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가창신공] 알고보니혼수상태…알고보니 더 놀라운 작곡 듀오

조성진 기자 2023. 9. 5.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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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 ‘감성’의 조합…퀄리티 있는 광속도 곡쓰기 정평
‘뼛속까지 트로트’와 ‘그림 같은’ 음악의 만남
트로트+발라드+엔니오 모리코네+클래식 피아노까지
김호중‧송가인‧송대관‧조항조‧장윤정‧홍진영 많은 가수 작업
TV조선 ‘명곡제작소’서 김호중과 맹활약
“김호중, 표현과 호흡 조절력 역대급”
알고보니…만 19세 때 ‘샤방샤방’ 작곡
혼수상태…수능 예체능 道수석, 20대부터 OST계 정상
“트로트는 가장 범용적 장르, 재즈와도 닮은 꼴”
“BTS 진 ‘슈퍼참치’도 트로트적 멜로디”
좋은 작곡은 익숙함과 신선함의 조화
드라마, 뮤비 감상도 곡쓰기 훈련에 도움
야마하 건반/신시사이저 애호가
‘혼수상태’, “발라드 사에 남을 명곡 쓰고파”
‘알고보니’, “K트로트 세계화의 선구자로”
사진=조성진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아주 오래전 일이다. 어린 조카 둘을 데리고 피아노를 친 적이 있다. 4살짜리 조카가 "삼촌, 흰 딱지들만 있으면 좋겠어. 검은 딱지까지 들까지 잔뜩 있으니 보기 싫어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형인 초등학생 조카가 이렇게 말했다. "야이 등신아! 흰 건반과 검은 건반이 함께 조화를 이뤄야 음악이 되는 거야. 무식한 놈."

김지환(알고보니)과 김경범(혼수상태) 두 작곡가로 구성된 '알고보니 혼수상태'와 긴 시간 인터뷰를 하는 와중에 갑자기 조카들과의 추억이 떠올랐다. 둘의 조합은 피아노 건반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혼수상태'는 감성적 스타일이다. 음악의 느낌()을 중시하므로 음정이 맞지 않더라도 필이 좋으면 그대로 가자는 주의다. 슬픈 곡을 녹음할 때 (지나칠 만큼) 집중하므로 주변에서 그를 불러도 듣지 못한다. 몰입시엔 혼수상태가 된다. '알고보니'는 이성적 스타일이다. 가수가 '살짝' 틀리기만 해도 반드시 지적 후 수정해야 속이 풀린다. 두 사람은 좌뇌와 우뇌, 왼손과 오른손, 한 마디로 피아노 건반 같은 음악 조합이다.

음악적으로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면 의견충돌이 있을 수 있지만 겹치는 게 없는 만남은 그만큼 시너지 창출도 크다. 각자 잘할 수 있는 걸 서로 교류하며 완성도 높은 작품을 꾸준히 쓸 수 있기 때문. 성인가요계에서 이들처럼 팀을 이루고 활동하는 예를 찾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트로트와 발라드 정서, 엔니오 모리코네와 클래식 피아노 감성까지 다채롭게 담으려 한다.

알고보니 홍수상태의 스튜디오 '플레이사운드' 출입구엔 많은 가수들의 덕담과 사인으로 장식돼 있다.

인터뷰를 위해 강남에 있는 '알고보니 혼수상태'의 스튜디오에 도착하자 출입문 옆에 진열된 여러 가수들의 덕담+친필 사인이 눈길을 끌었다. (사진 참조)

김호중송가인송대관조항조장윤정홍진영 등 많은 가수와 작업한 작곡 듀오 '알고보니혼수상태'는 여러 장르의 작곡가들이 모인 '플레이사운드'란 작곡 팀에서 출발했다. 이곳에서 김지환은 트로트를 맡고 있었다. '알고보니 혼수상태'는 원래 김경범의 닉네임이었다. 김경범의 작업 스타일, 즉 디렉팅을 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멍해지는 듯한 표정을 자주 짓기 때문에 '더하기미디어' 이성권 대표가 "이런 닉네임을 사용하면 아주 잘 될 것 같다"고 지어준 것이다. 김지환과 작곡 듀오를 하며 김지환이 '알고보니' 김경범은 '혼수상태'로 사용하게 된 것.

