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단 부채 꾸미고 자작자작 나무 태워 그림까지…수원 한옥 이색 체험

김혜성 여행플러스 인턴기자(mgs07175@naver.com) 2023. 9. 1.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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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치올라 카페에서 본 푸릇한 전망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처서가 지나자마자 귀신같이 아침 공기가 선선해졌다. 무더운 올여름이 지겨웠는데도 막상 푸릇한 여름이 지나간다고 하니 아쉽다. 싱그러운 여름의 끝자락과 삽상한 가을의 초입을 시작하는 이 시기에 딱 어울리는 곳이 있다. 경치만 구경해도 그만인 한옥 나들이다.

여기에 이색 체험 거리까지 있는 명소가 경기도 수원에 있다고 해서 여행 플러스가 찾아갔다. 가을로 치닫는 여름이 가기 전 바로 이때 가면 좋을 수원의 한옥 이색 체험 2선을 소개한다.

한옥에서 만드는 비단부채…화홍사랑채
전통 한옥 화홍사랑채와 완성한 비단부채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화홍사랑채는 도심 속에서 만날 수 있는 고즈넉한 전통 한옥이다. 이곳은 수원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전통문화 및 예술 체험 공간이다. 수원시 공공 한옥인 화홍사랑채는 체험 등을 따로 신청하지 않아도 들려서 부담 없이 쉬어갈 수 있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전통문화와 관련한 다양한 체험 등을 상시 진행한다. 계절별로 새로운 특별 체험을 운영하며 내부에 계절 분위기에 맞는 인증 사진 명소도 함께 조성해 늘 신선함을 마주할 수 있다.

화홍사랑채 내부 솟대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전통 옷감이 바람에 나부낀다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입구부터 푸른 녹음이 가득한 화홍사랑채는 곳곳이 사진 명소다. 초목 사이로 우뚝 서 있는 솟대가 무엇보다 인상적이다. 한 편에 걸려있는 전통 옷감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 역시 한옥과 어우러져 고즈넉한 정취를 더한다.
화홍사랑채 입구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올여름 한옥 바캉스 콘셉트 특별 체험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여름 동안 이곳에선 한옥 바캉스를 콘셉트로 해 나만의 바다 디퓨저 꾸미기·모시 모빌 만들기·비단부채 만들기 등 다채로운 체험이 열렸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체험은 ‘비단부채 만들기’.

비단부채는 비단 재질 위에 그려진 밑바탕 그림을 한국화 물감으로 알록달록하게 채색해 만든다. 비단은 종이부채에 비해 부드럽고 투명하면서도 더 질겨 튼튼하다.

이곳의 비단 부채는 이미 밑바탕 그림이 그려져 있어 채색만 하면 완성이다. 어린 아이들이나 손재주가 없는 사람들도 쉽게 만들 수 있다.

비단부채 만들기 기초도구와 ‘화성원행의궤도’ 속 채화 장식 그림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화홍사랑채 비단부채의 바탕 그림은 ‘화성원행의궤도’에 나오는 채화(綵花)를 본뜬 것이다. 화성원행의궤도는 1795년 정조가 그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수원으로 행차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채화는 행차에 사용했다고 기록한 비단·모시·종이 등으로 만든 꽃장식이다.

장하나 수원문화재단 전통사업부 담당자는 “채화 장식은 현대 근조화환 등의 모티브다. 다만 화성원행의궤도에 나와 있는 장식은 모양이 굉장히 복잡해서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도록 밑바탕 그림을 간소화해 다시 제작했다”며 “전통문화 체험에 수원의 역사까지 엮어 의미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좌) 비단부채 도안 (우)한국화 물감으로 비단부채 도안을 채색했다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비단부채 만들기에 직접 도전했다. ​부채를 만들 때는 앞·뒷면을 제대로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부채 테두리가 솟은 쪽이 앞면이고 평평한 쪽이 뒷면이다. 채색용 붓으로 뒷면에서 바탕색을 칠하고 앞면은 선을 따는 붓으로 강조하고 싶은 부분만 칠하면 더 뚜렷하고 화려한 색감의 부채를 만들 수 있다.
비단부채를 채색하고 있다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장하나 수원문화재단 전통문화부 담당자가 채색한 비단부채/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비단부채 체험에는 한국화 물감을 사용하는데 수채화 물감과 다르게 색이 더 쨍한 게 특징이다. 한국화 물감의 안료 중 하나로 천연 광석을 분쇄해 광택이 나는 석채(石彩)를 사용하기에 이런 특징이 두드러진다. 마른 뒤에는 물이 묻어도 번지지 않는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특히 한지 등과 같은 전통 종이와 쓸 때 발색이 더 뚜렷해 궁합이 좋다. 비단 재질 역시 마찬가지로 물감을 칠하니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화홍문 앞에서 비단부채를 흔들고 있다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한옥의 정취를 느끼며 손을 열심히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비단부채 밑바탕 그림을 빈틈없이 꽉 채웠다. 비단 특유의 오묘한 재질과 꽃과 나비 등으로 이뤄진 그림이 만나 생동감이 느껴진다.

화홍사랑채는 화성의 북쪽 성벽과 수원천이 만나는 곳에 있는 수문 ‘화홍문’과 마주하고 있다. 시원한 물을 내뿜는 화홍문 앞에서 비단부채를 흔들며 기념사진을 남기기 제격이다.

