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잘 곳도 없는데 반가운 유커? 코로나 후유증 여전한 K관광

신익수 기자(soo@mk.co.kr) 2023. 9. 3.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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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3일 롯데면세점 명동 본점. 보따리 하나씩을 든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가 면세점 입구부터 점령했다. 중국 여객선 단체 150여 명, 중국 석도와 인천을 오가는 카페리를 통해 한국을 찾은 270여 명의 유커다. 불과 1시간 남짓한 시간에 이들은 K뷰티 브랜드와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 100명이 넘는 중국인 단체관광객이 몰려든 것은 2017년 3월 사드 사태 이후 무려 6년5개월여 만이다.

중국 정부의 한국행 단체관광 허용 이후 유커가 속속 귀환하고 있다. 관광 전문가들은 국경절인 이달 말 중추절 연휴를 기점으로 귀환이 본격화하면 올해 중국인 입국자 수가 220만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여기에 또 다른 희소식도 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로 '중국판 노재팬(No JAPAN)' 운동이 가시화하면서 반사이익까지 누리면 이 숫자는 300만명, 많게는 400만명을 넘어설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관광업계는 오히려 '유커의 귀환'을 걱정하고 있다. 코로나19 폭격에 초토화된 관광 수용 태세가 전혀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학계는 물론이고 정부 일각에서까지 항공, 숙박, 식당 등 유커를 맞이할 인프라스트럭처 회복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유커의 귀환, '관광 단비'로 이어질까. 한국 관광산업 부활의 핵심이 될 인바운드 시장의 중추, 유커 수용 태세를 긴급 점검한다.

호텔 2만실 이상 태부족

일단 공급 부족이다. 유커가 주로 머무는 서울 주변을 보자. 경영컨설팅 업체 '프로젝트수'에 따르면 현재 서울 시내에 공급할 수 있는 객실 수(관광호텔급 이상 모텔 및 에어비앤비 등 제외)는 5만8000~6만실이다. 이 중 내국인이 호캉스로 예약하는 평균 객실 수(호텔당 50~60%)를 제외하면 2만5000객실 정도가 여유분으로 남는다.

서울시는 유커 방한을 포함해 외국인 유치 목표를 3000만명까지 내다보고 있다. 3000만명 달성을 위해 필요한 객실 수는 단순히 계산해도 5만5000실 정도 된다. 3만실 정도가 부족한 셈이다. 특히 유커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코로나 직전인 2019년 서울을 찾은 전체 외국인 중 중국인 비중은 30~35%에 달했다. 현재는 5%대로 내려앉았지만, 항공 공급과 방한 비중이 정상화한다면 순식간에 여유분의 방을 점령할 수 있다. 특히 일본 오염수 방류로 중국판 노재팬 분위기가 확산되면서 일본으로 분산되던 유커까지 한국으로 P턴할 경우 연말까지 방 수요는 폭발할 수밖에 없다. 양뿐만이 아니다. 질적 측면에서 수용 태세는 최악 수준이다.

중국인 유커는 통상적으로 '1인 1침대'를 사용하는 '트윈룸'을 선호한다. 코로나 사태 직후 유커 발길이 뚝 끊기면서 아예 영업 대상을 국내로 돌렸고, 더블베드로 대부분 교체했다. 트윈룸을 갖춘 곳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정란수 한양대 교수는 "명절이나, 연말 같은 극성수기에 내국인이 방을 예약할 수 없는 사태도 빚어질 수 있다"며 "울산, 진주 같은 지방자치단체처럼 모텔을 관광호텔로 전환하거나 경기권역으로 쏠림을 분산하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중국 항공편 정상화율 62%에 그쳐

"항공편 하루 입도객 숫자가 4만명 선이에요. 이 중 2000명 정도가 외국인입니다. 매일 이 숫자가 늘기만 학수고대하고 있습니다."

제주 한 특급호텔 임원의 푸념이다. 유커 방한 제한은 풀렸는데 항공 공급이 그대로이니, 여전히 객실은 절반쯤 비어 있다. 항공 공급이 절대 부족하다는 설명이다.

국내 항공사는 잔뜩 기대감을 보이면서도 당장 항공편을 확대하기보다 상황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중국 노선은 정치·외교적 변수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당장 공급을 늘리더라도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른다.

