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서 처방전 받고 투여했는데”...자신도 모르는 사이 중독된 ‘비자발적 마약 중독자’들

김양혁 기자 2023. 9. 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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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이나 척추증 같이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질병 환자들이 통증 완화 목적으로 처방받은 약물을 지속해 복용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비자발적 중독자'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한별 서울대암병원 유방센터 교수는 "마약성 진통제는 흔히 암 4기나 전이가 있을 경우 주로 사용하는데, 완치가 목적이 아니라 연명 치료 등 환자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목적"이라며 "환자들이 고통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장점이 크고, 중독 수준도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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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펜타닐 처방 환자 전년대비 증가세
처방기관·처방건수·처방량 감소세와 대조적
“의료용 마약류 처방 환자들 중독 노출 우려”
“중독보다 환자 치료 중점…우려 수준 아냐”

#70대 남성 A씨는 췌장암 3기 판정을 받고 의료용 마약류 중 하나인 펜타닐을 복용 중이다. 처방받은 다른 진통제도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A씨는 펜타닐만 복용하기 시작했다. 펜타닐 없이는 하루하루를 버티기 불가능한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약물에 중독된 A씨에게 주치의는 “이 이상 더는 펜타닐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허리 수술을 받고 퇴원한 60대 여성 B씨는 최근 병원에서 펜타닐을 처방받았다. 펜타닐 없이는 근육통과 근육경련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술을 받고 입원한 기간 동안 통증 때문에 처음으로 펜타닐을 접했다. 통증 완화 효과가 좋았지만, 갈수록 B씨는 펜타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퇴원 당시에도 펜타닐 패치를 붙어야 했다. 펜타닐 의존을 줄여보려 했지만, 내성이 생겨 결국 다시 병원을 찾아 펜타닐 처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약 중독 치료를 받는 사람들. /조선DB

암이나 척추증 같이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는 질병 환자들이 통증 완화 목적으로 처방받은 약물을 지속해 복용하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비자발적 중독자’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약물에 포함된 마약 성분 때문이다. 병원에서 처방을 통해 합법적으로 투여하는 약이 결국 ‘독’이 돼 돌아오는 것이다. 자발적 마약 중독과 달리, 통증으로 병원을 찾는 일반인들도 이처럼 비자발적 마약 중독에 노출될 수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

5일 통계청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서 펜타닐(주사제 포함)을 처방받은 환자 수는 203만448명으로 집계됐다. 전년(202만1361명)보다 소폭 증가한 수치다. 처방 기관 수와 처방 건수, 처방량 모두 전년보다 감소세를 나타냈지만, 투여 환자 수는 늘었다. 치료나 수술을 목적으로 처방받은 환자 수가 늘어난 게 원인이다.

펜타닐은 모르핀의 100배, 헤로인의 50배에 달하는 진통 효과를 내는 마약성 진통제다. 강력한 효과 때문에 주로 암 환자나 큰 수술 후 통증을 겪는 환자에게 주로 처방한다.

정재훈 전북대 약대 교수는 “암이나 통증 제어가 되지 않는 환자들에게 최후로 쓰이는 진통제가 펜타닐”이라며 “초기에는 대부분 모르핀으로 쓰다가 약효가 좋은 펜타닐로 전환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에서 환자가 이송되고 있다. /뉴스1

문제는 치료 목적으로 처방받은 펜타닐이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펜타닐은 약효만큼 중독성도 강해 ‘최악의 마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실제 암이나 척추 질환을 앓는 이들이 주로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복용을 중단한 뒤 금단 증상을 겪었다”, “구역질, 근육경직과 같은 부작용을 겪었다”는 의료용 마약류 복용 후기가 여럿 올라와 있었다.

익명을 요청한 30대 중반 여성은 “최근 어머니가 허리 수술 이후 통증 완화 목적으로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았다”며 “마약류라 사용을 최대한 줄이고 싶지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에 마냥 사용을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정재훈 교수는 “의료용 마약류를 복용하면 통증이 완화될 뿐 아니라 기분도 좋아진다. 하지만 환자들 입장에선 불법이 아닌 데다 통증이 가셔 기분이 좋아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한덕 한국마약퇴치본부 중독재활센터 팀장은 “치료를 받다가 의료용 마약류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결국 중독된 거 같다는 전화 문의가 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들 같은 경우는 복용을 중단하면 고통 때문에 (약을) 끊을 수도 없다”며 “현실적인 대책이 없어 안타까운 상황”이라고 했다.

한편 일부 전문가들은 비자발적 약물 중독을 막기 위해 마약이 함유된 약물 처방을 자제하기보다는 환자 치료에 중점을 둬야한다고 제언한다. 이한별 서울대암병원 유방센터 교수는 “마약성 진통제는 흔히 암 4기나 전이가 있을 경우 주로 사용하는데, 완치가 목적이 아니라 연명 치료 등 환자가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목적”이라며 “환자들이 고통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도와주는 장점이 크고, 중독 수준도 의학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수준”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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