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구 현대HT 대표 “어려울 때 승계… 흑자로 ‘2세’ 색안경 벗겼죠”

장우정 기자 2023. 9.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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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중기 오너 2.0]
스마트홈 기기서 스타트업式 사업 확장
“베트남이 기회…동남아로 위기 넘을것”

한국경제를 이끄는 중견·중소기업의 2·3세 경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들은 선대로부터 배운 승부 근성과 해외 경험을 발판 삼아 글로벌 무대로 뻗어나간다. 1세대 기업인을 뛰어넘기 위해 2·3세가 어떤 고민을 하고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지 들어본다. [편집자주]

“아버지 회사에 들어와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사정이 훨씬 안 좋았어요. 글로벌 금융위기로 전방 건설사들이 줄줄이 부도를 맞으면서 저희도 부실채권이 굉장히 많이 생겼고요. 아버지께 책임지고 직접 경영해 보고 싶다고 말씀드렸죠.”

이건구 현대HT 대표는 "회사가 안 좋은 시기에 이를 턴어라운드시키면서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헀다. /박상훈 기자

2010년 말 현대HT(현대에이치티) 영업 총괄 이사로 합류한 뒤 2012년 대표이사로 승진한 이건구(47) 대표는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본사에서 조선비즈와 만나 당시 일찌감치 회사를 맡았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회사 합류 전 이 대표는 KDB산업은행 공채로 입사해 투자금융본부에서 6년간 일했고, 이후 미국 스탠퍼드대로 건너가 경영학 석사(MBA) 과정을 밟았다.

이 대표의 아버지는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최측근이자 현대건설을 키운 주역 이내흔 회장이다. 1970년 평사원으로 현대건설에 입사해 6년 만에 임원을 승진했고 1991년부터 7년 가까이 사장을 지냈다. 100% 국산 기술로 원자력발전소(영광 3·4호기)를 지어 우리나라 원전 건설사에 새 장을 열기도 했다.

이 회장이 옛 현대전자에서 분사한 홈 네트워크 시스템 업체 현대통신을 인수한 것이 지금의 현대HT가 됐다. 지금은 경영 일선에선 물러나 있지만, 여전히 회장으로서 주요 의사결정에 참여한다.

이내흔 현대HT 회장. /조선DB

현대HT는 아파트에 들어가는 월패드, 디지털 도어락 등 스마트홈 시장에서 점유율 40%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매년 12만~13만개의 스마트홈 기기를 공급한다.

기업가를 꿈꿨던 이 대표는 MBA를 마치고 회사 합류를 결심했다. 이 회장은 “회사에 오지 말라. 벤처캐피털(VC)이든 스타트업이든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렸지만, 이 대표는 “해보고 싶다”고 고집했다.

그는 “산업은행에서 2세 경영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오너를 만났고 사업 확장이나 운영자금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신규 사업을 벌이다 부도를 맞는 회사를 보기도 했는데 오너들은 당시 왜 그런 결정을 했는지, 회사들이 어떤 계획을 갖고 움직이는지 배울 기회가 많았다”고 했다.

오너십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아버지였다. 이 대표는 “아버지는 강한 리더십을 기반으로 승부욕이 굉장히 강한 분이었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셨던 분이다. 또 ‘원리 원칙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마라’, ‘정도경영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그래픽=정서희

그는 대표로 취임하자마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미션·비전·핵심 가치를 새로 정립하고, 살아남기 위해 임원들과 밤샘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매출은 반토막이 났고 영업손실이 이어져 구조조정이 불가피했다. 조직을 추스르는 것도 중요했기 때문에 2012년부터 직원과의 저녁 자리를 시작해 지금도 꾸준히 소통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회사 내·외부 사람의 색안경을 벗겨내는 일이었다. 이는 2세 경영자의 숙명과도 같다. 그는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들어와 위기를 극복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리더십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했다. 당시 400억원대이던 매출액은 1000억원을 넘었고 2014년 이후 9년 연속 영업흑자를 기록했다.

이건구 대표는 "(자신이) 제1의 영업사원이라고 생각하면서 뛰고 있다"고 말했다. /박상훈 기자

그는 지금도 ‘제1의 영업사원’을 자청한다. 그가 맨 처음 회사에 들어왔을 때 ‘영업 총괄 이사’라는 직함을 택했을 때와 같은 이유다.

이 대표는 “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업과 연구·개발인데 내가 할 수 있는 영업에서 최선을 다해보자는 생각”이라면서 “최저가로 입찰을 따내는 것이 아니라 좋은 설루션을 합당한 가치에 제공해 같이 성장하는 영업을 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뛰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비' 앱 내 입주민들의 소통 공간. /현대HT

그는 회사 대표를 맡아 온 10여년간 가장 잘한 일로 2015년에 ‘HT비욘드’라는 계열사를 설립해 아파트 입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바이비(byb)’를 내놓은 것을 꼽았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을 통해 관리사무소 공지를 열람하고 골프 타석·수영장 등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서비스를 예약·결제할 수 있다. 이웃과 소통하고 중고 제품을 거래할 수도 있다.

현대건설의 고급 브랜드 ‘디에이치(THE H)’, 포스코이앤씨(옛 포스코건설), 한양건설, 아이에스동서, 반도건설 등을 고객사로 확보하고 있다. 현대HT 내부 부서가 아니라 스타트업으로 작지만 민첩하게 움직인 덕분에 나온 성과다.

이 대표는 “그간 현대HT는 세대 내 단말기를 통해 집안 전체를 제어하거나 정보를 얻는 스마트홈 시스템 공급에 주력해 왔는데, ‘입주민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나’란 고민에서 서비스를 집 밖으로 확장한 것”이라며 “현대HT와 시너지를 내 주거 대표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지난 4월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스마트 시티 아시아’의 현대HT 부스 전경. /현대HT 제공

현대HT의 매출은 신축 아파트에 스마트홈 시스템을 공급하면서 주로 발생한다. 하지만 작년부터 건설 경기가 안 좋아져 최근에는 기존 아파트의 노후화된 기기를 교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처럼 공동주택이 많은 인도네시아·베트남 등 동남아시아를 타깃으로 해외 사업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HT는 지난 4월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린 무역 박람회 ‘스마트 시티 아시아’에서 안면을 인식해 문을 열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고, 현지 공급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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