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인사이드] 몸빼바지에 핸드메이드 파우치를 든 여자①

이민아 2023. 9. 9.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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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의 여름은 그 어떤 곳보다 뜨겁습니다.

사진 속 주인공은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서 패브릭 소품을 만들고 있는 재봉틀 작가 필수(feelsue). 그녀의 '귀향'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괴산군 어느 동네든 다 그렇지만 여름이면 저희 동네는 아주 바빠요.

그래서 내게 고향은 그 흔한 편의점, PC방도 없는 시골이지만 가족과 함께라서 행복하고, 내 마음에 안식을 주는 그런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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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의 여름은 그 어떤 곳보다 뜨겁습니다. 여름 대표 간식인 옥수수와 복숭아가 유명한 탓인데요.

더운 여름 햇볕 아래 출하준비로 분주한 복숭아밭에서 업로드된 사진 한 장이 눈길을 끕니다.

농촌의 심볼인 경운기를 배경으로 몸빼를 입은 여성이 한껏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엣지있는 손끝에 들린 고급스러운 느낌의 파우치는 이런 메시지를 전합니다. ‘made in goesan’.

사진 속 주인공은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서 패브릭 소품을 만들고 있는 재봉틀 작가 필수(feelsue). 그녀의 ‘귀향’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충북 괴산군 불정면에서 패브릭 소품을 만드는 재봉틀 작가 필수(feelsue), 1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고 있다. 사진은 산촌활성화지원센터의 농막짓기 프로그램에 참여한 모습.

Q. 여름 동안 많이 바쁘셨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내셨나요?

괴산군 어느 동네든 다 그렇지만 여름이면 저희 동네는 아주 바빠요. 옥수수 농사, 고추, 복숭아 농사를 많이 짓거든요.

저도 동생이 바쁘다고 하면 과수원으로 달려가야 해서 바쁘게 보냈어요. 그런 와중에 틈틈이 작업도 해야 해서 작업실 불이 밤까지 켜져 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Q. 요즘 농촌은 청년이 유입되는 게 그저 반가운 일인데,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네, 제가 호텔 서비스직을 했었어요. 대학 졸업하고 바로 취업해서 8~9년 정도 일했는데 한 마디로 ‘감정 노동’이잖아요.

일할 때는 내 기분이랑 상관없이 항상 웃어야 되고, 나의 잘잘못을 떠나 사과를 해야 되는... 그게 몇 년간 쌓이다보니 어느 순간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힘들더라고요. 한번은 숨이 안 쉬어지는 증상이 몸으로 나타나서 ‘아, 그만둬야 겠다’는 결심이 섰어요.

좋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전에는 유니폼을 입으니까 내 몸이 유니폼에 맞춰져 있달까... 일하는 동안은 일정한 몸무게를 유지했었는데, 유니폼 없는 생활을 하니까 요즘은 살이 좀 붙었어요. (웃음)

Q. 말 그대로 번 아웃이 왔던 거네요. 그럼 직장을 그만두고, 재봉틀을 시작하게 되신 건가요?

네, 이야기를 하자면 굉장히 긴 얘기인데요. 재봉틀이 저한테는 ‘힐링’이에요.

직장을 관두고 쉬고 있을 때 아버지가 뇌출혈로 쓰러지셨어요. 2개월 동안은 의식을 찾지 못할 정도로 심각했었죠. 재활을 위해 수도권의 유명하다는 대학병원을 돌아다니면서 간병을 했어요.

그때는 정말... 나쁜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었어요. 환자 상태는 롤러코스터처럼 좋았다가 나빴다를 반복하는데 이런 생활을 언제까지 해야 된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끝이 안 보이는 거죠.

다행이랄까, 퇴원 후엔 엄마가 취득하셨던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어서 가족 요양을 했어요. 저랑 엄마는 번갈아 가면서 아빠를 돌보고, 동생은 갑자기 가장이 돼서 아빠가 하시던 복숭아 농사를 도맡았죠,

그때 제 유일한 숨구멍이 ‘재봉틀’이었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했어요. 너무 우울했던 시간이었는데 재봉틀을 하면서 정신도 건강해지고... ‘돈을 많이 못 벌더라도 몸과 마음이 건강한 게 제일 중요하다’ 이렇게 저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게 됐죠.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병원에서 간병할 당시 모습, 필수(feelsue) 제공

Q. ‘간병을 하는 동안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다’ 이야기 하셨는데, 그 생각이 고향에 남아야 겠다는 결정으로 이어진 건가요?

네, 3년간 간병을 하면서 제 장래에 대해서 고민을 하는데 아빠가 지금 같은 상황이면 일반적인 직장 생활을 하기 어렵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호텔에서 근무할 땐 가족과 떨어져 타지에서 지내기도 했고, 아무래도 주말, 명절이 가장 바쁘다 보니 본가에 오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였어요.

아빠가 중환자실에 있을 때 위험한 고비가 몇 번 있었는데, 사진첩을 보니 아빠랑 찍은 사진이 많지 않더라고요.

건강한 모습의 아빠 사진이 몇 장 없다는 게 너무 절망적이어서 이제는 평소에 행복한 순간을 기록하고 가족들의 일상적인 모습도 남겨놓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필수(feelsue)가 기록한 고향의 모습

20대 때는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 자기계발에 더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지금 내 삶의 1순위는 가족이에요.

어느 날 갑자기 가족 중 누군가가 아파서 쓰러질 수도 있고 더 이상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 이 순간이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해요.

그래서 내게 고향은 그 흔한 편의점, PC방도 없는 시골이지만 가족과 함께라서 행복하고, 내 마음에 안식을 주는 그런 곳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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