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럭 집단 폐사 현장 가보니…가을에도 뜨거운 바다

이세흠 2023. 9. 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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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이슬이 맺힌다는 '백로(白露)'가 지났습니다.

입추, 처서에 이어 세 번째 가을 절기인데요. 밤 사이 기온이 이슬점까지 내려가고, 본격적인 가을이 나타나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늦더위가 이어지며 최근까지 내륙 곳곳엔 폭염주의보가 이어졌고, 남해 바다에는 지금도 '고수온경보'가 내려져 있습니다.

높은 수온에 취약한 조피볼락(우럭), 넙치(광어), 전복 등 인기 수산물의 피해도 심각한 상황인데요. 지난 5일, 양식 우럭의 40%가 폐사한 경남 거제의 한 해상 양식장을 방문했습니다.

■ 우럭 양식장 곳곳에 우럭들이 배를 보이며 둥둥 떠올라


거제 항구에서 배로 15분 정도 더 넓은 먼 바다로 갔습니다. 바다 위에 섬처럼 떠 있는 양식장 위에서 네댓 명의 남성들이 분주히 오갔습니다. 한낮 가두리 양식장에서는 작업자들이 뜰채 한 가득 물고기를 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업자의 얼굴에는 시름이 가득합니다. 고무 대야가 넘치도록 쌓이는 건 폐사한 우럭들이기 때문입니다.

성인 손바닥 만한 우럭들이 흐린 눈으로 배를 뒤집은 채 둥둥 떠올랐습니다. 폐사한 우럭을 담은 이 고무 대야 하나의 무게는 약 60kg 정도인데, 8월 말까지 하루에 고무대야 15개 분량의 우럭이 죽었습니다. 단순 계산으로 900kg, 매일 1톤 가까운 우럭이 고수온에 피해를 당한 겁니다.


폐사한 물고기들을 여러 차례 걷어낸 뒤지만, 가두리 안의 우럭은 여기저기서 계속 한두 마리씩 떠올랐습니다. 고수온에 한 달 가까이 노출돼 약해진 우럭들이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한대성 어종인 우럭의 적정 사육 수온은 섭씨 18~22도입니다. 수온이 23도를 넘으면 먹이활동이 저하되고, 26도를 넘으면 움직임이 느려지며 폐사가 시작됩니다.

"올해 35년 쨉니다 지금. 내가 어장을 오래 하다 보니까, 경험 상 이때 되면 항상 고수온이 어느정도 피해가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항상 봄에 좀 판매를 많이 하는데, 올해는 후쿠시마 (오염수)방류 때문에 아예 고기 자체가 판매가 안 돼가지고, 어쩔 수 없이..."

"8월 10일부터. 태풍 카눈 지나고 난 다음부터 지금 계속... 하루에 한 일 톤씩 넘어 죽어 나가는 거야."

(피해 어민 / 거제 양식장 운영)

피해 어민은 일본의 오염수 방류 우려에 침체됐던 수산물 소비도 고수온 피해를 키웠다고 말합니다. 출하 시기를 놓친 우럭들이 양식장에 쌓니다 보니, 높아진 밀집도에 폐사한 마리수도 많았다는 겁니다.

7일까지 전국에서 신고된 양식어류 피해는 1,600만 마리를 넘었습니다.


방문 당시 현장에서 측정한 1m 깊이의 수온은 약 26.3도를 기록했습니다.

수온은 현재 다소 안정기로 접어들었지만, 남해 내만 곳곳은 최근까지도 28도 안팎의 높은 수온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수온 경보는 40일이 넘어서고 경보제 시행 이후 가장 늦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출처 : 국립수산과학원


■ 올해 늦고, 강했던 고수온

8월 말의 고수온 현상이 이례적인 건 아닙니다. 2010년대 들어서는 거의 매년 고수온에 의한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지속적인 양식업 피해에, 2017년 '고수온 특보' 체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지난 2018년과 2021년은 각각 600억 원, 210억 원 규모의 피해가 발생해 고수온 현상이 특히 심했던 해로 기록됐습니다. 지난해의 경우 고수온 특보 기간은 가장 길었지만 피해가 거의 없기도 해, 해마다 고수온 현상의 강도와 지속 시간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올해 고수온 현상은 7월 말 장마가 소멸된 이후 지속된 폭염에 의해서 장기간, 강하게 지속이 되고 있는데요. 특히 8월에는 강한 태풍이나 강우의 영향이 거의 나타나지 않아서 고수온 현상이 늦게까지 나타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지금도 일부 지역에서는 30도 이상의 폭염이 지속되고 있고, 따라서 수온도 일부 내만이나 연안 쪽에서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습니다. 따라서 다음 주까지도 고수온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한인성 연구관 / 국립수산과학원 기후변화연구과장)

수온이 높아지는 이유는 폭염과 다르지 않습니다. 맑은 날씨에 일사의 영향으로 바닷물이 데워지는 겁니다.