인터뷰 후반으로 가면서 이게 사실이란걸 알았다. 김경범은 멍한 듯한 표정을 보이며 '동문서답'을 해, 옆에 있는 김지환이 ", 정신 차려!"라고 웃으며 자극을 줬다.

둘은 가끔 서로 다르게 기억해 티격태격하다가도 작품세계지향성(음악)을 주제로 대화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완벽한 하모니를 들려준다. 영화 '붙어야 산다(Stuck On You)'가 연상될 만큼.

오전 11시 기상-식사-오후 2시부터 운동(헬스클럽)-작업실로 이동해 4시부터 곡 작업-새벽까지 계속 작업. 몇 년째 변하지 않는 라이프사이클이다. 유명세와 비례해 작업 의뢰도 갈수록 많아지다 보니 친구들 만나 한잔한다거나 쇼핑, 취미생활 등이 쉽지 않다. 어느 순간 워커홀릭이 '스타일'이 됐을 만큼. 연애할 시간도 없다. 김경범 김지환 모두 총각, '남들 다 있는' 여친도 없다.

스타 작곡가로서의 인기도 끊임없이 상승 중이다. 혼수상태(김경범)는 수원 집에 내려갈 때마다 아버지가 A4용지 30여 장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아들 사인 좀 받아달라고 부탁받았기 때문이다. 한때 음악을 한다는 게 너무 힘들어 '인생아 고마웠다'란 곡을 끝으로 음악을 접으려고까지 결심했다. 그런데 결국 오지 않을 것 같던 해뜰 날이 왔고 향후 꽤 오랫동안 계속될 것 같다.

둘은 하루 평균 16시간 이상 함께 한다. 부부보다 붙어 있는 시간이 많은 것이다. 그러다보니 사소한 걸로 자주 마찰이 일기도 하지만 하루를 가지 못한다. 물론 음악적인 면에서 싸운 적은 한 번도 없다. 이렇게 일상에선 '각각'이지만 음악에선 변함없는 '한몸', 특히 퀄리티가 함께 하는 빠른 곡쓰기는 많은 가수들이 놀랄 정도다. 샘솟듯 순식간에 곡이 나온다고해 '3분카레'라고 할 만큼.

이처럼 만날 때마다 피아노 치며 즉석에서 곡을 뽑아내는 '알고보니혼수상태'의 평소 모습, 작업하는 스타일에서 힌트를 얻은 '생각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아이디어를 내 방송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게 TV조선 '명곡제작소'. '명곡제작소' 얘기가 나온 김에 김호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알고보니 혼수상태는 김호중 데뷔때부터 함께 했고 김호중 정규 1'우리가' 총괄 프로듀서로도 활약했다. 이후 '파노라미' 및 현재까지 김호중과는 음악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자 중 하나다.

알고보니(김지환) [사진=조성진]
혼수상태(김경범) [사진=조성진]

"김호중은 무지개 같은 보컬리스트입니다. 특정 곡마다 그에 맞는 색깔과 발성에 변화를 주는 역량, 다시말해 무지개 처럼 다양한 색채 표현을 완벽하게 할 수 있는 가수입니다. 또한 김호중의 카리스마 무대 장악력은 엄청납니다. 예를 들어 맑은 하늘도 있고 흐린 하늘도 있지만 김호중의 소리는 이런 날씨에 상관없이 보이스가 이 모든 걸 뚫어 버리니까요." 김경범

"김호중과 녹음하며 놀랐던 것 중 하나가 바로 호흡입니다. 음악에서 음정, 멜로디도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노래가 들어가기 전 호흡이에요. 호흡을 어떻게 들이마시냐에 따라 노래 첫 음부터 달라지게 되는 법이죠. 선배 대가들의 음악을 들어보면 이미 호흡부터 남다르고 따라서 노래가 시작되는 첫 음부터 남다르게 들리는 것이죠. 바로 이 호흡 조절에 있어서 김호중은 국내 음악계에서 베스트 중 하나라고 봅니다." 김지환(알고보니)

