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도 못 믿겠다"… 전세보증계약 뒤늦게 취소 세입자만 낭패

김남석 2023. 9. 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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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서류 3~9개월 지나 적발
가입취소 되자 임대인은 잠적
"누굴믿고 전세계약하나" 호소
진위여부 확인 법 개정 불가피
HUG 제공.

전셋집을 찾던 A씨는 건물주이자 임대사업자인 B씨와 계약을 체결했다. B씨는 임대사업자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상품에 가입돼 있다며 자신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더라도 HUG의 대위변제를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세계약을 체결한 지 3개월 뒤 보증상품 가입취소 안내문이 날라왔고, B씨는 연락이 두절됐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전세금반환보증(보증보험)에 구멍이 뚫렸다. 임대사업자가 보증보험에 가입하면서 허위 서류를 제출했지만 HUG는 그대로 가입을 승인했다. HUG 보증을 믿고 전세계약을 체결한 세입자들은 전세사기에 그대로 노출됐다.

7일 HUG 등에 따르면 최근 부산에서 180여실의 빌라를 소유한 임대인이 HUG에 허위 서류를 제출한 사실이 뒤늦게 적발돼 보증보험이 해지됐다. 임대인은 계약이 끝난 일부 세대의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은 채 잠적했다.

해당 임대인이 소유한 건물은 7개로 확인됐다. 지난달 초까지 7개 건물 모두 보증보험에 가입돼 있었지만, 8월 말 4개 건물의 보증보험이 취소됐다. HUG는 취소된 건물의 세입자에게 보증보험 취소를 통보했다.

HUG 측은 세입자들에게 임대인이 최초 보증보험에 가입할 때 허위 서류를 제출한 것이 발견됐다고 설명했다.

HUG는 허위서류 제출을 보증보험 가입 3~9개월 뒤에야 발견했다. 해당 기간에 보증보험을 믿고 계약한 임차인들은 갑자기 보험이 취소되면서 전세사기에 노출됐다. 이미 계약이 끝났지만 2개월 넘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피해자도 생겼다.

계약금을 돌려받지 못한 한 세입자는 "보증보험 가입 취소 통보를 받기 전까지 연락이 잘 되던 집주인이 갑자기 연락두절됐다"며 "HUG 보증보험도 믿지 못하면 대체 뭘 믿고 전세계약을 체결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세금반환보증은 집주인이 임차인에게 계약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HUG가 대신 돌려주는 상품이다. 이후 HUG는 집주인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돈을 돌려받거나, 집을 경매에 넘겨 금액을 회수한다.

임대사업자가 상품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담보대출 등 선순위 채권과 임차계약 금액의 합이 건물가액을 넘지 않아야 한다.

해당 건물의 임대사업자는 이 비율을 맞추기 위해 일부 세대의 계약금액을 낮춰 허위계약서를 작성, HUG의 보증보험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해자들은 심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HUG에도 일부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최소한 최초 심사를 승인한 금액이라도 보증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HUG 측은 심사 과정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HUG 역시 사기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보증보험을 이행하긴 어렵다는 입장이다.

전세보증 상품 가입의 구조적인 문제도 지적된다. 전세계약을 체결하기 위해서는 HUG의 보증서가 필요하기 때문에 HUG는 임대인이 제출한 계약서만 믿고 보증을 내줄 수 밖에 없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서는 임차인 개개인에게 계약금액을 확인해야 하는데, 현재 HUG 인력으로는 한계가 있다.

하지만 허위계약 사실을 알아채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소요되면서 피해를 키웠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워졌다. 임대차계약 체결 후 한 달안에 지자체에 계약을 신고해야 하는데, 지자체 신고 자료와 최초 심사 계약서만 비교해도 허위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는 지적이다.

HUG는 작년 12월 보증서를 발급한 건에 대해 9개월여가 지난 뒤에야 허위사실을 확인했다.

HUG의 보증 심사에 구멍이 생기면서 비슷한 사례의 피해자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서울에 200여세대를 보유한 악성 임대인이 허위 계약서를 제출한 사실을 뒤늦게 발견되며 현재 계약 해지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현재 계약구조상 HUG가 임대인이 제출한 계약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계약자 개개인 모두를 거쳐야 하는데 현재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검증 방법"이라며 "HUG가 계약서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하려면 법 개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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