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벼’ 알곡 튼실해 풍년 기대 크지만…쌀값 걱정에 ‘노심초사’
일조량 풍부, 기상 여건도 좋아
생산 평년대비 15% 이상 늘듯
매년 소비 감소…가격도 떨어져
작황 좋아도 마냥 웃을 수 없어
농협 RPC 매입값 두고 ‘촉각’
“공공비축 늘려 힘 보태줬으면”
4일 오전 강원 철원군 철원읍 일대에 들어서자 한창 수확철에 접어든 ‘오대벼’의 황금물결이 사방에서 출렁이고 있었다. 평야 곳곳에선 벼를 수확하는 콤바인이 굉음을 냈다. 철원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벼 매입을 시작해 다른 지역 매입값의 바로미터(잣대)가 되는 도내 대표적인 곡창지대다. 군내 벼 재배면적은 9450㏊로 이곳에서 매년 6만5000여t의 벼가 생산된다.
35년째 벼농사를 짓는 김진수씨(60·대마리)는 “13.2㏊(4만평) 규모로 ‘오대벼’를 재배하는데 올해 특히 일조량이 풍부하고 기상 여건이 전반적으로 좋았다”며 “덕분에 농가마다 알곡이 튼실하게 여물어 제현율(벼의 껍질을 벗겨 현미가 나오는 비율)과 도정수율(투입된 벼 대비 생산되는 백미의 비율)이 예년보다 5∼10% 높아질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씨의 얼굴에선 풍년 농사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근심도 엿보였다. 김씨는 “쌀농가 입장에서 보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매년 감소세를 보이는 게 답답하기만 하다”며 “다른 물가나 농자재값은 계속 오르는데 쌀값은 그대로거나 오히려 뒷걸음질 치니 가을이 다가올수록 속이 바짝바짝 탄다”고 하소연했다.
철원농협(조합장 최진열)은 8월22일께 조생종 벼 ‘철기50호’ 매입을 시작으로 30일 본격적으로 산물벼 매입에 들어갔다. ‘철기50호’는 출수가 이른 덕에 추석 전 조기출하를 할 수 있어 ‘오대벼’ 대체종으로 주목받는 신품종으로 올해 수확량은 400여t이다. 산물벼 매입은 미곡종합처리장(RPC)에서 10월 중순까지 이어지며 한해 벼 매입량은 1만3000t가량 된다.
인근 갈말읍 일대에도 대풍의 기운이 감지됐다. 콤바인으로 벼를 수확하던 이해찬씨(69·문혜리)는 “벼 11.5㏊(3만5000평)를 재배하는데 태풍과 같은 큰 이변 없이 현재 날씨대로 간다면 쌀 생산량이 평년 대비 15% 이상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며 “지난해 농협 RPC에 65t을 냈는데 올해는 80t가량 낼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공비축 매입량을 늘리든지 해서 정부가 올해 쌀값 안정에 힘을 보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장명 동철원농협 조합장은 “전반적으로 벼 등숙이 잘된 덕분에 논마다 알곡이 꽉 차 있는 게 느껴질 정도”라며 “생산량이 늘어 지난해 RPC에서 8700여t을 매입했는데 올해는 1만t을 웃돌 것 같다”고 말했다.
동송농협(조합장 임채영) RPC엔 수확한 벼를 내놓으려는 차량으로 장사진을 이뤘다. 나락을 내려놓은 농가는 삼삼오오 모여 매입값 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동송읍 오덕리에서 만난 한 농민은 “정부가 시장격리를 얼마만큼 적극적으로 해주느냐가 여러모로 중요해졌다”며 “소비자들이 밥맛 좋은 우리쌀을 많이 애용해 농민들이 풍년에도 판로 걱정 없이 벼농사를 지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김화농협(조합장 장춘집)은 8월28일 산물벼 매입을 시작했다. 6일까지 매입량은 300t으로 모두 추석용 쌀이다. 박영철 RPC 차장은 “작황 호조로 제현율과 도정수율 모두 지난해보다 2% 이상 높아졌다”며 “농가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쌀 생산량이 평년 대비 15% 이상 늘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근북면에서 19.8㏊(6만평)가량 벼농사를 짓는 안승원씨(54·유곡리)는 “중남부 지방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쌀 작황이 좋다더라”면서도 “풍년이 들면 기뻐야 하는데 쌀값이 어떻게 형성될지 몰라 노심초사하고 있다”며 근심 어린 표정을 지었다.
지역농협 4곳은 벼 매입값 결정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신중한 모습이다. 지난해 이맘때 동송농협과 철원농협은 이사회를 열고 벼 1㎏ 기준 2040원(40㎏들이 8만1600원), 동철원농협은 2030원, 김화농협은 1920원으로 각각 결정한 바 있다.
최진열 조합장은 “우리 지역 벼 매입값에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되는 만큼 고민이 깊다”며 “농가와 농민단체를 비롯해 각계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올해 생산량을 고려해 합리적으로 가격 결정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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