니 '풍국정미소' 간판이 보였다.

안에는 나무틀로 구조를 짜고 그사이에 도정 시설을 배치한 듯한 꽤 널찍한 공간이 보였다.

이제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좀 더 거리를 두고선 '영광이발관'이 자리하고 있다.

1930년대 다른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해 현재에 이르렀다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10여분 걸었을까 싶었는데, 관사골이 나왔다.

풍기역 앞에 있는 풍기인삼시장 내부 [사진/조보희 기자]

영주역이 세워지기 전인 1935년부터 철도관사를 중심으로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이라고 한다.

입구 건물 벽에 소박한 철도 그림이 그려져 있다.

왔던 거리를 다시 걸어 돌아오니 인근에 이름이 특이한 '영주문화파출소'가 보였다.

옛 경찰서 민원실이었는데 이제는 관광안내소 역할을 한다.

잠시 몸을 쉬어갈 겸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지역의 문화연구회에서 관광 알림이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1940년대 당시 영주역 중심으로 형성된 역세권이며 방금 둘러본 건물들의 더 세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근대역사문화거리에 있지는 않지만, 현재까지 이어지는 인근의 오래된 공간을 좀 더 찾아가 볼 수 있었다. 2대에 걸쳐 운영 중이라는 신창정미소에선 주인의 안내로 목조 정미시설을 둘러봤다.

전통 대장간인 영주대장간도 방문했다.

미국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닷컴에서 호미가 판매돼 더욱 유명해진 대장간이다.

들어가자마자 열기와 소음이 느껴졌다. 안에서는 쇠를 달구고 기계로 내려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대장간을 운영하는 석노기 대표는 14세 때부터 시작한 대장장이의 삶을 들려줬다.

그는 대장간이 3D 업종이지만 '내 직업'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영주는 볼거리도 많지만, 풍기인삼으로도 유명하다.

풍기역 앞에 있는 풍기인삼시장 건물을 찾았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자 옅은 황토색의 굵은 인삼이 매대에 잔뜩 놓여있었다.

상인들은 곧 가을 인삼이 많이 출하될 것이라고 전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3년 9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js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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