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 자경단'에 열광하는 한국사회... '사법불신'이 부른 사적 제재 범람
개인이 직접 복수... 전문 유튜버까지 등장
기술발전도 한몫... "사법시스템부터 개선"
"인스타 용자(용감한 인스타그램 사용자) 덕에 속이 다 뚫린다."
'대전 교사 사망' 사건의 가해 학부모로 추정되는 이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인스타그램 계정에 추가 폭로를 암시하는 글이 올라오자 온라인 커뮤니티는 열광했다. 10일 개설된 이 계정은 학부모들 이름과 얼굴, 직장, 연락처 등의 상세한 개인정보를 공개했다. 논란이 커지자 해당 계정은 사라졌지만 유사 신상공개 계정이 속속 만들어지고 있다. 여론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며 공개를 부추기는 분위기다.
한국사회에 '사적 제재'가 일상이 됐다.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이 터질 때마다 불특정 다수가 합심해 대리 복수를 하고 있다. 개인 신상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노출하는 직접 제재부터 가해자 관련 사업체에 '평점 테러', '댓글 공격'을 하는 우회 방식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멈출 기세가 보이지 않는 '사이버 자경단'의 확산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별점 테러, 후원 중단... '대리 응징' 일상화
사적 제재는 초기엔 '공익 추구' 성격이 강했다.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람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는 '나쁜 집주인', 이혼 후 양육비 지급 의무를 외면하는 부모 명단을 알리는 '배드파더스' 등이 대표적이다.
사적인 응징에 호의적인 대중의 반응이 확인되자, 온라인에는 아예 이를 전문으로 하는 채널이 등장했다. 형사 사건 콘텐츠를 다루는 유튜버 '카라큘라 탐정사무소'는 '부산 돌려 차기 강간살인미수', '강남 롤스로이스' 사건의 피의자 신상을 공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유튜버 '사망여우TV'는 비양심 업체를, 유튜버 '딸배헌터'는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배달대행 기사들을 고발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대전 사건의 추정 가해자들에게도 각종 제재가 총동원됐다. 가해 학부모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진 미용실 유리창엔 "너 같은 사람 때문에 사형제도 필요" 등의 문구를 적은 메모지가 빼곡히 붙어 영업을 중단했다. 또 다른 가해 학부모가 운영한다는 의혹이 제기된 음식점은 지속적인 별점 테러에 본사로부터 가맹 계약을 해지당했다. 사망 교사 조사 과정에서 정서학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진 국제아동권리단체 세이브더칠드런에도 후원 중단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대중은 열광하지만 부작용 역시 못지않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는 애꿎은 피해자를 낳기 마련이다. 최근 '서울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과 관련해선 "3선 국회의원이 연관돼 있다"는 풍문이 돌아 무고한 정치인들이 고통을 겪어야 했고, 명예훼손 고소전으로 비화했다.
"국가가 나서 사법 불신 해소해야"
사적 제재의 범람은 처벌에 미온적인 공권력과 사법시스템을 향한 불신의 소산이다. 아무리 흉악한 범죄를 저질러도 신상조차 까발리지 않고, 형량도 국민 눈높이에 동떨어져 있다 보니 개인이 직접 ‘심판자’로 나선 것이다. 급속한 기술의 발달로 은밀한 정보가 더 이상 수사기관의 전유물이 아닌 것도 보복 심리를 자극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법·제도의 테두리에서 벗어난 복수가 용인되는 사회를 정상으로 볼 수는 없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사적 제재는 증명된 팩트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엉뚱한 피해자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최근 우리 사회를 "개인적 보복으로 분노를 분출하는 아노미 상황"으로 규정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첨단기술이 계속 발전하면서 (사적 제재는) 더 흔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결국 문제를 해결하려면 시민이 공적 영역을 외면하는 근본 원인부터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수사나 재판 처리 지연에 더해 피해자에게 (사법) 처리 절차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니 불신이 커진다"며 "신뢰 회복은 국가의 몫"이라고 진단했다. 김성훈 법무법인 현림 소속 변호사는 "국민 법감정에 미치지 못하는 사법 행정이 누적된 결과인 만큼, 경찰 수사부터 재판까지 총체적 개선이 요구된다"고 조언했다.
장수현 기자 jangsu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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