중국 항공노선의 회복률은 62% 수준에 그치고 있다. 엔저에 일본 여행 수요가 폭발하면서 일본 노선이 코로나 이전의 96%까지 회복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공급 확대 분위기는 극명하게 갈린다. 노선 운영이 비교적 자유로운 저비용 항공사는 좀 더 적극적이다. 조심스럽게 증편을 준비하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직후 일본과 동남아시아 노선에 집중해온 전략을 수정하겠다는 의지다.

제주항공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9년 대비 항공기 기단 규모가 85% 수준이다. 당장 공급 확대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하반기 차세대 항공기 B737-8을 도입해 공급을 늘린다는 구상이다. 진에어는 하반기 제주∼시안 노선을 재운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반면 대형 항공사는 증편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8월 9일부터 오는 10월 28일까지 인천∼샤먼 노선을 운행하지 않는다. 아시아나항공도 즉각 증편을 신청할 계획은 없는 상태다.

일단 분수령은 이달 말 추석 황금연휴가 될 전망이다. 중국을 찾는 한국인 여행객이 늘어나면 순차적으로 공급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다. 여행업계 관계자는 "중국 노선 항공 공급은 정상 수준 대비 60~70% 선에 머물고 있다"며 "결국 추석 연휴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충원 안 된 여행사 직원

여행사 준비 상태도 걱정거리다. 핵심 여행사의 직원 수는 아직도 코로나 사태 이전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여행사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최대 여행사 하나투어의 6월 말 현재 직원 수는 1195명으로 코로나 이전인 2019년 6월 말과 비교하면 52.7%로 반 토막 수준이다. 모두투어도 같은 기간 1206명에서 580명으로 51.9% 줄어든 상태다.

중견급 여행사도 마찬가지다. 노랑풍선은 604명에서 410명으로 32.1% 감소했고, 참좋은여행은 390명에서 278명으로 28.7% 줄었다. 물론 모든 직원이 중국팀에 배정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수용 태세는 불안하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중국 인바운드 여행은 대부분 자회사를 통해 이뤄지고 있어 별문제는 없다"며 "다만 중국어 전문 인력이나 상담원을 구하는 건 힘들다"고 털어놨다.

특히 국내 투어를 전담하는 가이드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갑작스럽게 중국인 단체관광이 허용되면서 중국인 전문 가이드는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또 다른 여행사 관계자는 "일반 여행사 직원 월급의 1.5배를 줘도 구할 수가 없다"며 "지상비(한국 현지 투어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투어를 진행하는 게 손해인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유커 태울 전세버스는 '대란'

"수급 차질뿐만이 아닙니다.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대란 수준이 예상됩니다."

한 한국여행업협회 관계자의 푸념이다. 유커가 타야 할 전세버스는 그야말로 대란 수준이다. 수급 차질이 최우선 해결 과제다. 개점휴업이던 코로나 시기에 상당수 전세버스 기사가 플랫폼 배달이나 플랫폼 택시 등 수입이 안정적인 직종으로 이직한 탓이다.

여행업계는 국내 수학여행 시즌과 맞물리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가을 수학여행까지 엔데믹을 맞아 정상화되면 국내 수요까지 폭발하며 전세버스 대란은 피할 수 없게 된다.

유커 특수를 가장 많이 받을 것으로 기대되는 제주 지역 전세버스 공급이 최대 문제점으로 지목되고 있다.

코로나 시기 제주 지역 버스기사는 수입이 안정적인 준공영버스로 대거 이직한 상태다. 오히려 이들이 정년을 맞은 뒤 관광버스로 복귀하는 구조가 정착되면서 기사 고령화 문제도 불거지고 있다.

전세버스 업계 관계자는 "모처럼 업계가 활기를 띨 것으로 예상되지만 당장 버스기사 수급이 문제"라며 "준공영버스로 이직한 기사가 정년 퇴임해 관광버스로 복귀하는 구조로 고령화 추세"라고 말했다.

제주 지역은 전세버스 60여 개 업체가 1800여 대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여행업협회는 아예 제도 개선을 관련 부처에 요구하고 있다. 15인승 이하 승합차를 임시 전세버스로 영업할 수 있게 법제를 유연화해 달라는 요구다.

한국여행업협회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10인 이하 소규모 유커의 방한도 급증하고 있다"며 "이들을 분산해 작은 차로 투어를 해도 전혀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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