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보호 뒤 버스에 깔려 숨진 주취자… 보호조치 어디까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희진 2023. 9. 4.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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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A씨, 버스전용차로에 누워있다 고속버스에 깔려
순찰차서 내린 지 50여분 뒤 사고…유족, 경찰 조치 미흡 지적
주취자 관련 112 신고 증가 추세… 현장선 업무 어려움 토로
주취자 보호 관련 법안 4건 발의했지만, 소관위 심사도 아직

경찰 보호조치를 받은 20대 주취자가 도로에 누워있다 버스에 깔려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유족은 경찰의 미흡한 조치를 지적했지만 경찰은 매뉴얼에 따라 가능한 조치를 충분히 취했다는 입장이다. 지난해부터 경찰 주취자 보호조치 관련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지만 이를 정리해줘야할 국회 움직임은 더디다. 올해 발의된 주취자 보호 관련 법안 4건은 소관위 심사도 받지 못한 채 계류 중이다.

4일 경기 오산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13일 오전 1시 59분쯤 관내 한 음식점 주인으로부터 “손님이 술에 많이 취해 집에 가지 않는다”는 112 신고가 접수됐다. 인근 지구대 소속 경찰관 2명이 출동했고, 출동 당시 20대 남성 A씨가 홀로 음식점 안에서 술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고 한다.

경찰은 소방당국에 공동대응을 요청했고, 현장에 도착한 구급대원들이 혈압 체크 등 조처를 하는 사이 A씨가 정신을 차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경찰이 A씨를 순찰차에 태운 후 여러 차례 거주지 주소를 물었으나, A씨는 “오산역 근처에 살고 있으니 오산역에 내려주면 알아서 귀가하겠다”는 취지로 대답했다고 한다.

이에 경찰은 오전 2시 28분쯤 오산역 앞에 위치한 한 음식점 부근에 A씨를 내려줬다. 그러나 A씨는 귀가하지 않고 오산역 환승센터로 연결되는 버스 전용차로 인근을 배회하다 해당 차로 한복판에 누웠다. A씨는 순찰차에서 내린 지 50여분 만인 오전 3시 20분쯤 고속버스에 깔리는 사고를 당했다. 머리를 다친 A씨는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버스기사는 어두워 A씨를 못 본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은 경찰 보호조치가 미흡했다는 입장이다. 피해자 유족은 YTN과 인터뷰에서 “차에 두거나 인근 지구대 안에만 두고 가족이나 회사에 연락이라도 해줬으면 동생이 사고를 당하지도 않았을 텐데”라며 “시민 지키는 경찰이 최소한 그거라도 해야 하지 않나”라고 주장했다.

주취자 보호조치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말엔 경찰이 술에 취한 60대 남성을 한파 속에 집 앞에 두고 떠났다 남성이 사망한 일이 알려져 논란이 됐다. 서울 강북경찰서 미아지구대 소속 경찰관 2명은 지난해 11월 30일 오전 1시쯤 ‘주취자가 길가에 누워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해 같은 날 오전 1시 30분쯤 술에 취한 60대 남성 B씨를 주소지인 강북구 수유동 다세대주택에 데려갔다.

당시 B씨의 집은 3층인 옥탑방이었는데, 경찰은 B씨를 대문 안쪽 1층까지 데려간 뒤 자택에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지 않고 철수했다. B씨는 약 6시간 뒤인 오전 7시 15분쯤 이웃 주민에 의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서울엔 한파경보가 발령된 상태였다. 경찰관 2명은 지난 6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청이 2021년 발간한 ‘보호조치 업무 매뉴얼’에 따르면, 경찰은 주취자를 단순 주취자와 의식 없는 만취자로 나눈 뒤 후자를 보호조치 대상으로 삼는다. 의식 없는 주취자 관련 신고를 접수한 경우 119나 112에 연락해 응급조치를 취해야 한다.

오산시 사고의 경우 119에 연락하는 등 매뉴얼을 준수한 만큼 경찰은 징계를 검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이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관들이 A씨를 순찰차에 태운 뒤 여러 차례 주소지를 물었으나 알려주지 않아 집 앞에 내려주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며 “하차 이후에도 그가 경찰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보행 신호에 맞춰 횡단보도를 건너는 점 등으로 미뤄 볼 때 무리 없이 귀가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경위 역시 “오산시 사고의 경우 경찰이 119도 불렀기 때문에 경찰에게 책임을 묻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며 “경찰이 할 도리는 다했다고 본다”고 했다.

주취자 관련 112 신고는 증가하는 추세다. 지난해 주취자 관련 112 신고 접수 건수는 97만6392건으로 전년에 비해 약 18만건 늘었다. 지구대, 파출소에서 근무하는 현장 경찰들은 끊임없이 발생하는 주취자 신고로 인한 업무의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이에 국회는 주취자 보호 관련 법안을 4건이나 연달아 발의했지만 아직 소관위 심사도 시작되지 않았다. 4건의 법안은 조금씩 다르나 모두 주취자 보호 체계 개선과 관련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희진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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