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용어 ‘정상’ 개념에… 왜 현대인 삶이 지배당하나[북리뷰]

박동미 기자 2023. 9. 1.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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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정상인가
사라 채니 지음│이혜경 옮김│와이즈베리
원래 각도 등에서 쓰인 용어
일상적 단어된 건 200년 전
19세기 통계학자인 케틀레가
‘평균인’ 개념 고안한 게 기원
당시 평균은 ‘완벽’에 가까워
이후 몸·정신 등 ‘표준화’ 하며
인종·성차별 옹호 근거되기도
“정상은 기준 아닌 이상향” 결론
1945년 미국 여성의 평균으로 여겨진 조각 ‘노르마’(왼쪽)와, 이와 가장 흡사한 사람을 찾는 대회에서 우승한 마사 스키드모어. 와이즈베리 제공

누구나 한 번은 묻는다. ‘나는 정상인가’. 뒤에는 이런 질문도 붙일 수 있다. ‘그런데 정상은 무엇인가.’ ‘평균’ 혹은 ‘표준’이라 부르는 그것. 책은 우리 관념 속에 ‘정상’으로 규정된 것들의 이면을 파고든다. 저자는 사회를 작동시키는 하나의 합의로서 ‘정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좇는(혹은 집착하는) ‘평균’과 ‘표준’이 의료계와 과학계에 의해 구축되어 온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책은 그것이 자주 도달할 수 없는 ‘이상’에 가까웠다면서 과연 ‘정상’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만들어지고 존재해 왔는지를 탐구한다.

영국의 의학박사이자 정신 건강 연구가인 저자에 따르면 ‘정상’이라는 단어, 즉 ‘노멀’(Normal)이 일상적으로 쓰이게 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것은 본래 수학에서 각도와 방정식, 공식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된 용어였다. 선과 연산은 정상이나 비정상이라 구분했으나,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았던 것. 그런데 어째서 ‘노멀’은 현대인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게 됐을까.

18세기 의사 페트루스 캠퍼의 논문에 실린 안면각 도해. 캠퍼는 ‘아름다움’ 측정 기준으로 안면각을 제시했고 하등동물일수록 안면각이 작다고 주장했다.

‘표준’의 탄생으로 먼저 거슬러 올라가는 책은 19세기 ‘평균인’이라는 개념을 고안한 벨기에 통계학자 아돌프 케틀레(1796∼1874)에 주목한다. 케틀레는 진정한 인간을 대표하는 ‘평균인’이 있다고 믿었다. 요즘 시대에 ‘평균적이다’는 칭찬이 아닐지도 모르겠으나 케틀레가 주창한 ‘평균’은 모든 면에서 일정 수준의 자질을 갖춘 것으로, ‘완벽’에 가까웠다. ‘정규분포’ 그래프에서 가장 높이 솟아오른 그 지점 말이다. 이를 벗어나는 사람은 오차 곡선상의 ‘오류’다. 이렇게 책은 ‘정상성’을 둘러싼 역사적 맥락을 통계 연구에서 찾는데, 저자는 케틀레의 ‘정상적 인간’ 개념이 어느새 신체는 물론, 정신 건강, 성생활, 감정 문제, 자녀 양육 등에 걸쳐 사회를 ‘표준화’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한다. 또 케틀레 이후 서구 과학자들이 평균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이례적으로’ 보이는 수치들을 삭제하면서 여성과 아이들의 데이터가 배제됐고 중산층 백인 남성이 ‘평균인’의 기준이 됐다는 것이다. 이는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사회와 국가가 ‘정상’으로, 식민주의·인종차별·성차별을 옹호하는 근거가 된다. 도망가는 노예는 ‘도망병’에 걸린 ‘비정상’이고 아빠와 엄마, 자녀로 구성된 가정이 ‘표준’이며, 결혼하지 않은 여성이 신경쇠약에 걸리면 그 처방은 ‘결혼’밖에 없다는 식의 편견도 만들어 냈다. 특히 빅토리아시대(1837∼1901) 맹위를 떨친 ‘히스테리는 여성의 것’이라는 인식은 오늘날까지 내려오는 유산인데, 책은 이 역시 당시 학자들이 실험 모집단을 백인 남성으로 꾸렸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책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12%에 불과한 중산층 백인 남성은 빅토리아시대 이후 심리학 연구 대상의 96%, 의학 연구 대상의 80%를 차지한다.

