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미녀 홀린 사랑스러움의 극치 Salvatore Ferragamo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2023. 9. 11.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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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스토리]

2023 가을겨울(F/W) 시즌 여러 브랜드가 컬렉션을 통해 다양한 디테일로 선보인 ‘리본’은 사랑스러움의 상징이자 2023년 핫 트렌드 중 하나다. 리본 장식의 대표 브랜드가 바로 살바토레 페라가모(Salvatore Ferragamo)다. 창업주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1927년 설립한 이탈리아 명품 패션 브랜드로 구두를 비롯해 가방, 가죽 소품, 액세서리, 주얼리 등을 제작·판매한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1970년대부터 리본 디자인 ‘바라(Vara)’를 브랜드의 시그니처로 사용했다. 1978년 금속 버클이 매듭으로 탄생한 ‘바라 슈즈’는 지금까지 페라가모의 대표 아이템으로 손꼽힌다.

[페라가모]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1898년 이탈리아 남부 항구도시 나폴리의 외딴 마을 보니토에서 14남매 가운데 11번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그는 학교를 9세까지만 다녔다. 그런 그에게 집 근처 구두 가게는 늘 영감을 주는 장소였다. 구두장이의 작업을 유심히 즐겨 보던 페라가모의 첫 '작품'은 성찬식에 신을 신발이 없던 여동생을 위해 만든 하얀 구두였다. 그때 그의 나이는 아홉 살에 불과했다.

페라가모는 1909년 나폴리의 한 구두 가게에서 견습생으로 일하다가 2년 뒤 고향으로 돌아와 자신의 집 한쪽에 여성용 맞춤 구두 가게를 열었다. 1914년 미국에서 일하던 형의 권유로 형제들과 함께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가 큰 신발 공장에 취업했다. 거대한 기계들이 있는 미국 공장은 수작업으로 신발을 만들던 나폴리의 신발 공장과 많이 달랐다.

1956년 이탈리아 피렌체 매장에서 자신이 만든 구두를 선보이는 살파토레 페라가모. [Gettyimage]

신발 디자인에 인체해부학 처음 적용

그는 기계로 생산하는 신발의 품질에 한계를 느꼈고 형들과 함께 캘리포니아 샌타모니카 아메리칸 필름 컴퍼니라는 영화 스튜디오 바로 옆에 구두 제조 및 수선점을 오픈했다. 페라가모는 아메리칸 필름 컴퍼니에 카우보이 부츠를 납품하게 된 것을 계기로 영화 소품으로 사용하는 독특한 신발을 제작해 납품하기 시작했다. 이후 페라가모의 신발 사업은 아메리칸 필름 컴퍼니의 성공과 함께 번성해 나갔다. 페라가모는 카메라 앞에서 오랜 시간 연기하는 배우들이 신발 때문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자주 봤고, 사람들의 발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평발과 티눈 등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것을 알게 됐다.

1923년 캘리포니아 할리우드로 이주한 페라가모는 신어서 편한 신발을 제작하기 위해 USC 야간대학에서 인체해부학을 공부했다. 그는 사람의 체중이 발의 중심에 실린다는 점을 깨닫고 신발 중앙에 철심을 박아 체중을 지탱하도록 했다. 이는 발이 앞으로 밀리는 현상을 방지해 발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편안하게 만든 것이다. 페라가모는 신발 디자인에 인체해부학을 적용한 최초의 구두장이였다. 무게중심을 활용한 그의 신발 제작 원리는 오늘날 모든 신발 제작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인비저블 샌들로 니먼 마커스상 수상

페라가모는 1923년 '할리우드 부츠 숍'이라는 이름의 새 매장을 오픈했고 많은 할리우드 배우가 단골 고객이 됐다. 전설적인 1세대 할리우드 스타인 메리 픽포드, 루돌프 발렌티노, 존 베리모어,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글로리아 스완슨 등이 페라가모 신발을 신었다. 페라가모는 이탈리아에 수제화 공장을 세우고 이를 작업별로 분리하는 형태로 대량생산 시스템을 만들었다. 1927년 미국을 떠나 이탈리아 피렌체에 돌아온 그는 '살바토레 페라가모 컴퍼니'를 설립했다. 이것이 살바토레 페라가모 브랜드의 시작이다.

페라가모는 직원 6명이 샘플을 제작해 미국에 보내면서 수출을 시작했다. 페라가모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뛰어난 품질과 명성이었다. 1937년 영화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1939)의 여주인공이던 주디 갈란드를 위해 만든 레인보우 플랫폼 슈즈(힐과 밑창 전체를 높게 한 구두)는 스타를 위해 만든 신발 역작 중 하나로 꼽힌다. 1938년 페라가모가 르네상스 시기에 착용한 구두인 초핀(chopine)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르네상스 샌들은 블랙 벨벳 어퍼(발등), 골드와 실버 나파(nappa·가죽의 한 종류) 스트랩이 달린 10겹의 코르크 웨지로 만들어졌다.