"트로트의 꺽기는 어렸을 때부터 (어느 정도) 학습이 돼야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어요. 노력으론 한계가 있다는 거죠. 하지만 김호중은 이미 이러한 꺽기를 몸에서 갖고 있었어요. 그리고 김호중은 작곡가보다 곡을 더 많이 알아요. 전 세계의 노래를 다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래서 김호중과 음악 얘기를 할 때면 놀랄 때가 한두번이 아닙니다." 김경범(혼수상태)

"김호중은 가수이기 이전에 곡 분석력은 물론 특정 곡의 어느 부분에선 피아노보다 기타가 어울리고 또 어느 부분에선 좀 더 부드러운 프레이징으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 등등 프로듀서, 디렉터로서의 역량도 너무 탁월합니다."

김호중에 관한 '알고보니 혼수상태'의 보다 다양하고 전문적인 평은 조만간 다른 기회를 통해 더욱 많은 분량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알고보니 혼수상태는 글로벌 악기장비 브랜드 '야마하(Yamaha)' 매니아이기도 하다. 스튜디오에 비치된 장비 중 야마하가 압도적일 만큼. 그들이 지향하는 음악적 색깔과 가장 잘 맞는 것 같아 선호한다고.

"오래전부터 마스터건반과 스피커까지 모두 야마하를 애용하고 있습니다. 연주자가 생각하는 영감을 다양하게 표현해 주며 야마하 건반/신시사이저는 깔끔하고 섬세해요. 전자악기로 표현할 수 있는 범위도 매우 넓죠."

'명곡제작소' 방송에서도 이들은 곡 주문을 받는 즉시 '야마하 S90ES'를 사용해 곡을 만들어 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야마하 S90ES는 비록 출시된지 꽤 오래된 모델이지만 현재까지 사랑받고 있는 야마하의 인기 모델 중 하나다. "야마하 S90ES는 소리 자체가 표현할 수 있는 게 너무 많고 현장감도 탁월합니다."

"최백호 선생님 등 여러 가수와 함께 한 공연에서 야마하 디지털 그랜드피아노를 처음 연주한 적이 있어요. 그때 너무 소리가 좋았던 기억이 있는데, 향후 기회가 된다면 야마하 디지털 그랜드피아노를 무대에서건 스튜디오 작업에서건 다양하게 써보고 싶습니다."

'혼수상태' 김경범 

김경범(혼수상태)1985년 수원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공인중개사 1호 출신으로 중개업 때문에 항상 초등학교 1학년인 경범을 이웃 피아노학원에 맡겨 놓고 출근했다. 이렇게 하며 경범은 피아노학원에서 자연스럽게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게 됐다. 10대 후반까지 손에서 피아노를 한번도 놓은 적이 없을 만큼 열심히 클래식 피아노를 연습했다. 쇼팽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까지 연습하며 대학 전공을 염두에 뒀지만 갑자기 가세가 기울며 음대 진학을 포기했다.

경범은 피아노 뿐 아니라 글쓰기 재능도 남다른 '초등학생 시인' 이기도 했다. 각종 글짓기 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안성훈의 '좋다'란 곡도 경범이 초등학교 6학년 때 썼던 시를 기반해 만든 노래다. 당시 그가 쓴 이 시는 경기도 지역 글짓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다.

그러다가 중1때 조성모 '투헤븐'을 듣고 충격받아 음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다. 이 곡처럼 감동적인 곡을 써서 직접 조성모가 부르게 하겠다고. 본격적인 작곡 습작도 이때부터다. 공부도 잘했다. 전북 익산고 재학시절인 2003년 수능에서 예체능 수석을 차지할 만큼. 김경범 수능 수석 관련 내용은 동아일보가 2003124일 자로 보도한 바 있다.

4년제 음악대학에서 클래식 피아노 전공은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가는 관계로 포기한 대신 그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실용음악과 영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수능 점수가 높아 4년 장학생으로 동국대 영상영화학과에 들어갔다. 영화 전공은 이후의 김경범 행보에 많은 도움이 되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재학 중 다양한 장르의 많은 영화를 만나며 감각을 키워갔고 따라서 어떠한 영상을 보더라도 즉시 음악으로 만들 수 있는 역량까지 쌓게 됐다.