정상성 구축 과정과 사례를 보여주는 실제 사건이나 연구 조사, 그리고 저자의 개인적 일화들은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21세기 인류에겐 그 자체가 ‘비정상’. 예컨대 1945년 미국 클리블랜드에서 열린 ‘당신은 전형적인 여성, 노르마입니까’ 경연 대회를 보자. 참가자들은 키, 몸무게, 가슴둘레, 엉덩이와 허리 둘레 등을 제출해야 했는데, 이는 1942년 제작된 조각상 ‘노르마’와 신체 규격이 똑같은 여성을 찾기 위해서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4000명의 여성이 지원했으나, 단 한 명도 일치하지 않았다. 당시 ‘평균적인 미국인’을 대표한다는 ‘노르마’였는데 말이다. 이는 평균이 아닌 이상을 반영한 ‘허구’였기 때문이다. 노르마 조각을 위해 선택된 표본은 대부분 18∼20세 건강한 백인 청년들이었다. 책은 19∼20세기 이런 식의 과도하게 편중된 표본조사가 반복됐고, ‘정상 아닌 정상’의 범주를 계속 양산했다고 말한다.

저자는 신발 가게에서 자신이 280㎜를 찾을 때마다 점원들이 놀라 다시 묻는다면서, 현재 영국 여성 95%의 발이 225∼280㎜ 사이에 분포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대부분의 여성화가 275㎜까지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토로하기도 한다.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시력 검사 일화도 정상성의 모순을 보여준다. 쇼의 시력은 상위 10%에 해당할 만큼 우수했고, 이는‘정상’이라 진단됐다. 그렇다면 나머지 90%는 정상인가, 비정상인가. 완벽한 신체처럼 완벽한 시력 또한 대부분의 사람이 부응하지 못할 이상임에도, 여전히 ‘평범한’ 시력은 ‘이탈’이자 ‘오류’로 존재했던 것.

그리하여 언제나 일상의 좌절은 늘 우리, 진짜 ‘평균인’들의 몫이 된다. 버스 손잡이의 높이와 문손잡이의 위치, 그리고 즉석식품의 소금 함량에 이르기까지….

진화론도 정상 규정의 기준이 됐다. 인종주의가 드러나는 ‘기형인간 쇼’ 포스터.(1860)

저자는 20대 때 다소 튀는 행동으로 인해 남자 친구로부터 좀 정상적인 여자 친구일 수는 없냐는 잔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본격적인 ‘정상성’ 연구가 이뤄졌고, 그 끝에 “정상성이 다양한 차이를 보여주는 하나의 기준이 아니라 달성해야 하는 목표이자 성취해야 할 이상향”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리고 우리는 이 책을 만날 수 있었다. 200년밖에 되지 않은 ‘정상성’이 왜 현대적 집착이 됐는지, 평균과 표준이라는 개념 뒤에 숨은 차별과 억압의 역사까지 깨우칠 수 있게 됐다. 앞으로도 우리는 우리의 체중, 키, 성적 취향이 정상인지 아닌지, 다른 사람과 얼마나 다른지 비슷한지를 묻는 걸 멈출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적어도 ‘정상’이라는 관념이 부여한 규범과 기준에 의문을 품고,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됐다. 그것이 ‘기준’이 아니라 ‘목표’였다는 사실. 그것만으로도 잠시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각자의 개성을 조금 더 뿌듯하게 여기며. 그리고 다시 묻는 것이다. 나는 정상인가, 그리고 정상은 무엇인가, 하고.

책의 말미에는 19∼20세기 이뤄진 조사 연구의 질문지들이 실려 있다. 1884년 국제건강박람회에서 실시한 인체 측정 질문지, 1936년 진행된 남성성-여성성 테스트 ‘성과 성격’ 등. 응답지도 있으니 한번 참여해 보시길. 548쪽, 1만9000원.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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