페라가모는 오래전부터 피렌체 중심가인 토르나부오니 거리에 위치한 건물 팔라조 스피니 페로니(Palazzo Spini Feroni)의 문화적·역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마음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파산한 그는 팔라조 스피니 페로니를 구입할 수 없었다. 그는 할부로 구매했고, 1938년 마침내 전액을 지불해 팔라조 스피니 페로니를 얻는 데 성공한다. 팔라조 스피니 페로니는 현재까지 페라가모의 본사로 이용되고 있다.

(왼쪽부터)레인보우 플랫폼 슈즈. 인비저블 힐. 중국 배우 장쯔이를 위해 제작한 페라가모 자수 새틴 샌들. [페라가모 인스타그램, 페라가모 인스타그램, Gettyimage]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생활에 필요한 물자조차 부족했다. 많은 패션 브랜드가 가죽을 대처할 소재를 찾느라 분주했다. 구찌는 가방의 손잡이를 대나무로 대체했다. 페라가모 역시 나무·라피아·코르크 등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소재로 구두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코르크 소재로 만든 역사적 웨지힐(Wedge Heel·밑창과 굽이 연결된 형태의 구두)과 나일론 실로 만들어 투명하게 제작한 인비저블 샌들(The Invisible Sandal)이 탄생했다.

인비저블 샌들에 적용된 F-힐(F-heel)은 1944년 페라가모가 고안한 것으로 신발의 밑창과 굽이 연결된 일반적 웨지힐에서 힐 부분이 알파벳 'F'를 뒤집은 형태로 깎여 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F-힐의 형태를 얻기 위해 두 개의 나무 덩어리를 조각한 후 이어 붙였다. F-힐은 언뜻 보기에는 지나치게 깎여 들어가 불안정해 보이지만, 구조적인 계산을 통해 체중이 신발의 중앙에 놓이도록 고안돼 실제로 착용했을 때 일반 힐보다 오히려 편안하다고 한다. 1947년 페라가모는 인비저블 샌들로 구두 디자이너로서는 처음으로 패션계의 오스카상이라고 불리는 니먼 마커스상을 수상했다.

페라가모 가을 상품을 미리 보여주는 프리폴(Pre-Fall) 2023 캠페인. [페라가모]

매를린 먼로의 페라가모 구두

1950년 살바토레 페라가모 브랜드의 인기는 이탈리아 배우 안나 마냐니, 소피아 로렌뿐만 아니라 미국 할리우드의 그레타 가르보, 오드리 헵번 같은 스타들과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 등 상류사회의 유명 인사들까지 단골이 될 정도였다. 영화 '7년 만의 외출'(The Seven Year Itch·1955)에서 매릴린 먼로가 지하철 환풍구 바람에 날리는 스커트를 잡고 있는 그 명장면에서 착용한 하얀색 샌들도 페라가모 제품이다.
영화 ‘7년 만의 외출’에서 매를린 먼로가 신은 하얀 샌들은 페라가모 제품이다. [20세기 스튜디오]
아르헨티나의 퍼스트레이디 에바 페론 역시 페라가모 구두의 단골 고객이었다. 페라가모는 자서전에서 "에바 페론은 내가 제작해 본 구두 중 가장 독특한 것들을 주문했고, 자수로 장식한 구두가 막 유행하기 시작했을 무렵에도 나를 찾아와 그 스타일의 구두에 보석을 박은 굽을 달아달라고 주문했다"고 전했다. 1997년 마돈나가 에바 페론 역으로 출연한 영화 '에비타'(Evita·1997)에서도 정확한 고증을 위해 모든 촬영용 신발 제작을 페라가모에 맡겼다.

1951년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디자인한 키모(Kimo) 신발은 샌들 안에 발목까지 오는 덧신을 신는 것이다. 키모는 일본 전통 신발인 게다, 조리 등과 일본의 전통 양말인 타비를 함께 착용한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 키모는 샌들 안에 덧신의 디자인을 보이게 만든 것으로 덧신을 다양한 디자인으로 교체해 착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많은 인기를 끌었다. 이후 디자인을 교체할 수 있는 키모의 방식은 액세서리와 핸드백 등에도 적용됐다.