'알고보니' 김지환 

1988년 대전에서 태어난 김지환은 초교(성모초등학교) 시절부터 플루트, 피아노, 가야금, 장구 등 다양한 악기를 배웠다. 성모초교에 이어 대성중고에 다니며 교회 반주 활동을 병행했다. 이어 동아방송대와 서울예대에서 작곡을 전공했고 서강대 언론대학원에서 연극영화 전공으로 석사 학위를 땄다. 김지환 또한 연극영화 전공이 자신에게 편곡의 방향성, 다시 말해 풍부한 표현과 깊이있는 연출 전반을 음악에 녹여낼 수 있는 역량을 강화시켜 준 것이다.

김경범이 20대부터 OST에서 역량을 보이며 주목받았듯 김지환 또한 만 19세의 나이로 박현빈 '샤방샤방'을 작사작곡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원래 '샤방샤방'은 보사노바 재즈에 기초해 작곡했다. 트로트에선 쉽게 접하기 힘든 크로매틱 스케일과 재지한 감성, 여기에 트로트 리듬을 입혀 완성한 것이다.

어쨌든 '샤방샤방'은 김지환에겐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어마어마하게 히트해 군 제대 후 집 한 채 값의 저작권료를 벌었을 정도다. '샤방샤방'은 김지환이 생애 처음으로 쓴 곡, 작곡가로서 타고난 재능을 말해준다. 2때 좋아하던 여자가 실용음악(보컬)을 하고 있어서 그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실용음악학원을 다니게 됐고 그녀를 위해 쓴 곡이 바로 '샤방샤방'이다.

이 곡은 전국의 노래교실에서 어머니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교회에서 반주할 때부터 이미 대중에게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곡에 관심을 갖던 김지환이 많은 장르 중에서도 유독 트로트를 하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다. 목사 집사인 부모님이 목회 활동으로 바빠 김지환은 유아때부터 초등학생 때까지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당시 할머니가 매일 듣던 음악이 트로트라 김지환은 걸음마를 뗄 때부터 트로트를 들으며 성장한 것이다.

"재즈와 트로트는 음악적으로 매우 닮아 있습니다. 재즈는 주고받는 개념, 즉 한 명이 선창을 하면 다음 사람이 이어 부르듯 트로트도 서로 주고받으며 노래할 때가 많죠. 트로트의 멜로디는 재즈의 블루스와 닮아 있고 재즈가 흑인의 애환을 담아 시작됐듯 트로트 또한 우리만의 정서와 아픔이 담겨 있습니다. 스케일도 재즈와 트로트가 비슷한 게 많죠."

1년에 한 두 번 쉴 때인 휴식 기간에 김지환과 김경범은 노래방을 찾기도 하는데 노래방에 가서도 3시간 동안 트로트만 부를 만큼 트로트 성인가요 작곡가이기 이전에 '열혈 트로트 애호가'.

둘이 처음 만난 것도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우연같은 운명, 운명같은 우연이다.

20대 때의 '알고보니'

'혼수상태' 김경범은 이미 20대 중후반부터 국내 OST계에선 알아주는 음악가였다. '구가의 서', '왕가네 식구들', '하나뿐인 내편' 등등 20대 후반에 이미 400~500곡 이상의 유명 OST를 작업했을 만큼. 2013~20164년 동안 그는 '국내 OST 최다 발표 작곡가'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기도 했다.

김경범보다 이른 나이에 '샤방샤방'이란 핵폭탄급 한방을 날리며 트로트 작곡가로 활동 중인 김지환은 평소부터 그를 꼭 만나보고 싶어했다. 김경범 또한 노래방 18번이 '샤방샤방'일 만큼 김지환에 대해 궁금했다.

201612월 김지환은 트로트 작업 중 잠시 쉬려고 카페에 왔다. 마침 그 카페엔 김경범도 있었다. 그것도 바로 옆 테이블에.

김지환은 송대관과 통화중이었고 잠시후 김경범은 태진아와 통화했다. 서로 통화하는 소리를 들으며 자연스럽게 만남이 이루어졌다. 서로의 존재를 너무 잘알던 둘은 1주일 후 다시 만나 본격적으로 회포를 풀었다. 서로 너무 잘 통한다고 느꼈고 그렇게 해서 '알고보니 혼수상태' 듀오가 탄생한 것이다.