국립수산과학원은 올해 고수온 현상에 대해 "평년보다 시기가 늦고, 강하다"고 설명합니다. 장마가 종료된 후 폭염이 장기간 이어졌고, 고수온을 식힐 수 있는 비나 태풍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올해 8월 한 달동안의 기상 요소를 살펴보니, 비가 내린 날인 강수일수는 11.7일로 평년 13.8일보다 2.1일 적었고 폭염일수는 9일로 평년 5.9일보다 3.1일 많았습니다. 구름 없이 해가 쨍쨍한 날이 예년보다 많았던 겁니다.

8월의 일조 시간은 평년보다 23.9시간 많았던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그만큼 바닷물은 더 뜨거워졌습니다.

출처 : 국립수산과학원


고수온 피해가 컸던 남해안의 여수, 완도, 통영 세 곳의 수온입니다.

8월 초 수온이 급격히 높아지기 시작해 8월 말까지 28도 안팎의 수온이 이어집니다. 평년(2013~2022)과의 차이는 3도 안팎까지 벌어졌습니다.

출처 : 국립수산과학원


고수온 피해가 심각했던 2018년, 2021년과 비교해도 수온이 높은 편인데, 지난해와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 벌어집니다.

■ 제 역할(?)을 못한 태풍…

태풍은 바닷물을 위아래로 뒤섞는 역할을 합니다. 뜨거운 찻잔 속의 티스푼과 같은 건데요. 여름철 뜨거운 햇빛에 의해 데워진 표층의 해수를 중층과 섞어주며 수온을 낮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고수온으로 인한 우럭의 집단 폐사는 태풍 '카눈'이 지난 뒤부터 시작됐습니다.

"태풍 카눈이 오기 전날 수온이 이 밑에 20도였거든. 카눈 지나고 수온이 갑자기 28도, 29도까지 갑자기 올라가 버렸어. 바다 수온 1도 차이가 육지 기온 10도 차이랑 똑같은데 8도가 하루만에 올라버리면 우럭들이 끓는 물에 들어간거랑 똑같이 된거지."

(피해 어민 / 거제 양식장 운영)

"태풍이 지나가면서 표층 중층 저층에 있는 물들이 혼합되면서 고수온의 해수가 골고루 확산이 되다보니까, 양식 어류같은 경우는 (그물 깊이 때문에)피난을 갈 수 있는 곳이 없다보니까 피해가 난 거죠."

(민병화 연구관 / 국립수산과학원 수산재해대응팀장)

7.8m의 수심에서 측정된 27도의 수온. 수협중앙회 제공

양식장에서는 데워진 표층(*수심 5m 미만) 수온을 낮추기 위해 중층(*수심 5~10m)의 바닷물을 퍼올려 사용합니다.
(*표층, 중층 수심은 바다 깊이마다 달라질 수 있습니다.)

8월 16일 수협중앙회에 의해 측정된 수온은 7.8m의 수심에서 27도를 보였습니다. 올해는 태풍 '카눈'의 영향으로 표층의 데워진 바닷물이 섞이며 중층의 수온이 올랐던 탓에 바닷물을 퍼올려도 온도를 낮추지 못했고, 집단 폐사로 이어졌습니다.

■ 고수온에 강한 품종 개량 나서


거제에 위치한 국립수산과학원 육종연구센터는 2015년 전복을 시작으로, 2018년 넙치의 품종 개량에 나섰습니다. 이곳에선 고수온 등 이상 수온에 견딜 수 있는 품종을 개발하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연구실에서는 고수온 노출 실험에서 살아남은 넙치의 지느러미, 전복의 외투막에서 추출한 DNA 샘플을 통해 '최종 후보'를 가리는 작업이 진행중입니다.


전복과 넙치가 다음 세대를 생산하기까지는 각각 3년과 2년의 시간이 걸립니다. 살아있는 생물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만큼, 오랜 시간이 걸리는 연구입니다.

현재 육종연구센터 내 양식장의 넙치는 8세대까지, 전복은 6세대까지 길러졌습니다. 수과원은 최근 연구 대상 어종을 우럭과 참돔 등으로 확대했습니다. 개량된 품종은 해상에서 시범 양식을 거쳐 어민들에게 보급될 예정입니다.

지난달 전 지구 바다의 온도는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뜨거워지는 바다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기후변화의 속도를 따라잡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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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흠 기자 (hm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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