1954년 살바토레 페라가모가 가장 사랑한 고객 중 한 명이던 오드리 헵번을 위해 여성용 플랫슈즈를 디자인한다. 이 신발의 이름인 오드리 슈즈도 오드리 헵번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당시 오드리 헵번은 영화 '로마의 휴일'로 오스카상을 수상한 후 자신만을 위한 구두 제작을 의뢰하기 위해 살바토레 페라가모를 찾아갔다. 발 사이즈가 275mm로 컸던 그는 큰 발에도 잘 어울리는 구두를 제작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페라가모는 발레리나였던 오드리 헵번의 경력을 기리기 위해 발레리나 슈즈에서 착안한 최초의 플랫슈즈인 스웨이드 소재의 오드리 슈즈를 만들었다. 오드리 헵번은 그 후 자신의 영화 '사브리나'(Sabrina·1954), '퍼니페이스'(Funny Face·1957)에서 페라가모가 만든 플랫슈즈를 신고 출연했다. 이후 이 제품은 다양한 버전으로 유행했다.

페라가모는 1960년 8월 7일 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의 부인인 완다 페라가모가 회사를 이끌면서 자녀들 또한 경영에 참여했다. 장남 페루치오 페라가모는 경영, 장녀 피암마 페라가모는 디자인을 총괄했다. 1967년 피암마 페라가모는 할리우드 배우 브리지트 바르도를 위한 벨벳 앵클부츠로 니먼 마커스상을 수상했다.

올해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가을겨울(F/W) 2023 패션쇼(왼쪽)와 봄여름(S/S) 2023 패션쇼. [페라가모]

금속 버클로 매듭지은 '바라 슈즈'

피암마 페라가모는 '간치니(Gancini)'와 바라를 창조하며 페라가모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간치니는 말발굽 모양에 살바토레 페라가모 로고가 새겨진 장식으로, 이탈리아어로 '고리'를 의미한다. 간치니 장식은 1969년 핸드백의 잠금 장치로 처음 적용된 이후 벨트의 버클과 신발 장식, 넥타이와 스카프의 패턴 등 살바토레 페라가모 브랜드의 다양한 제품에 쓰인다.
간치니 오너먼트 모카신. [페라가모]
1978년 탄생한 바라 리본은 피암마 페라가모가 바라 구두를 디자인하면서 떠올린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대표 장식이다. 바라 리본 재료는 그로스그레인(gross grain)이다. 피암마 페라가모의 지시를 잘못 알아들은 재단사가 가죽이 아닌 그로스그레인 천으로 바라 리본을 제작한 것에서 유래됐다. 바라 그로스그레인 리본은 1989년 지갑의 장식으로 활용됐다. 이후 머리띠, 액세서리 등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간치니와 함께 살바토레 페라가모를 상징하는 아이콘 중 하나가 됐다. 리본 모양의 '바라' 장식이 달린 바라 슈즈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패션 아이템이고, 2000년대 초에는 단정하고 우아한 스타일인 일명 '청담동 며느리 룩'의 필수 아이템으로 거듭난다.

바라 슈즈는 송아지 가죽, 애나멜 가죽, 악어가죽 프린트와 도마뱀 가죽 프린트 등 4가지 소재로 제작되며, 매 시즌 새로운 컬러를 다양하게 선보인다. 바라 슈즈는 색상별로 슈즈를 수집하는 고객이 있을 정도로 마니아층이 두텁다. 앞코가 둥글고 굽이 낮은 바라 슈즈는 편안한 착용감과 어느 스타일에나 자연스럽게 매치돼 나이를 불문하고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신발에 담은 진심

페라가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1995년생 맥시밀리언 데이비스(왼쪽)와 페라가모 최초 글로벌 남성 앰배서더가 된 NCT 멤버 제노. [Gettyimage, 페라가모]
살바토레 페라가모는 2022년 1월 새로운 CEO 마르코 고베티(Marco Gobbetti)를 영입하며 브랜드 재건에 나선다. 1995년생 맥시밀리언 데이비스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임명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또한 2023 봄여름(S/S) 컬렉션에서는 브랜드가 시작된 할리우드를 키워드로 창립자 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출발에 경의를 표했다. 맥시밀리언 데이비스는 5월 말 한국 아이돌 그룹 NCT 멤버 제노를 페라가모 브랜드 최초의 글로벌 남성 앰배서더로 선정했다. 그러면서 "전 세계를 아우르는 젊은 세대들과의 연결고리가 돼준 제노의 음악과 스타일, 페르소나는 매우 특별하다"고 이유를 밝혔다.

디자인은 쉽게 모방할 수 있다. 그러나 살바토르 페라가모의 신발에 대한 진정성과 장인 정신은 누구도 모방할 수 없다. 많은 패션 브랜드가 대기업에 인수되는 요즘도 페라가모는 가족경영 체제를 고수하며 직접 제품을 생산한다. 판매망 확충보다는 고유의 품질과 이미지를 유지하는 것을 더 중요한 가치로 여기기 때문이다.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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