20대 때의 '혼수상태'

둘이 함께 하던 초기엔 김지환은 '베짱이'과 김경범은 '개미'과 였다.

김지환은 열심히 일한 후 열심히 노는 타입인 반면 김경범은 반대다. 여기저기서 거의 1분마다 전화가 올 정도로 OST를 비롯해 작업량이 너무 많아 일에 치여 살고 있었다.

"경범이 형이 음악 외엔 아는 게 전혀 없어서 깜짝 놀랐어요. 그 흔한 신용카드도 없었고 인터넷뱅킹도 할 줄 몰랐죠. 여행 한번 가본 적이 없다고 했는데, 심지언 명동 조차 가본 적이 없다고 했으니까요." 김지환

이런 모습이 김지환에겐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자극제가 됐고, 김경범에겐 김지환처럼 여행도 다니며 쉬는 시간이 필요하단 걸 느끼게 했다. 그래서 '알고보니 혼수상태'란 이름으로 뭉친 이래 오사카에서 제주도까지 여행도 다니며 재충전의 시간을 갖기에 이른다.

"이제 경범이 형은 혼자 은행도 갈 줄 알고 쇼핑도 할 줄 알아요.(웃음)" 김지환

빠르고 신나는 음악은 거의 알고보니(김지환)의 몫, 느리고 슬픈 발라드 타입은 혼수상태(김경범)의 몫이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이처럼 각자 특장점을 발휘하는 스타일이 뚜렷한 조합이다. 흰건반 검은건반처럼.

'알고보니'는 커피를 마실때도 악상이 떠오르면 즉석에서 곡을 완성해 버린다. 광속 스피드의 작곡 재능을 가졌다. 주변 가수들이 '3분 카레'란 닉네임을 괜히 붙여준 게 아니다.

'혼수상태'도 곡쓰는 속도가 빠르다. 물론 발라드 가사를 쓸 때 특정 어휘/표현 때문에 고민을 많이 할 때도 있지만. 그는 좋은 가삿말이 떠오르면 일단 휴대폰에 저장해 놓는다. 비슷한 분위기의 곡 의뢰가 오면 이렇게 스케치해둔 가사를 좀더 발전시켜서 완성하곤 한다. 이찬원 '시절인연', 김호중 '우산이 없어요'도 이렇게 완성한 곡이다.

"하늘을 바라보니 먹구름이 있네. 먹구름을 보니까 인생이 생각나는구나'란 생각이 들면 바로 글을 써놓습니다. 가수로부터 이러한 주제의 곡 의뢰가 오면 이전에 써놓은 이런 가사를 더욱 발전시켜서 가사로 만드는 것이죠."

김경범의 휴대폰엔 200~300개 이상의 곡의 가사 초안 데이타들이 저장돼 있다. 스포츠한국 '조성진의 가창신공' 코너를 위해 알고보니혼수상태의 허락을 받아 이 휴대폰 데이터를 찍어놨지만 그럼에도 가사 유출이 우려돼 본 코너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기분이 너무 우울해서 내 삶에 부정적이고 후회로 가득차던 중, 옆에 있는 화분을 보며, 물을 주지 않았는 데도 새싹이 돋고 있는 걸 보곤, 인생이란 것도 이처럼 버리지 않으면 희망이 있구나'로 반전될 수 있고 이걸 가사로 담을 수 있다는 겁니다." 김경범

'명곡제작소'에 출연한 정훈희와의 스토리도 들려줬다.

알고보니 혼수상태는 MBN '헬로트로트'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정훈희와 처음 만났다. 모두 심사위원으로 출연했었다. 정훈희는 자신의 CD(찬양앨범)를 주면서 알고보니혼수상태와 꼭 한번 작업해보고 싶다고 했다. '헬로트로트' 참가자들이 부르는 곡 중에 알고보니혼수상태의 곡이 많은 걸 본 정훈희는 알고보니혼수상태에게 "좋은 곡들이 정말 많다""나하고도 꼭 인연이 돼 곡 작업을 함께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후 2년이 지나 '명곡제작소'에서 다시 만나게 됐고 그 제안이 이뤄진 것이다.