화홍 사랑채 상설 체험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일 년 내내 할 수 있는 화홍사랑채 상설 체험으로는 한옥 스크래치·포토 그립톡·포토 거울 등이 있다. 한옥 스크래치는 종이를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 ‘수원화성’ 건축물과 수원의 마스코트인 청개구리 ‘수원이’를 그려내는 체험이다. 포토 그립톡 체험에서는 직접 찍은 사진을 넣어 세상에 하나뿐인 스마트폰 액세서리인 그립톡을 만들 수 있다. 포토 거울 역시 체험자가 찍은 사진을 넣어 나만의 손거울을 제작할 수 있다.
화홍 사랑채 내부 전경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각 체험은 홈페이지에서 예약하거나 현장에서 당일 접수할 수 있다. 한산하게 체험을 즐기고 싶다면 평일 화·수요일에 방문하는 걸 추천한다. 화홍사랑채는 매주 월요일 휴무다. 화~일요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장하나 씨는 “다가오는 가을에 새로운 특별 체험을 진행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한다”며 “화홍사랑채는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니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오셔서 재미있는 전통문화 체험해 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작자작 나무 태우는 소리 매력…행궁 치올라
2층에 행궁 치올라 카페가 있다/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우드 버닝(wood burning)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나무를 태운다는 뜻이다. 행궁동 골목 귀퉁이의 한옥 카페 ‘행궁 치올라’에 가면 인두 펜으로 나무를 태워 그림을 그리는 우드 버닝을 체험할 수 있다.

2층으로 된 한옥에는 1층엔 햄버거집이, 2층엔 카페인 행궁 치올라가 있다. 가게 간판이 풀숲으로 뒤덮여 있어 크게 눈에 띄지 않는데 이 점이 오히려 독특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고즈넉한 한옥 카페 행궁 치올라/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이 카페는 일상 속의 쉼을 원하는 이들에게 꼭 맞는다. 가게 이름인 치올라(chiola)는 이탈리아어로 달팽이를 뜻한다. 행궁 치올라 사장은 “이곳에서만큼은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달팽이처럼 천천히 일상의 여유를 누리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라고 밝혔다.
(좌) 입구 옆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행궁 치올라가 나온다 (우) 들어가는 문이 전통 무늬를 사용한 창호다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행궁 치올라 전망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요즘 카페는 맛뿐만 아니라 공간도 아주 중요하다. 현대 소비자들은 카페를 단순히 ‘음료’를 즐기러 가는 곳이 아닌 ‘공간 자체로의 소비’로 여긴다. 그런 점에서 행궁 치올라의 전망은 공간 값의 값어치를 톡톡히 치른다.
행궁치올라 내부 전경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유네스코가 수원화성을 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이후부터 행궁동은 고층 건물 등을 세울 수 없는 개발규제 지역이 됐다. 높은 건물을 찾아볼 수 없는 행궁동에서 2층 높이 건물에 불과한 행궁 치올라는 서울의 ‘롯데월드타워’나 다름없다. 이곳에서 훤한 통 유리창 바깥으로 시야를 가리는 건물 하나 없이 탁 트인 행궁동 도심을 감상할 수 있다.

전망 값에 더해 이색 체험 거리 우드 버닝까지 있는 행궁 치올라에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우드 버닝은 정신질환자의 재활을 돕는 미술 치료의 일부로 심리 치료 효과까지 있다.

미술 치료를 전공했던 행궁 치올라 사장은 우드 버닝의 매력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어 이 카페를 차렸다. 실제로 가게에 주기적으로 오는 지적장애인 단골손님도 있다고 귀띔했다.

행궁 치올라 손님이 그리고 간 일본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 속 고양이 지지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좌)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인두펜 (우) 매일경제와 여행플러스 로고로 밑바탕 작업을 했다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이 카페에 방문해 내부를 둘러보다 문득 놀란 점이 있다. 내부에 방문객이 많았는데도 도서관처럼 조용하다. 소음 관련 문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조용히 할 것을 강요하는 사람도 없지만 오직 ‘자작자작’ 소리만 들을 수 있다. 자작자작 소리의 정체는 달아오른 인두 펜으로 나무판을 꾹 눌러 태울 때 나는 것이다.
(좌) 우드 버닝 작품을 컵받침으로 준다 (우) 우드 버닝에 열중한 손님들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행궁 치올라 사장은 “이곳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우드 버닝을 체험하러 온다”고 운을 뗐다.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한옥에서 나무 타는 향을 맡으며 집중해 그림을 그리다 보니 손님들이 저절로 말수가 적어지는 신기한 현상이 벌어진다”며 웃었다.
(좌) 항시 환기가 가능한 행궁 치올라 창호 (우) 매일경제 & 여행플러스 로고가 우드 버닝 작품으로 재탄생했다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가게에 방문해 ‘우드 버닝 체험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매끈한 5000원짜리 나무판을 준다. 먼저 연필로 나무판 위에 밑그림을 그려야 한다. 달궈진 인두 펜으로 밑그림 선을 따라 판을 지지며 원하는 깊이만큼 나무를 태워 그림을 완성한다.

인두 펜으로 밑그림의 안을 채색할 때는 한쪽으로 해야 더 깔끔하게 칠해진다. 인두 펜이 지나간 자리에는 짙은 갈색 선과 장작불 향만이 남는다. 항시적으로 환기하는 한옥 창호가 있어 안전하게 체험할 수 있다.

다정히 붙어 우드 버닝을 하고 있는 딸과 아빠 / 사진=김혜성 여행+기자
손님들이 놓고 간 우드 버닝 작품을 자랑하던 행궁 치올라 사장은 “우리 가게에 오는 손님들한테 정말 고맙다”며 “우리 가게에 오는 모든 사람이 편안함과 즐거움만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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