현재 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김경범의 곡은 802. 이중 트로트 성인가요가 40~50%, 나머지는 발라드, OST가 주를 이룬다. "전 국민이 다아는 김경범만의 시그니처(발라드) 곡을 쓰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영화 음악감독도 꼭 해보고 싶습니다. 액션은 저하곤 맞질 않고 사랑과 휴머니즘이 들어간 영화 음악을 맡으면 저만의 감성 역량을 잘 살릴 수 있을 듯해요." 김경범

"경범이형의 음악은 뮤직비디오같은 음악이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음악을 듣고 있으면 뮤직비디오를 찍고 싶게 만들죠. 그만큼 그림 설정이 뛰어납니다." 김지환

'러브 어페어''클래식'을 인생영화로 꼽는 김경범만의 멜로 영화음악이 기대된다.

김지환이 쓴 곡은 400곡이 좀 넘는데 그중 트로트가 80% 이상. 나머지는 OST. 트로트 성인가요 전문 작곡가다운 비중이다.

"저를 트로트 작곡가라고 하는 것에 대해 한 번도 싫어했던 적이 없어요. 시작부터 트로트였고, 향후 EDM에서도 트로트가 사용될만큼 트로트가 세계적인 위상의 존재감이 되는 장르, 'K트로트' 붐을 이루는 선구자로 남고 싶은 바람도 있으니까요. 어쩌면 싸이 '강남스타일'은 한국형 뽕댄스, 댄스와 결합한 '글로벌 K트로트' 같은 시도였다고 봅니다. 해외 공연에서 영탁이 '찐이야'를 몇차례 부른 적이 있는데 현지 반응이 너무 폭발적이라 놀랐습니다. 이 곡에 '엘리제를 위하여'를 샘플링했는데, 아마 전 세계인들이 이 부분에서 특히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중독성있는 안무와 음악이 크게 어필되는 걸 보며 자신감을 얻었죠. BTS(방탄소년단) '슈퍼참치'도 트로트적인 멜로디 구성인데, 이를 보며 K팝 스타들과 콜라보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김지환

알고보니혼수상태 스타일을 대변하는 곡으로 김지환은 김호중 '고맙소'를 김경범은 정훈희 '감사해'를 꼽았다. 또한, 김호중 '우산이 없어요'는 이들이 지향하는 가장 '알고보니 혼수상태'다운 음악 스타일이다.

울고 나면 한결 시원해지는 것처럼 알고보니 혼수상태의 음악도 이처럼 전 세대에게 따뜻한 눈물의 위로를 줄 수 있는 기능을 하고 싶어 한다. 진실된 '' 위로를.

"조항조 '고맙소'는 아내를 생각하며 불렀죠. 마치 편지에 글을 쓰듯 말하는 느낌으로 노래했다면 김호중 '고맙소'는 은사님을 생각하며 불렀어요. 좀 더 울림통을 크게 해서 '찐하게' 다가가듯 노래했습니다. 조항조 원곡이 '섬세'하게 다가온다면 김호중 버전은 '찐하게' 스며든다고 할까요. 아마도 경연 때 부른 곡이다보니 뒷부분의 클라이막스에서 고음을 더 강렬하게 부르며 가창력을 보여줘야 하므로 전체적으로 김호중 버전이 원곡보다 '찐하고' 강렬하게 들릴 수 있다고 봅니다."

'알고보니 혼수상태 가요제'에서 우승자 특전곡이 있었다. 우승자 박서진을 위해 해 쓴 곡이 '별아 별아'. 박서진의 사연을 100% 담아서 쓴 곡이지만 이 곡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간 부모님을 추억하거나 그 외의 방식으로 위로받는 걸 보고 김경범과 김지환은 너무 뿌듯했다고 한다. 또한, 이 곡은 10분도 걸리지 않을 만큼 빠르게 썼다. 박서진의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던차 두 형에 대한 노래를 만들어 치유해 줘야겠다고 생각했었기에 금세 나온 것.

"신유 '토닥토닥'은 세월호 참사로 하늘로 간 아들딸이 부모에게 편지를 보내면 어쩐 심정일까란 심정을 담은 곡입니다. '먼저 떠나간 자식을 위로해 주는 곡을 써주시어 감사합니다'란 반응을 보며 작곡가로서 남다른 행복과 자부심도 들었어요." 김경범(혼수상태)

"이찬원 '시절인연'은 우리가 정말 힘들 때 썼던 곡입니다. 사람을 믿지 못하겠다. 이젠 누굴 믿어야 하지? 모든 오고감엔 때가 있다는 심정이 들던 시절 '알혼'의 심정을 노래에 담은 곡이죠. 많은 가수들이 커버할 만큼 유명 곡이 됐는데, 진심을 담아 곡을 쓰면 결국 그 피드백은 오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된 계기였습니다." 김경범(혼수상태)

작곡가의 덕목 소양

"작곡이란 익숙함과 신선함의 조화가 얼마나 잘 되느냐가 관건이라고 봅니다. 너무 신선한 쪽으로 가면 예술작품으로 가는 것이고 너무 익숙하면 식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죠. 따라서 이 조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러한 균형을 위해선 열린 마인드와 편견을 버리고 다양한 음악을 접해야 합니다." 김지환(알고보니)

"곡을 쓸 때 그 분위기에 참고가 될만한 드라마나 뮤직비디오를 많이 보세요. 뮤직비디오의 경우 음악 부분은 소거하고 영상만 보며 그에 맞는 음악을 써보는 식의 학습을 하면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작곡가라고 해서 곡만 쓰던 시대는 지났어요. 기본적으로 미디 편곡 등을 함께 배워놓길 권합니다. 멀티테이너가 되세요." 김경범(혼수상태)

롤모델

"작곡가 조영수는 발라드, 성인가요, 댄스 등 온갖 장르 막힘이 없는 분이죠. 최고의 위치에서도 독식하지 않고 함께 후배 작곡가들을 많이 끌어주는 '함께'란 마인드 등 배울 게 많은 선배님입니다." 혼수상태(김경범)

"윤명선 선배님을 꼽고 싶어요. 음악적 편견이 없는 분으로, 음악적 틀을 깨는 가사와 멜로디는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돋보입니다." 알고보니(김지환)

송가인 '서울의 달'은 알고보니혼수상태에겐 의미가 남다른 곡이다.

김건모 '서울의 달'을 뛰어넘을 수 있는 곡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게 돼 지금도 잊지 못할 곡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송가인 '서울의 달'은 무려 40차례 이상 수정해가며 꼬박 한달 이상 걸렸을 만큼 알고보니 혼수상태 사상 가장 힘들게 만든 노래다. 가사와 멜로디 등을 많이 바꿨고 노래 자체도 알고보니혼수상태에겐 새로운 장르였다. 이미 '가인이어라'란 송가인 스타일의 곡이 있으므로 이 곡에선 기존 송가인과는 다른 스타일로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도 크게 작용했다.

"만일 세 번째로 송가인 곡 의뢰가 들어오면 '찐한' 발라드곡을 해보고 싶습니다. 장윤정 '초혼' 같은."

"기회가 된다면 주현미, 심수봉 선생님의 곡도 꼭 한번 써보고 싶습니다."

김지환은 예전부터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궈 왔다. 5년 전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음악으로 번 돈으로 가난한 계층과 나누며, 함께 하는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바람은 그가 음악을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다.

김경범 또한, 음악으로 번 돈으로 향후 재단을 만들어 어려운 사람들, 특히 음악을 하고 싶어하지만 여건이 안되는 사람들을 돕고자 한다.

"모든 건 때가 있습니다. 일이건 인간관계건 억지로 하면 안 되는 것, 순리대로 살고 싶습니다." 알고보니 김지환

"인생은 밀물과 썰물입니다. 밀물일 땐 보이지 않던 바닷가 쓰레기들이 썰물일 땐 보입니다. 때가 되면 진실은 가려지는 법이죠. 오해하고, 없는 말을 지어내기도 하지만 그때마다 조급하게 대응하지 말고 '시간이 약'이라 생각하고 천천히 가려고 합니다." 혼수상태 김경범

 

 

스포츠한국 조성진 기자 corvette-zr-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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